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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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增東國輿地勝覽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임 |
[정의]
조선 전기에 간행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지리지.
[편찬/간행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官撰)[관청에서 서적을 편찬함] 지리서이다. 1392년 조선 왕조의 개창 이후 집권 세력은 중앙 집권의 강화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단위의 지리지 편찬이 필수적인 사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적인 단위의 지리지를 통해 전국 각 고을의 역사, 사회, 문화, 물산 등에 대한 총체적 파악함으로써 국가 지배 체제의 공고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세종 때부터 전국적인 지리지 편찬이 시도되었고 그 중요한 결실로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간행이 이루어졌고 1478년(성종 9)에는 양성지(梁誠之)의 주도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가 완성되었다.
1481년(성종 12) 총 50권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완성은 이러한 지리지 편찬이라는 국가적 사업의 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최초의 『동국여지승람』은 인쇄는 하지 않은 채 원고 상태로 있다가 1484년에 이르러 수정을 거쳐 55권으로 정식 간행되었다. 이후 연산군 대에 성현(成俔), 임사홍(任士洪) 등의 교정, 보충하여 1499년(연산군 5)에 새로운 수정본이 완성, 인출되었으며 권수는 55권으로 종전과 같았다. 이어서 중종 대에 전대의 여러 편찬 사업을 보완 계승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동국여지승람』에 대한 증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이행(李荇), 홍언필(洪彦弼) 등의 증보 작업을 거쳐 마침내 1530년(중종 2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완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형태/서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총 55권 25책이며, 책의 크기는 33.2×22.2㎝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본이다.
[구성/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책머리에는 이행의 진전문(進箋文), 서문, 교수 관원 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의 노사신(盧思愼)의 진전문, 서거정(徐居正)의 서문 및 교수 관직명·찬수 관직명·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끝에는 홍언필, 임사홍, 김종직(金宗直)의 발문(跋文)[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한편 전국 지도인 「팔도 총도(八道總圖)」와 각 도별 지도도 수록되었는데, 동서 폭은 지나치게 넓고 남북은 짧은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각 도의 군현별로 관원, 군명, 성씨, 풍속, 형승, 산천, 토산 성곽, 관방(關防), 봉수, 누정, 학교, 역원, 교량 위치,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名宦), 인물, 시인의 제영(題詠) 등의 다양한 항목을 구분하여 정보를 수록하였다.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는 인천도호부 조의 경우 권9에 수록되어 있다. 수록 항목은 ‘건치 연혁, 관원, 군명, 성씨, 산천, 토산, 궁실, 봉수, 관방, 학교, 역원, 불우, 사묘, 총묘, 고적, 명환, 인물, 효자, 제영’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관원은 부사(府使)와 교수(敎授) 각 1인이었으며, 주요 성씨로는 본부(本府)에 이씨(李氏), 공씨(貢氏), 하씨(河氏), 채씨(蔡氏), 전씨(全氏), 문씨(門氏), 박씨(朴氏), 최씨(崔氏)가 있었고 이포(梨浦)에 방씨(房氏)가 있었다. 토산물로는 해안 지역답게 주로 소금과 어물(魚物)이 많았다.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해 있는 향교는 당시 부에서 동쪽 1리가 되는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최항(崔恒)의 중수기(重修記)가 함께 실려 있다. 또 불우 조를 보면 주안산에는 주안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묘 조에는 제단, 사당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는데,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위치했던 인천도호부 관아를 중심으로 부 서쪽에 사직단(社稷壇)이 있었고, 향교에는 문묘(文廟)가 있으며, 부 남쪽 393m[1리] 되는 곳에 성황사(城隍祠)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도(猿島)[현재는 매립되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일부로 존재]라는 섬에 원도사(猿島祠)가 있어 여러 섬의 신령을 합하여 제사지냈으며, 봄과 가을에는 본 고을에서 제사를 드렸다. 부의 북쪽에는 여단(厲壇)이 있었다는 기록도 담겨 있다.
[의의와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16세기 인천 지역의 사회, 문화, 자연환경 등을 파악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