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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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맹사성이 강호의 한가한 생활을 읊은 연시조.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세종 때의 명상(名相)으로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양촌에 사는 권근(權近) 문하에서 수업했으며 효자였다. 충주목사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는 평시조로 된 연시조(連時調)이다. 강호(자연)에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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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에서 수리산못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권양촌과 수리산못」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묘를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로 이장할 때 광중에서 물이 나오자 이 물길을 수리산으로 돌려 수리산에 못[池]이 생기게 되었다는 음택풍수와 관련한 풍수전설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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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의정부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조부는 우군동지총제 권천(權踐)이다. 아버지는 영춘현감 권첨(權瞻)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이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능하여 ‘무동(武童)’이란 별칭을 얻었으며 1453년(단종 1) 4월에 단종이 모화관에서 베푼 무과 시험에서 약관의 나이로 장원 급제하였다. 같은 해 10월 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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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할아버지는 권심(權深)으로 안동대도호부판관(安東大都護府判官)을 지냈다. 아버지는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지낸 권오(權悟)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이 되었고, 1606년(선조 40) 음보로 광릉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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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권엽과 부인의 합장묘. 권엽은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1574년(선조 7) 정월 14일 출생하여 1650년(인조 18) 6월 20일에 졸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알성급제하여 등과한 이후 1624년(인조 2) 동지성절사(冬至聖節使)로 명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636년(인조 14) 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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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권오석의 공덕을 기리는 비. 문충공 권근(權近)의 19대손인 권오석(權五錫)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산림법」이 제정되어 등기 없는 산지를 국유화시키려 하자, 개인 사재로 막대한 측량비, 등기료를 부담하여 검단리의 선산을 등기 보존하였다. 권오석의 손자인 권순철(權純徹) 역시 유지를 받들어 임야 소유권을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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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이며, 조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다. 아버지는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 권근(權近)이다. 1406년 권천과 허웅 등이 대간으로 있을 때 박저생(朴抵生)의 옥송(獄訟)을 체류시킨 죄로 허웅 등은 외방으로 귀양 갔으나 권천은 공신의 아들이라 귀양을 면하였다. 1411년(태종 11) 다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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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 검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권혁과 부인의 합장묘. 권혁은 안동권씨 제간공파로 양촌 권근의 후손이다. 음관(蔭官)으로 출세하여 정선군수, 익산군수, 신천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추증되었다. 대소원면 검단리 상검단마을 뒷산 권오석 송덕비가 있는 공터에서 왼쪽의 낮은 동산으로 약 20m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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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기신 명부. 조선시대 태조 대부터 명종 대까지의 기신(耆臣: 70세 이상의 퇴직 고관)들의 명단과 일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파악하고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하여 세운 기로소에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서문과 발문은 권근(權近)[1352~1409], 홍경모(洪敬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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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이 충주를 노래한 칠언절구의 한시. 서거정[1420~1488]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시화(詩話)의 백미(白眉)인 『동인시화(東人詩話)』와 『동문선(東文選)』 등을 남겨 한문학(漢文學)을 대성하게 하였다. 저서로는 『사가정집(四佳亭集)』, 『역대연표(歷代年表)』, 『태평한화(太平閑話)』, 『필원잡기(筆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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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또는 동포(東浦). 아버지는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희도(希道)이고, 최영(崔瑩)의 손자사위이다. 1386년(우왕 12)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춘추관검열을 거쳐 전의사승·기거랑·사인·우헌납 등을 역임했으며, 수원판관에 이어 내사사안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예조의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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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승려. 본관은 풍양(豊壤). 속명은 조혼수(趙混脩), 자는 무작(無作), 호는 환암(幻菴), 탑호는 정혜원융(定慧圓融). 풍양조씨 전직공파 조지란(趙之蘭)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조숙령(趙叔鴒), 어머니는 청주경씨이다. 보각국사는 1320년(충숙왕 7) 3월 13일 아버지 조숙령의 임지인 용주(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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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안동권씨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말 고창(현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의 성씨는 본래 김씨였으나 삼한벽상공신에 오르고 태조 왕건으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권씨는 고려시대에 문과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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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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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려시대 승려 보각국사의 탑비.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392년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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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권근이 판관 김대소를 전송하며 지은 한시.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에서 태어나 성장한 권근(權近)[1352~1409]은 여말선초에 걸친 대학자이며 문신이다. 초명(初名)은 진(晋), 자는 가원(可遠)·사숙(思淑), 호는 양촌(陽村)이다. 「충주」는 「송김대소판관조부충주(送金大素判官肇赴忠州)」라고도 불린다. 「충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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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서예가 서동형이 충주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한시를 엮은 책. 충주에는 충주 출신의 위대한 유학자와 문인 및 예술가들이 충주에 관해 읊은 시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충주에서 생활했던 감사나 목사의 시와 남북 교통의 요충지였던 충주를 거쳐 간 많은 문인 명사들이 읊은 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개인 문집 등에 실려 있어 일반인들이 찾아보기란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