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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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根述 |
영어음역 | Bak Geunsu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박근술(朴根述)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인동면 진평동에서의 만세 운동은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선언서 20매를 이 마을의 유지 이상백에게 전달하면서 추진되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3월 11일에는 그의 집에서 태극기와 선언서를 제작·인쇄하였다. 박근술은 거사 당일인 3월 12일 밤 8시에 3백여 명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제의 탄압으로 중심 인물 일부가 검거되고 해산하였으나, 박근술 등 일제의 검거를 피한 인사들에 의해 만세 시위는 다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박근술은 3월 14일 오후 9시에 주민 2백여 명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