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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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葡萄-山田里 |
영어공식명칭 | The Village Where Grapes Ripen, Sanj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지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7년 - 포도 작목반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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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8년 - 포도 경작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맥반석 MBA 포도 경상북도 우수 농작물 제10-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맥반석 MBA 포도 제5회 세계농업기술 품목조직부분 대상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3년 - 미나리 작목반 조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3년 10월 5일 - 제1회 산전 맥반석 포도 & 와인축제 |
현 소재지 | 산전리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에 있는 산전리 사람들의 삶 이야기.
[개설]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는 경산의 가장 서쪽에 있다. 동쪽은 남천면 협석리·대명리·흥산리, 서쪽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남쪽은 청도군 이서면 대곡리, 북쪽은 남천면 구일리와 경계를 이룬다. 2020년 8월 19일을 기준으로 380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로 주민 대부분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산전리는 비록 작은 마을이나 유구한 삶의 자취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경산의 대표 특산물인 포도 산지로도 유명하다.
[청정마을 산전리]
산전리는 ‘산전(山田)’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산과 하천 사이의 남천 범람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의 서쪽·남쪽·북쪽은 동학산(動鶴山)·병풍산(屛風山)·금성산(錦城山)이 감싸고, 동쪽은 남북으로 남천(南川)을 따라 경부선과 국도 제25호가 지난다. 높고 푸른 산과 경산의 젖줄인 남천이 어우러진 산전리가 현재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마을 앞을 지나는 경부선의 존재이다. 경부선은 1899~1905년 건설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로 1939년에는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해 복선화되었다. 경부선이 산전리 앞을 통과하면서 마을 입구에는 굴다리가 만들어졌다. 굴다리는 3.7m 높이 제한이 있어 마을에 큰 화물트럭이 출입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1960~1970년대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주변 마을에 공장이 세워진 것과 달리, 높이 제한으로 물류 유통이 쉽지 않았던 산전리에는 공장이 설립되지 않았다. 현재 마을 내에는 몇몇의 소규모 산업체를 제외하고는 일반주택과 농경지, 마을 공동시설이 전부이다.
두 번째는 산전리 사람들의 마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지리적으로 경산 시내 및 대구광역시와 접근성이 좋아 외부로부터 유입된 주민들이 늘었지만 산전리에는 여전히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산전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2004년에는 맥반석 채광 반대 운동에 앞장섰으며, 마을 내 공장 설립 반대 운동 진행하고, 마을 내 우사를 마을회의를 통해 정리하였다. 마을 사람 스스로 돈과 땅을 기부해 마을을 가꾸기도 하였다.
[지명으로 살펴본 산전리]
산전리는 삼국 시대 장산군(獐山郡)에 속한 마을 중 하나로 신라 중엽 밀양 박씨가 마을 개척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장산군을 계승한 경산현(慶山縣)에 속하였다. 높고 푸른 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뫼전, 메전, 매전, 미전, 그리고 산전 등으로 불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경산현 편에는 “자기소(磁器所)가 한 곳이니, 현(縣) 남쪽 두야리(豆也里)의 조조동(助造洞)에 있다”라는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경산산전동분청사기요지(慶山山田洞粉靑砂器窯址)의 존재로 보아 ‘조조동’ 역시 산전리의 옛 지명일 가능성이 높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대구부 관할 경산군 남면에 속했다가, 1896년 13도제의 실시로 경상북도 관할이 되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산군에 속한 남천면 산전동(山田洞)이 되었다. 광복 후 경산군이 경산시가 되는 등의 변동이 있었으나, 산전리는 큰 변화 없이 행정구역이 유지되었다.
