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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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의미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남석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설]
청동기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 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시작, 무문 토기의 등장, 마제 석기의 본격적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다른 지역의 청동기시대와는 달리, 청동기시대 후반부에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청동기시대의 개시 연대에 대해 기존에는 오르도스 청동기와의 교차 편년에 의해 BC 7세기경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중국 요령성 남산근 유적과 의주 신암리 유적 출토 청동기간의 교차 편년을 통해 BC 10세기까지 올려보고 있다. 하한 연대 또한 청동기와 함께 철기가 유입되어 공존하는 시기를 초기철기시대라고 볼 경우 4세기 말~3세기 초까지로 추정한다. 이와 관련하여 송국리식 문화 단계를 기점으로 송국리 단계를 중기로 보거나 후기로 설정하기도 한다.
청동기시대 구성원들은 농경을 주로 하면서 사냥과 고기잡이를 병행했으며, 일부 돼지와 같은 가축도 길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 자원으로는 벼·보리·조·피·수수·콩 등 여러 종류가 발견되었다. 울주 반구대의 암각화를 보면 그물로 고기를 잡거나 고래 같은 대형 동물도 사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는 단순히 청동기만 새로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와 더불어 본격적인 농경 활동의 전개, 무문 토기라는 새로운 토기의 등장, 주거지의 위치 변화, 고인돌·석관묘의 출현과 같은 묘제의 변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수반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 시기인 신석기시대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낮은 구릉의 남사면에 방형 혹은 장방형의 수혈 주거에서 생활하며, 작게는 수십, 크게는 수백 가호의 취락을 형성하며 농경 생활을 영위하였고, 환호 등을 두른 마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생활 용구로는 무문 토기를 사용하였다. 전기에는 한반도 이남에서는 흔암리나 역삼동, 가락동 양식으로 불리는 심발형 토기가 주로 이용되다가 삼남 지역에서는 이후 송국리형 문화가 확대되며 이를 대체해나간다. 석기로는 석검·석촉·석부 등 마연된 석기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청동기로는 동검·동부·동모·동촉이 사용되었다.
[유적 조사]
공주 지역에서 조사된 선사시대 유적 가운데 청동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은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다. 초반에는 존재가 확인된 유적은 고인돌이나 선돌[立石]과 같이 지표면에서 유구의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이후 정밀 지표 조사의 확대와 개발로 인한 구제 조사의 확대 등으로 인해 확인된 유적이 많이 증가하였다.
공주 지역에서 조사·정리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46개가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고인돌 7개, 석관묘 2개, 옹관묘 2개, 석개토광묘 1개, 주거지 7개 소, 입석 9개, 유물산포지 18곳이다. 이 유적들은 대체로 하천 유역이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유적을 분묘·주거지·기타로 분류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분묘]
묘제와 장제는 지역·시대·민족·문화 단계 등에 따라 달라서 그 매장 방법이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묘제와 장제는 당시인들의 매장 방법과 신앙이나 영혼관과 같은 사상적 측면까지도 알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되는 청동기시대의 일반적인 묘제로는 고인돌·석관묘·옹관묘·석개토광묘가 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에 집중적으로 사용된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서해안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공주 지역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그 예가 많지 않다. 특히, 공주 지역에서는 고인돌에 대한 정식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외형이 파악된 고인돌도 군집이 아닌 단기씩 남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초봉리 고인돌군, 구암리 고인돌군, 성리 고인돌, 분강리 고인돌, 국곡리 고인돌, 호계리 고인돌, 전평리 고인돌군이 있다.
석관묘·옹관묘·석개토광묘와 같은 분묘 유적은 고인돌과 같이 지표면 답사를 통해 형상을 파악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발굴 조사가 되지 않는 한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유적들은 대부분 발굴 자료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송국리 문화 유형의 경우 주거지 유적과 더불어 조사된다.
