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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656
한자 殷栗-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서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주요등장인물 사자|헛목[일명 상좌]|팔목중|양반|노승|영감과 할미광대
공연자/보유자 김춘신|민남순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무형문화재
문화재 지정 일시 1978년 2월 23일연표보기 - 은율탈춤 국가무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은율탈춤 국가무형문화재 재지정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은율탈춤 보존회를 통해 전승되는 민속놀이.

[개설]

은율탈춤 은 본래 황해도 은율군 은율읍에서 전승되던 가면극이다. 6·25 전쟁 때 월남한 연희자(演戱者)들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1978년 2월 23일에 중요 무형 무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1982년 전승지를 인천으로 지정 받았으며,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공원 내에 전수 회관을 두고 있다.

[유래]

은율탈춤 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나 자료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다른 지역의 탈춤 등을 고려해 보면 19세기경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율탈춤은 대략 200~300년 전 난리를 피하기 위하여 섬으로 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얼굴을 내놓기가 부끄러워 탈을 쓴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가 전해오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다만 은율탈춤이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로 장터를 배경으로 발달했다는 점에서 보면 본격적인 상업 경제 발달과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은율탈춤 은 서부 평야 지대의 끝부분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봉산 탈춤과 해주 탈춤의 상호 교류와 영향 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황해도 탈춤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까지 황해도 내에서는 동부의 봉산 탈춤, 서부의 은율탈춤, 남부의 해주 탈춤이 손꼽혔다.

은율탈춤 은 6·25 전쟁 이후 월남한 이들에 의해 남한 지역에서 복원된 놀이인 만큼 그 이전과 이후의 양상은 차이가 있다.

6·25 전쟁 이전에는 황해도 은율군 은율읍에서 1㎞정도 떨어진 마숲에서 가면을 만들고 평소에 연습해 두었다가 단옷날이 되면 연희자 전원이 숲속에 모여 탈 고사를 지내고 음복을 한 후 길놀이를 시작했다. 오후 늦게 마숲에서 시작된 길놀이는 읍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장마당에 마련된 놀이판에서 가면극을 벌었다. 보통 어두워져서 연희를 시작하면 두세 시간 정도 놀이판을 벌이고 그 뒤판에는 서도 잡가(西道雜歌), 「놀량사거리」, 「양산도」 등의 소리를 하고 춤을 추면서 구경꾼들과 함께 어울렸다. 마지막 날 밤의 연희가 끝나면 가면을 모두 불태웠는데, 1925년경 이후부터는 가면을 태우지 않고 그대로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 행해지는 은율탈춤은 제1과장 사자춤, 제2과장 헛목[일명 상좌춤], 제3과장 팔먹중춤, 제4과장 양반춤, 제5과장 노승춤, 제6과장 영감과 할미 광대춤 등 여섯 과장으로 구성된다. 판을 여는 벽사(辟邪)의 춤인 사자춤으로 놀이를 시작하는 것은 강령 탈춤과 같다. 제2과장의 헛목춤, 제3과장의 팔먹중춤의 순서의 경우 다른 가면극과 일치한다. 다만 팔먹중춤 다음에 양반춤이 오는 것은 은율탈춤과 강령 탈춤뿐이다. 팔먹중춤에 이어서 노승 과장이 이어지는 것이 다른 가면극에서 공통적인 순서이지만, 은율탈춤에서는 바뀌어 있는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다른 가면극에서는 노승 과장에서 소무(小巫)[탈춤에서 노장·취발이·양반 따위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젊은 여자]가 취발이[해서 지방 탈춤의 등장인물로서 술 취한 중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의 아이를 낳게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은율탈춤에서는 양반 과장에서 아씨 역인 새색시가 원숭이와 음란한 수작을 하여 아이를 낳으면 취발이가 자기 아이라고 받아 어른다. 이것은 파계승보다 양반을 모욕하는 대목을 강조하는 것으로, 양반 은율탈춤에서는 노승이 국화주를 취하도록 마시고 비틀거리며 등장하여 ‘중 타령’과 진언을 소리 내어 왼다. 대사에 있어서도 호색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점이 은율탈춤이 갖는 특징이다.

은율탈춤 은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벽사의 의식무, 파계승에 대한 풍자, 양반에 대한 모욕, 일부처첩(一夫妻妾)의 삼각관계와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연행 시기 및 관련 의례]

은율탈춤 은 다른 황해도 탈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큰 명절인 단오 무렵에 2~3일 동안 계속하여 놀았던 놀이다. 은율 지역에서는 단오의 낮에는 씨름과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고 밤에는 불을 피워 놓고 탈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은율탈춤은 사월 초파일과 칠월 백중날에 행해지기도 하였다.

[현황]

은율탈춤 은 6·25 전쟁 때 월남한 놀이꾼들에 의해 남한에서 놀이가 복원된 것이다.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공원 안에 독립 건물로 은율탈춤 전수 회관이 있으며, 은율탈춤 보존회에 의해 활발한 전승과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은율탈춤과 관련하여 장용수(莊龍秀)[1903∼1997], 김영택(金永澤)[1920~2000], 김춘신(金春信)[1925~2015], 민남순(閔南順)[1940~2013]이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2018년 현재 예능 보유자는 차부회, 박일흥 두 명이고, 전수 교육 조교는 조용휘, 서항영, 장경숙, 이광수 4명이 지정되어 활동 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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