한편, 산전리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지명이 몇 군데 있다. 먼저, ‘새각단’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1910년 밀양 손씨 가문이 마을의 서북쪽을 개척하였는데, 산전에서 나와 새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산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곳곳에 분포한다. 산전리에도 이목지, 차곡지, 구곡지 등이 있다. 이 중 차곡지는 병풍산 골짜기 자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계곡을 오래전부터 비녀골이라 불렀다. 계곡 안쪽에 자리 잡은 차곡지와 계곡의 형상이 마치 여인이 쪽머리를 가로 찌른 비녀의 모양과 같았기 때문에 골짜기를 ‘비녀골’, 그리고 저수지는 비녀 ‘차(釵)’ 자를 써서 ‘차곡지’라 부르게 되었다.
[옛 산전리 사람들의 자취]
산전리에 사람들이 터전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천면 산전리 115번지를 중심으로 이 일대에 고인돌이 확인되어, 이른 시기부터 터를 잡고 사람들이 생활한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산전리에는 다양한 시기의 많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보물 제1750호로 지정된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慶興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5호로 지정된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慶山慶興寺所藏須彌壇部材)가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사찰 경흥사(慶興寺)를 시작으로 경산산전동분청사기요지[경상북도 기념물 제40호], 경산 산전리 고분군(慶山山田里古墳群), 경산 산전리 지석묘군(慶山山田里支石墓群), 경산 산전리 금성산성지(慶山山田里金城山城址), 경송재(景松齋), 녹가재(綠稼齋) 등이 있다.
이 중 경송재와 녹가재는 산전리를 대표하는 세거 성씨 경주 최씨와 밀양 손씨 가문이 건립한 문중 재실이다. 각 문중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마을의 대소사가 이곳에서 결정되기도 하였다. 현재도 두 가문의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크고 작은 마을의 현안이 여기서 논의되고 있다.
[새마을 집짓기]
산전리는 1970년대 후반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새마을 집짓기를 통해 마을에 새로운 주거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현재 산전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구술에 따르면 1950~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산전리는 흙길에 돌담이 쌓인 가난한 농촌 마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새마을 집짓기가 진행되면서 마을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원 거주지 보다 지대가 높은 금성산 아래로 20여 호가 이주하여, 새로운 주거 공간이 형성되었다.
새마을 집짓기로 한 마을의 주거 공간이 다른 공간으로 전부 이전한 것은 보기 드문 경우이다. 지금의 산전리 마을에서 가장 낮은 지대가 원 주거 공간이었다. 현재 새마을 집들이 형성된 높은 지대에는 전원주택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남천의 보물,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가 심어지기까지]
산전리는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짓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은 산이 많고 농지는 적었다. 수리시설 역시 부족하였다. 산전리에서는 벼농사를 통해 얻는 수익이 주변의 다른 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산전리에는 비둘기도 굶어 죽는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 포도가 심어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선 기차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다 가물어 있던 산전리를 보고 벼보다 수익성이 좋은 포도 단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평생 벼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포도 재배를 결정한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우여곡절 속에 마을 사람들은 포도 묘목을 심기로 결정하고, 1977년 마을에 포도 작목반을 조직하였다. 1978년 8㏊ 규모의 포도 경작을 시작하였다. 산전리 주민들은 포도 재배를 위해 교육을 받고, 개인적으로 포도 재배지를 견학하는 등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 결과 포도 묘목이 심어진 지 3년 만에 성과를 보기 시작하였다. 1985년까지 3차에 걸쳐 경작지를 43㏊로 확장시키고 관련 시설을 마련하였다. 산전리의 농가 소득은 점점 증가하였고, 1990년대에는 농가 소득이 인근 마을 대비 216%나 높아지게 되었다.
