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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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明彦 |
영어음역 | Bak Myeong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박명언(朴明彦)은 1919년 칠곡군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柏)을 중심으로 이영식(李永植)·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7일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을 찾아와 동지를 모이게 하여 상의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박명언은 마을에 독립선언서를 내붙였고 3월 12일 오후 8시 뒷산 마루에서 독립 만세를 부른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날 오후 8시가 되자 동민들은 뒷산 기슭으로 속속 모여들어 그 수는 300명에 달하였고, 주동 인물들의 선창에 따라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부르다가 급히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주동 인물 8명이 검거되고 강제 해산당하였으나, 그후에도 이들의 저항의식은 더욱 높아갔다. 박명언은 3월 14일 오후 9시경에 2백여 명의 동민과 더불어 뒷산 기슭에서 다시 독립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2차에 걸친 만세 운동으로 많은 주동 인물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