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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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영어의미역 | Education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섭 |
[정의]
전근대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 교육의 역사
[전근대 순천의 교육]
순천 지역은 구석기시대 이후 한반도 남부의 중심 고을이었다. 낙안 지역을 포함한 순천 지역에는 마한·가야 유물, 백제계 산성 등 역사 유적, 후백제 김총·박영규의 근거지였던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삼국시대 이후 왕권 강화의 방편으로 유교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시도가 있었겠지만, 순천 지역의 교육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고려왕조는 건국 이후 유교적 정치이념에 바탕을 둔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하였다. 태조 왕건[877~943]은 국초부터 숭유책을 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아 학교를 설치하였다. 태조는 919년(태조 2)에 개경[현 개성 지역의 고려시대 이름]을 5부로 나누면서 국학을 설치하였다. 958년(광종 9)에 과거제도를 처음 시행하였다. 과거를 통하여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가 시행되자 과거를 준비하는 교육기관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각 군·현에 학생들을 교육할 시설을 마련하고 교관을 파견하였다. 성종은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지방세력가들의 자제 260명을 개경에 불러들여 유학교육을 시켰다. 987년(성종 6) 8월에는 승주와 나주를 비롯한 12목에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각각 1명씩 파견하였다. 승주 어느 지역에 학교시설이 마련되었는지, 교육의 대상은 누구였으며 교육내용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 기록이 없다. 향교는 인종[1109~1146] 때에 전국으로 확대되었는데 행정구획의 대소에 따라 주학·부학·군학·현학으로 불렸으므로 순천 지역의 향교는 부학 또는 군학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 유교를 보급하고, 유교 소양을 지닌 관리를 양성하기 위하여 관학을 강화하였다. 서울에서는 성균관을, 지방에서는 향교를 정비하고 확충하였다. 군현마다 향교를 세우게 하고, 각 고을의 향교에 학전을 지급하였다. 순천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순천도호부의 동쪽 7리[약 2.8㎞]에 건립되었다. 1550년(명종 5), 1624년(인조 2), 1780년(정조 4)에 이건하였고, 현재 위치인 순천시 향교길 60[금곡동 182]로 옮겨온 것은 1801년(순조 1)이었다. 풍수의 영향과 함께 옥천이 범람하여 자주 수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낙안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된다. 1658년(효종 9년) 3월 현재 위치인 순천시 낙안면 교촌길 59[교촌리 222]로 옮겼다.
16세기에 이르러 서원이 지방교육의 중심으로 등장하였다. 순천 지역에 서원이 처음 들어선 것은 무오사화[1498년(연산군 4)]·갑자사화[1504년(연산군 10)]로 순천 지역에서 최후를 마친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모신 옥천서원 때문이다. 순천부사 이정(李禎)이 1564년(명종 19)에 처음 세웠으며, 1568년 사액받았는데 전라도에서 처음이었다. 이후 순천 지역에는 정충사[1682], 지봉사[청수서원, 1693], 충민사[1697], 겸천사[겸천서원, 1711], 청사사[곡수서원, 1712], 오천서원[1793], 옥계서원[1821], 용강서원[1821], 율봉서원[1824], 이천서원[1827]이 차례로 들어섰다.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와 서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관학인 향교를 살리려는 지방관이 있었다. 숙종 때 순천부사 황익재(黃翼再)[1682~1747]가 순천에 사창제를 도입하여 민생 안정에 공헌하였는데, 향약과 양사재(養士齋)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향풍을 바로잡고 지방 교육을 진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특히 양사재를 세웠는데 부실한 향교교육을 대행하여 지방교육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순천의 읍지에 향약이나 사창제와 관련하여 황익재의 행정 실적을 구체적으로 평가한 기록은 없으나, 양사재에 대한 황익재의 업적은 뚜렷이 기술되어 있다. 또 아직도 순천향교에 세워져 있는 홍학비가 황익재의 공적을 소상히 설명해주고 있듯이 순천 지방사에서 보는 황익재의 교육사적 업적은 뚜렷하다.
