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017 |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밤 재배.
[개설]
부여군은 한국의 대표적인 밤 주산지이다. 한때는 이웃한 공주 밤의 유명세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하였지만, 2022년 현재 재배 면적 6,802㏊, 재배 농가 수 2,666호, 연간 생산량 1만 3000여 톤으로 전국에서 부동의 1위이다. 전국 밤 생산량의 24%를 차지하는 최대 밤 생산지이다. 부여군의 전체 산림 면적 3만 1964㏊ 중에 밤나무 비중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부여의 밤나무는 산간 지대인 외산면·내산면·은산면·구룡면을 중심으로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유실수이다. 밤꽃이 피어나는 6월 초순 부여의 산야는 눈송이처럼 하얀 꽃으로 뒤덮인다.
부여군에서는 2003년 ‘굿뜨래’라는 공동 브랜드를 개발하고 전국 생산량 대비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는 한편 품질이 좋아 명성이 높은 10가지 농산물을 선정하여 ‘부여 10품’이라고 명명하였는데 밤도 그중 하나이다. 부여 10품은 밤을 비롯하여 딸기, 수박, 토마토, 양송이, 멜론, 오이, 표고버섯, 포도, 사과대추이다.
[백제 밤에서 유래된 밤의 주산지]
밤은 2,000여 년 전에 식용이 이루어졌을 만큼 재배의 역사가 깊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지나 낙랑 고분군 등 권력자의 무덤 등에서 빠지지 않는 임산물이 밤이다. 『삼국지』「위서」 동이전과 『후한서』「동이열전」을 비롯한 중국의 사서에는 백제에 병합된 마한과 백제 밤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 마한의 금수초목은 중국과 비슷하지만 굵은 밤이 나는데 크기가 배[梨]만 하다.
• 마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길쌈을 하고 큰 밤을 생산하는데 크기가 배만 하다.
• 백제 밤이 크고 대부분 화식(火食)하지 않는다.
• 백제 큰 밤이 있고 오곡·잡과·채소·주례(酒醴), 효찬(肴饌)이 있는데 대부분 중국과 같다.
이처럼 밤은 삼국 시대 이래 백제의 특산물이었고, 배에 비교될 만큼 큰 품종이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밤이 2014년 웅진 시대 백제의 왕궁 터로 추정되는 공산성(公山城) 발굴 과정에서 다량 출토된 바 있다. 부여 궁남지(宮南池)에서도 알밤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또한 궁남지에서 채취한 흙의 목재 수종을 분석한 결과 못 주변의 숲은 참나무·소나무·밤나무·느티나무 등이 섞여 자라는 혼효림(混淆林)으로 밝혀졌다.
밤은 조선 시대 궁중에 진상하는 공물(貢物)의 하나였으며 춘궁기를 나는 구황 식물로 재배를 권장하였다.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월하산 기슭에는 조선 후기 식재된 재래종 밤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둘레는 310~340㎝이고, 수령은 220~230년으로 추정되는 토종치고는 흔치 않은 고목이다.
지금도 밤이 많이 열리는 화성리 밤나무는 18세기 후반 부여 밤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임산 자원이다. 한국의 토종 밤나무가 1950년대 후반 서양에서 유입된 혹벌의 피해로 대부분 사라진 것을 고려하면 보존 가치가 크다.
[한 마을에서 퍼져나간 부여의 밤 재배]
백제의 전통을 잇는 부여 밤이 대규모로 재배된 것은 구룡면 현암리가 효시이다. 1960년 전후 그 전기를 마련한 인물은 이조영(李祚榮)[1917~?]으로 알려져 있다. 현암리 동구 밖에는 밤 재배의 역사와 애환을 기록한 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현암이조영선생 공덕비(玄岩李祚榮先生 功德碑)’이다. 현암이조영선생 공덕비에는 밤 재배에 열정을 바친 이조영의 눈물 어린 사연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암리에서 밤나무 재배에 눈을 돌린 것은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열악한 농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함이었다. 6·25 전쟁이 종결된 직후 농촌은 식량 부족으로 지독한 춘궁기를 해마다 겪어야만 하였다. 산간 오지 마을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산지에 유실수를 재배하여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한 이조영은 자신의 산에 밤나무를 심어 재배법과 저장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63년 마을 주민 장익붕의 산에 대대적인 밤나무 조림에 착수하여 수확을 목전에 두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병충해로 애써 가꾼 밤나무가 모두 고사 위기에 처하였다. 밤 재배에 치명적인 ’밤나무혹벌‘이 발생한 것이다. 벌레혹이 생긴 부위는 작은 잎이 무리 지어 생기고 가지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여 꽃이 피지 않는다. 따라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은 물론 몇 해 지나지 않아 밤나무가 말라 죽는다. 유일한 해결책은 나무를 모두 베어 내고 내성이 강한 품종을 다시 접목하는 것이다.
