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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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板橋洞-山祭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너더리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아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너더리마을에서 산신에게 지내는 동제.
[개설]
판교신도시 개발 전 판교동은 행정구역상 1통, 2통, 3통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자연마을인 1통을 너더리[판교(板橋)] 마을, 2통을 너분바위[광암(廣岩)] 마을이라 불렀다. 3통 개나리마을은 1979년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이주하여 살다가 1980년대 이후 경제발전에 따라 중소공장들이 입주하면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너더리마을 산제사 는 판교동의 자연마을인 너더리마을과 너분바위마을이 함께 지내왔으며, ‘산제’라는 명칭으로도 불렸고, 일부는 ‘도당제(都堂祭)’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연원 및 변천]
1970년대 이후 행정구역이 나눠지면서 너더리마을에서만 산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당은 너더리마을 옆 경부고속도로 건너편 산 정상에 있었으며, 큰 참나무를 신체로 삼았다. 참나무 밑동에 짚으로 만든 작은 터주가리를 만들어 놓고, 주민들은 그것을 ‘터주신’으로 모셨다. 제일은 매년 음력 9월 그믐이었으며, 자정이 넘어서 제를 지냈다. 제주는 당주라고 불렀으며, 마을 어른이 선정하였다. 당주 집에서 제물과 제의와 관련된 모든 일을 준비하였으며, 산제사 전날에는 당 주변을 청소하고 터주가리를 새로 만들어 놓았다.
[절차]
제의에는 축관으로 선정된 사람, 통장 등 주민 대표자들이 참석하였는데, 산에 오를 때는 홀수가 되어야 하기에, 보통 7명 정도가 제의에 참석하였다. 터주가리에는 통북어와 한지를 묶어둔 뒤에, 제물을 차리고 제주가 향을 피우고 잔을 올린 후 두 번 절하면,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그리고 참석자들이 모두 절을 한 뒤에 소지를 올리며, 통장이 대표로 비손을 한 뒤에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끝낸다.
제사 비용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갹출하였으나, 근래에는 동네기금으로 충당하였다. 제물은 과거에는 통돼지를 사용하였으나, 돼지머리로 대체되었으며, 그 외에 밥과 국 각 2그릇, 떡, 삼색과일, 포, 북어 등의 제물을 올렸다.
[현황]
판교동 너더리마을 산제사 는 판교신도시 개발로 인해 그 명맥이 끊긴 상태이며, 원주민 또한 거의 살지 않아 산제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