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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에서 개가장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가장터의 유래」는 공음면 석교리에 세워져 성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 폐쇄된 개가리 장터의 유래에 대한 지명전설이다. 또한 눈길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사 음식을 구하러 멀리 안자시장[현 해리시장]까지 가는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1496~1561]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무장 원님이 개가리에 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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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 말바위와 되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암리의 말바위와 되바위」는 중국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축성할 때 최가라는 성을 가진 장수가 바위를 모으다가 성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쓸모없게 된 바위들을 구암리 마래마을에 폐기하였는데, 그 바위에는 각각 한 말과 한 되 분량을 가늠하기 위해 파 놓은 부분이 있어서 이를 말바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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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서 장군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군유리의 장군바위」는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서 북쪽으로 약 2㎞ 지점 야산 능선에 있는 바위와 관련된 암석 유래담이다. 군유리 북쪽에는 크고 작은 여러 바위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바위가 장군바위다. 이 바위 속에는 위대한 장군이 들어 있어 나라가 어려울 때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바위에서 나와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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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서 모내기를 할 때 부르는 논농사요. 「모심는 소리」는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 과정에서 주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상사 소리」라고도 한다. 1994년 김익두가 편저하고 문화방송에서 간행한 『한국민요대전』-전라북도편 해설집에 실려 있다. 이는 문화방송 조사팀[김성식·김월덕 등]이 1991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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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장곡리에서 우레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뢰정이 생긴 유래」는 고창군 공음면 장곡리에 있는 남평문씨의 시제산 아래에 위치한 샘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다. 이를 「우레정이 생긴 유래」라고도 한다. 공음면 장곡리 축동은 남평문씨의 세거지이며, 시제산이 있는 곳이다. 무장의 농민군 접주로 활동하다 1894년 12월 27일 체포돼 포살당한 문덕중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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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작가 이성수가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2014년 출간한 소설.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은 2014년 고창군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으로 출간된 창작 소설이다. 그동안 묻히고 폄훼되고 왜곡되었던 고창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구성하여 전개하였고,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작가의 상상으로, 당시의 사회와 시대 상황을 재현해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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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건동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4년 ‘건동(建洞)’과 ‘송산(松山)’을 병합하여 그 중심 마을의 이름을 붙여 건동이라고 했다. 1700년대 중엽 무송유씨(茂松庾氏) 유제한(庾濟漢)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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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입상. 전통 마을의 안팎에 미륵불을 조성한 것을 마을 미륵이라 한다. 마을 미륵은 미륵불이 중생 구제를 위하여 마을로 내려온 방식을 보여주는 미륵불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마을 미륵에게 수시로 기원 의식을 거행한다. 특히 기자(祈子)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마을 미륵이다. 높이 170㎝의 건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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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에 있는 녹색 농촌 체험 마을. 고창군의 서남에 위치한 공음면은 백제 시대에 상로현(上老縣)에 속해 있었으며, 신라 시대에는 상로현을 개칭한 장사현(長沙縣)에 속하였다가 1417년(태종 17)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이 병합되어 무장현으로 예속되었다. 그 후 1914년 와공면과 동음치면이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공음(孔音)으로 개칭되었다. 고사리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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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이름은 창주(昶柱)이다. 순택(舜澤)은 자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제량(高濟良)이다. 고순택은 일찍이 고창의 대표적인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이며 접주였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 고창 일대에서 송문수(宋文洙)·최경칠(崔敬七)·문덕중(文德仲)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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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 있는 동학의 기포지. 1894년(고종 31)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군수 조병갑을 축출하고 백산 등지에 진을 치고 머물렀으나, 후임 군수 박원명의 설득으로 3월 초에 해산을 하였다. 그러나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봉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해지자 무장으로 피신하였던 전봉준 등의 농민군 지도부는 3월 16일경부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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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학원농장 일원에서 매년 4월 중순~5월 중순에 열리는 청보리밭축제. 고창 청보리밭축제가 열리는 학원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과 부인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의 야산 약 33만 579㎡를 개간하여 조성하였다. 1960년대는 뽕나무를 식재하여 잠업을 하였고, 1970년대에는 목초를 재배하여 한우 비육 사업을 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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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농악 판굿에서 장고수가 맡는 설장고 부분. 설장고는 농악 판굿에서 장고수가 맡는 개인기 대목이다. 농악수(農樂手) 중 제1장의 고수이다. ‘설’이라는 ‘으뜸’이라는 뜻이며, 경남농악에서는 수장고(首長鼓)라고 한다. 고창농악은 예로부터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지역에서 해변을 끼고 형성되었다. 고창농악은 일반적이면서도 잡색놀음이 다양하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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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 구수마을에서 고추는 효자 작물이다. 