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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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邑南里-別神祭 |
영어의미역 | Rituals for Tutelary Deities of Eumnam-ri Gongseok Village |
이칭/별칭 | 연신,별신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공석[읍남3리] |
집필자 | 김도현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공석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별신굿.
[개설]
읍남리 공석 별신제는 울진읍 읍남리 공석[읍남3리] 주민들의 안과태평과 바다에서의 안전,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3년에 한 번씩 어촌계와 마을에서 주관하는 마을굿이다. 마을에서는 연신, 또는 별신이라고도 부른다. 자연 마을인 공석은 1750년(영조 26)경에 홍천용씨(洪川龍氏)가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공석이란 본래 공세(貢稅)가 변한 말이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해산물[마른 문어, 전복] 등을 세공(稅貢)하던 곳이라고 하며, 또는 조세(租稅)를 배로 운반하던 곳이라 하여 공세리(貢稅里)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공석 대신 공세라는 지명을 쓰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읍남리 공석 별신제는 3년 도리로 짝수 해에 1박 2일간 돼지를 한 마리 잡고 각종 제물을 준비하여 마을 성황당 앞에 마련된 굿당에서 굿을 한다. 마을에서 굿을 하면 다른 마을에서도 구경을 하러 많이 왔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공석마을 성황당은 마을의 공동작업장 서편, 바닷가 낮은 언덕에 당집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제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자연석을 이용한 석축 위에 시멘트 블록으로 담장을 쌓았다. 제당 내부 정면에는 일자형 제단을 마련하였으며, 제단 위 벽에 ‘대성황신위(大城隍神位)’라고 묵서한 위패를 모셨다. 1926년 8월 27일 성황당을 지어서, 1987년 중수하였음을 알려주는 상량문이 있어 그 연혁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당 오른쪽에는 반 칸 크기의 준비실을 만들어 각종 기물을 보관하고 있다.
[절차]
2004년에는 1월 30일 제관들이 성황당을 청소한 후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는데, 제관댁과 도가집에도 이와 같이 하였다. 정월 대보름 전날인 2월 4일 오후 7~9시 사이에 서낭고사를 지냈다. 굿을 하는 해에는 성황당에 진설한 제수를 내리지 않고, 굿이 끝날 때까지 제단에 그대로 두었다. 음력 1월 15일부터 시작하는 공석마을 굿은 2008년에는 음력 1월 15~16일[양력 2월 21~22일] 1박 2일간 하였다. 주무는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에 사는 김장길·송명희 무녀로서 4대째 무업을 이어온 세습무이다.
공석마을 별신굿의 진행 순서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굿을 주재하는 무녀와 악사들은 굿을 하기 하루 전에 주민들이 마련한 굿당에 와서 미리 제작한 지화를 진설하는 등의 준비를 한다. 음력 10월 14일 밤에는 성황당에서 마을 제관들이 성황 제사를 지내고 마을에서 굿을 한다고 알리는 의례를 진행한다. 아침에 도가댁에서 준비한 제물을 굿당에 송명희 무녀의 지시에 의해 진설한다.
뒤이어 송명희 무녀 주도하에 신장고사를 지내고, 김장길 주무가 굿을 시작함을 알리기 위해 징을 여러 번 치고 명경을 울린다. 그 후에 본격적인 굿을 진행하는데, 1박 2일간 ‘부정굿→ 청좌굿→ 당맞이굿→ 화회굿→ 조상굿→ 세존굿→ 지신굿→ 성주굿→ 산신굿→ 놋동이굿→ 심청굿→ 천왕굿→ 용왕굿→ 대내림굿→ 손님굿→ 재면굿→ 등노래굿→ 뱃 노래굿→ 꽃노래굿→ 대거리→ 화장’의 순으로 진행한다.
2004년 읍남리 공석 별신제에는 주무가 송명희·김장길이었으며, 무녀는 신성녀·신길자·빈순애·김금자 등이 참여하였다. 2008년 읍남리 공석 별신제에 참여한 무당은 송명희·박금천·이혜숙·신길자·강금순·박미경 등이고, 악사는 김장길·송정환·김태완·김대곤·한기성 등이다.
[현황]
읍남리 공석 별신제는 경상도 해안의 다른 마을과는 달리 예부터 탈굿·호탈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매회 할 때마다 세습무들이 주관하였다. 2004년에는 굿에 소요되는 경비 조달을 위해 가구별로 150,000원씩 걷었고, 부족한 경비는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와 굿당을 찾는 외빈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