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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 목은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이예견(李禮堅)이다. 1480년(성종 11) 한성에서 태어난 이자(李耔)는 1501년(연산군 7)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1504년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천추사(千秋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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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민물고기인 참매자를 조려 만든 향토 음식. 예부터 충주는 뱃길을 통해서는 강원도 태백산에서, 육로를 통해서는 경상도에서 사람과 물산이 많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이들 물산은 자연스레 목계 내륙항을 통해 한양으로 운송되었다. 따라서 목계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고 각종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남한강에서 많이 잡히는 참매자 등 민물고기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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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교육자. 이가원은 한국 한문학계의 태두이며 동양의 고전과 우리 학문의 기초를 확립한 학자이다. 이가원은 이황의 14세손으로 어려서부터 도산서원에서 훈장을 하던 조부 및 집안의 한학자로부터 학문을 배워 초년에 이미 한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941년에서 1943년까지 명륜전문학원 연구과와 명륜전문학교 경학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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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부터 조창이 있어 창골 또는 창동이라 불렀다. 당시 조창의 이름은 경원창과 덕흥창이었다. 본래 충주군 금천면 지역으로 창동리는 조선 초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언급된다. 『세종실록지리지』충청도 충주목조에 보면 “경원창(慶原倉)은 주의 서쪽 10리 연천(淵遷)에 있는데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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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상.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얕은 부조로 조각된 마애불로 동남향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4m이다.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 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왜군과 격전하다 분패·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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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철광산지. 충주는 철광맥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으로 한국지질도 충주도폭에 의하면 옥천계층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시대 미상의 변성 퇴적층 가운데 계명산층에 철광상이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계명산층은 음성·이류·달천·중앙탑·연수쪽으로 이어지는 중심맥과 앙성, 노은쪽과 수안보, 한수쪽도 가지맥에 철광맥이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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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부터 조창이 있어 창골 또는 창동이라 불렀다. 당시 조창의 이름은 경원창과 덕흥창이었다. 본래 충주군 금천면 지역으로 창동리는 조선 초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언급된다. 『세종실록지리지』충청도 충주목조에 보면 “경원창(慶原倉)은 주의 서쪽 10리 연천(淵遷)에 있는데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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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창동 사지와 관련된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현 위치가 아니라 뒤편 담 쪽에 있던 것을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정식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창건 연대나 폐사 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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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야철지.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는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창동리 일원을 큰 범위로 표시하여 설정하면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는 처음 조사한 야철지의 흔적에 제한하고, 나머지 건물지 등은 충주 창동리 유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충주에서 탄금대교를 건너 중앙탑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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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원래 100m 정도 북쪽으로 떨어진 민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1977년경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석탑이 있었던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석탑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보아 원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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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가금면[현 중앙탑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가흥면과 금천면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가흥면의 소재지는 가흥초등학교가 있는 가흥리 일대이며, 금천면의 소재지는 창동리 일대이다. 창동리에는 내륙 수운의 중심인 경원창·덕흥창·금천창이 있었으며, 사액서원인 누암서원이 있었다. 충주에서 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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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건물지와 야철지 유적지. 충주 창동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5년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충주 용두~금가 간 우회도로 건설공사로 인하여 실시되었다. 이곳은 본선이 통과하는 구간이 아닌 본선과 칠금~중앙탑 간 지방도를 연결하는 나들목을 만들며 확인된 유적이다. 충주 창동리 유적은 달천강과 남한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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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창동 사지와 관련된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현 위치가 아니라 뒤편 담 쪽에 있던 것을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정식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창건 연대나 폐사 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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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철광산지. 충주는 철광맥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으로 한국지질도 충주도폭에 의하면 옥천계층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시대 미상의 변성 퇴적층 가운데 계명산층에 철광상이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계명산층은 음성·이류·달천·중앙탑·연수쪽으로 이어지는 중심맥과 앙성, 노은쪽과 수안보, 한수쪽도 가지맥에 철광맥이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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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창동 사지와 관련된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현 위치가 아니라 뒤편 담 쪽에 있던 것을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정식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창건 연대나 폐사 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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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창로(蒼老), 호는 후조헌(後凋軒). 할아버지는 유충건(柳忠健), 아버지는 유시량(柳時亮)이며, 동생은 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현종 때 정언·지평 등 언관에 종사하였으며, 1674년(숙종 즉위)에 장령을, 1683년(숙종 9)에는 삼척부사를 지냈다. 아버지의 종기가 심하여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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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창건된 법주사의 말사. 남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는 충주 창룡사 다층 청석탑(靑石塔) 등의 유물로 보아 창건 시기가 신라시대로 올라가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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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석탑. 