[근대의 순천 교육]
한국의 근대교육은 조선정부가 1895년에 「교육입국조서」[1895년 2월 2일 반포]를 발표하고 「한성사범학교관제」[칙령 제79호, 1895년 4월 16일 반포] 등을 마련하면서부터였다. 다음 해인 1896년 9월 17일에 「학부령」으로 관·공립 학교 설립을 공포하고, 설립장소를 한성부, 13도 관찰사 소재지, 개항장, 전국의 주요 군 등 37곳으로 정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근대 학교가 세워진 곳은 광주, 순천, 영광 등 8개 지역이다. 이때 세워진 순천공립심상소학교는 순천 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였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1905년을 전후하여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민족 지도자들이 학교를 세워 민족을 계몽하고 국권을 지키려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세워진 학교가 1906년 순천 지역의 사립승명학교(昇明學校)[또는 昇平學校, 현 순천남초등학교 전신], 1907년 낙안 지역의 낙영학교(樂英學校)였다. 하지만 대다수 민족사학이 탄압 때문에 1908년부터 1920년 사이에 폐교되거나 공립화되었는데, 사립승명학교도 1911년 11월에 공립으로 개편되어 순천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수업연한 4년제가 6년제로 된 시기는 1921년이었다. 1926년 5월 군수 오석유, 교장 미우라[三浦勇] 등 노력으로 지방유지들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아 저전리[현 순천시 저전동]로 이전하였고,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1938년 3월 공포]에 따라 순천남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41년에는 「국민학교령」[칙령 제148호, 1941년 2월 28일]에 따라 순천남공립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항일기 순천 지역에 설립된 초등교육기관은 1910년대에는 3개교, 1920년대에는 9개교, 1930년대에는 9개교, 1940년대에는 5개교, 도합 26개 교였다. 식민지 교육정책은 1936년까지 1면 1교 설립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순천 지역은 원래 계획보다 앞서 1932년 2월에 1면 1교 설립이 완성되었다. 일제가 1934년부터 설립하기 시작한 간이학교는 순천 지역에서는 1935년부터 시작되어 1939년까지 5개가 설립되었다. 1939년부터 1941년 심상소학교 명칭을 사용하던 시기까지 심상소학교가 3개 설립되었고,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고친 1941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는 국민학교가 5개 설립되었다.
순천 지역 최초 공립중등학교는 순천농업보습학교였다. 1926년 10월 원래 수비대가 있는 곳에 개교하였다가, 1927년에 객사로 이전하였다. 1930년 순천농업실수학교로 이름을 바꿨다가, 1935년 순천공립농업학교가 세워지자 1938년에 폐교하였다.
순천공립농업학교는 우석(友石) 김종익(金鍾翊)[1886~1937]의 희사금으로 설립되었다. 1935년 4월 22일 조선총독부로부터 3년제 공립농업학교로 인가를 받아 1935년 5월 15일 개교하였다. 개교 후 임시로 순천공립보통학교[현 순천남초등학교] 부설 농업실수학교에서 수업하였고, 1936년 1월 현 교사[현재 순천대학교]로 이전하였다. 모집 정원은 50명이 되지 않아 입학하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였다. 1938년 4월 15일 학칙을 개정하여 5년제[정원 250명]로, 1942년에는 4년제로 개편되었다.
순천 지역 최초 인문계 중학교는 1930년대에야 우석 김종익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순천중학교였다. 1938년 3월 순천공립고등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38년 4월 「제3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순천공립중학교[5년제]로 개칭되어 1938년 4월 30일 개교하였다. 최초 인문계 여학교 역시 우석 김종익의 유지에 따라 설립된 순천공립고등여학교[현 순천여자고등학교]이며, 1940년 3월 28일 4년제로 설립인가를 받아 1940년 4월 28일 개교하였다.
승명학교에 이은 사립학교는 모두 종교계가 세운 학교였다. 순천 선암사는 승선학교, 순천 송광사는 보명학교를 절 안에 세웠으며 많은 유학생을 일본에 보내기도 하였다. 포교당 안에 야학을 열기도 했는데, 송광사가 벌교포교당 안에 세운 야학은 지역민의 호응을 받으며 송명학교로 발전하였다.
1900년대 초기부터 개신교계 학교가 전라남도 지역에 설립되었는데, 처음에는 초등부만을 운영하다가 중등부까지 확대하였다. 남장로계 선교사들은 1910년 순천 지역에 선교부를 개설하고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순천 지역에 최초로 파송된 선교사 변요한(邊要翰)[John Fairman Preston, 1875~1975]과 고라복[Coit Robert Thornwell, 1878~1932] 목사가 1910년 4월 순천향교 양사재를 예배당으로 사용하면서 30명 정도 학생들에게 『성경』과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년 후인 1911년 학생수가 점점 늘어나 현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 매산중학교 자리에 교사를 지어 이전하였고, 1913년 9월 사립은성학교로 인가를 받아 설립되었다. 1915년에는 「개정 사립학교규칙」으로 종교 교육을 통제하자 자진 폐교하였다. ‘문화정치’가 시작되자 1921년 미국 남장로계 선교부 주선으로 성경을 정규교과로 교육하는 학교로 인가를 받아, 매산학교[현 매산중학교]와 매산여학교로 5년 만에 복교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1937년 9월 매산학교도 자진 폐교하였다.
