항목 ID | GC01702617 |
---|---|
한자 | 湖西歌 |
영어음역 | Hoseoga |
영어의미역 | Short Lyric Poem about Chungcheongdo |
이칭/별칭 | 「목천남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서 장이 서던 옛 조선시대 지명의 특색을 소재로 한 단가.
[개설]
「호서가」는 조선시대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주요 고을과 장이 서던 생활권 중 광범위한 고장을 포함하여 지은 노래로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지역의 이름을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기 위한 애향의 단가이다. 또한 「호서가」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지명으로 노래한 「호남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면서 소리꾼들이 흔히 지명으로 노래를 하는 단가이다.
「호서가」의 가사에 사용된 지명을 현행의 행정구역으로 분류하면, 충청남도 35개, 충청북도 18개, 경기도 1개, 대전광역시 2개 등 총 56개에 이른다. 이를 다시 시·군명과 읍·면·동의 명칭으로 분류하면, 충청남도는 시·군 14개(논산시·계룡출장소 제외), 읍·면·동 21개이고, 충청북도는 시·군 9개(청원군 제외), 읍·면·동 9개이며, 경기도는 군 1개이고, 대전광역시는 동 2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에 관련 내용은, “황성(皇城)이 지공(至公)하니/ 읍읍(邑邑)이 공주(公州)로다.”를 들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0년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에 사는 김동구의 창을 채록하였다.
[내용]
목천(木川) 나무 배를 묶어/ 면천(沔川)[당진]수에 띄워 놓니./ 당진(唐津)으로 흘러 놓아/ 호서(湖西)를 돌아보니/ 곤륜산(崑崙山) 중조봉(中祖峯)은/ 백두산(白頭山)의 연산(連山)[논산]이라/ 황하수(黃河水) 내린 물이/ 황간수(皇干水) 된단 말가/ 물마다 해미(海美)어늘/ 뫼마다 서산(瑞山)이라/ 산수(山水)도 좋을시고/ 인걸(仁傑)이 대흥(大興)하니/ 한산(漢山)의 장량(張良)이요/ 노성(魯城)에 공자(孔子)날사/ 이단(異端)을 멀리하고/ 인륜(人倫)을 신창(新昌)케라/ 부자유친(父子有親) 회인(懷仁)이요/ 군신유의(君臣有義) 전의(全義)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예산(禮山)하니/ 이 아니 덕산(德山)인가/ 만학천봉(萬壑千峯) 상응(相應)하니/ 국가(國家)의 아산(牙山)이라/ 천수만파(千水萬波) 나린 물이/ 골골마다 서천(瑞川)하니/ 이렇듯이 많은 물을/ 그 뉘라서 진천(鎭川)하며/ 저렇듯이 많은 뫼를/ 그 뉘라서 진잠(鎭岑)할꼬/ 성은(聖恩)이 물이 되어/ 흘러가니 은진(恩津)이라/ 요순(堯舜) 태평(泰平) 남은 덕(德)을/ 무슨 수로 보은(報恩)할꼬/ 성상이 회덕(懷德)하사/ 천리(千里) 동방(東方) 비인(庇仁)[서천]이라/ 황성(皇城)이 지공(至公)하니/ 읍읍(邑邑)이 공주(公州)로다./ 삼백육십(三百六十) 넓은 홍주(洪州)/ 성상(聖上)이 영동(永同)하사/ 청안(淸安)[괴산]을 숭상(崇尙)하니/ 각읍(各邑)이 청주(淸州)로다/ 충신(忠臣)을 권면(勸勉)하니/ 처처(處處)마다 충주(忠州)로다./ 어유하 성은(聖恩)이야/ 우순풍조(雨順風調) 천안(天安)하사/ 옥야천리(玉野千里) 옥천(玉川) 땅에/ 해해마다 연풍(連豊)하니/ 문의(問義)도 하려니와/ 가색(稼穡)을 힘 쓰리라/ 못[池]을 메워 밭을 가니/ 이 아니 평택(平澤)인가/ 산전(山田)에 피 씨 심어/ 직산(稷山)이 되었구나/ 농극(農隙)에 틈을 얻어/ 돌을 모아 결성(結城)하고/ 석성(石城)이 굳어지니/ 서해(西海) 연기(煙氣) 피어 난다./ 이삼월(二三月) 영춘(永春)비에/ 괴산(槐山)에 잎이 피고/ 제천(堤川)내 언덕 위에/ 푸른 풀 좋았거늘/ 승지(勝地)에 그늘지니/ 이 아니 음성(陰城)인가/ 저는 나귀 추켜타고/ 녹수(綠水) 청산(靑山) 들어가니/ 이 산(山) 저 산(山) 정산(情山) 없어/ 풍경(風景)도 그지 없다./ 춘일(春日)이 온양(溫陽)하야/ 화기(和氣)를 자아내니/ 붉은 꽃이 단양(丹陽)이오/ 푸른 잎이 청양(靑陽)이라/ 화초(花草)섞어 나린 물이/ 남포(藍浦) 바다 된단 말가/ 날아가는 비 홍산(飛 鴻山)아/ 네 어데로 향하난다./ 풍광(風光)을 돌아 보니/ 임천(林川)이 여기로다./ 태안(泰安) 성세(盛歲) 일이 없어/ 산수(山水) 구경 다니노라/ 한 하노니 이 내 몸이/ 청풍(淸風) 고산(高山) 네 아니면/ 뉘로하여 만세(萬世) 보령(保寧)하리요./ 연기봉(燕岐峯)에 춤을 추고/ 오천수(鰲川水) 노래할제/ 좋은 경계(景界) 다 버리고/ 어이하여 풍상(風霜)인고/ 어화 세상 벗님네야 이내 한말 들어 보게/ 좋은 날과 싫은 날을/ 어찌 가려 광천(光天)하랴/ 강경지심(强經之心) 날로 키워/ 청풍명월(淸風明月) 키워세라.
[현황]
「호서가」는 1978년 허흥식이 『백제문화』11에 새로운 가사를 발표함으로써 알려졌다. 1980년대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의 창자 이강습과 김동구가 부르는 「호서가」 소리를 필자가 듣고 성장하였으나 김동구가 사망한 후에 단절되었다. 그 이후 쇠퇴하여 지금은 「호서가」의 가사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