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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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영문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기 시대는 인류가 처음으로 청동(靑銅) 주조 기술을 알고 청동기를 생산하게 됨으로써 인류의 문화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시대이다. 그 이전 석기를 사용하던 석기 시대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청동 합금 제품이 제작 사용되는 시대는 덴마크의 톰젠(Thomsen)이 분류한 석기, 청동기, 철기의 세 시대 구분법에 따라 청동기 시대라고 한다.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한 나라 중에는 중국처럼 이미 국가가 형성되어 역사 시대에 해당되기도 하지만, 주변 지역에는 문자 기록이 없어 선사 시대에 속한 나라가 많다. 청동기 시대에는 중앙 집권의 정치가 이루어져 중심 마을이 형성되는 시기로 도시 혁명 시대라고도 한다.
청동기 시대의 특징적인 문화 요소로는 민무늬 토기[無文土器]의 출현, 간석기[磨製石器]의 보편적 사용, 농경의 보편화, 대규모 마을의 형성, 새로운 묘제의 집단적 출현, 청동기의 제작 사용 등을 들 수 있다.
[청동기 시대 유적]
청동기 시대의 주거 양상은 주로 구릉과 충적평지를 중심으로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정착 생활을 하였다. 영암에서 발굴된 주거지는 청동기 전기에 속한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두 중기에 속한 방형과 원형의 평면으로 가운데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그 양단에 중심 기둥 구멍이 있는 움집 형태가 대부분이다. 간혹 주위에 4개의 기둥 구멍을 방형으로 첨가한 것이 있는데 이는 규모가 크다. 대표적인 주거 유적으로 서호 장천리 괴음과 학산 금계리가 있다. 주거지가 각각 10여 기씩 발굴되었는데, 집자리 안에서는 일상에 사용된 토기와 석기들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 유적은 고인돌, 돌널무덤[石棺墓], 움무덤[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등이 있는데, 단독으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군집을 이루고 있어 혈연이 같은 집단들의 공동 무덤으로 보고 있다. 영암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고인돌 주변에서 돌널무덤만 발견되었다. 모든 형식의 고인돌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개석식 고인돌이다.
영암 지역에서 발굴된 대표적인 고인돌로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 망산리 고인돌 떼,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가 있다. 영암에서 확인된 돌널무덤은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과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 떼의 주변에서 발견된 것이 있다. 일부는 고인돌의 덮개돌이 유실된 것도 있다. 서호리 소서호 고인돌은 판석으로 짠 50㎝ 내외의 소형 무덤방도 있다. 움무덤과 독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외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생산 유적과 제사 유적이 있지만 아직 발견된 바 없다. 하지만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에서는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용기[祭器]를 매납(埋納)한 토기가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물]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석기류, 토기류, 청동기류, 장신구류 등이 있다. 영암에서 출토된 석기류에는 간 돌검, 간 화살촉, 돌창 등 무기류가 있고 홈자귀, 턱자귀, 돌도끼, 돌끌, 대팻날 등 농경 공구류가 있다. 이 밖에도 돌칼, 숫돌, 갈판과 갈돌, 가락바퀴, 그물추 등의 다양한 생활 용구류가 있다. 이런 유물들은 집자리나 유물 산포지에서 발견되었는데, 특히 시종면 월송리 유물 산포지와 몽해리 복다회 유물 산포지에서는 다양한 석기가 발견되어 집자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기류인 간 돌검과 간 화살촉은 고인돌의 부장 유물로 사용되었는데, 삼호읍 산호리 동암 고인돌에서 자루 달린 간 돌검[有柄式石劍]이,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에서는 자루가 없는 간 돌검[有莖式石劍]이 발굴되었다.
청동기 시대 토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있지만 영암 지역에서는 대부분 조각으로 발견되었고, 영암 장천리 선사 주거지에서 입이 바라진 토기[外反口緣壺]가 완형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후기에 속한 검정 간토기[黑陶長頸壺]가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는 초기의 비파형 동검계 유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지만 후기의 세형동검계 유물로 서호면 청용리 고인돌에서 세형동검과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이, 시종면 신연리에서 투겁창[銅鉾]와 청동제 칼자루 끝 장식이 발견되었고, 이외 잔무늬 거울 등 청동기가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청동기는 전 영암 거푸집 일괄[국보 제231호]에서도 확인된다. 장신구류로는 옥 등이 있는데, 삼호읍 망산리 고인돌 떼에서 곱은옥 2점과 대롱옥 10점이 부장 유물로 발견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암의 청동기 시대는 주거지의 밀집 분포상과 고인돌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영암 지역은 탁자식 고인돌의 남한계선에 위치하는데, 위세품의 부장과 초대형 고인돌의 규모로 보아 당시 수장급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도 있다. 또한 청동기 후기의 세형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거울, 거푸집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 제작 집단이 영암 지역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