해방 이전 세워진 초등교육기관은 순천남국민학교, 순천북국민학교, 도사국민학교, 해룡국민학교, 해룡남국민학교[현 해룡초등학교에 편입], 동산국민학교, 황전국민학교, 황전북국민학교, 월등국민학교, 쌍암국민학교[현 승주초등학교], 쌍암남국민학교, 주암국민학교, 창촌국민학교, 송광국민학교, 이읍국민학교[현 송광초등학교], 외서국민학교, 낙안국민학교, 별량국민학교, 송산국민학교, 상사국민학교, 상사서국민학교이다. 해방 이전 세워진 중등학교는 순천공립중학교[현 순천고등학교], 순천공립고등여학교, 매산학교[현 순천매산중학교, 순천매산고등학교]가 있었다.
[미군정기의 순천 교육]
광복 이후 미군정은 한국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반 명령 제4호」를 발표하여 1945년 9월 24일부터 공립국민학교를 개교하도록 지시하였다. 1945년 9월 28일에 각 도에 보낸 통첩에 따라 중등학교는 1945년 10월 1일 이후 개교하여 광복 이후 첫 교육을 시작하였다. 국문 강습소 등이 초등학교에 부설되어 문맹 퇴치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1946년 9월부터 의무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됨에 따라 갑자기 늘어난 적령 아동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한때 2부제 또는 3부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1947년 이후 많은 학교가 세워졌다.
1945년 해방을 맞아 폐교되었던 매산학교는 1946년 9월 24일 복교되었다. 1951년에는 6년제 중학교를 중학교·고등학교로 분리하는 학제에 따라 은성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고, 1956년에 다시 ‘매산’으로 통일해 ‘매산고등학교’로 변경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초등교원의 양성을 위해 순천사범학교가 1946년 11월 1일 순천동공립국민학교[현 순천성동초등학교]의 교실, 그 부근 창고, 운동장에 천막을 쳐서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중등과 3년, 사범과 3년 등 6년제로 운영하여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자를 입학 자격으로 하였다. 1950년 현 순천시 조례동에 새교사를 마련하여 이전하고, 1950년 4월 1일 공립으로 이관하였다. 1951년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분리가 단행됨에 따라 순천사범학교는 3년제로 개편되고 3년제의 병설중학교도 운영되었다.
미군정기에 설립된 초등교육기관은 현 순천성남초등학교, 서산초등학교, 순천조례초등학교, 구상초등학교, 송광서초등학교, 낙안초등학교였다. 중등학교는 매산중학교가 복설되었다. 사범학교는 순천사범학교가 세워졌다. 순천사범학교는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부속국민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대의 순천 교육]
정부 수립 이후에 일어난 여순사건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여순사건 이후 1949년 8월 12일 순천군이 순천시로 승격하면서, 순천읍과 도사면 일부를 제외한 지역은 전라남도 승주군이 되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많은 학생이 참전하였다. 전쟁 중인 1951년 9월 학제 개편이 있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그밖에 1도 1교의 국·공립 대학 설치, 교육 과정 개혁을 위한 시도, 국민학교 상용한자 교육 실시 등과 같은 조치가 있었다. 1952년 6월 4일 교육자치제가 실시되어 교육행정이 시·군내 내무 행정에서 독립되어 순천시교육위원회와 승주교육구가 설치되었고, 교육감[현 교육장]을 두었다.
1954년에는 생활화와 과학화를 목표로 하는 교육 과정에 따라 교과서 개편이 단행되었으며 의무 교육 6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초등 6년·중등 5년·전문 3년·대학 교육 4년의 학제가 초등 6년·중등 3년·고등 3년·전문 2년·대학 교육 4년제로 전면 개편되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1961년 5월 22일 교육위원회를 해산하고, 1962년 1월 6일 순천시의 교육위원회와 승주군의 교육청을 각각 순천시와 승주군에 흡수하여 교육과를 신설하고 교육 행정을 시장과 군수에게 맡겼다. 1964년 1월 8일에는 전라남도교육위원회만 두고, 시·군에서는 교육장을 둔 교육청으로 변경하고, 1973년 1월 1일 순천시교육청과 승주군 교육청을 통합 순천시교육청[현 순천교육지원청]이라 개칭하였다.