창룡사는 충주시 직동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시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고려 말 선각왕사 혜근이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 서산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범우고(梵宇攷)』를 비롯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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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박광리(朴光理), 할아버지는 박소(朴蘇)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지흥(朴智興),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급제하고, 1501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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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창애(蒼厓). 할아버지는 홍만종(洪萬鍾)이며 아버지는 형조참판 홍중하(洪重夏)이다. 홍경보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27년(영조 3) 정언이 되어 형률(刑律) 시행의 잘못에 대하여 상소하였다. 1728년 부수찬과 참찬관을 거쳐 대사간이 되어 숙종에게 수덕(修德)과 정요(政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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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이름은 대동창(大同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옛날에는 버드나무가 많아 은버들마을[銀柳村]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충주군 주류면(周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전1리·창전2리·창전3리·창전4리·창전5리·창전6리·창전7리로 나누어 있다가 동산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창전리로 개편되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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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중(成中), 호는 채봉(彩峰).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홍집(洪雨+集)이며,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어머니는 경림군(慶林君) 이정(李淀)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홍만수는 1673년(현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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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순조 17) 충청북도 충주 출신 채수영이 일으킨 역모 사건. 1802년(순조 2) 김조순(金祖淳)의 딸이 왕비로 책봉된 뒤 1804년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비변사를 비롯하여 조정의 권한을 장악하였다. 이로부터 안동김씨 세력의 세도 정치가 실시되었으며, 이로 인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뇌물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수령들은 백성들을 더욱 수탈하였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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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찬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당시 이강년 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10년 이후에는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통화현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동창생 신용관(辛容寬)과 같이 백서농장(白西農場)을 경영하면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3·1운동 이후 서로군정서에 들어가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평안북도 강계군 문옥면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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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시숙(始叔), 호는 천관(川觀). 광산부원군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성(金聲)은 김장생(金長生)의 아들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명나라가 망하자 존양대의(尊攘大義)를 지켜 벼슬에 뜻을 버리고 충주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으며, 일명 황명처사라 불렸다. 저서로 『유고(遺稿)』가 전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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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동학 계열의 신종교.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도된 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가 동학의 재건을 위해 교명을 천도교로 바꾸었다. 1906년 ‘천도교 대헌’을 반포하고 서울에 중앙총본부를 두고 지방은 72개 대교구로 분할했다. 1961년 천도교 경전을 간행했으며, 1962년 사회 단체로 등록하였다. 현재 천도교 중앙총부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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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이안면 영평골과 덕면 삼주리를 합하면서 법정리 명칭을 영평리로 하였다. 1760년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천동리가 나오는데 이 명칭이 현재의 삼주리, 영평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912년에 나온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보면 영평리가 나오고, 이것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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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와 명서리에서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다 하여 천등산이라 한다. 남쪽의 인등산, 지등산과 함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이루는 삼등산 중 하나이다. 충주분지를 둘러싼 북동쪽에서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가 오청산[655m]·천등산·인등산[666m]·지등산[535m]으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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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서 만드는 술. 천등산 막걸리는 천등산 자락 송강리 웃광동에 있는 천등산박달재주조(주)에서 주조하는데, 종류로는 남성용 쌀 막걸리인 박달주, 옥수수로 만든 여성 취향의 금봉주, 좁쌀로 만든 조껍데기 술 등이 있다. 천등산 막걸리는 충주를 대표할 만한 막걸리로, 맛이 좋고 뒤끝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1996년에 천등산 막걸리 공장이 건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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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서 천등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등산 명당」은 산척면 소재지에서 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천등산·지등산·인등산 삼산이 있는데, 이곳에 갈마음수혈지혈의 천하명당이 있다는 풍수전설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간한 『전설지』에 「천등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이는 당시 산척면 송강리의 주민 윤현출, 영덕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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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일대에서 검은콩·서리태·흰콩을 섞어 만든 두부. 두부는 고려시대 송나라나 원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승려들이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두부를 먹었는데 훗날 민간에까지 퍼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두부 요리가 발달하여 단백질 섭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서민들이 즐겨 먹었다. 일반적으로 두부는 흰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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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산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지역 농산물 축제.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일대에서 주로 생산되는 천등산고구마는 무공해로 재배되며 섬유질이 많아 참살이 식품과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에 산척면에서는 충주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농산물 중 주요 특산품인 천등산고구마의 주요 생산 단지가 산척면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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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단오일을 전후하여 목계마을의 사람들은 남자들을 중심으로 천렵에 나선다. 천렵 장소는 석도산 아래 됫섬이었다. 일부 마을사람들은 걸어서 가기도 하고 일부는 선유놀이나 연등 및 불꽃놀이에 쓸 물건들을 싣고 배로 됫섬 앞에 있는 되여울까지 올라간다. 선유놀이에 쓰던 배는 목계나루를 건너던 배 중에서 길이가 15~20m 정도의 중형배였다. 