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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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剛泉山 |
이칭/별칭 | 「강천산 을해봉소시(剛泉山乙亥封疏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손앵화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74년 - 박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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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515년 - 박상 「강천산」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30년 - 박상 사망 |
배경 지역 | 강천산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
성격 | 한시 |
작가 | 박상(朴祥)[1474~1530]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박상이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는 강천산을 읊은 한시.
[구성]
「강천산(剛泉山)」은 총 16행으로 이루어진 오언 배율시이다.
[내용]
撩慄風西振(요율풍서진)[매서운 바람이 서쪽에서 일어나는데]
剛泉討蘊眞(강천토온진)[강천산이 온진정(蘊眞亭)을 둘러쌌네]
靑崖秋骨瘦(청애추골수)[푸른 절벽은 가을 되니 수척한데]
赤葉露華新(적엽로화신)[붉은 잎 이슬 맺힌 꽃같이 산뜻하다]
目曠登樓迥(목광등루형)[누대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고]
襟涼向水頻(금량향수빈)[물을 대하니 옷깃이 서늘하다]
塵埃終不近(진애종불근)[티끌은 결코 접근하지 못하고]
騷屑自相因(소설자상인)[바람은 뒤이어 불어온다]
蘭茁宜紉佩(난줄의인패)[난초 자라나면 엮어 차야 하고]
薇枯可愴神(미고가창신)[고사리나물로 정신 맑힐 수가 있다]
稻邊鴻雁富(도변홍안부)[벼 있는 쪽엔 기러기 흥청대고]
天外鳳凰貧(천외봉황빈)[하늘 끝에선 봉황새 가난하다]
江遠難捐玦(강원난연결)[강 멀어 패옥 버리기 어렵고]
岐多困問津(기다곤문진)[갈림길 많아 나루터 묻기 곤란하다]
鬢殘隨暮草(빈잔수모초)[귀밑머리 스러져 시든 풀 따라가니]
悲恨入詩人(비한입시인)[슬픔과 한스러움 시인을 파고든다]
온진정은 신공제(申公濟)[1469~1536]가 세운 정자로, 그의 할아버지 신말주(申末周)가 건립한 귀래정(歸來亭)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강천산은 순창군의 서쪽에 위치하고 온진정이 동쪽 개천변에 있어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준다. ‘패옥을 버린다’는 것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구가(九歌)」에 “내 패옥을 강 가운데 버린다”에서 취한 말이다.
[의의와 평가]
「강천산」 제목에 붙어 있는 ‘을해봉소시(乙亥封疏詩)’라는 부기(附記)를 통해 창작 연대가 1515년(중종 10)임을 알 수 있다. 1515년은 담양 부사였던 박상(朴祥)[1474~1530]이 순창 군수 김정(金淨)[1486~1521], 무안 현감 유옥(柳沃)[1487~1519]과 함께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 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중종의 노여움을 사서 남평(南平)의 오림역(烏林驛)으로 유배된 해이다. 「강천산」으로 미루건대 박상, 김정, 유옥은 순창 온진정에서 만나 을해봉소(乙亥封疏)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늦가을의 처연한 정취가 정치적 결단을 앞둔 박상의 복잡하고 불안한 속내를 잘 드러내고 있다. 훗날 조광조(趙光祖)는 박상의 을해년 상소를 일러 ‘강상(綱常)을 바로잡은 충언’이었다고 극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