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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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Byeolsingut Ritual-Hoping for a Good Haul of Fish and a Good Harvest-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집필자 | 성태규 |
[개설]
울진 지역의 별신굿은 주로 해안 지역 마을에서 행해진다.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올리는 별신굿은 마을의 경제력에 따라 10년, 4년, 5년 등 그 주기가 차이가 있다. 별신굿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해당 마을 주민뿐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참여하는 축제이며, 모든 비용은 마을의 노반계 또는 어촌계 등 공동 조직의 기금으로 운영된다. 2001년까지 울진에서 별신굿은 주무(主巫)는 후포면 삼율리에 거주하는 김장길이 담당하며, 그의 처와 장인과 장모 등 14명의 무격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두 무형문화재 제3호인 송동숙 선생의 자녀와 사위들이다.
[울진 별신굿 전승 현황]
2008년 현재 울진의 별신굿 전승 현황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1991년 안동대학교에서 조사된 『울진의 문화재』에 의하면 21곳에서 별신굿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모두 동해안 해안 지역에 한정되어 전승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곳들 중 몇 곳은 2008년 현장 조사 결과 주민 감소와 마을 경제력의 약화로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많은 곳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확인된 울진군 별신굿 전승 지역은 후포, 삼율, 여심, 지중, 공세, 죽변, 봉수 등으로 동해안에서 군 단위로는 가장 많은 곳에서 별신굿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 울진의 굿은 경북 영해에 거주하는 안동숙에 지도되었으나, 현재는 울진 출신인 무형문화재 제3호인 송동숙[동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의 자녀와 사위들이 담당하며, 그 주무는 사위인 김장길이 담당한다.
[별신굿의 주관]
별신제는 보통 10여 명의 무격들이 공동으로 무의를 진행한다. 무의는 보통 여무(女巫)에 의하여 진행되고 남무(男巫)는 반주를 담당한다. 여무와 남무의 비율은 4 : 6으로 여무들이 한두 명 많다. 지도자는 무의에 능숙하고 수단도 능한 인물이어야 하며 또한 굿의 능숙한 진행을 위해서는 그들의 관계는 보통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친인척관계이다.
울진을 담당하는 김장길의 경우에도 송동숙의 사위이며, 그의 처와 장모, 처남, 사촌, 삼촌, 고모, 숙모 등 모두 인척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주무를 담당하는 김장길은 무형문화재 제3호인 송동숙의 사위로 후포에서 태어났다. 외칠촌 아저씨인 김출이의 권유로 15세에 무업을 시작하였으며, 송동숙의 딸 송명희와 25세에 결혼한 후 장인 송동숙에게 무의를 배우게 되었다. 이후 그의 기술을 익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긴 여정의 시작, 정성을 다하는 굿청과 제물]
굿청 즉 굿을 올리기 위한 장소는 마을의 중심부 또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의 모래사장 또는 연안이 주로 선정된다. 주로 어민들이 배를 대는 항구 연안이며, 선정된 곳은 일체 다른 작업과 근접이 금지된 신성한 곳이다. 이렇게 선정된 곳은 다음 별신굿에서도 굿청으로 사용되고 잘 변경되지 않는다.
별신제의 굿청은 제상과 관중석, 깃대를 세워두는 곳으로 구분된다. 굿청 주위로는 차일과 장막을 치고 차일 속에 제물을 진설한다. 신간(神竿)은 보통 네 개를 세우는데 너름받는대, 손대 2개, 골맥이대라 하며 이중 골맥이대는 당맞이굿을 할 때 제주로 뽑힌 사람이 들고 당을 찾아가는데 사용한다. 굿청과 제물의 형식은 같은 지역이라고 하여도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음식과 주변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굿청에는 제물과 함께 꽃으로 장식을 하는데 모두 종이로 만든 것이며, 왼쪽에는 종이로 만든 어선을 달아 놓는다. 밑으로 사고·떡·용떡 등으로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개인적으로도 올릴 수 있는데, 이 경우 개인상을 중앙 제상 옆에 개인의 이름을 적어 놓아둔다. 별신굿에 올리는 제물은 동제와 달리 제물의 제한이 없으며, 계절에 따른 제철 과일을 올린다. 3일간 지내는 동안 제물이 상해 바다에 버리는 경우도 있다.
