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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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던 조창.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9곳의 조창(漕倉: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을 두었는데, 가흥창은 그 중의 하나이다. 충주는 남한강이 흘러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남도 수군에 12창을 설치할 때 덕흥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덕흥창에는 판관을 두고 충주 부근의 조세를 수납하여 경창으로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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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충주를 노래한 한시.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본관 전주(全州)이고 자는 무관(懋官), 호 형암(炯庵)·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이다. 정종 별자(別子) 무림군(茂林君)의 후손으로, 정조가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여 검서관(檢書官)을 등용할 때 박제가·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뽑혀 여러 서적의 편찬 교감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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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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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탐라국왕 고자견(高自堅)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개성윤(開城尹) 고호(高灝)이다. 아버지는 개국원종공신으로 병마절제사를 지낸 고영수(高永壽)이며, 어머니는 개국원종공신으로 찬성사를 지낸 권현(權鉉)의 딸이다. 고려(高呂)는 1380년(우왕 6) 8월 왜구가 배 500여 척의 규모로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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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시 역사. 충주란 고을 이름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현을 개편하고 주·부·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중원부(中原府)를 고쳐 부르면서 나타났다. 충주란 명칭은 이 지역 인사들이 태봉시대부터 태조 왕건의 우익이 되어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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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독수와(獨樹窩), 시호는 문경(文景). 증조부는 호조참의를 지낸 권혁(權奕)이고, 아버지는 감찰규정(監察糾正)을 지낸 권희정(權希正), 어머니는 김득우(金得雨)의 딸이다. 슬하에 권맹경(權孟慶), 권맹도(權孟度), 권맹정(權孟貞) 3남을 두었다. 1377년(우왕 3) 21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권세가인 염흥방(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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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고종 40) 9월 충청북도 충주시 금당협에서 고려군이 몽고군을 격파한 전투. 금당협 전투는 1253년 몽고군의 제5차 침입 때 금당협 지역에 침입한 몽고군을 충주의 창정(倉正) 최수(崔守)가 매복하였다가 격퇴한 전투로, 충주산성 전투의 서전이라 할 수 있다. 금당협의 위치는 기록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촌상우차랑(村上友次郞)이 1015년에 쓴 『최근지충주(最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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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고조할아버지는 첨의중찬을 지낸 상락공 김방경(金方慶), 증조할아버지는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김순(金恂), 할아버지는 첨의정승을 지낸 상락후 김영후(金永煦),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김천(金蕆)이다. 슬하에 김승(金陞), 김육(金陸) 2남을 두었고, 손자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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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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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갖는 세거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귀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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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태조 왕건 후비. 본관은 충주(忠州). 아버지는 충주 지역 호족으로 내사령을 지낸 유긍달(劉兢達)이다. 고려를 개국한 이후 태조 왕건은 호족 세력과 혼인 관계를 통하여 세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이런 이유로 충주 지역 호족의 딸이었던 신명순성태후는 918년(태조 1) 태조 왕건의 제3비가 되었다. 신명순성태후는 태조 왕건과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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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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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은을 시조로 하고 정경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영일정씨는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한다. 정종은은 신라 6촌 중 취산진지촌의 촌장 지백호의 후손으로 신라 태종무열왕 때 사정부간관을 지내고 김유신과 함께 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정종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현 호장을 지내고 영일백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일을 본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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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공자(孔子) 및 맹자, 증자 등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충주에서 유교 문화가 성립,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은 신라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강수(强首)이다. 김생(金生)은 명필로도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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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호족. 본관은 충주(忠州). 딸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셋째 부인인 신명순성태후(神明順成太后)이다. 유긍달은 통일신라 말 충주를 대표하는 유력한 호족이었다. 900년(효공왕 4)에 왕건이 궁예(弓裔)의 부장으로서 지금의 충주, 청주, 괴산 등지를 공격하여 청길(淸吉), 신훤(莘萱)의 세력을 평정할 때 유긍달과 인연을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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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검묵당(儉默堂). 아버지는 조선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윤방언(尹邦彦)의 딸 숙의(淑儀) 해평윤씨(海平尹氏)이며, 부인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연지(金連枝)의 딸 학성군부인(鶴城郡夫人) 원주김씨(原州金氏)이며, 형은 수도군(守道君) 이덕생(李德生)·임언군(林堰君) 이녹생(李祿生)이며, 동생은 장천군(長川君) 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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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삼남 석보군(石保君) 이복생(李福生)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송년(李松年)이며, 할아버지는 이성유(李聖裕)이며, 아버지는 이명하(李明夏)이며, 어머니는 진천 임재춘(林再春)의 딸 진천임씨(鎭川林氏)이다. 이우형은 1731년(영조 7) 진사가 되았다. 1785년(정조 9) 유생들과 함께 “김세필(金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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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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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수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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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월촌에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석보군 이복생의 묘. 제2대 왕인 정종의 아홉째 아들인 이복생(李福生)의 호는 검묵당(儉黙堂),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모친은 숙의(淑儀) 해평윤씨(海平尹氏)이며, 배위(配位)는 원주김씨로, 판중부사대경공(判中樞府事戴敬公) 김연지의 딸로 학성군(鶴城君)의 부인이다. 1399년(정종 1) 3월 4일 출생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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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지씨는 지경(池鏡)을 시조로 한다. 지경은 송나라 사람으로 960년(광종 11) 태학사로 고려에 와서 평장사를 역임했던 귀화인이다. 지경의 6세손 지종해(池宗海)가 고려 정종[1035~1046] 때 충주백에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충주지씨는 특히 고려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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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회 변동을 주도하며 존재한 지방 세력. 신라 하대에는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호족이라는 새로운 지방 세력이 대두하였다. 호족은 몇 가지의 부류로 구분된다.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에서 패배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정착한 경우, 지방의 토착세력이던 촌주(村主)들이 성장한 경우, 청해진의 장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