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매년 일정한 시기에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풍속의례.

[개설]

세시풍속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일정한 시기에 반복적으로 행해져 온 생활의례 풍속으로, 대체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내용에 있어서 농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시풍속의 범주로 설, 정월 대보름, 추석의 3대 명절과 함께 24절기에 따른 절일 등이 포함되고, 그에 따른 각종 의례와 놀이 등이 나타나고 있다. 순천시에서 매년 행해지는 세시풍속 역시 전국적인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본래 농업지역이었던 순천 지역도 급속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 풍속 외에 매달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의례와 놀이가 거의 사라지고 있어 생활 민속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따라서 여기서는 현재 순천 지역에서 실제 세시풍속으로 행해지고 있는 의례와 놀이, 그리고 지금은 거의 행해지고 있지 않지만 60대 후반 이상의 노인들이 어려서부터 젊은 시절까지 행했던 세시 관련 의례와 놀이 등을 통해 순천 지역의 월별 세시풍속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정월의 세시풍속]

전통사회에서 음력 정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달로서 한 해의 무사 안녕과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여러 가지 의례가 행해졌다. 따라서 정월 초하루인 설날부터 대보름에 이르는 시기에는 다른 달에 비해 풍부한 세시풍속과 의례가 행해진다.

1. 설날

설은 음력으로 1월 1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설날은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기에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가정 단위로 조용히 지낸다. 아침 일찍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차례상을 차려 조상께 올린다. 설날 차례상에는 떡국이 올라가며 차례를 지낸 후에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뵌다.

또한, 설날부터 행해지는 정초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연날리기와 마당밟이, 널뛰기와 윷놀이를 들 수 있다. 연날리기는 설을 지낸 뒤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아이들의 놀이이며, 여성들은 널뛰기를 남성들은 주로 윷놀이를 하며 보낸다.

이러한 민속놀이와 함께 정초에는 지켜야 할 금기와 많은 속신들이 행해지기도 한다. 정초에는 한 해가 시작되는 시기인 만큼 그해의 운세를 점쳐보기도 하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기 위한 여러 행위가 이루어진다. 대표적으로 정초에 마을의 유식한 어르신에게 가서 토정비결을 보고 오거나 삼재가 든 사람은 삼재막이를 한다. 삼재막이는 일반적으로 무당이나 절의 스님에게서 삼재막이 부적을 얻어와 집안에 붙여놓는 식으로 행하며, 가족 중에 운세가 사나운 사람을 위해 제웅이나 노두를 만들어 도랑이나 길가에 놓거나 버리는 등의 액막이를 한다. 또한, 정월 초하루부터 초닷새 동안은 액이 있는 기간이라고 여겨 먼 곳으로 출행하는 것을 삼가고, 여자들은 이 기간에 바느질하지 않는다.

정초 순천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 단위 액막이 행사로 디딜방아 훔치기를 들 수 있다. 디딜방아 훔치기는 정초에 부녀자들이 밤에 몰래 다른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와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 놓고 속옷인 고쟁이를 씌워놓는 풍속으로 이렇게 하면 마을의 액이 모두 물러나게 된다고 한다.

2. 입춘

설날과 함께 정초의 대표적인 명일이 입춘이다.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날로서 음력으로 대개 설과 대보름 사이에 들어있으며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 된다. 명절이라기보다는 절기로 하루를 쉬는 의미를 가지며, 입춘 날에는 주로 ‘입춘첩’, ‘입춘축’이라고 하여 집의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글자를 써서 붙이는 풍속이 행해진다. 대개 유식한 마을 어르신에게 입춘첩을 받아와 일정한 시각에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3. 정월 대보름

음력 정월 15일을 정월 대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큰 명절로 쇠지 않지만, 과거에는 설, 추석과 함께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따라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다양한 풍속이 행해졌는데, 대보름 차례와 함께 여러 속신 행위가 이루어진다. 먼저 정월 대보름에는 설과 함께 차례상을 차려 조상께 올리는데 이때는 여러 가지 나물을 준비하여 올리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을 ‘나물명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오곡밥과 함께 각종 나물이 정월 대보름의 시절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보름날 오곡밥은 여러 가지 곡식을 넣어 지은 잡곡밥을 의미하는데 주로 찹쌀과 함께 콩과 조 수수 등을 넣어 짓는다. 이와 관련하여 대보름날 아이들이 마을의 세 집 이상의 타성바지 집의 오곡밥을 얻어먹으면 그해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란다고 하여 보름날 아침에 아이들이 바가지를 들고 집마다 오곡밥을 얻으러 다니기도 한다. 개 보름 쇠기라고 하여 보름날 개에게 따로 밥을 주지 않고 아이들이 얻어온 오곡밥을 개와 함께 먹기도 한다. 또한, 대보름 나물 중 특별히 보름날 아침에 무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여 반드시 먹는다고 한다. 이 외에도 대보름날 아침에 귀밝이술을 마시거나 더위팔기 등의 풍속도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행하지 않는 풍속이다.