[부정굿으로 풀고 대거리굿으로 마무리하다]
굿은 오전 9시나 10시부터 시작한다. 울진군의 북면에서는 별신굿을 열기 전 서낭당으로 가서 골매기신들에게 먼저 제사를 지내며 ‘골매기 서낭님을 위해 굿을 하니 마을 사람들을 잘 위해 주십시오’라고 제를 올리는데 이를 ‘명금소리 낸다’라고 한다. 굿의 절차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순으로 진행된다. 굿당에 사람들로 차게 되면 부정굿을 행해 이곳이 신성한 장소이며 부정한 것들은 물러가라는 요란한 풍물이 울리면서 굿이 진행된다.
부정굿▶청좌굿▶당맞이굿▶화해굿▶조상굿▶세존굿[도독잽이굿]▶성주굿▶터주지신굿▶천왕굿▶손님굿▶계면굿▶장수굿▶용왕굿▶꽃 노래▶뱃 노래▶등 노래▶대거리굿
청좌굿은 골맥이청좌굿이라고도 하는데, 뒤에 이어지는 당맞이거리와 함께 성황신 또는 골맥이신을 청하러 가는 굿이다. 이 과정에서 무녀는 춤과 함께 신 내림을 받게 되는데, 무녀의 언어는 신의 목소리로 바뀐다. 청좌굿이 끝나면 무당들은 모두 나와서 서낭으로 향하는데, 실제로 당제를 지낸다.
당 앞에서 신을 모시러 왔다고 고하고 당 앞에서 굿을 행하는데, 당이 없는 경우 당목에서 굿을 진행하기도 한다. 당맞이굿을 진행할 때 당 앞에 올릴 제물을 따로 준비하며 이는 동제를 올리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당맞이를 끝난 후 화해굿을 올리는데, 무녀는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들고 제상에 절을 하며 굿을 행한다. 뒤를 이어 조상신을 위한 조상굿과 자손을 위한 세손굿을 진행한다.
세손굿에서는 마지막 과정의 도둑잽이굿은 제주 중 한 명을 관중에게 보내어 걸립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걸립을 마치고 돌아온 제주는 자루를 메고 제상 앞에 앉아 있고 남무[남자 무당]들이 나와서 중도둑 났다고 하며 중잡이 연극을 한다. 그리고 제주에게서 빼앗은 자루를 빼앗아 관중석에 뿌리는데 이를 도둑잡이라 한다.
집을 지키는 신에게 올리는 성주굿을 다음으로 마당을 지키는 터주지신굿을 행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 과정에서 산신굿을 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천왕굿을 행하고 마마병을 옮기는 역신에게 올리는 손님굿을 올린다. 계면굿은 무당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의 내용을 연혁을 담고 있으며, 전쟁 영웅에게 올리는 장수굿과 물을 관장하는 용왕에게 올리는 용왕굿을 올린다. 용왕굿은 바다일을 하는 어촌에서는 매우 중요한 굿으로 무당들도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것 중 하나이다.
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풍어를 빌고 소원성취를 바라며 소지를 올리는데, 만선을 뜻하는 상징적 행위로 그들의 머리카락을 한지로 묶기도 한다. 꽃노래와 뱃 노래, 등노래에서는 무녀들이 모두 모여 흥겹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굿의 후반부에 속하게 된다. 제단에 진설된 꽃가지를 무녀들이 빼어 들고 원 모양을 그리고 돌면서 춤을 춘다. 뱃 노래에서는 용선에 줄을 묶어 당기는 시늉을 하는데 이는 만선을 기리기 위한 행동이다. 등노래굿은 굿당에 달아둔 탑등을 떼어 연행하는 것으로 탑등을 돌리면서 춤을 추며 마지막 등을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굿의 마지막은 대거리굿 또는 거리굿이라 불리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굿을 하는 동안 일일이 모시지 못했던 잡신들을 모두 청하고 그들을 위한 후 돌려보내는 과정으로 굿청에서 제단을 모두 치우고 제물을 차린 밥, 국, 반찬 등을 섞은 ‘짬빵[짬밥]’을 만들어 놓고 이를 바가지로 퍼서 버린다. 대거리 굿은 잡신들을 대접하기 위함이지만 각 귀신들을 묘사하여 관중을 웃기는 것을 더 목적으로 한다. 마지막 신성한 신들을 위한 굿으로 진행이 되었다면, 마지막 거리굿의 과정은 인간세상을 묘사한 것으로, 현실생활을 반영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굿의 과정은 연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망자의 영혼을 위한 오귀굿]
오귀굿은 사람의 혼령을 인도하여 극락세계로 보내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굿으로 지역에 따라서는 오구굿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살아 있을 때 행하는 ‘산오귀굿’과 죽었을 때 행하는 ‘진오귀굿’으로 구분된다. 산오귀굿은 명칭 그대로 살아있을 때 행하는 굿으로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한 목적이며, 진오귀굿은 죽은 사람을 인도하는 굿으로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한 경우가 많다.