천렵은 강물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잡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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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와 앙성면 돈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장미와 보련 남매가 보련산에 성 쌓기 내기를 하자 어머니가 아들인 장미에게는 죽을 쑤어 주고 딸인 보련에게는 밥을 지어 주어 보련이 이기게 되었다. 이때 보련이 산성을 쌓았다고 하여 보련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련산은 또 천룡산(天龍山)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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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보련산성은 충주시 노은면과 앙성면의 경계인 해발 764m의 보련산 정상부와 남쪽의 해발 664m 봉우리 남쪽을 에워싸는 석축산성으로 험준한 동향의 협곡을 포함하는 전형적인 입보농성용 산성이다. 고려시대 몽고침입기의 천룡산성(天龍山城)에 해당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봉황성(鳳凰城)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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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서(天敍), 호는 두담(杜潭). 할아버지는 예산현감을 역임한 홍주문(洪柱文)이며, 아버지는 참판 홍만종(洪萬鍾)이다. 홍중하는 1679년(숙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686년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8년 검열이 되고, 1691년 정언·지평, 1693년 부수찬·부교리·헌납 등을 지냈다. 이듬해 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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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그리스도 교파의 하나. 충주 지역에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전래되었다. 1784~1785년 경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선조들인 이벽·정약전·정약용·이승훈·권철선 등과 함께 영세는 받지 않았지만 이가환 등이 교리를 토론하였다. 이가환이 공조판서를 거쳐 충주 목사 재직하고 있을 때 천주교 신자 사건이 있었으며,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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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신니면 모남리는 충주시의 가장 서쪽에 있는 음성군과의 접경 지역으로 예부터 목고개를 넘어 서울로 가는 충주의 관문이다. 따라서 충주 지역 천주교의 전래 경로를 보면 중부 지역 천주교 본령인 감곡성당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아 천주교 신자들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1959년 주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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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노은면 법동리의 천주교 신자들은 본당인 주덕성당과의 거리가 멀어 신자들이 주일 및 평일 미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이에 천주교주덕성당 법동공소를 설립하여 공소예절과 미사를 통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고자 설립하였다. 노은면 법동리 지역은 중부 지역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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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노은면 안락리 지역은 행정구역상 충주시에 속하면서도 지리적으로는 음성군 감곡면과 접경 지역에 있어, 중부 지역 천주교 전파의 시발점이던 감곡성당(일명 매괴성당)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한 신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에 따라 노은면 안락리와 가신리 일대의 천주교 신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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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충주시 서부에 있는 신니면 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래하였으며,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가정집에 모여 교리를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던 당시에 약 8㎞ 길을 걸어 성당에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에 주덕성당과 거리가 멀어 불편한 점이 많은 신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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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던 천주교 청주교구 목행동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1955년부터 교현동성당의 옥보을 신부가 정기적으로 전교회장을 파견하여 전례를 보게 함으로써 동량공소가 시작되었다. 1960년에는 여기서 파생된 용대공소가 동량공소를 능가하는 전도로 활기를 띠게 되어 동량공소 신자들이 용대공소에서 공소예절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용대공소는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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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목행동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산척면 일원의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자 목행동성당 산척공소를 설립하였다. 천주교목행동성당 산척공소는 1953년 고향이 이북인 김원달(말딩)이 군에서 세례를 받고 산척면 송강리에 정착하면서 전교를 시작하고, 김원달 자신의 집에서 공소예절을 본 것이 효시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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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엄정면 관내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자 목행동성당 엄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8년 교현동성당의 한테레사가 엄정면 미내리에 머물면서 전교를 하고, 집을 사들여 공소로 사용하였다. 1964년 현재의 위치에 공소 건물을 지어 준공하였으며, 이규환 누갈따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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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천주교수안보성당은 1956년 4월부터 교현동성당 관할의 수안보공소로 있다가, 1960년 12월 25일 지현동성당이 설정되면서 지현동성당의 관할 공소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수안보공소가 본당과 약 20㎞ 거리에 있어 신자들이 성사생활에 힘들어하자 1962년 12월 8일 초대 청주교구장 파디 주교가 수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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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교현동성당에서 교역하던 보어 신부가 충주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57년 대지를 사들인 뒤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주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9년 6월 1일 주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덕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길리건이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사제관과 1985년 6월 성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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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전래된 서양의 학문 및 종교. 조선시대 선조 이후 중국을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문물과 한역(漢譯)된 서학서가 전래되었다. 이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조선 학자들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서학이라는 용어는 협의로는 천주교를 가리키기도 하나, 광의로는 서양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경향을 뜻한다. 18세기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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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하늘재는 156년(아달라이사금 3)에 길이 열림으로써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통행로가 되었다. 신라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고구려 온달장군 등의 전설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고려 말기 왜구가 창궐하면서 조운(漕運)이 육운(陸運)으로 바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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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못해. 할 말두 읎구 …” 토산품 공동판매장 할매집을 찾아 갔을 때 처음 보인 반응이다. 머리를 깨끗하게 뒤로 벗어 넘겨서인지 깔끔하면서도 인상이 강하다. 짐작했던 성격대로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자세이다. 허나 조금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참 여리다. 마음이 곱다. 억지로 감추려다 보니 강해 보일 뿐이었다. 최재희 씨는 본래 안동이 본가란다. 