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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24
한자 求禮里
영어음역 Gur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3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94㎢
가구수 132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253명(남자 116명, 여자 137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옛 선비들의 뜻을 받들어 예(禮)가 있는 마을을 만들라는 가르침을 좇아 구례동(求禮洞)이라 하였다고 여겨진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구소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신풍(新豊)·하현(下峴)·상현·중현·신현·송정·두원·여남·유점이 통합되어 김천군 구소요면 구례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어모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어모면 구례동이 되었다. 1971년 구례1동·구례2동·구례3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구례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가 되었다.

[현황]

구례리어모면 소재지인 중왕리에서 5㎞ 떨어진 국도 변에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7.9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32세대에 253명(남자 116명, 여자 13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례1리·구례2리·구례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인동 장씨·순흥 안씨·경주 손씨·상산 김씨 집성촌이다. 국도 3호선이 마을 앞을 지난다. 신풍천과 아천 변에 넓은 농경지가 있어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포도·자두·배 등 과수 재배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고려 말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세운 공을 기리는 문충공 난계 김득배 제단비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신풍·하현·상현·중현·신현·송정·두원·여남·유점 등이 있다. 신풍은 원래 1598년 파두천(芭豆川)이 범람하여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마을이 묻혔다’는 뜻에서 마을무덤·말무덤으로 불리었다. 뒤에 새로 마을을 재건하면서 ‘새롭게 풍요로운 마을을 이루자’는 뜻으로 ‘새 신(新)’자와 ‘풍요로울 풍(豊)’자를 써서 신풍이라 하였다. 인동 장씨 장대진(張大鎭)이 선산에서 이주해 온 이래 현재까지 인동 장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옛날 마을 뒷산 명당 터에 사사절이란 절이 있었는데 상주 봉대에 살던 강씨 일문이 명당을 차지할 요량으로 가짜 상여를 만들어 절 아래에 짐짓 진입을 시도하는 척하자 이를 막기 위해 승려들이 모인 틈을 타서 진짜 상여를 감문면으로 넘겨 관을 절 마당에 묻으니 이후 승려들이 절을 떠나 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현은 어모면에서 감문면 문무리 상여·하여로 넘어가는 두 개의 고개인 이현(二峴)[일명 이재] 중에서도 아랫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본관을 확인할 수 없는 윤씨가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704년 순흥 안씨 안봉흥(安鳳興)이 대항면에서 이주해 온 이래 현재까지 순흥 안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신풍에서 하현으로 가는 길목에는 갱변들이 펼쳐져 있는데 들판에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옛날 파두천의 범람으로 일대가 모두 잠기어 농경지가 돌밭으로 변한 것을 새로 개간하면서 돌을 모아 하나둘 쌓아 두기 시작한 것이 세월이 흘러 거대한 돌산을 이루었다. 신풍에서 국도 건너 맞은편 큰 골짜기는 옛날 찰방(察訪)이 살았다 하여 찰방골이라 부른다.

찰방은 김천역과 같은 역참(驛站) 일을 맡아 보던 벼슬이지만 마을 인근에 역사적으로 역이 설치된 적이 없었고 다만 관용 숙소인 원(院)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찰방골에는 찰방이 아닌 원에 소속된 관리와 식솔들이 집단으로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현재의 두원역에서 능치로 들어가는 길목 맞은편에 옛날 김산군 관할의 두하원(豆下院)이 있었고 지금도 원터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상현은 기록상으로는 연주 현씨(延州玄氏) 현홍규(玄洪圭)가 경산시 하양읍에서, 1639년 안동 김씨 김응청(金應晴)이 안동에서, 1747년 순흥 안씨 안영근(安英根)이 하현에서, 1818년 경주 손씨 손영정(孫永定)이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에서 이주해 정착한 이래 순흥 안씨·경주 손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843년 충주 지씨 지계원(池啓元)이 충주에서 신현으로 이주하였고, 1928년 순흥 안씨 안형종(安亨鐘)이 상현에 살다가 송정으로 옮겨 와 마을을 개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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