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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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연승 |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이거나 진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개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효 사상은 뿌리가 깊다. 특히 유가(儒家)에서는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 하여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 아래서는 가장 우선시되며 근원적인 것이 효 사상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극진하게 제사를 모시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시대의 문화적인 전통은 팔도에서 수많은 효자를 만들어냈고, 그들의 지극한 효행은 문집과 효자비 등에 실려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면서 교화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효자의 유형]
진천 지역에도 효와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산재해 있어 과거 유교적 전통 하에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던 효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진천 지역에서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는 효행 사례 중에서 효자의 전형적인 행위는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여 사경(死境)을 헤매는 부모를 회생시킨 효자들과 부모의 사후 3년동안 시묘를 하며 살아 있을 때처럼 부모를 돌본 효자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효자 설화의 전형이자 어느 지역이든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지역의 지형이나 산물에 따라 약간의 변이가 있을 뿐 그 원형은 같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기 위해 특히 진천 지역에서 전래되고 있는 효자들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로 나누어 효자들의 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부모가 살아 있을 때의 효자 유형
부모가 살아 있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효행 유형이 ‘효자와 잉어 설화’이며, 그 다음으로 ‘효자 할고 설화(孝子割股說話)’이다. 진천 지역은 산과 물이 풍부한 지형상의 특성인지 특히 ‘효자와 잉어 설화’ 유형의 효자가 가장 많이 분포한다. 이 설화는 중국의 영향이 큰 유형으로, 효자가 하늘의 도움을 받아 겨울에 잉어를 구해 병환 중인 어머니를 공양한 효행 설화이다. 이에 속하는 진천 지역 효자로 김덕숭(金德崇), 김용발(金龍發), 김의조(金義祚), 유인영(柳寅暎), 유진풍(柳鎭豊), 유희원(柳希源), 연정기(延廷夔), 윤범국(尹範國)이 있다.
이와 같은 뿌리를 이루고 있으면서 변이된 유형이 있다. 잉어 대신 꿩이나 뱀, 호랑이, 미나리, 살구, 동삼(冬蔘)을 구해 부모의 병구완을 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계절이 맞지 않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극진한 정성을 통해 신의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김덕숭(金德崇), 김병구(金秉九), 김의조(金義祚), 박윤갑(朴潤甲), 변영우(卞榮禑), 양주문(楊周文)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진천의 효자 설화 중 특이한 것은 유언순(兪彦淳)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유언순이 친어머니가 아닌 서모(庶母)를 위해 극진한 효행을 하는 이야기의 신선함과 함께 아버지의 병환에 좋다고 해서 오서각(烏犀角)[코뿔소의 뿔]을 구하는 이야기가 특이하다.
다음은 효자 할고 설화(孝子割股說話)이다. 이 이야기는 효자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베어 피를 수혈하거나 먹임으로써 위급한 상황에서 부모를 회생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진천의 효자로 곽휘지(郭徽之), 김병구(金秉九), 김상환(金相煥), 김용발(金龍發), 김의조, 김종철(金宗喆), 김창덕(金昌德), 유희원, 박건양(朴建陽), 변영우, 이덕수(李德壽), 이석하(李錫夏) 등이 있다.
2. 부모가 죽고 난 후의 효자 유형
부모가 돌아가신 후 부모의 묘소 옆에 여막을 지어 3년의 시묘를 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생각한 것이 효자들의 의례였다. 시묘를 하는 3년간은 묘소 옆의 움막에서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매일 상을 올리고 곡을 하면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관직을 버리고 시묘를 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시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매일처럼 집과 산소를 오가며 돌봐야 했는데, 이 또한 시묘 못지않게 엄청난 효심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양친이 돌아가시는 경우 6년의 시간을 묘소에서 살았다.
진천 지역 출신으로 시묘를 한 효자로는 곽휘지, 김기선(金基先), 김덕숭, 김사눌(金師訥), 김종철, 박건양, 변영우, 서한순, 신현구(申鉉九), 연정기, 안상욱(安商郁), 오형(吳珩) 등이 있다. 윤범국의 경우에는 부모의 산소를 오가며 시묘를 하다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과거 전통 사회에서 효 사상을 강조했던 것은 효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 가족을 조화 있게 운영하는 제도적 장치였으며, 이는 적어도 전통 사회에서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었다.
[관련 유적]
현재 진천 지역에 남아 있는 효자들의 유적은 다음과 같다. 김덕숭의 묘소와 신도비가 문백면 평산리 산5번지에 있다. 김종철의 묘소와 비, 유희원의 효자문은 문백면 옥성리에 있고, 박건양의 효자문은 문백면 사양리, 서한순의 효자문은 진천읍 사석리 산59-5번지에 있으며, 유언순의 효자문은 덕산면 석장리 148-2번지에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진천 출신 무신 송광도의 효자문이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있다. 또 초평면 용기리 662번지에는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신 김우 처 정선전씨의 효부문(孝婦門)이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