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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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峰里濟州梁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 마을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있는 제주 양씨 집성촌.
[명칭 유래]
쌍봉리는 마을 앞에 육봉과 대산이 있어 쌍봉이라 했다는 설과 쌍봉사(雙峰寺) 아래에 있으므로 쌍봉 마을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양팽손(梁彭孫)[1488~1546]을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의 제주 양씨 집성촌이다. 1519년 양팽손이 능성현 다라실에서 쌍봉 마을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자는 대춘(大春)이고 호는 학포(學圃)이다. 증 승지 양이하(梁以河)의 아들이다. 송흠(宋欽)[1459~1547]이 동방 성리학의 도의를 전파할 책임을 부여하였다. 성장해서는 강개하게 도의를 구하는 뜻이 있어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찾아갔고 나이를 잊고 선생으로 모셨다. 정암이 학포의 기상을 추천제월과 같다고 하였다. 중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현량과에 선발되어 전랑, 수찬, 교리에 올랐으며 사가독서하여 호당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기묘사화 후 삭탈되어 능성 고향으로 내려왔으며 쌍봉으로 이거, 학포당을 짓고 소요하였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양응태(梁應台)[1516~1546]는 예조 참의와 동래 부사를 지냈다. 양응정(梁應鼎)[1518~1580]은 성균관 대사성과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했다. 양산욱(梁山旭)[1551~1606]은 임진왜란 시 유위장을 지냈다. 양응필(梁應畢)[?~?]은 선조 시 건원릉 참봉을 역임했다. 양환묵(梁桓默)[1855~1897]은 홍주 영장을 역임했다. 양회숙(梁會淑)[1889~1958]과 양재규(梁在圭)[1917~1986]는 이양 면장을 지냈다.
[자연환경]
쌍봉 마을 동쪽으로는 망일봉 아래 주정들이 있고 서쪽은 월봉과 교리산과 신틀봉이 있다. 남쪽으로는 문봉과 대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감투봉이 우뚝 솟아 있다. 주정천이 마을 앞을 동서 방향으로 흘러간다.
[현황]
2013년 현재 34가구 59명이 제주 양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학포당(學圃堂)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92호로 지정되었고, 영모재(永慕齋)는 양팽손을 향사하기 위해 1926년에 건립하였다. 의병장 행사(杏史) 양회일(梁會一)[?~1908]의 순의비가 1946년에 세워졌으며, 1954년 양응필을 향사하기 위해 추원재(追遠齋)가 건립되었다. 양재경이 건립한 한후정(寒後亭)이 있으며, 희암 거사 양재경 사적비가 있다. 통훈대부 혜강공 학포 제주 양팽손 신도비가 쌍봉 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