자세한 얘기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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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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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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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조선시대 문신인 삼탄 이승소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고 있는 사당으로, 1904년 건립되어 1934년 중건되었다. 이승소는 조선 성종 때의 명신(名臣)이며, 호는 삼탄, 시호는 문간(文簡)이고, 고려의 시중(侍中) 이춘부(李春富)의 현손으로 인품이 진중하였다고 한다. 1447년(세종 29)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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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서 복탄리에 걸쳐 있는 산. 청계산 북쪽에 약수봉[263.8m], 남쪽에 남산재를 넘어 향노봉[339.5m]이 있다. 중생대 쥐라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간 흑운모화강암이 분포한다. 화강암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암괴들이 드문드문 노출되어 있지만 대체로 산지는 토양이 고루 덮여 있고 소나무보다는 낙엽수가 무성한 식생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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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서 복탄리에 걸쳐 있는 산. 청계산 북쪽에 약수봉[263.8m], 남쪽에 남산재를 넘어 향노봉[339.5m]이 있다. 중생대 쥐라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간 흑운모화강암이 분포한다. 화강암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암괴들이 드문드문 노출되어 있지만 대체로 산지는 토양이 고루 덮여 있고 소나무보다는 낙엽수가 무성한 식생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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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유항이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청금정의 정경을 노래한 한시. 유항은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쉬어간 네 개의 정자 중 하나인 중앙탑면 누암리 청금정을 소재로 한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사휴정(四休亭)은 청금정 외에 금가면의 옥강정, 금가면 하담리 하소와 엄정면 목계리에 있던 정자를 함께 지칭하는 것이다. 대(臺)·고(古)·오(午)로 압운한 평기식 칠언절구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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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선정을 베푼 지방 수령이나 관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본래의 의미는 지방의 수령이나 관리가 백성을 아끼고 지역 발전에 공이 지대하였을 때 이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공적과 인품을 새겨 기린 비석을 선정비(善政碑)라 한다. 선정은 정치를 잘했다는 것으로 불망비(不忘碑), 애민비(愛民碑), 청덕비(淸德碑), 청백비(淸白碑), 송덕비(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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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이효승은 전주이씨 경명군파 12대손으로 1928년 엄정초등학교를 10회로 졸업하였고, 충주교현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엄정면장을 역임하였고, 1952년에 초대 충청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도정에 참여하였다. 1958년 최초의 직선제로 엄정면장에 당선되는 등 4회에 걸쳐 13년간을 엄정면장으로 봉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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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서 복탄리에 걸쳐 있는 산. 청계산 북쪽에 약수봉[263.8m], 남쪽에 남산재를 넘어 향노봉[339.5m]이 있다. 중생대 쥐라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간 흑운모화강암이 분포한다. 화강암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암괴들이 드문드문 노출되어 있지만 대체로 산지는 토양이 고루 덮여 있고 소나무보다는 낙엽수가 무성한 식생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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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룡마을의 중간이 되므로, 가운데 청룡 또는 중청룡(中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청동(下靑洞)을 병합하여 중청동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여지도서』충원현조에 의하면 성태양면 청룡동리(靑龍洞里)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5리 거리에 위치하였으며, 가구수는 122호에 남자가 3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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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이만영이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있던 청룡사에 들른 뒤 감회를 적은 한시. 유(幽)·유(流)의 압운을 사용한 측기식 오언절구로 이루어져 있다. 행도청룡사(行到靑龍寺) : 걸어서 청룡사에 이르니 사한승역유(寺閑僧亦幽) : 절은 한가롭고 스님 역시 조요롭구나 여하종부보(如何鍾不報) : 어찌하여 종소리마저 들리지 않는가 혹공세간류(或恐世間流) : 아마도 속인 세상일까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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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시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교 서적. 고려 후기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서는 청룡사 현재 『선림보훈(禪林寶訓)』·『금강반야경 소론찬요조현록(金剛般若經 疏論纂要助顯錄)』·『호법론(護法論)』·『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등이 전해진다. 이 책들이 간행되기까지는 권말에 붙어 있는 발문(跋文)과 간행 기록을 통해 혼수보각국사(환암보제대선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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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전기 보각국사 석재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에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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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전기 보각국사 석재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에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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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려시대 승려 보각국사의 탑비.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392년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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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전기 보각국사 석재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에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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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사자를 대석으로 삼은 조선 전기 사각석등.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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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서 조웅 장군의 전투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진왜란 때 조웅은 의병을 일으켜 청계산을 중심으로 왜병과 맞서 싸운다. 수차례 전공을 세운 조웅은 청룡사에서 순국한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1990년 충주공업전문대학 『청룡사지 지표조사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에 한종구가 채록하고 정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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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청룡사의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관련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현 사지에는 국보 제197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과 보물 제658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그리고 보물 제656호인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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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사자를 대석으로 삼은 조선 전기 사각석등.