시련에 직면한 이조영은 새로운 밤나무 접목법인 ‘고접(高接)’을 실험하는 한편, 다수확 품종 개량, 선진 기술을 도입한다. 고접이란 대목(臺木)의 높은 부위에 1년생 접가지를 접목하는 방법이다. 이미 식재하여 4~5년 남짓 자란 밤나무를 우량 품종으로 개량하고자 할 때 실시된다. 이조영은 각고의 노력 끝에 쓸모없는 마을 주변의 잡목림을 밤나무 단지로 바꾸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조영은 밤나무 재배의 전도사를 자임하여 어렵사리 터득한 비법을 주민들에게 교육하였다. 이조영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현암리 주민들은 밤나무 재배 기술을 전수받게 되었고, 온 마을이 밤농사에 매달려 가난하였던 마을은 부촌으로 거듭났다.
현암리의 성공 사례는 입소문을 타고 지역 사회로 번져 나갔고 외부에서 시찰을 오거나 묘목 구입을 원하는 주문이 쇄도하였다. 농사 외에 이렇다 할 소득원이 없던 부여군 관내의 마을 주민들은 다투어 밤 재배에 나섰다. 그 결과 부여군이 전국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밤 주산지이자 밤 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실생묘에 접목하는 밤나무 식재]
밤은 건조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에 비교적 강하지만 냉해에는 취약한 편이다. 따라서 겨울에 동해를 입기 쉬워 남서향이나 저습지는 피하여 식재한다. 연평균 기온은 9~14°C가 적당하고, 겨울 기온이 영하 20°C 이하로 내려가면 동해를 입는다. 한국 밤의 주산지가 부여와 공주를 비롯한 중부 이남에 편중된 이유이다.
밤 재배는 고산 지대와 해풍이 심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국적으로 재배가 가능하나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이나 토심이 깊고 배수가 양호한 사질 토양이 적지이다. 부여군 일대에서는 임야는 물론 집 주변의 울타리나 밭·밭둑·논둑·제방 등의 자투리땅에 밤나무를 심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각 지역에서 재배하는 밤의 품종은 수십 종에 달한다. 대부분은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을 재래종에 접목한 것이다. 밤나무 식재는 가을에 채취한 밤을 얼지 않게 땅에 묻어 두었다가 봄에 싹이 나면 꺼내어 이식하는 열매 심기와 접붙이기 두 가지가 있다. 열매 심기는 아무리 우량한 밤을 심어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어 고안된 식재법이 접붙이기다.
접붙이기는 대목(臺木)에 접가지를 접목하는 것이다. 바탕이 되는 대목은 실생묘(實生苗)를 쓴다. 실생묘는 알밤을 땅에 심어서 싹을 틔운 후 1년 동안 기른 묘목을 일컫는다. 파종은 양지 바른 밭이면 어디든 무방하다. 이를 위하여 농가에서는 밤을 수확하면 종자로 사용할 알밤을 골라 비닐에 싸서 톱밥 속에 묻어 두었다. 최근에는 톱밥 대신 저온 창고에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3월 알밤을 꺼내어 밭두둑에 촘촘하게 심는다.
접목 시기는 양력 4월 5일 이후부터 4월 20일 사이가 적기이다. 밤나무 표피에 물이 오르는 시기에 접목하여야 순조로운 활착이 가능하다. 접목 방법은 실생묘를 지표면에서 약 10㎝ 크기로 자른 다음 표피를 절개한다. 여기에 접가지의 눈 밑을 칼로 깎아 실생묘 절개 부위와 일치하도록 끼운다. 그리고 접목한 부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비닐로 묶고, 초를 녹인 파라핀 성분을 붓으로 발라 준다. 이를 ‘절접(切椄)[깎기접]’이라고 한다.
한편 접목에 사용할 접가지는 1년생 열매가지를 2월 중하순에 채취한다. 보통 5~6㎝ 크기로 잘라 품종별로 100~200개씩 비닐에 싸서 4~6°C 저장고에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된 가지를 ‘접수(椄穗)’ 또는 ‘결과지(結果枝)’라고 한다. 꽃눈이 붙어 꽃이 피고 결실을 맺는 가지를 말한다.
실생묘에 접목한 밤나무는 활착률이 90% 내외로 높은 편이다. 접붙이기를 마친 후 1~2주가 지나면 싹이 튼다. 농가에서는 새순이 돋는 시기에 살충제를 뿌려 준다. 연한 순을 먹이로 삼는 진딧물, 응애, 자벌레 등의 해충을 방제하기 위함이다. 밤나무 순이 왕성하게 자라는 6~8월에는 가지 하나만 남기고 곁순이나 잔가지는 모두 따 준다. 그래야 묘목이 위로 곧게 뻗는다.
