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240
한자 韓繼禧墓
이칭/별칭 한계희의 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주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능묘
양식 고려식
건립시기/일시 1482년(성종 13)
관련인물 한계희
높이 1.7m
지름 13.3m
소재지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지도보기
소유자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회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한계희의 묘.

[개설]

한계희[1423~1482]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는 자순(子順)이다. 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부인 함양여씨(咸陽呂氏) 사이에 7남매를 두었다. 훈구파에 속하는 유학자로 세조의 신임을 받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465년에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1468년 세조의 병이 위독하자 내전에서 예종에게 전위할 때 선위문(禪位文)을 낭독하였다. 그해 10월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서원군(西原君)에 봉해졌다. 최항(崔恒) 등과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편찬에 참여했고, 『의방유취(醫方類聚)』 30질의 간행을 주관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위치]

묘소는 율동공원 내의 번지 점프장을 바라보는 나지막한 구릉상에 동남향하여 있다. 3기의 묘소 중 상부에는 배위(配位) 정경부인(貞敬夫人) 함양여씨의 묘가 있고, 공의 묘소 아래에는 4남 한사개(韓士介)의 묘소가 있다.

[형태]

활개를 두른 원형의 봉분은 하부에 백색화강암으로 높이 84㎝의 둘레돌 19매를 둘렀고, 각 면에는 무궁화·새·난초 등을 양각하였다. 봉분의 높이는 170㎝이며, 둘레는 13.3m이다.

묘역에는 혼유석·상돌·4각 향로석·8각 망주석·문인석·신도비 등의 석물이 있으나, 옛 석물은 문인석과 신도비뿐이다. 상돌은 백색화강암제로 문고리문이 4면에 양각된 2개의 고석이 받치고 있으며 전면에 횡2열로 ‘청주한공문정공휘계희지묘 배정경부인함양여씨상조(淸州韓公文靖公諱繼禧之墓 配貞敬夫人咸陽呂氏上兆)’의 비문이 있다. 측면에 단기4305임자2월(檀紀4305壬子2月)의 연기로 보아 1972년 보수한 것이다. 문인석은 안두(按頭)로 좌가 높이 143㎝에 얼굴 부분 43㎝이며, 턱이 뾰족하다. 우는 높이 146㎝에 얼굴 부분 46㎝의 같은 형태로 신체 홀쭉하며 돌이끼가 있다. 한편 봉분 하단 좌측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도비가 남서향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 백색화강암의 비좌와 일석(一石)인 백색대리석의 비신 및 상부 연봉 장식을 갖춘 고깔형의 고려식 형태이다.

[금석문]

비신의 비문은 전후 2면에 있으며,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모되었다. 전면 상부에는 전서로 문정한공신도비명(文靖韓公神道碑銘)이라 써 있다. 비제는 일부 판독불가능한 글자를 제외하면 유명조선국추충정난○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한공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推忠定難○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韓公神道碑銘 幷序)이다. 비문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찬하고, 안침(安琛)[1445∼1515]이 서하였다. 건립연대는 1483년(성종 14)이며, 크기는 비좌 높이 40㎝·너비 116㎝·두께 62㎝, 비신 높이 154㎝·너비 61.5㎝·두께 18㎝, 화관석 높이 50㎝·너비 72㎝·두께 22㎝이며 총 높이 244㎝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