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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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양식의 석조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이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관련 사료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인 17~18세기까지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석종형 부도는 조선 후기 건립된 것으로, 청룡사가 적어도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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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양식의 석조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이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관련 사료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인 17~18세기까지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석종형 부도는 조선 후기 건립된 것으로, 청룡사가 적어도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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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서 청룡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해발 396m의 청계산이 있다. 이 산은 명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산에 청룡사가 있었다. 그런데 청룡사 윗자리에 명당이 있다 하여 그곳에 민씨네가 묏자리를 쓰면서 명당자리에 절이 있으면 좋지 않다고 하여 청룡사에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1981년 중원군에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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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시인이자 교육자. 이상화는 1936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면 금석리에서 아버지 삼당(三堂) 이종연(李鍾淵)과 어머니 김금순(金琴順)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산업을 하는 부친을 따라 충주에 정착하여 충주남산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스승이었던 시인 유촌(柳村) 유재형의 지도로 문학에 뜻을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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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허주자(虛舟子). 김극형(金克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징(金澄), 아버지는 우의정 김구(金構)이며, 어머니는 돈녕도정을 지낸 이몽석(李夢錫)의 딸이다. 아들 역시 영의정을 지낸 김치인(金致仁)으로 3대 정승에 2대 영상을 배출한 명문이다. 1702년(숙종 28)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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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이창희는 경상남도 의령에서 삼성그룹 회장이었던 호암 이병철과 어머니 박두을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일본 가큐슈인대학 화학과, 1959년 와세다 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한 후 1964년 와세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5년 귀국한 후에 삼성그룹에 입사하여 제일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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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행정가이자 정치인. 김영태는 1904년 충청북도 괴산군 상모면 온천리(현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1929년 일본의 일본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상모면장을 시작으로 지역 행정에 참여하여 1936년 괴산면장에 부임하였으며, 1944년 다시 상모면장으로 재직하면서 선정을 베풀고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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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청자대접. 충주시 호암동 유적은 충주의 사직단이 있던 사직산의 남쪽 구릉 지대로, 호암지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한다. 이곳에 충주시가 택견 전수관 및 우륵당, 청소년 수련원 등 문화 시설을 건설하기로 계획함에 따라 충주박물관 팀이 긴급 구제 발굴 조사를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곳이다. 청자양각초문대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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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탁잔. 충주시 단월동에 거주하는 임순조가 충주박물관에 기증한 유물로, 단월동 싸리고개에 위치한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이 청자탁잔 기증이 계기가 되어 단월동 고려묘에 대한 두 번에 걸친 발굴, 조사가 충주박물관 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많은 고려시대의 석곽묘와 토광묘가 발굴, 조사되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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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대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1946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용포리 85-9번지 문근열(토마스)의 집에서 감곡천주교회 용포공소로 시작하였다. 1961년 미국인 엘리자베스 데 사우엘의 기금으로 경당(작은 성당)을 건립하였고, 1966년 7월 1일 신자 수가 증가하면서 본당으로 승격하였으나 1967년 6월 1일 재정상의 이유로 본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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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보호 관찰 기관. 보호관찰소는 1988년 12월 31일 공포된 법률 제4095호 「보호관찰법」의 시행령에 근거해 1989년 7월 1일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공공 기관으로, 2008년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16개의 보호관찰소와 28개의 지소가 설치되어 있다. 집행 유예자나 가석방자 또는 소년범을 지도·원호를 함으로써 재범을 예방하고 자유로운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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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2동에 있는 청주지방검찰청 지청. 충청북도 충주시와 음성군의 검찰 사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95년 5월 10일 충주시 성내동 청영헌(淸寧軒)을 청사로 하여 충주재판소가 출범하였다. 1896년 8월 15일 충청북도 재판소로 개칭되었으며 1909년 공주재판소 충주구재판소 검사국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12년에는 공주지방법원 충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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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2동에 있는 청주지방법원 지원. 1895년 5월 10일 충주시 성내동 청영헌(淸寧軒)을 청사로 하여 충주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896년 8월 15일 충청북도 재판소로 개칭되었다. 1909년 공주재판소 충주구재판소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1947년 1월 1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으로 다시 이름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민사 소송 사건, 형사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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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금곡리에 있는 청풍김씨 집성촌. 금곡리(金谷里)는 충주시 이류면의 12개 법정동(리) 중 하나이다. 본래 충주군 이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안면은 이류면[현 대소원면]이 되었고 상금곡과 하금곡이 합쳐져 금곡리로 명명되었다. 금곡이라는 명칭은 쇠가 많이 나는 데서 유래했다. 청풍김씨 금곡리 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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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청풍김씨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비. 1936년 병자 수해 때, 효성이 지극한 청풍김씨가 급류에 휘말려 사망함에 따라 원혼을 풀어주기 위하여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충주 미륵대원지 주차장 안쪽 자연 암석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미륵세계사 입구에 있다가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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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청풍부사 명부. 『청풍부선생안』은 1439년(세종 21) 7월 21일 부임한 황경돈(黃敬敦)으로부터 1910년(순종 4) 한일합방 후 관직을 버리고 귀향한 이기년(李耆秊)까지 청풍부사 227명의 명단을 수록한 책이다. 또한 도임(到任) 일시, 퇴임(退任) 일시, 교체사유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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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대장군 정의(鄭顗)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정해(鄭瑎)이며 아들은 정오(鄭䫨)와 정포(鄭誧)이다. 정책은 충주목사를 역임했으며 음보(蔭補)로 여러 차례 천거되어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충숙왕이 참소를 받아 원(元)에 억류되어 있을 때, 궁궐도감사(宮闕都監使)가 되어 충숙왕의 내탕(內帑)이 이미 탕진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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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에 관련된 제반 활동. 우리나라 체육은 갑오경장 이전과 이후의 근대와 현대로 나눌 수 있다. 