용돈도 벌고 가용으로도 쓰고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추는 우리 밥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작물이다. 고추가 없는 우리의 식단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구수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점점 더 수입 고춧가루가 우리의 식단을 장악해 가고 있지만, 일손이 없어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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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공음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를 표어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역 사회에 전파하는 교회이다.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0년 9월 20일 오원성 전도사와 몇몇 교인들이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의 한 가옥에서 개척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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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와공면(瓦孔面)과 동음치면(冬音峙面)에서 ‘공(孔)’자와 ‘음(音)’자를 따 공음면(孔音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興德郡)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와공면과 동음치면의 병합으로 공음면이 되어 12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법정리로는 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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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동마을에 있는 마을 정자.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동마을에는 오래된 모정이 있었는데, 195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이후 불에 타버려 다시 지었으나 낡아버리자, 2007년 마을 경관 사업을 하면서 그 자리에 공음면 선동리 모정을 새로 지었다. ‘선동리’라고 쓰인 표지석에서 선동 방향으로 약 500m 들어가면 선동마을이 나온다. 붉은 벽돌로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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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풍물 단체. 공음면 참나무정농악단은 공음면 농민회를 중심으로 취미 활동을 하고자 설립되었다. 1998년 공음면 농민회 농악단을 창단하였고, 2000년 제1회 고창농악경연대회를 계기로 공음면 참나무정농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지역 축제 및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주민자치센터에서 연중 농악 교육을 받고 있다. 2000년 제1회 고창농악경연대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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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공음면 관할 행정 기관. 공음면사무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과 관련된 지방 행정의 기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와공면(瓦孔面)과 동음치면(冬音峙面)을 합쳐 12개 법정리로 된 공음면(孔音面)이 신설되었다. 면사무소가 설치된 시기는 뚜렷한 기록은 없으나 그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할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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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인성 교육을 강화하여 예의 바르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도덕인],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여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사람[실력인], 실험·실습을 활성화하여 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창조인], 건전한 심신을 배양하여 정서가 순화된 강건한 사람[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71년 1월 16일 공음중학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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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예절을 알고 실천하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갖춘 어린이, 바르게 판단하고 깊이 생각하는 어린이, 소질과 특기를 계발하여 앞서가는 어린이, 튼튼한 몸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29년 7월 5일 공음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7월 8일 1학년 1학급을 편성하여 개교하였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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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만을 기억해왔다. 하지만 이들 세 명에 의해 주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들과 함께 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동학농민혁명은 가능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전봉준과 함께했던 이름 없는 농민군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를 뿐 아주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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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의 마을 수호와 풍농을 기원하며 음력 1월 말일과 2월 1일에 지내는 동제. 구암리 마래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날에 거행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마래마을은 공음면에 속하고, 마을이 전라남도 영광군과 경계하고 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마래마을의 행정구역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과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으로 나뉘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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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리는 마을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암(龜岩)’이라 하였다. 1600년대에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말을 타고 지나다, 주점에서 하룻 밤을 묵는데 꿈에 선몽을 받고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덕음리(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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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구암중앙교회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를 표어로 진정한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교회이다.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1991년 5월 13일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물레방앗간에서 몇몇 신도들의 개척 예배로 시작되었다. 당회록 소실로 인해 당시 참석한 신도들의 신원은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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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군유리는 군사가 주둔해서 ‘군유(軍留)’ 또는 ‘군율’이라 하였다 한다. 속설에는 유림(儒林)과 선비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군유(群儒)라고 한다고 한다. 풍수상 학(鶴) 형국이라 군학(群鶴)을 비유하여 ‘군유(群濡)’로 부른다는 유래도 있다. 1400년대 초 달성배씨(達城裵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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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사형(金士衡)의 부조묘. 부조묘란 국가를 위한 공로가 큰 사람에 대하여 왕의 불천지위(不遷之位)를 허락받아 설립한 사당을 말한다. 