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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순사주재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195
한자 板橋巡査駐在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승갑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성남 지역에 있었던 순사주재소.

[개설]

대한제국은 1907년 7월 27일 개혁을 단행하여 순검(巡檢)을 순사라 하였고, 경무서(警務署)는 경찰서로, 분서와 파출소는 순사주재소로 개칭하였다. 한성부를 포함한 경기도 관할 구역 내에 8개의 경찰서와 4개의 분서(分署), 40개의 순사주재소를 설치하였다. 우선 한성부 내에 중부경찰서, 동부경찰서, 남부경찰서, 동현분서(銅峴分署), 서부경찰서, 용산분서, 4개의 순사주재소, 북부경찰서 등을 설치하였다. 그 외에 수원경찰서, 여주분서, 13개 순사주재소, 개성경찰서, 양주분서, 14개 순사주재소, 인천경찰서, 9개 순사주재소 등을 설치하였다.

[내용]

일제 강점 후 헌병경찰제하에서 한성부와 경기 내에 경찰서와 경찰분서(警察分署)를 두되 그 위치와 관할구역은 내부대신이 정하였다. 경찰서의 하부 조직이 순사파출소와 순사주재소였다. 1914년에는 경찰서, 순사주재소, 순사파출소로 일원화하는 한편, 경무총감부 1, 경무부 13, 경찰서 101, 경찰분서 4, 순사주재소 504, 순사파출소 108개로 조정하였다. 인원수는 경시 35명, 경부 223명, 순사 2,321명, 순사보 3,019명이었다.

판교마을 만세시위운동 과정에서 판교순사주재소가 결정적인 두각을 드러내 독립운동가 한순회, 한백봉 등이 조사 심문을 가했다. 한백봉의 경우 상급기관인 광주분견소로 이송되기 전에 수감되어 심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판교순사주재소는 일차적으로 탄압의 최전선에서 충실한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민족운동의 동태를 염탐하고 탄압하는 제국주의 첨병의 역할을 한 기구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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