갑오경장 이전 사회는 농경 사회였다. 농경 사회에서 천신·태양·산신 등 자연을 숭배하는 신앙은 하나의 생활양식이었다. 고대의 경우, 5월에 파종이 끝나거나 10월에 추수가 끝나면 부족민들은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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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체육 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그 부대 시설. 충주시 체육 시설은 크게 공공 체육 시설·학교 체육 시설·사설 체육 시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공 체육 시설은 충주시 소재 공공 기관이 직접 관리하는 공공 체육 시설·체육 공원·동네 체육 시설·기타 생활 체육 시설로 구분할 수 있고, 학교 체육 시설은 실내 체육 시설과 실외 체육 시설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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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유회(幼晦), 호는 초당(草堂). 고조할아버지는 권주(權霔), 증조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 할아버지는 권격(權格)이다. 아버지 문순공 권상하(權尙夏)와 어머니 이중휘(李重輝)의 딸 전주이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현감 김진수(金震粹)의 딸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다. 군수를 지낸 권양성(權養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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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초등 보통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 기관. 충주 지역에는 충주시 동 단위 초등학교 17개 교, 면·리 단위 초등학교 21개 교, 벽지 오지 단위의 분교장 3개 교가 있다. 1896년 9월 17일 충청북도관찰부 충주공립소학교(현 충주교현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08년 11월 4일 사립 명신학교(현 엄정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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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과 경상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울과 동래(부산)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령은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이 있으며, 이들 관문과 성벽은 1708년(숙종 34)에 축조되었다. 이 중 제3관문을 지나면 경상북도이다. 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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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성(子省), 호는 남악(南岳)·추담(秋潭). 고려 때의 제학(提學) 최원유(崔原儒)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최사공(崔士恭)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최분(崔汾)이다. 최개국은 이약빙(李若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를 거쳐 15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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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은 이복영 전 주덕농협 조합장의 차남으로 태어나 군색함이 없이 성장하였다. 충주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필한 후 뜻한 바 있어 다른 젊은이들처럼 사회에 진출하지 않고 고향에 정착하였다. 그는 마음속에 농업에 종사하면서 고향마을을 전국 제일가는 농촌마을로 일구어 보겠다는 푸른 꿈을 굳게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1988년 영농후계자로 선정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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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문신 최렴의 신도비. 최렴(崔濂)은 본관이 충주이며 시호는 양정(良貞)이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1389년(공양왕 1) 판밀직부사 재직 중에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곧 방환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창하자 검교 의정부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곧 안변에 적거하다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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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주최씨 종중에서 세운 제단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최렴을 추모를 위하여 세운 제단이다. 제단을 세울 때 함께 비석을 세워 조상을 기리는 뜻을 새겼으로, 신도비도 세웠다. 충주시에서 제천 방향으로 국도 19호선을 타고 가다 금릉동을 지나 목행동으로 들어설 때 목행초등학교 쪽으로 들어서면 충주최씨 추원 기적비와 최렴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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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강화(江華). 증조할아버지는 최세창(崔世昌), 할아버지는 최복해(崔福海), 아버지는 최연년(崔延年)이다. 처는 유계손(柳季孫)의 딸이고, 형제로는 형 최순(崔淳)이 있다. 최린(崔潾)은 1478년(성종 9)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예문관봉교, 주서, 사간원헌납을 거쳐 1503년(연산군 9) 충주목사로 부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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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이자 정치인. 본관 충주(忠州). 총제공파 강북파(摠制公派 江北派) 23대손으로 아버지는 최동민(崔東敏)이고,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최개국(崔盖國)의 후손이다. 최성환은 1951년 정치에 입문하여 1952년 4월 25일에 자유당 소속으로 초대 동량면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1958년 대미초등학교 기성회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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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미(子美). 증조부는 최렬(崔洌), 조부는 최옥(崔沃), 아버지는 최중청(崔仲淸)이다. 처부는 이은(李誾)이다. 태조 1년(1392)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였다. 태조(太祖) 5년(1396)에는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 동도총제(同都摠制)·사간원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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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충주최씨 시조. 본관은 충주(忠州). 초명은 최우(崔偶). 충주최씨의 시조이다. 최승(崔陞)은 당나라 출신이다. 846년 당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도적이 들끓자 병마사에 임명되어 도적을 토벌하였다. 이후 당나라에서 검교태부, 시중청주자사, 평노군절도관찰사, 압신라발해양번등사를 역임했고, 태자소사박능군개국후에 봉해져 식읍 천호(千戶)를 받았다. 889년(진성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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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충주최씨 6세손으로 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최원유, 어머니는 우왕의 장인 철성부원군 이림(李琳)의 딸이다. 최염(崔濂)은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1389년(공양왕 1) 판밀직부사 재직 중에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이림과의 관계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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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충주최씨 시조. 본관은 충주(忠州). 초명은 최우(崔偶). 충주최씨의 시조이다. 최승(崔陞)은 당나라 출신이다. 846년 당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도적이 들끓자 병마사에 임명되어 도적을 토벌하였다. 이후 당나라에서 검교태부, 시중청주자사, 평노군절도관찰사, 압신라발해양번등사를 역임했고, 태자소사박능군개국후에 봉해져 식읍 천호(千戶)를 받았다. 889년(진성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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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용대리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문하시랑 최옥의 아들이다. 최우청은 고려 후기 무신 집권기에 활약한 충주 출신 인사로 몇 안 되는 문신 출신 재상의 하나이다. 충주의 주리(州吏)로 있다가 인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진례현위가 되었다. 명종의 잠저(潛邸) 당시 익양부(翼陽府) 전첨(典籤)이 되어 명종을 신임을 얻게 되었으며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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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호군(護軍) 최녹원(崔祿元)의 아들이다. 