김사형(金士衡)[1333~1407]은 고려 후기,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이다. 고조부는 김방경(金方慶)이고, 할아버지는 김영후(金永煦)이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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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김성대는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에서 태어났는데, 집이 두암마을 샘 위에 있었다. 아들은 김만엽으로, 충청도로 이주하였다. 김성대는 당골[무당]이자 두암마을 상쇠 명인으로 유명했다. 어려서 같이 활동했던 이중섭의 구술에 의하면 꽹과리 가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성근(朴成根)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굿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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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자는 성규(聖圭)이고 호는 만수(晩睡)이다.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의 후손이고 진사(進士) 김양대(金養大)의 아들이다. 1842년(헌종 8)에 공음면 선동리(扇洞里)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고창읍 도산리(道山里)로 이사했다. 자질이 총명하여 일찍 문리가 통했고 효심이 깊어 부모를 잘 섬겨 정성을 다했다. 또한 부모의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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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김재명(金在明)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형량은 밝혀져 있지 않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농민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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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 아버지는 찬의(贊儀)를 지낸 김복중(金福重)이다. 김질(金質)은 천성이 온순하고 단정하며 효심이 지극하여 양친을 지성으로 모셨다. 어머니의 명에 따라 1528년(중종 23) 진사시에 올랐을 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1508년(중종 3) 어머니의 상을 당해 여막(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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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 사는 전윤오[1938년생] 씨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역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수마을 역병 이야기는 정말로 한 마을에 불어 닥친 엄청난 불행이자,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어릴 적에 그는 그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내가 열네댓 살 먹었을 때 들었던 것 같혀. 당시에 여러 곳에서 온 동학군들이 많이 모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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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뫼봉은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 있는 왕제산의 다른 이름이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의 현장인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 직선거리로 약 1㎞ 가량 떨어진 이곳은 높이가 152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사방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서해안의 물길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내륙으로부터 들어오는 관군의 움직임을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무장기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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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은 아마도 아름드리 정자나무 밑에 다소곳하게 세워져 있는 모정(茅亭)[여름철 마을 주민이 더위를 피하고 휴식하기 위해 세운 마을의 공유ㆍ공용 건물]일 것이다. 한여름 오후 모정 위에서는 마을 어른들이 빙 둘러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면, 그보다 더 시원하고 목가적인 여름철 풍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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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이야기만큼 흔한 것이 또 있을까? 어디를 가나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신세 한탄. 그 중에서도 모진 시집살이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회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시집살이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집살이 이야기라는 것이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매번 마음이 아픈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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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덕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구전에 의하면 고창군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교회인 덕암교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를 표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이다. 덕암교회는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파해 문물을 깨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덕암교회는 1900년 광주 선교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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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암리는 대리미산 밑이라 ‘대리미’ 또는 ‘덕암(德岩)’이라 하였다고 한다. 1700년대 초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평촌리(平村里)·복흥리(福興里)·창평리(昌平里)·지음리(知音里)·응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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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는 정희주(鄭熙周), 정민상(鄭敏相), 정유상(鄭有相),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조선 후기 사당. 진주정씨(晋州鄭氏) 종모재(終慕齋) 정희주(鄭熙周)와 야은(野隱) 정민상(鄭敏相), 송은(松隱) 정유상(鄭有相), 항사재(恒思齋)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도봉사는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다. 1827년(순조 27)년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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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질(金質)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도암서원는 안동김씨의 서원으로 1613년(광해군 5)에 김질(金質)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어 그가 살던 집터에 창건하였다. 이후 1835년(헌종 1)에는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킨 증손 김경철(金景哲)을 배향하였으며, 1857년에는 김경철의 아우로 임진왜란 때에 왕을 호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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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서 출발하여 구암중앙교회를 지나면 길 건너에 석교리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석교리’라고 쓰여 있는 크고 굵은 글씨와 그 아래 ‘동촌, 창촌’이라 쓰여 있는 표지석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큰 마을이 나온다. 