순천 지역의 정월 대보름 놀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순천 지역에서는 달집태우기가 우세하여 마을마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 달집을 태우고 소원을 비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달집태우기가 거의 행해지지 않고 관 주도 축제의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순천 지역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기간에 마을 단위로 날을 받아 제사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당산제라고 한다. 당산제는 마을의 수호신격으로 믿어지는 당산신께 제를 올려 한 해 동안의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현재 순천 지역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이 없지만, 과거 농업을 생업으로 하던 시기에는 거의 모든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의 속신 중 대표적인 것을 보면, 망월점과 소밥주기, 가랫불 넘기 등을 들 수 있다. 망월점은 정월 대보름날 밤에 마을의 높은 곳[뒷산 등]에 올라가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이나 개인의 운세를 가늠해보기 위해 치는 점이다. 대체로 달의 색깔이 좋고 동그랗게 잘 떠오르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들고, 달의 색이 불그스름하거나 북쪽으로 치우쳐 뜨면 흉년이 든다고 믿는다. 또한, 정월 대보름 아침에 소에게 밥과 나물을 차려주고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는데,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벼농사가 잘된다고 믿는다. 가랫불 넘기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당에 피마자 대 등으로 불을 피워놓고 그 위를 자기의 나이대로 넘는 행위다. 주로 아이들이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 해 아프지 않고 액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고 믿는다.

[순천 지역의 연간 세시풍속]

음력 2월에는 명절의 관념이 아닌 농사가 시작되는 달로 여기고 농사와 관련된 여러 속신 행위가 이루어진다. 특히 2월 초하루를 ‘하드랫날’ ‘하리드랫날’이라고 하여 콩을 볶아 먹거나 영등할머니를 모시는 행위를 한다. 콩을 볶아 먹는 풍속은 ‘좀 볶기’ ‘버러지 볶기’라고도 하여, 이날 콩을 볶아 주머니에 넣어 먹고 다니는데 이렇게 하면 그해 병충해가 적어진다고 믿는다. 또 음력 2월 초하룻날에는 하늘에서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고 믿어 간단히 상을 차려놓고 비손하기도 한다.

영등할머니는 바람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이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15일에서 20일 사이에 올라간다고 하는데, 순천 지역민들은 영등할머니가 이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초여드레까지 머물다가 초아흐렛날, 열나흗날 등 3번에 걸쳐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긴다. 제를 모실 때는 부엌이나 장독대에 상을 차려놓고 모시며, 할머니가 내려오는 날과 올라가는 날에 물 한 그릇과 무나물을 장만해서 모신다. 영등할머니를 잘 대접해야 그해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시절이 좋아진다고 믿는다. 이외에도 2월에는 경칩 날 개구리 알 먹기나 고로쇠 물먹기 등의 행사도 함께 이루어진다.

3월에는 삼짇날과 한식이 있으며, 한식날에는 조상의 묘를 손보거나 시제를 모시기도 한다. 3월에는 특히 그해 제일 먼저 본 동물로 점을 치기도 하는데, 노랑나비를 보면 그 해 태평하지만, 흰나비를 보면 상복을 입거나 운세가 좋지 않다고 믿는다. 또한, 뱀을 먼저 보면 그 해 게을러지게 된다고 믿으며, 벌을 보면 그해에는 부지런해져서 좋다고 한다.

5월에는 단옷날이 있다. 과거에는 단오를 큰 명절로 여겼지만, 지금은 거의 명절로 쇠지 않는다. 다만 단오 무렵에 나는 익모초를 뜯어 말려두었다가 여름에 배가 아플 때 사용한다. 여름에 배가 아플 때 이것을 찧어서 밖에 하루 동안 놔둔 뒤에 즙을 내서 먹으면 복통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6월 유두날에는 아침 일찍 들에 나가지 않는데, 유두날 아침에는 천신(天神)이 내려와 집마다 그 해 수확할 양을 정해주는 날이기 때문에 이날만큼은 아침 일찍 들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날 물을 맞으면 피부에 난 부스럼 등이 낫는다고 한다.

7월에는 칠석과 백중이 있다. 칠석날은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절에 가서 공을 들이고, 백중날은 ‘머슴날’이라고 하여 그해 농사의 장원을 뽑아 그 집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쉰다. 또한, 이날 마을에서는 ‘들돌들기’라고 하여 큰 돌인 들돌을 들어 힘자랑한다. 과거에는 들돌을 들면 어른으로 인정하여 어른 품삯을 주었다고 한다.

8월이 되면 추석 명절이 있다. 추석에는 설과 마찬가지로 차례상을 올리며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보낸다. 특히 추석 무렵에는 곡식이 여물어가고 온갖 음식들이 풍성한 시기여서 차례상에는 그 해의 햇 곡물이 올라가는데 추석의 대표적 음식인 송편도 올린다. 추석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강강술래와 달보기, 반보기 등이 있다. 특히 반보기는 ‘중로보기’의 의미로 시집간 여성들이 바쁜 일과 속에 만나지 못했던 일가친척을 만나는 날이어서 의미가 있다. 친정과 시댁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만나는데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만나게 된다. 마을에 따라서는 반보기를 이웃 마을 부녀자들끼리 하는 예도 있다.

9월에는 중양절을 ‘귀일’이라고 하여 자손이 없는 조상의 묘에 가서 제를 지낸다.

11월에는 동지가 든 달이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2일에 해당하고 이날은 찹쌀가루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은 동지팥죽을 쑤어먹고 집 주위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액운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음력 11월 초순에 든 동지를 ‘애기동지’ 혹은 ‘애동지가’라고 하는데, 이때는 팥죽이 아닌 팥 시루떡을 해서 먹는다.

12월은 섣달로, 일 년의 마지막 날인 그믐날이 되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대청소를 한다. 집안에 따라서는 그믐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을 찾아 1년의 안부를 묻고 절을 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