세종조에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정벌한 공으로 세조 묘정에 배향된 최윤덕(崔潤德)이 아들이며, 그 외에도 세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의 전공으로 공민왕 때 충용위산원(忠勇衛散員)에 기용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공총랑(典工摠郞)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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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 최운혁은 충주고등학교와 청주대학교 상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 충청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예결위원장을 지냈으며, 문화재보호협회 중원군지부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제1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충주문화원장, 충주민간단체협의회장, 남한강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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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현. 자제 중 첫째 아들 최염은 검교정승·판밀직부사를 지냈고, 셋째 아들 최순은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직제학·대사간을 역임했다. 1374년(공민왕 2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최영(崔瑩)을 비난하다 연안부사로 좌천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우상시를 거쳐 정몽주(鄭夢周)와 유림의 추천으로 보문각직제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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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직재(直哉). 고려 태조를 도운 공신 최준옹(崔俊邕)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문하시랑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中書門下平章事) 최석(崔奭)이다. 최유청은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스스로 유자(儒者)는 고학(古學)을 배운 후에 벼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문을 닫고 책 읽기에 열중하며 벼슬을 사양했다. 뒤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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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인보(仁甫), 호는 함월(涵月).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이고 형제로 형 최응건(崔應健)이 있다. 1655년(효종 6) 충주에서 태어난 최응성(崔應聖)은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집 앞에 정자를 세웠는데 권상하가 정자의 운치를 칭찬하면서 함월정(涵月亭)이라고 명명했다. 스승이 지어 준 정자의 이름으로 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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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충주 영모사 경내에 있는 최주환의 공적을 기린 기념비. 학사(鶴史) 최주환(崔周煥)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단편적으로 보이는 기록에 의하여 짐작할 수밖에 없다. 1907년 4월 애국계몽단체인 서우학회지에 신입 회원으로 가입을 한 기록이 보인다. 1908년 일본 도쿄에서 조직한 『대한학회 월보』 제3호에는 최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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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증조부는 청산현감 최말(崔末), 조부는 최효경(崔孝卿), 아버지는 성균진사 최사준(崔士俊), 어머니는 여흥민씨 민촉(閔矗)의 딸이다. 최진방(崔鎭邦)의 아우이다. 1567년에 증광(增廣) 별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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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청산현감(靑山縣監) 최말(崔末)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최효경(崔孝卿)이다. 아버지는 성균진사 최사준(崔士俊)이며, 어머니는 민촉(閔矗)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최진방은 충주의 읍리(邑吏)로 있다가 1560년(명종 1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벼슬이 군수(郡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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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생인 함월 최응성이 거처하던 전통가옥. 충주시에서 남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 단월을 거쳐 가면 살미면에 이르며, 중앙경찰학교 가기 전 단양과 수안보 방면의 3거리를 지나면 바로 왼쪽 편에 위치해 있음 원래는 충청북도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선 안쪽에 있어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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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생인 함월 최응성이 거처하던 전통가옥. 충주시에서 남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 단월을 거쳐 가면 살미면에 이르며, 중앙경찰학교 가기 전 단양과 수안보 방면의 3거리를 지나면 바로 왼쪽 편에 위치해 있음 원래는 충청북도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선 안쪽에 있어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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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가만(可晩), 호는 오가당(五可堂). 1599년(선조 32) 충주에서 태어난 최환(崔煥)은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급제했다. 송시열(宋時烈)과 도의로서 교유했으며, 노직(老職)으로 1676년(숙종 2) 77세에 산림지사(山林知事)에 임명되었다. 1699년(숙종 25) 동지중추부사로 임명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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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성(子省), 호는 남악(南岳)·추담(秋潭). 고려 때의 제학(提學) 최원유(崔原儒)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최사공(崔士恭)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최분(崔汾)이다. 최개국은 이약빙(李若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를 거쳐 15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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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의 하나. 농경사회에서 유래된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 충주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추절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중추절은 가을을 초추(初秋, 7월), 중추(中秋, 8월), 종추(終秋)로 불린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가장 크게 한가운데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추석은 한 해의 농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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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하느님처럼 부활한 예수님을 본받고자 성령을 찬미하는 예배를 드리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5년 4월 20일 교회를 창립하였다. 1973년 1월 최종락 전도사가 부임하였으며, 1976년 11월 현재의 성전을 건축하였다. 1976년 이상숙 전도사, 1990년 김창길 목사, 1997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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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추동(楸洞)과 탑평리(塔坪里)에서 ‘추(楸)’자와 ‘평(坪)’자를 따 ‘추평(楸坪)’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동·탑평리·명지동(明池洞)·직동(直洞)과 춘문동(春門洞)·옥성리(玉城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추평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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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군. 엄정면소재지에서 괴동리-추평리 방면으로 향하면 추평초등학교에 이른다. 초평초등학교와 삼성마을 뒤쪽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서 4기의 봉분을 확인하였다. 그중 제일 아래 것이 직경 5m의 크기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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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엄정사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엄정면의 지명이 그동안 억정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엄정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살펴보면 충주의 청룡, 김생, 용두, 엄정, 억정, 향림 등의 사전지를 빼앗는 사람을 추핵하지 않은 수령에게 벌을 주는 조처를 취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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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저수지. 충주시 엄정면, 제천시 백운면, 강원도 원성군 귀래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옥녀봉(玉女峯)[600m]과 동쪽의 시루봉[730m] 사이의 남쪽 계곡에서 흘러내린 계곡수가 추평저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엄정면 추평리 추동마을 방향으로 올라가면 예전에 배터마을이 있었는데 저수지 공사로 수몰되어 지명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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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회(季會), 호는 추헌(楸軒).