마을 인가를 몇 채 지나면 커다란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운치 있는 나무를 보면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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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 20일을 전후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가 열린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무장기포를 기념하는 행사로서, 올해[2009년]는 4월 25일에 기념제가 열렸다. 전날까지도 아주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25일 오전부터 날씨가 굉장히 쌀쌀해져서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바람과 검은 구름이 하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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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는 본래 무장군 동음치면에 속해 있었는데,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구암(龜岩)’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을 새롭게 고치면서 동음치면 덕음리(德音里)ㆍ구수리(九水里)ㆍ장동리(壯洞里) 전체와 성재리(聖才里)ㆍ다옥리(多玉里) 일부, 하리면(下里面) 택동리(宅洞里)와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면(弘農面) 덕림리(德林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리(龜岩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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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터미널에서 26㎞ 가량 떨어져 있는 공음면 구암리는 전라남도 영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특히 큰샘이 있어 ‘샘거리’라고 불리는 구암리 마래마을 마래주유소 주변은 도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뒤섞여 있다. 길 하나, 도랑 하나, 담장 하나, 밭두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1:50,000 지형도」에서도 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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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의 1년은 여느 농촌 마을과 비슷하다. 연초에는 영농 경작을 준비하는 단계이다.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거나 마을 총회를 통해 영농기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2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한여름에는 당산나무 그늘이나 마을회관에서 수박이나 백숙으로 삼복더위를 식힌다.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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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운동으로 민족ㆍ민중 운동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이다. 고부에서 싹튼 농민 봉기의 불씨가 이 마을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것이다. 1894년 3월 20일[음력] 구수마을에 모인 동학 농민군들은 만천하에 ‘창의 포고문’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구수마을은 농민 봉기가 혁명으로 전개된 역사적인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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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장동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하얀 조립식 주택과 흙벽으로 만들어진 창고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왼편에 대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 대나무밭 뒤편에 개간된 밭이 옛 ‘송총’이다.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 ‘송총’의 주인은 누구일까? 송총의 주인은 바로 송문수이다. 송문수(宋文洙)[?~1894. 12. 5]는 무장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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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암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모습이 곡물을 측정하는 ‘말[斗]’과 같다하여 ‘두암(斗岩)’이라 부른다고 한다. 1600년대 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송운리(松雲里)·신흥리(新興里)가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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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은 경주최씨 최문세(崔文稅)[1610~?]가 말을 타고 들어와서 이룬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문세는 고운 최치원의 24세손으로, 1655년 장성군 황룡면에서 살다가 마래마을로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현재까지 12대를 이어오고 있다. 마래마을 삼거리에 있는 삼효각은 경주최씨 집안의 3대째 이어 온 효행을 기리고 널리 알리어 후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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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입구 샘거리에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전에는 훨씬 더 많았는데 도로를 내고 주유소를 지으면서 상당수가 땅 속에 파묻혔다고 한다. 경주최씨 삼효각을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가는 도중에 최대기[1938년생] 씨가 그 중 한 개의 고인돌을 가리키며 말바우와 되바위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었다. 말바위와 되바위 이야기는 ‘장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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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났다. 문덕중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무장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송문수(宋文洙), 고순택(高舜澤)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여 1894년 3월 20일 무장 기포와 백산 봉기에 관여하였다. 9월의 2차 동학 농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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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학로(學魯)이고 호는 입헌(立軒)이다. 청정공(淸靖公) 배을서(裵乙瑞)의 후손이며, 송파(松坡) 배종풍(裵鍾豊)의 아들이다. 1910년 공음면 용수리 청천(淸川)마을에서 출생하여 1996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20세 때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했는데 영광의 육봉(六峰) 이종택(李鍾澤)의 문하에서 독공을 하여 문장의 진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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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상삼(相三), 호는 남계(南溪)이다. 1864년 무장현 와공면 청천[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배후근(裵厚根)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배환정은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약을 무료로 주고 노부모를 모시는 환자에게는 약값을 반액만 받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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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구수한 된장국처럼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그런 것이다. 하물며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깨복쟁이’ 친구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그 친구들은 서울로 광주로 고창읍으로 모두 흩어져 살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으로 향해 있을 것이다. 「그리운 언덕」이라는 동요의 노랫말처럼. 