상품의 질을 제고하는 노력도 이어졌다. 바로 맥반석 MBA 포도의 출하이다. 맥반석 MBA 포도는 곧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7년 경상북도 우수 농산물[제10-1호]로 지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세계일보가 주최하고 농업진흥청이 주관하는 제5회 세계농업기술 품목조직 부분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렇게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는 경산 최고의 자랑거리로 자리 잡았다.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의 특별함]
산전리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거봉 계열의 MBA(Muscat Bailey A)이다. MBA 포도는 식미가 우수하고, 양조 품질도 좋아 생식·양조를 겸한 품종이다. 완숙 시 머스킷 향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으며, 육질은 연하고 과피가 비교적 강해서 수송성도 좋은 편이다.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가 특별한 것은 마을의 자연환경에 있다. 산전리 지하에는 백악기에 형성된 안산암반, 일명 맥반석이 매장되어 있는데,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는 이 맥반석 위에서 자란다. 맥반석은 화성암[igneous rock] 중 반심성암(半深成岩)인 반암류(斑岩類)에 대한 고대 중국에서 붙여진 약석명(藥石名)이다.
중국 명나라 시대에 한방약학의 대가인 이시진(李時珍)이 쓴 『이초망목(李草網目)』을 보면 외관이 보리 주먹밥과 비슷하여 맥반석 불렀다고 하며, 맛이 약간 달고 따뜻하며 피부 종기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이처럼 맥반석은 옛날부터 약효가 있는 약석으로 이용되어 왔다.
실제 맥반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흡착 작용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CN, Cd, Hg 등이 중금속과 잔류 염소, 대장균, 방사성 물질을 흡착하는 성능이 있다. 그 외에도 맥반석 중에 함유된 Mg, Fe, Mn, Al, Si, Ca 등의 미네랄 성분이 물속에 용출하여 인체에 이로운 물을 만든다고 한다. 이러한 물은 이뇨 작용을 촉진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간장을 보호하며 숙취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산전리 마을에는 포도와 관련하여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2010년 문을 연 와이너리(Winery) 비노캐슬(VINO CASTLE)이다. 와이너리는 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 포도를 재배하는 곳은 많아도 와이너리가 있는 마을은 드물다. 비노캐슬은 산전리 출신의 한성식 대표가 설립하였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와인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악회 등의 문화행사를 열면서 산전리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포도 향기에 취하다.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축제’]
산전리 사람들에게 있어 포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산전리 맥반석 MBA 포도’는 단순한 재배 작물이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이자 상징성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고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축제’를 계획하였고, 그 결과 2013년 ‘제1회 산전 맥반석 포도 & 와인축제’가 산전리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제1회 산전 맥반석 포도 & 와인축제는 도시 소비자 150여 명과 지역주민 100여 명이 참여하여 포도밭길 걷기, 포도 수확체험, 포도 떡메치기와 와인 시음회, 가을음악회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마을을 중심으로 축제가 개최되었고, 축제는 크게 성공하였다.
이에 힘입어 2018년부터 남천면 단위로 축제를 확대하여 ‘제6회 경산남천 맥반석 머루포도(MBA) 축제’라는 명칭으로 2018년 10월 3일 경산시 남천면 다목적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2019년 역시 남천면 단위의 축제로 개최되어 큰 사랑은 받았다.
[맥반석 암반수로 재배한 ‘경산 산전리 맥반석 미나리’]
산전리 마을의 주요 경작물은 포도이지만 1970~1980년대에 심어져 지금은 노목이 되었다. 산전리 주민들은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준 포도를 재배하는 한편,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줄 무언가를 고민하였고, 그 대안으로 미나리가 선택되었다.
2013년 경산시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산전리에 맥반석 미나리 작목반이 구성되었다. 당시 작목반은 산전리 마을 주민 9명이 주축을 이루었다. 작목반은 단지 조성에 앞서 청도 한재 작목반과 육동 작목반 등 앞선 미나리 단지를 견학해 재배기술을 익히고, 이들 지역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화장실·주차장·카드 결제·위생 세척시설 등을 보완해 비닐하우스 9,900㎡에 관정 9공, 최신 세척장 1,180㎡를 설치하였다. 산전리를 방문하면 비닐하우스에서 갓 수확한 미나리를 판매한다. 방문객이 고기를 사서 오면 불과 불판이 제공되어 미나리와 고기를 함께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