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홍집(洪雲+集)이며,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어머니는 이문량(李文諒)의 딸이다. 홍만우는 1693년(숙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1702년 알성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1710년 사간원정언이 되었고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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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 정류장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목계1리 구회관이 나온다. 여기서 뚝방 길을 따라 더 가면 새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외지인의 별장도 있는데, 조일상 씨의 집이 여기에 있다. 물론 별장 건물은 아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가니 기다리고 계셨다. 목계마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조일상 씨가 부흥당 당고사의 축문을 쓰게 된 연유를 물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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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의례와 행사. 1971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의 창립과 동시에 개최해 온 축제로 전국 5대 축제로 선정되어 제37회째 이어오고 있다. 우륵문화제 때 한국예술단체총연합 충주지부 산하 8개 단체는 분야별로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는 강수백일장, 문인의 밤, 중원백일장, 전국 한시 백일장 등을, 한국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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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사직(司直) 홍수(洪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이며, 아버지는 남원부사 홍탁(洪雨+濯), 어머니는 조안국(趙安國)의 딸 평양조씨(平壤趙氏)이다. 홍주진은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어 1680년(숙종 6) 문의현령이 되었다. 169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91년 사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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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 허련은 배재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일본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과 졸업하였다. 1958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서 청소년교육지도 연구 및 I.C.A. 기술협조계획과정을 수료했다. 1934년부터 1943년까지 충청북도 내무국 산업과에서 도기수로 근무하였으며, 1945년 제천공립농업학교 교장을 지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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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당부(戇夫). 아버지는 동몽교관 이희선(李喜善)이며 어머니는 정환(丁煥)의 딸 창원정씨(昌原丁氏)이며, 형은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이다. 이상급은 1603년(선조 36)에 진사가 되고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저작·박사 등을 거쳐, 형조좌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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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급의 신도비. 이상급(李尙伋)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당부(戇夫)이며,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조 때 안찰사가 부임하자 풍기군수였던 이상급은 속관(屬官)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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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유홍(兪泓)이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한 유대일(兪大逸)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인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4)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5년에 승문원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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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충경공 유백증을 그린 초상화. 「유백증 초상」은 유백증(兪佰曾)[1587~1646]이 정사공신 3등으로 인정되었을 때 그린 공신도상이다. 제작 시기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충경공 유백증 정사공신 녹권’이 1625년(인조 3)에 공신도감에서 발급된 것으로 보아 공신으로 책록된 즈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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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기계유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1625년(인조 3) 유백증에게 발급된 공신녹권.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1621년(광해군 13) 병조좌랑이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 3등에 올라 기평군(杞平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강직하여 여러 차례 직언을 하다가 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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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에 있는 조선 중기 사당. 조선 왕조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더욱이 가문 의식의 형성으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려는 노력도 늘어나 사당이 수없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충주에서 장호원 방향 520번 지방 도로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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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렬사는 조선 시대에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우거나 절의(節義)를 지켜 순절한 호국의 인물들을 기리고 그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국도 3호선을 타고 충주 방향으로 가다가 달천강 다리를 건너면 철도길을 피하기 위한 고가도가 나오며 여기에 사거리가 있다. 우회전하여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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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증조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내고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이오(李塢)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생원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월성부원군 이난(李鸞)이고,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우담령(禹聃齡)의 딸 단양우씨이다. 아들은 효종 때 우의정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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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더욱이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많은 사당이 세워졌다. 1979년 충무공 이수일 장군을 제향하여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충주에서 제천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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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군 이수일 묘. 이수일(李守一)[1554~1632]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을 물리치고, 이어 경상수사로 옮겨 분전하였다. 후에 경상우병사에 이르러 1605년 선무공신의 호를 받고, 이괄의 난에 난군을 무찌르고 진무공신의 호를 받았다. 계림군, 부원군으로 가봉,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무(忠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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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의 신도비. 충무공(忠武公) 이수일은 조선 중기 북벌론의 대표격인 이완 대장의 아버지이다. 충주 서촌의 시곡(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서 태어나 30세에 무과에 합격한 후 선전관, 현감을 거치다가 임진왜란을 맞이하였다. 이때 이수일은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무찔렀으며, 40세에 밀양부사가 되었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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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으로, 부사 김이중(金履中)의 아들이고, 순조(純祖)의 장인이다.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8년 규장각대교로 있을 때 시·벽파(時·僻派)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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