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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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활동 시기/일시 | 660년 - 도침 복신과 함께 백제부흥운동 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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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은산별신제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
성격 | 부흥운동가|장군 |
성별 | 남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가계]
도침(道琛)[?~661 또는 662]의 출신이나 가계는 분명하지 않다. 사망 시기는 661년 또는 662년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도침은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사비성이 함락되자 무왕의 조카인 복신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을 근거지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도침은 승려였기 때문에 사찰을 기반으로 승려들을 모아 승군을 조직하여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침은 복신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왜국에 가 있던 부여풍을 맞아 왕으로 삼은 후 부흥군의 체제를 정비하였다. 백제 서부와 북부 지역의 부흥군과 함께 사비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나당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에 임존성(任存城)으로 물러나 세력을 재정비하여 항쟁을 계속하였다.
도침은 스스로 영군장군(領軍將軍)으로 일컫고, 복신은 상잠장군(霜岑將軍)이라 칭하며 백제의 유민들을 모아 임존성에 웅거하여 기세를 떨쳤다.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가 사자를 보내 항복을 권유하자 사자의 관등이 낮다고 하여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도침이 자신을 한 나라의 대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흥군의 실질적인 책임자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당서(舊唐書)』 백제 조에는 도침에 대하여 당시 유인원이 진수하고 있던 사비부성을 포위하고 웅진강구에서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주도한 부흥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침은 백제부흥군의 내분으로 복신에게 주살되었는데, 군사 지휘권을 두고 복신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신이 도침을 살해한 시기는 661년 9월 이후에서 662년 7월 이전으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도침은 부여 지역에서 백제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장군제인 은산별신제에서 ‘토진대사(土進大師)’로 제향되고 있다. 또한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충화 팔충사에 제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