바다가 접한 울진에서는 주로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죽은이에게는 안식과 가족들에게는 죽은이를 편안하게 보냈다는 심적인 안도감을 찾기 위한 목적이 있다. 바다가 접한 울진에서는 별신굿과 함께 오귀굿이 상대적으로 성행하며 별신굿과 별도로 진행되기도 한다. 오귀굿은 별신을 담당하는 무녀가 준비하며 약 22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굿청과 제물을 준비하는 것은 별신과 유사하며, 다만 죽은 이의 신체를 의미하는 망자 배석 자리를 만드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망자배석만들기▶조상비나리▶넋대내림▶부정굿▶성황굿▶초헌▶문굿▶문답▶용선가▶조상굿▶영가굿▶꽃 노래▶초동가▶등 노래▶길갈림▶뱃 노래▶화장▶거리굿
별신굿이 동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오귀굿은 가족들을 위한 굿이다. 굿의 과정에서 넋건지기 또는 넋대내림은 가족들을 앞세워 일렬로 서서 망자가 죽은 장소로 가서 굿을 하는 행위로 이때 망자의 혼이 바다에서 건져지는 것을 말한다. 또 뱃 노래는 망자를 오게 하는 행위로 굿의 많은 과정이 망자를 부르는 것으로 대체된다.
망자의 넋을 기리고 가족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이 굿은 진행 과정이 슬프지만은 않다. 과정 중에서 때로는 조용하고 숨을 죽이면서 슬프기도 하지만 마지막 과정에서는 즐겁게 내보내며 가족과 관중들이 함께 즐기기도 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길갈림을 마치게 되면 무당은 굿에 사용된 모든 물건들을 불에 태우고 불렀던 신들을 돌려보낸다.
[울진 지역에서 별신굿 사례]
2007년 10월 27일~10월 30일까지 4일 동안 죽변면 죽진동에서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별신굿이 행해졌다.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가운데 500년 동안 이어졌던 별신굿이 열렸는데, 이날 행사에는 죽진동 어촌계와 마을 이장이 주관하였으며, 별신굿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숙원 사업을 털어 놓았다.
죽진동에는 18척의 어선이 있지만 접안 시설이 없어 인접한 죽변이나 현내동에 배를 접안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용왕님께 그들의 숙원 사업을 이루게 해 달라는 기원을 하면서 별신굿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렇게 죽진동의 별신굿은 진행 과정에서 마을 주민의 화합을 유도하고 함께 공통의 소원을 빌면서 결속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한 마을이라는 연대감과 주민의 화합은 그 효력이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인 5년이 되면 다시 행해지고, 그렇게 별신굿은 포물선을 그리며 마을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1996년 11월 22일~11월 24일 동안 후포면 금음3리에서 별신굿이 행해졌다. 이때 참석한 무당은 송동숙과 그의 가족으로 울진을 담당하고 있는 무당들이었다. 당시 2박 3일간 행해진 별신은 송명희가 금줄을 잡고 마을 주민과 이장이 제관이 되어 부정굿-청좌굿-당맞이굿-하회굿-조상굿-세존굿-도둑잡이굿-산신굿-지신굿-성주굿-심청굿-천왕굿-원님놀이굿-군웅장수굿[놋동이굿]-탈굿-손님굿-용왕굿-제면굿-내림굿-꽃 노래-뱃 노래-등 노래-상제반-대거리 순으로 진행되었다.
소요된 행사 비용은 총 2,500만 원이며, 그 중 무당에게 지급되는 돈은 약 1,9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별신굿의 비용은 어촌계가 관내에서 갖고 있는 공동 양식장, 지인망, 삼각망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충당하며, 이장과 어촌계가 주관하여 별신굿을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