따로 지주목을 세우지 않지만, 태풍이 불면 접목 부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큰 나뭇잎을 제거하여 바람을 덜 타게 한다. 접목으로 식재한 밤나무는 그해 11월이나 이듬해 봄에 산으로 옮겨 심는다. 이때 접목 부위에 묶어 준 비닐을 풀어 준다.
밤나무는 타가 수정을 하므로 원활한 꽃가루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품종이 다른 수분수(受粉樹)를 적절히 섞어 식재하여야 한다. 단일 품종만 식재하면 자가 수분으로 인하여 결실률이 크게 떨어지며 매년 수확이 일정하지 않은 ‘해걸이’의 원인이 된다.
[밤나무 가꾸기와 알밤 수확하기]
부여의 밤농사는 이른 봄에 시작된다. 첫 작업은 웃자란 가지를 잘라 주는 가지치기이다. 불필요한 가지를 솎아 주어야 가을에 굵은 밤이 열린다. 또 가지가 옆으로 벌어져야 태풍에 잘 버티고 수확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위로 크는 가지는 제거해 준다.
잎이 피기 시작하면 밑거름을 주고 밤이 열리기 시작하는 여름에는 웃거름을 준다. 농가에 따라서는 가을에도 수확이 끝나고 낙엽이 지면 따로 비료를 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농약을 뿌리지 않았으나 순이 돋아나면 진딧물 등이 잎을 갉아 먹는 것을 방제하여야 피해가 적기 때문에 연중 3~4회 정도 살충제를 뿌린다.
밤꽃의 개화 시기는 6월이다. 보통 6월 상순이면 밤꽃이 만개한다. 수꽃은 긴 꼬리 모양의 이삭이 달리고, 암꽃은 수십 개의 수꽃 가운데 2~3개가 섞여 있다. 보통 수꽃이 먼저 피고, 수꽃이 질 무렵 암꽃이 개화한다. 수꽃은 크고 화려하며 향기가 짙다. 반면에 과실을 맺는 암꽃은 씨눈이 나오면서 작은 열매 집이 달린다.
밤의 수확기는 8월 말에서 10월 상순이다. “밤나무는 3년이면 밥벌이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접목 후에 3년이 지나면 열매가 달려서 수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수확 시기는 품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조생종인 삼조생·단택·출운의 수확은 8월 하순에서 9월 상순 사이에 이루어진다. 반면에 중생종인 옥광·대보·광은·주옥·축파·단파·부림·신축파 등의 수확은 9월 중순에서 하순이고, 만생종인 은기·유마·만적·안근·이대 등의 수확은 9월 하순에서 10월 상순이다. 조생종부터 일주일 단위로 수확을 시작하여 10월 10일이면 만생종 수확이 마무리된다.
부여 지역 재배 농가는 중생종을 선호한다. 조생종은 수확은 빠르나 여름 과일에 밀려 판로가 녹록하지 않고 밤은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또 일찍 수확하는 밤은 열매가 무른 단점이 있다. 저장은 과거에는 땅에 묻거나 톱밥 속에 묻는 것이 관례였으나, 최근에는 저온 저장·동결 저장·실온 저장 등 다양한 저장 방법이 개발되었다.
부여 밤 재배 농가에서는 밤을 비닐봉지에 넣어 밀봉한 후 2~4°C로 저장하는 저온 저장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수확한 직후의 햇밤은 맛이 없어 저온 저장 방식으로 1~2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11월이 되면 과육 속의 당분이 응축되어 최고의 단맛을 낸다.
부여의 밤 재배는 춘궁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 주민의 선구적인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 부여군은 전국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주산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그러나 재배 면적의 급격한 증가는 수확기의 홍수 출하로 이어졌고 수요 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함으로써 밤 값 폭락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재배 농가의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여군에서는 부여군 남면의 폐교된 남성초등학교 부지에 ‘부여밤 클러스터 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여밤 클러스터 센터는 산림청이 주관하는 ‘2022년 임산물 클러스터 조성’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확보한 2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건립 중이다. 부여군에서는 부여밤 클러스터 구축으로 농산물 6차 산업화 기반을 강화하고 고부가 가치 창출로 농가 소득을 높여 갈 계획이다.
또한 부여군에서는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부여 밤을 알리기 위하여 해마다 ‘부여 굿뜨래 알밤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전국 최초로 1,400여 호 밤 재배 농가에 ‘생태 임업 직불금제’를 선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