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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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선당리·화안리에 걸쳐 있는 산. 석가모니 부처의 십대 제자인 가섭존자(迦葉尊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발고도 709.9m의 산으로, 주변이 평야나 낮은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큰 산이다. 북쪽은 요도천 유역의 곡저평야, 남쪽은 음성천과 한벌천을 따라 발달한 좁은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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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불견리(不見里)와 학성리(鶴城里)의 이름을 따서 견학리(見鶴里)라 하였다. 견학리는 일찍이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가의 양옆 너른 들에 형성된 마을로, 본래 충주군 신석면(薪石面)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불견리·학성리·마제동(馬蹄洞)과 주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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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무덤. 충주는 중원문화권의 중심지로 삼국시대에 백제·고구려·신라에 의해 차례로 영유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원경(中原京)이 설치되었다. 충주에 분포하는 고분은 고대 충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금릉동·용관동 백제 고분군과 대소원면 두정리의 고구려 석실분은 신라가 충주로 진출하기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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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마수리의 대성(大姓)인 운봉박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신석 이장인 이유성 씨가 한문 공부도 많이 했고 보학에도 밝은 분이 박장석 씨라고 말하면서 그를 추천했다. 사실 마수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운봉박씨의 유래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박장석 씨를 만나 운봉박씨가 고려 말에 시작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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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요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의해 불렸고 전승되어 온 구전문학이자 음악이다. 이들 농요는 내용적으로 농사의 어려움, 삶의 애환, 역사적인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일의 동작을 맞추고 노동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농요는 입으로 불려 전해지므로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수리 농요는 남한강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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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리 농요는 크게 3부로 이루어진다. 1부가 고사덕담이고 2부가 마수리 농요이며 3부가 여성 노작요이다. 1부 고사덕담을 시작하기 위해서 마수리 농악대가 먼저 농요 대원을 이끌고 입장한다. 이때 꽹과리를 두드리며 농악대를 리드하는 상쇠가 바로 유진형 씨이다. 그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마수리 농악대의 상쇠를 맡고 있다. 그는 타고난 악사이다. 두마치 세마치 군악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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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서(초대 마수리 농요보존회장) 씨는 1972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수리 농요가 1969년 방송을 탔다면, 1971년부터 1972년까지는 마수리 농요가 공개석상에서 인정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박기서 씨의 기록에 따르면 1971년부터 충북도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72년 10월에 제13회 전국 민속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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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작요가 생긴 것은 1973년이다. 그해 10월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가 청주에서 열렸는데, 전년도 대통령상 수상팀이 식전 행사로 공연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팀의 구성이었다. 1972년에는 마수리 농요팀을 중심으로 국악협회팀과 영동여고팀이 하나의 단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지남기 선생은 마을의 여자들을 중심으로 여성 노작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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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마제동(馬蹄洞)·온수리(溫水里)·내룡동(內龍洞)·학성리(鶴城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마제와 온수의 이름을 따서 마수리(馬水里)라 하였다. 마수리는 남쪽 가섭산(加葉山) 줄기가 뻗은 골짜기 아래 형성된 마을로 북쪽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일찍이 운봉박씨 운성부원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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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리는 본래 충주군 신석면(薪石面) 지역이다.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신석면에는 5개리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마제리이다. 당시 마제리에는 94가구에 600명(남 230, 여 370)이 살고 있었다. 이후 발간된 『충청도읍지』, 『호서읍지』 그리고 「충주목 지도」 등 인문지리서와 지도에 마제리는 꼭 언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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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리는 현재 충주시 신니면 13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신니면의 동쪽에 위치한 마수리는 마제와 신석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수리는 과거 마제, 신석, 온수골 3개 마을이 있었으나, 1982년 율곡지구 사업으로 온수골이 없어지면서 2개 마을로 변화되었다. 마수리의 남서쪽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가섭산[709.6m]이 있다. 그러므로 마수리는 가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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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온수골로 내려와 마제와 신석을 지난 다음 요도천으로 합류한다. 그러므로 마수리의 한가운데를 시내가 흘러간다. 마수리는 이 하천 양쪽에 생긴 논과 밭을 근거지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마수리의 중심 마을은 마제이다. 마제는 이 하천의 중하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마제라는 동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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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리 농요의 명인 지남기(池南基)[1926~2005] 선생은 1926년 4월 10일 괴산군 불정면 웅동리[웅골] 274번지에서 아버지 지현덕 씨와 어머니 남궁순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이웃하고 있는 외령리 잿말(영촌 본동)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24세 되던 1949년 당시 19세이던 김금순[1931~ ] 씨와 결혼하였다. 김금순 씨는 충주시 살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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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은 마제 개울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개울에 세워진 신석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신석 마을회관이 나오고 그 길을 지나면 새말이 펼쳐진다. 이곳이 새말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곳 새말이 신석의 중심 마을이다. 새말 위쪽으로는 신석을 이루는 두 개의 마을, 용숫말과 질둑개가 있다. 용숫말은 마제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제와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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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석[1955~ ] 씨는 마수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농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농악놀이에 직접 참여한 것은 16살 때인 1970년이라 한다. 당시 4-H 경연대회에 농악 부문이 있어서 지남기 선생의 지도로 대원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니면 화안리에 있던 산수초등학교에서 5월 5일 단오제가 열리곤 했는데 그때도 역시 팀을 구성 농악연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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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慧成)[동가섭사 주지, 본명 玄炳錫] 스님을 만나는 일은 동가섭사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가능했다. 지난 1월 절 마당에 눈이 남아있을 때 방문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3월에 다시 절을 찾아 가니 며느리인 여현숙 씨가 나와 맞이한다. 