내 고향 가고 싶다 그리운 언덕/ 동무들과 함께 올라 뛰놀던 언덕/ 오늘도 그 동무들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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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교리는 석교리 창촌마을에 작은 돌다리가 있어 ‘독다리’·‘석교(石橋)’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1400년대 초 창원황씨(昌原黃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동촌리(洞村里)·남동리(南洞里)·다옥리(多玉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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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동리는 풍수지리상 마을의 형태가 부채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부채울’ 또는 ‘선동(扇洞)’이라 하였다. 1950년대는 마을 앞에 큰 샘이 있어 ‘대정(大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490년대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닦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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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선동리 선산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당산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이를 ‘선동리 선산마을 굿’이라고도 한다. 농촌에서 풍농을 기원하는 마을 굿은 대체로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동제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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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선한 일을 실천하는 어린이, 정서가 풍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4월 8일 공음국민학교 부설 선동간이학교로 설립을 인가받아, 5월 1일 개교하였다. 194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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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185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아버지 송의호(宋義浩)와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송경찬은 1893년 동학 교단에서 신원 운동의 하나로 전개한 보은 집회를 전개할 당시부터 무장 접주로 활약하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강경중(姜敬重)과 함께 1,300여 명의 동학 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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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동생 송경수(宋景洙)와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였다. 송문수는 대표적인 무장 지역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군 지도자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최경칠(崔敬七) 등과 함께 무장에서 봉기했고, 이후 9월 봉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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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이 모두 끝난 늦가을부터 겨울이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할머니들은 매일같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그리하여 구수내가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 마을이기 때문에 관련 이야기 하나쯤은 들어 있을 법도 한데, 동학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동학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지 오래된 사건이라서 그랬을까? 참으로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조르고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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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대리는 새로 된 마을이라 ‘새터’·‘신대리(新垈里)’라 하였다고 한다. 1750년대에 천안전씨(天安全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새터·축동(丑洞)·구정리(九井里), 이동면(二東面)의 복흥리(福興里)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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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은 고부 농민 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고부에는 조선 후기부터 왕실 소유의 토지가 몰려 있었는데, 이를 관리하는 관리의 비리와 조세 운반을 맡은 전운사 조필영의 강제적인 세금 징수, 그리고 지역 관리의 비리 등으로 이 지역 농민들은 관리들에 대한 불만과 국가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1892년 4월 부임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포악하고 가혹한 정치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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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 구수마을에서 제일 유식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윤오[1938년생] 씨를 가리킨다. 그래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에게 구수내[구수마을]에 관한 역사나 인근 지역의 역사에 대해 물어 볼라치면 “어찌 다들 나한테만 물어 본다요?” 하면서 쑥쓰러워한다. 하지만 그 기색이 어쩐지 싫지만은 않아 보인다. “구수내라고 헌 것은, 그 전에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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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리에 관한 뚜렷한 명칭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예지’로 불렸다가 ‘예전(禮田)’으로 불렸다고 한다. 1300년대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묘리(侍墓里)·응암리(鷹岩里)가 병합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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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예전저수지는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 일대와 고창군 대산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건립된 저수지로서, 1941년 착공하여 1945년에 준공되었다. 제방 형식은 필댐[죤형]이며, 제방 체적은 1만 6800㎥, 제방 길이는 241m, 제방 높이는 7m이다. 총저수량은 82만 6000t, 유효 저수량은 78만 7000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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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고 일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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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수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수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마을 전체 형상이 용(龍)의 꼬리 형국이라고 한다. 