산의리 유적에서는 석관묘와 옹관묘, 분강리에서는 석관묘, 남산리 고분군에서는 토광묘·옹관묘·석관묘가 조사되었다. 산의리 석관묘의 경우 구조 형식에서 송국리 유적에서 비파형 동검이 출토된 석관묘나 서천 오석리 석관묘, 공주 분강·저석리 석관묘, 보령 관창리 석관묘와 상통하는 부분이 많으며, 옹관묘의 경우도 인근의 송국리·남산리·송학리 옹관묘와 비교될 수 있는 자료다.
[주거지]
청동기시대와 관련된 유적 가운데 최근에 여러 곳에서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주거지가 가장 많이 확인되어 그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공주 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태봉동 선사 유적, 장원리 유적, 안영리 1·2·3 유적, 산의리 유적, 귀산리 유적이 있다. 귀산리 주거지는 송국리형의 원형·말각방형으로 유물은 석촉·석착·반월형 석도편 등 다양한 석기와 무문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주변의 해미 휴암리 유적이나 부여 송국리 유적과 유사한 유적 상황을 보인다.
공주 지역에서 조사된 이 주거지 유적들은 모두 송국리형 원형 주거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거지의 내부 시설로는 중앙의 타원형 구덩이와 주변에 배치된 주공이 있으며, 출토 유물은 삼각형 석도·유구석부·송국리형 토기 등이 정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공주 지역 선사 문화의 특성으로도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공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문화가 주로 송국리 문화로 대변되는 청동기시대 중기의 문화적 특징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타 유적]
분묘와 주거지 외에 청동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지표상에서 구체적인 현황이 파악되지 않고 일부 유물이 확인되는 유물산포지가 있다. 고인돌과 같이 지표상에 구조물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을 제외하면, 선사시대의 유구는 대부분 지상에 별도의 구조물이 없이 지하에 수혈을 파서 조성된다. 이러한 선사시대 유구의 특성으로 인해 계획적인 발굴 조사가 아닌 우연한 기회에 유구가 확인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유물의 산포를 바탕으로 유적의 성격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장원리 주거지의 경우 기존에는 지표면에서 무문 토기편이 수습되어 유물산포지로 분류되었으나, 최근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반면, 삼각리 유물산포지의 경우는 지표면에서 많은 양의 토기편이 수습되어 생활 유적과 관련된 유구의 존재 가능성을 추정했으나, 정밀 조사 결과 유구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유물 퇴적층만이 조사되었다. 봉안리 청동기 유적은 세형 동검과 동과 대롱옥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형 동검이 출토된 유구는 전언에 따르면 토광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유리관옥은 부여 합송리나 소소리에서도 출토되었다.
공주 지역의 유물산포지로는 삼각리·수촌리·봉암리·내촌리·상서리 부처당골·동대리·내문리·광정리·오룡리·목천리 등이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무문 토기편·석부·석검·석촉 등이 주로 확인되었다. 이 밖에 선사시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내려져오는 거석 문화인 선돌 유적이 있다.
[문화 성격]
공주 지역은 금강을 중심으로 주변에 나지막한 산지가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인류의 생활과 관련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가장 일찍부터 유적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고인돌이나 입석과 같이 지표면에서 유구의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밀 지표 조사의 확대와 개발 과정에서의 구제 조사로 인해 확인된 유적이 증가하면서 주거지와 분묘와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들이 많이 조사되었다. 고인돌의 경우 구체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동안 발굴 조사로 보고된 유적을 살펴보면 청동기시대 중기로 편년되는 송국리형 문화상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주 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의 대부분은 시기적으로 인접한 부여 송국리형 문화상과 유사한 청동기시대 중기의 특성을 보인다.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송국리형 문화상은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의 전환점이 되는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나타난 토기와 주거지의 형태는 각각 송국리형 토기와 송국리형 주거지로 불리며, 충청도 지역은 물론 전라도 지역·경상도 지역·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공주 지역 청동기 문화의 성격은 원형 주거지를 중심으로 하는 송국리형 문화가 변화·발전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유적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형적으로도 탄천면 남산리는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와 연결되는 곳이다. 공주 지역은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청동기시대 중기 무문 토기 문화의 정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