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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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宅 |
영어공식명칭 | Historic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조선 시대 전통 양식의 주택.
[개설]
고택은 우리나라 전통적 건축 방식과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일컫는 것으로, 경산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 고택으로는 난포고택[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과 산남정사,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 경주맞배집, 까치구멍집, 의인정사가 있다. 영남대학교 민속촌에 있는 건축물은 모두 경상북도 경주와 안동에서 옮겨온 것으로 각 지역의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난포고택]
난포고택(蘭圃古宅)은 1546년(명종 1) 처음 건립되었다. 이후 ‘가경(嘉慶) 14년[1809년]’이 적혀 있는 막새기와와 1816년(순조 16) 작성된 중수 상량문이 발견된 것을 통해 두 차례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4년 대문채와 큰사랑채를 복원하였다.
원래 안채·사랑채·아래채·중사랑채·방아실채·행랑채와 대문채·고방채·마판·사당 등을 모두 갖춘 조선 시대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었으나, 현재는 대문채·큰사랑채·안채·아래채·사당이 남아있다. 현재의 배치는 대문채를 들어서면 바로 큰사랑채가 있고 큰사랑채 우측에 수오당(守吾堂), 수오당 왼쪽 담장을 따라가면 안마당이 나타난다. 안마당 끝 쪽에 안채가 서향하여 있고 안채의 왼쪽에는 아래채가 남향하여 있다. 안채의 오른쪽 뒤에는 사당이 있다. 난포고택은 그 규모면에서 조선 시대 경산 지역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안채는 가운데 5칸의 지붕이 맞배지붕이면서 양쪽 끝 좌·우 1칸은 지붕을 덧달아낸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이러한 양식은 경상북도 영천, 경주, 경산 등 남부지방에서만 주로 나타나는 형태로 의미가 있다.
[산남정사]
산남정사(⼭南精舍)는 옛 최재찬 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건물의 가구법 및 장식 수법 등으로 보아 1800년대 말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은동재(隱東齋)’로 불렸으나, 현재는 ‘산남정사’ 현판이 중당에 올려져 있다.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삼량가 팔작기와지붕 홑처마집이다. 평면은 중당을 중심으로 좌우 쪽마루와 온돌방 1칸씩을 연접시킨 중당협실형(中堂狹室形)이며, 쪽마루의 바닥 높이는 대청마루 바닥 높이보다 높게 구성하였다. 삼량가로 우진각지붕을 구성한 뒤 맞배지붕을 얹은 팔작지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공포형식을 다르게 하면서 전면의 위계를 강조하여 건축적 가치가 있다.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 고택들]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 있는 경주맞배집은 본래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마을에 있던 가옥이다. 마을의 건물 구성은 모두 서민층의 평가옥으로 초가가 대부분이며 목조 와가가 몇 채 배치되어 있었다. 경주맞배집은 목조 와가 중 한 채였다. 황룡사지 발굴로 인해 1976년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건 복원하였다.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 건물로 왼쪽부터 부엌 1칸, 안방 1칸, 대청 1칸, 건너방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一字形)이다. 부엌을 제외한 3칸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경주맞배집은 대청을 마루방으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는 경주, 포항, 영천 등지에서 보이는 지역적 특징 중 하나이다. 장식을 많이 하지 않은 소박한 일자형 주택으로 초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의 서민적인 주거 공간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안동시 월곡면 도목동 영안 남씨 집성촌에 있던 남석기의 주택이었다. 1970년대 안동댐이 건설됨에 따라 원 소재지가 수몰되어 1975년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전하였다.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집이다. 몸채인 까치구멍집이 중앙에 배치되고, 몸채의 부엌 쪽으로 별채가 몸채와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헛간과 칙간은 별채의 반대편에 세로로 배치하였다. 외양간이 주택 내부에 들어와 있는데, 겨울철 가옥에 사용하는 난방의 열을 이용하여 가축을 보호하는 등 사람과 가축이 하나의 지붕 아래 공간을 구획하면서 함께 살도록 한 인축동거형(人畜同居形) 가옥의 대표적 사례이다. 경상북도 북부지역 산간 촌에 분포했던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인정사는 이중철(李中喆)이 1887년(고종 24)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의인마을에 건립한 양반 가옥이다. 1970년대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의인마을이 대부분 수몰되자, 1976년 영남대학교로 이전하였다. 건물은 대문채와 정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솟을 대문이다. 왼쪽 2칸은 고방을 두었으며, 오른쪽에는 외양간과 온돌방이 각 각 1칸씩 배치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의 口자형 주택이다. 정침은 크게 사랑채 공간과 안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口’자형 주택은 경상도 북부 지방과 강원도 일부 지방 등 태백산맥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안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북부 지방에 보다 많이 분포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