용은 물[水]이 있어야 잘 산다는 관념에 따라 청천마을 앞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 후부터 용수마을이 잘살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1650년대 말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잡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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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에헤~~에~~ 이~~히히~아~~~오~~~산 에~ 에헤~~에~~ 이~~히히~아~~~오~~~산 에~~~ 히히히여~~~~어~ 서른두 명 유대군들[상여꾼들] 내 말 잠깐 들어 주오 먼데 양반들 듣기 좋고 가깐데 양반들 보기나 좋게 곱게 곱게 운상헙시다 그려 관암~~ 보~~살~~~ 에~~~ 히히히여~~~~어~ 엊그저께 성튼 몸이 오늘날로 병이 들어 약탕관을 옆에 놓고 인삼녹용을 다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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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 있는 6·25전쟁 때의 양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6·25양민희생자위령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빨치산으로 몰려 무고하게 희생당한 선산마을 주민 510명의 영혼을 위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소위 ‘고창 11사단 사건’으로 불리는 고창 양민 집단 희생 사건은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던 국군 11사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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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덕비. 이교인은 문과에 급제하고 1859년(철종 10)에 승지로 불려갔다. 이교인이 선정을 베풀고 다른 지역으로 부임할 때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공음면사무소에 칠암리를 거쳐 대산면 쪽으로 가다 보면 군유오거리에 군유주유소가 나오는데, 이곳에 있다. 비석 윗부분이 비신과 한 몸으로 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현감이후교인청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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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때에 따라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1970년경까지만 해도 모내기를 할 때는 ‘못방구’라고 하여 농악패가 논두렁에서 굿을 치면 모를 심는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노동의 고단함을 잊었다고 한다. ‘풍장’[풍물놀이라고도 하는데, 농촌에서 농부들 사이에 행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으로 나발, 태평소, 소고, 꽹과리, 북, 장구, 징 따위를 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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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곡리는 긴 골짜기 안에 마을이 있어 ‘장곡(長谷·壯谷)’이라고 했다고 한다. 1800년대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회룡리(回龍里)·내대리(內垈里)·양동리(良洞里)와 전라남도 영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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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휘는 근영(根永), 호는 진암(眞庵)이다. 백현(伯賢)은 자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태어났다. 정백현은 농민 봉기 와중에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지도자급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백현은 1894년 3월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 때, 전봉준(全琫準)의 처 칠촌으로 뒷날 전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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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2010년 3월 15일[음력으로 정월 그믐] 해가 질 무렵 마을회관을 찾았더니,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전부터 마을 이곳저곳과 당산제 지낼 장소인 할머니당산 주변을 청소한 후 할머니당산, 할아버지당산, 말바위당산, 큰샘당산에 인줄[새끼를 왼쪽으로 꼬아 백지를 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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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종모재(終慕齋). 절제사를 지낸 정종순(鄭宗舜)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정기현(鄭期顯)이다. 정희주(鄭熙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지성으로 모시어 뜻을 받들어 봉양을 다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중하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어 대신하기를 원했으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하여 아버지는 16년을, 어머니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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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 줄다리기를 한다. 정월 그믐 낮부터 당산제를 준비하기 시작해 2월 초하루 새벽에 제를 지내고 나면 금세 동쪽 하늘에서 동이 터온다. 그러면 아침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짚 다발을 가지고 하나둘씩 마을회관으로 모인다. 오전 10시경, 마을회관 앞 광장에 짚 다발이 쌓이자 마을 사람들이 2개 조로 나뉘어 줄을 드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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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뒷동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골목길이나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딱지를 치거나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무줄놀이도 비석치기도 땅뺏기놀이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놀이 공원에 가면 금방 수수께끼가 풀린다. PC방, 노래방, 비디오방, 게임방, 영화관 등에 가 봐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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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농악패를 ‘기맹기패’라고 한다. 그리고 “농악을 친다”라거나 “풍물을 친다”고 하지 않고 “기맹기 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든 살이 넘은 최대근[1927년생] 씨에게 물었더니, “나도 뭔 말인지는 모르겄어.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어.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모르제. 나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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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례 [1944년생] 씨는 열아홉 살인 1963년에 전라남도 영광의 우평마을에서 이곳 구암리 구수마을로 시집을 왔다. 그래서 택호가 ‘우평댁’이다. 그녀는 2남 4녀의 자녀를 두었다.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고 자녀들이 모두 외지에서 사는 바람에 구수내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옛날에는 있었어. 옛날에 이 동네는 없어도 우리 큰집에 있었어. 옛날에는 시렁마다 얹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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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진주정씨 가문의 정문. 진주정씨(晉州鄭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누대에 걸쳐 정려를 하사받았다. 진주정씨 삼강각에는 하나의 비석과 열세 개의 현판이 있어 이들의 활동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흘(鄭屹)은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의진에 임했으나, 전라감사가 무장현[현 무장면]에 현감 자리가 공석이자 현감 직책을 맡아 성을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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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녹색 농촌 체험 마을. 1910년(순종 4) 무장현 와공면에 속하였던 선산마을은 1914년 4월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로 편입되었고, 1964년에는 주민 조직법에 의거하여 청메골 선산마을로 분리되었다. 청메골 선산마을은 2003년 농림부 지원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 확정되어 체험 마을로 조성하게 되었다. 2003년부터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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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 있는 배을서(裵乙瑞), 배세조(裵世祚)를 배향한 일제 강점기 사우. 