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농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25
한자 勸農司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권농사 창설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1년연표보기 - 권농사 재창설
성격 마을 조직

[정의]

조선후기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동약 조직.

[개설]

조선 후기에 작성된 『권농편(勸農篇)』에는 1891년(고종 28) 안산군 초산면 일대 주민들이 ‘권농사(勸農司)’라는 조직의 재결성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권농편』은 서문 격인 「역농문(力農文)」과 권농사의 창설 경위를 기록한 「권농사창설연보」, 그리고 1891년(고종 28) 권농사의 재창설 당시의 임원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의 출처와 시행 지역, 규약 등은 명확하지 않지만 구성원이 안동 권씨(安東權氏), 수원 백씨(水原白氏) 등인 것으로 보아 권농사는 이들의 세거지가 있던 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일대에서 결성된 조직으로 보인다.

권농사의 직책은 크게 수장, 상위 임원, 하위 임원으로 나뉜다. 수장은 대수석집강(大首席執綱)인데, 재결성 당시에는 유학(幼學)[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 권용세(權用世)와 최즙(崔楫)이 담당하였다. 상위 임원은 집강(執綱), 장무(掌務), 청임(廳任), 파장(把掌), 공언(公言) 등으로 구성된다. 상임 위원은 권씨와 백씨, 최씨, 이씨가 대부분을 담당하였는데 양적으로는 권씨가 우위를 보인다. 하위 임원은 백씨, 이씨가 많다. 최하위 임원인 집사(執事)는 무려 43명인데 이들은 모두 관직이 없다. 성씨별로는 김(金), 이(李), 강(姜), 박(朴), 황(黃), 장張), 권(權), 지(池), 최(崔), 안(安), 한(韓) 등 11개 성씨로 구성되었다. 집사 중에는 같은 돌림자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주민 중 다수를 참여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직은 상·하위를 막론하고 거의가 유학이어서 시골의 향반층이 주도한 조직임을 보여 준다.

[설립 목적]

「권농사창설연보」에 의하면 “정조가 권농에 진념하는 것을 알고 왕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 권농사를 만들었다.”라고 하고 있다. 권농사의 설치 동기는 1798년(정조 22) 정조가 화성(華城)에 행차하면서 이 지역을 지나게 되었고, 이후 권농사의 재결성에 대해 기록한 『권농편』의 서문으로 이항진(李恒鎭)이 쓴 「역농문」을 보면 대략의 창설 목적과 배경이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당시 사회에서 만연하던 지주제의 발달과 과도한 농민층 분해를 비판하고 향촌 단위의 협력과 공정한 부세 부담, 빈농의 보호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취지가 드러난다.

[변천]

권농사1797년 8월 정조 행차를 맞아 우연히 임시로 만든 조직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이후로도 매년 응역(應役) 등이 있을 때 간간이 운영되다가 1891년 본격적인 동약(洞約) 조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초기 권농사의 기능은 일반 동계(洞契)처럼 부세(賦稅)[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일] 운영 전반이 아닌 군역(軍役)과 관련이 있었다. 권농사는 창설 이후 약 90년을 유지하다가 1891년 재결성되었는데, 이때 군역 부담을 위한 임시적 조직으로 운영되었던 권농사가 비로소 향촌 운영 전반을 포함하는 동계 조직으로 확대·개편된 것으로 보인다. 권농사의 구체적인 운영 방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서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권농사의 취지나 운영 방식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동약이나 촌계(村契)와 같은 여타의 향촌 조직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권농사는 정조의 권농 정책과 연관점을 가지고 있다. 정조가 구상한 향군·향둔 조직은 토지 제도이면서 부세 측면에서는 군역과 관련된 조직이었다. 또한 권농사의 결성 지역으로 추정되는 시흥시 하중동 일대는 경종 대에 설치한 호조방죽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방죽이 있는 지역이어서 자연 조건 역시 화성의 3대 제언(堤堰) 축조 지역과 유사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권농사는 정조의 향군 설치 및 둔전 운영 방식에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한 것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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