1965년 순천시의 인구가 7만 7749명이었을 때 초등학교는 9교에 학생은 1만 4565명, 중학교는 5교에 4635명, 실업계 고등학교는 2교에 668명, 인문계고등학교는 3개교에 2467명, 전문학교는 1교에 311명, 고등공민학교는 1교에 488명, 간호고등기술학교는 1교에 71명, 유치원은 2곳에 74명이었다. 승주군의 인구가 15만 6055명이었을 때 초등학교는 32교에 2만 8076명, 중학교는 2교에 507명이었다.
1971년에 들어서서 중학교 시험 제도를 폐지하고 무시험 전형을 도입하여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게 되면서 중학교의 통폐합과 신설이 있었다. 순천중학교 대신 순천이수중학교를, 순천동중학교와 북중학교 대신 순천삼산중학교를 개교하였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설립된 초등교육기관은 현 순천인안초등학교, 순천성동초등학교이며, 중등학교로는 현 순천주암중학교, 순천승남중학교, 순천승주중학교, 순천별량중학교, 순천삼산중학교, 순천이수중학교, 순천낙안중학교, 순천월전중학교, 순천동산여중학교, 순천공업고등학교, 한국바둑고등학교[당시 주암종합고등학교], 순천금당고등학교, 순천청암고등학교, 순천효산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80년에 전남의 교육 여건은 악화되었다. 농촌 인구의 급감으로 학교수는 서서히 감소한 반면, 학생수는 급감하였다. 특히 그동안 꾸준히 증가했던 고등학교 학생수마저 감소로 돌아섰다. 1982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학교 통폐합 조치가 1990년대 들어 더욱 강화되어 분교장은 물론 본교까지 폐교되면서 초등학교 수의 감소가 본격화되었다. 그렇지만, 1995년 분리되었던 승주군과 순천시가 순천시로 통합하고, 전라남도 여수와 광양 지역에 공단이 건설됨에 따라 순천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신개발지구에 학교가 계속 신설되거나, 학급이 증설되었다.
1991년에는 「지방 교육 자치에 관한 법률」[법률 제4347호, 1991년 3월 8일 제정]이 공포됨으로써 광역 단위 교육 자치가 시행되었고, 1995년에 들어서서는 민선 교육감이 선출되면서 순천 지역의 교육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선호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의 과열로 지역 사회의 문제가 되어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범시민운동이 일어났다. 1998년부터 교육공동체시민회의 등 시민단체, 시의회,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노력으로 2005년부터 고등학교 평준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농촌 지역의 학생수가 줄어드는 대신 도심 학교의 과밀화 등의 여러 문제를 해결코자 혁신학교[전라남도에서는 무지개 학교]가 전국적으로 시도되었다. 순천 지역에서는 학생수 감소로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가 폐교 위기에 놓인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송산초등학교를 지역 사회와 협력하여 되살린 것을 계기로 무지개 학교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순천 지역에 설립된 초등교육기관으로는 현 순천삼산초등학교, 순천부영초등학교, 순천남산초등학교, 순천이수초등학교, 순천용당초등학교, 순천연향초등학교, 동명초등학교, 순천왕조초등학교, 순천신흥초등학교, 순천비봉초등학교, 팔마초등학교, 순천왕지초등학교, 순천대석초등학교, 순천봉화초등학교, 순천율산초등학교, 순천향림초등학교, 순천풍덕초등학교, 순천왕운초등학교, 매안초등학교, 좌야초등학교, 신대초등학교 등 21개 교에 이른다. 중등학교로는 현 순천승평중학교, 순천연향중학교, 순천남산중학교, 순천신흥중학교, 순천금당중학교, 순천팔마중학교, 순천향림중학교, 순천풍덕중학교, 순천왕의중학교, 순천왕운중학교, 순천바둑중학교, 순천강남여자고등학교,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 순천효천고등학교, 전자고등학교, 순천제일고등학교, 순천팔마고등학교, 순천복성고등학교, 한국바둑고등학교 등 19개 교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농촌의 소규모 학교들 가운데 31개 초·중학교와 분교장이 문을 닫았다.
2019년 현재 더불어 배우며 미래를 여는 행복한 민주 시민을 육성하기 위하여 배움이 즐거운 당당한 학생, 자율과 책임의 안전한 학교, 지원과 공감의 청렴한 행정, 따뜻하고 평등한 교육복지, 소통과 협력의 교육자치를 주요 시책으로 설정하여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