청정공(淸靖公) 배을서(裵乙瑞)를 주벽으로, 송간(松澗) 배세조(裵世祚)를 배향했다. 배을서는 총명하고 재기가 비범하여 길재(吉再)에게서 수학하였고, 그의 사위가 되었다. 또한 정몽주와 이색 문하에서 수학하여 척불흥학(斥佛興學)을 사명으로 삼았고, 부모 장례를 마치고는 3년여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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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월포(月浦), 본명은 귀환(貴煥)이다. 경칠(敬七)은 자이다. 1861년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최경칠은 9척 장신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하는데,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머슴의 등에 업혀서 서당에 다닐 정도로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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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백효(伯效), 호는 후운(後雲)이다. 188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서 태어났다. 최순모는 일찍이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또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에게 서화를 배워 글씨가 정묘하고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다. 산수화와 화훼(花卉)를 잘하고, 특히 일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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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신유박해 순교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례명은 마티아, 여겸(汝謙)은 자라고 한다. 무장현 동음치면[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거주하고 있던 전주최씨 현감공파의 후손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 상세한 계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여겸(崔汝謙)은 25세 때인 1788년(정조 12) ‘전라도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을 찾아가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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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인 최여겸의 순교지. 순교자 최여겸의 세례명은 마티아이고, 전라도 무장에서 출생했다. 최여겸의 신분에 대해서는 『한국천주교회사』에는 양인으로, 「황사영 백서」에는 상인(常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명단에는 양반 출신으로 되어 있다. 최여겸은 윤지충[바오로]으로부터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그 교리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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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칠암리는 마을 뒷산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칠암’이라 한다고 한다. 본래는 망모기 밑이라 ‘망목촌’이라 불렸다고 한다. 망모기는 원칠암에서 무장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1300년대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갑촌리(甲村里)·용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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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마비. 칠암리 하마비는 갑촌마을 도암서원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데, 이곳은 김질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효자각도 있는 곳으로서,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한 징표이다. 공음에서 영광으로 가는 국도 22호선 도로변, 즉 도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삼거리에 있다. 비석의 크기는 120×58×35㎝이고, 일반적인 월석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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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 마래마을에는 ‘샘거리’ 모임 외에도 ‘큰샘’이라고 하는 모임이 있다. 큰샘 모임은 많게는 스무 살까지 나이 차이가 나지만, 고창 관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갑자기 생기는 마을 행사에도 대부분 참석한다. 2010년 3월 15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지낸 당산제에도 회원들이 모두 참석하여 참례를 하고 뒷정리를 맡았다. 샘거리 모임의 구성원들 중에는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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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밀, 쌀, 옥수수 다음 가는 세계 제4위의 곡물이다. 떫은맛이 있고 성질이 차가워서 체온을 조절해 주며 체액을 형성하는 기능이 있다. 보리는 겨울 동안 추위를 이겨 내고 결실을 맺는 곡물로서 냉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식품으로 수박과 함께 여름에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곡물이다. 남동아시아에서 재배가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고구려의 주몽이 남쪽으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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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관광 농장. 학원농장 주변이 2004년도 말에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되었다. 지역특화발전특구란 「지역특화발전특구에대한규제특례법」에 의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지정하는 것으로, 특정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지역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정책이다. 예컨대 전라북도 순창에 ‘고추장특구’, 대구에 ‘약령시 한방특구’ 등을 지정하고, 이러한 특정 산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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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기포는 1894년 3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당시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리[현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는 수천 명의 동학 농민군이 모였는데, 이들은 죽창을 만들고 무기와 식량을 확보한 뒤 대오를 정비하였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마침내 3월 20일 이곳에서 창의문을 낭독하고 기포하였다. 무장기포 직전 무장현 일대는 동학의 교세가 대단히 컸다. 동학의 교세는 전라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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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소고 명인. 황재기는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에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풍물판을 따라다니면서 이모질에게서 엇박배기 동작을 배우는 등 이모질·김양술(金良述)·김오채 등과 소고를 쳤다. 이후 박성근(朴成根)·신영찬·신두억·김만식(金萬植)·김성락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24세 때인 1947년 정읍농악단 소속의 수벅고로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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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이장 최대기 씨는 2009년 2월 9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당시 최대기 씨 어머니는 백수[100세]에서 딱 한 살 모자란 아흔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생전에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해 모신 공으로 최대기 씨는 2007년 5월 9일 대한노인회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어머니는 고창 고을 원님의 ‘딸의 딸’로 태어났다고 한다. 정식 학교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