여현숙 씨가 절 살림을 맡아 한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지만 스님과의 인터뷰가 먼저라 스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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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석면(薪石面)의 신(薪) 자와 신니곡면(申尼谷面)의 니(尼) 자를 따서 신니면(薪尼面)이라 하였다. 신니면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백제는 낭자곡성, 고구려는 국원성, 신라는 중원경의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충주목(忠州牧) 관할이었다. 신니면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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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신니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북도 충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주덕읍], 12개 면[살미면·수안보면·대소원면·신니면·노은면·앙성면·중앙탑면·금가면·동량면·산척면·엄정면·소태면], 12개 행정동[성내/충인동·교현/안림동·교현 2동·용산동·지현동·문화동·호암/직동·달천동·봉방동·칠금/금릉동·연수동·목행/용탄동] 중 신니면의 행정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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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아라성」(모심는 노래)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 「중원 마수리 농요」 중 농군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아라리」라고도 한다. 아라리란 뒷소리에 나오는 “아라리 아라리요” 하는 말에서 딴 것이고, 「아라성」은 “아라리 소리”라는 뜻이다. ‘아라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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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는 마수리의 중심마을이다. 마제리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기록은 『여지도서』(1760)이다. 그리고 이후 발간된 인문지리서에서 마제리는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마제리라는 이름이 마수리로 바뀌었지만 마제는 인구와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여전히 마수리의 중심 마을이다. 더욱이 마수리 농요가 1972년 전국 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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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남[1957~] 씨는 현재 남편 박경석 씨와 함께 논농사도 짓고 젖소도 키운다. 젊은 시절에는 논농사를 80마지기씩이나 지었다고 하니 대단한 여성이다. 요즘도 젖소를 키우느라 아침과 저녁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저녁 6시에 시간을 내서 1시간가량 마을회관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이종순[1931~ ] 씨가 함께 하면서 마수리 농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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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리는 충주시 신니면 14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본래 충주군 신석면(新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니면(薪尼面) 마수리(馬水里)가 되었다. 마수리라는 이름은 당시 가장 큰 마을이었던 마제동(馬蹄洞)과 온수리(溫水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었다. 마수리는 신니면 용원리의 남쪽, 신니면 견학리의 서쪽, 주덕읍 대곡리의 북쪽에 자리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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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골에 대한 이야기는 온수골에 살다가 신석으로 이주한 박장석(76) 씨와 박철동(46) 씨를 통해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온수골의 온수는 ‘따뜻한 물’이라는 뜻으로 동네 가운데 있던 샘물이 겨울에도 따뜻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온수라는 이름을 보고 외지에서 온천을 찾아보려 했지만 온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물은 찾지 못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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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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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박씨의 시작은 신라를 세운 혁거세로부터 본다. 혁거세의 후손인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917~923]은 여덟 왕자를 두었고, 이들이 다스리는 주군(州郡)에 따라 박씨의 관향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운봉(雲峰)박씨도 이들의 후손일 것으로 여겨지나 문헌이나 족보를 통해 계보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1988년에 발행된 『운봉박씨 족보』에 따르면 계보가 경명왕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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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 이장 박용기(46세) 씨는 현재 다섯 가지의 일을 하고 있다. 마을의 이장이고, 농요보존회 총무이고, 운봉박씨 충주파의 총무이고, 정미소의 주인이고 농사를 짓는 농군이다. 정미소와 농사일은 가업이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마을일, 농요보존회의 일, 종친회의 일은 좋든 싫든 맡게 된 일이다. 그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게 된 것은 사실 그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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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형 씨는 마수리 농요보존회원 중 두 번째로 지남기 선생을 잘 아는 사람이다. 1943년에 중원군 살미면 문화리 2구에서 태어난 유진형 씨는 음악적인 재질이 있는지 어릴 때부터 농악대를 쫓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청년이 되어 꽹과리도 잘 두드리고 장구도 잘 치고 상모도 잘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농악놀이나 무당의 푸닥거리에는 빼놓지 않고 구경을 가거나 참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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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과 주덕읍, 이류면에 걸쳐 있는 평야. 주덕들이라는 명칭은 1914년 충주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덕면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통합된 명칭 없이 지역에 따라 버드내들, 장록개들, 계막들, 망청개들, 음버들 등으로 불렸다. 주덕들은 신니면 문락리 수레의산[678m]에서 발원하는 요도천이 주덕읍 지역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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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동요. 「중원 마수리 농요」는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을 기원하며 불렀던 벼농사노래이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그 자체가 잊혀져가던 것을 지난 1970년대에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마제마을 사람들에 의해 재현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94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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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마수리 농요보존회는 1995년 1월에 생겨났다. 1994년 12월 30일 마수리 농요가 충북 무형문화재 제5호가 되면서 충청북도로부터 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관리할 단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95년 1월9일 처음으로 기능보유자인 지남기 씨에게 30만원, 보존회에 10만원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전수생을 지도 육성하면 그에 맞는 전승 보조금도 지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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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가섭산(加葉山)[709.9m] 아래 동쪽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 1982년 군사시설 용지로 편입되어서 자연마을은 폐쇄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산직리(山直里), 안항동(顔巷洞), 화산동(花山洞), 석포리(石浦里), 마제동(馬蹄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산과 안항의 이름을 따서 화안리(花顔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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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기 선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박기서[1932~ ] 씨이다. 1953년부터 지남기 선생과 친교를 맺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지남기 선생과 함께 마수리 농요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72년에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지남기 선생의 메김 소리를 받기도 하고 후렴구를 부르기도 하면서 마수리 농요를 전국적인 무형문화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