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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122
한자 文學
영어의미역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연규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문학인과 문학단체.

[개설]

충주 문학의 역사는 길다. 신라의 외교 문서를 명문으로 썼다는 문장가 강수(强首)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충주에서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들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여기서는 1910년 이후 충주 출신 또는 충주 인근의 출생으로 활동한 문인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문학인]

1. 유재형(柳在衡)

호는 유촌(柳村)이다. 문학 평론가 유종호의 부친으로 1907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서 태어났으나 1946년부터 충주중학교 등에서 교직 생활을 하였다. 1928년 『조선시단』에 황석우·김억 등과 함께 「새벽에 올린 기도」·「낙엽」을 발표하여 중앙 문단에 등단하였다. 1954년에 첫 시집 『대추나무 꽃피는 마을』, 1957년에 제2시집 『종소리와 나무』를 출간하였다.

2. 이흡(李洽)

1908년 3월 19일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신의실에서 출생하였다. 요원초등학교를 거쳐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였으나 중도에 귀국하였다. 1931년 『신생』에 수필 「창파서한」을 발표하였다. 1933년 이무영·정호승·지봉문 등과 『조선문학』 창간에 참여하였다. 1945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직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6·25전쟁 중 전주교도소에서 처형되었다 한다.

3. 정호승(鄭昊昇)

본명은 정영택이다. 충주시 교현동 42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충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조선문학사를 차려 운영했으며 1939년 24세 때 시집 『모밀꽃』을 출간하였다. 좌익 활동으로 옥고를 치룬 후 김구를 따라 북행(北行)하였고 이후 2차에 걸쳐 복역했다. 1950년 충주지역 예술동맹위원장을 역임하였고, 6·25전쟁 중에 월북하였다.

4. 권태응(權泰應)

1918년 충주시 칠금동에서 출생하였다. 충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제일고등 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항일 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에 체포되어 중퇴하였다. 1938년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루고 출감하였다. 출감 후 건강 악화로 요양 생활을 했으며, 1948년 동요집 『감자꽃』이 글벗에서 출간되었다. 1951년 건강 악화로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1968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감자꽃노래비가 건립되었다.

5. 이무형(李無形)

1908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오리골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세이죠중학교에 유학하여 일본 작가 가토오 다케오에게 작가 수업을 받았다. 1926년 처녀 장편 『의지 없는 영혼』을 간행하였고, 동아일보사에서 최초로 공모한 희곡 분야에서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이 당선되었다. 대령으로 예편하였고, 1956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단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1960년 4월 21일 뇌일혈로 급서하였다.

6. 박재륜(朴載崙)

1910년 충주시 금면 가흥리 21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람 이병기로부터 문학의 감화를 받았다 한다. 1929년 「오월」·「월광곡」·「강촌연서」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꽁트 『기폭』이 당선되었다. 『신여성』에 「외로운 전망」, 『조선지광』에 「풍경 점점점」등을 발표하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이론을 배경으로 활동하였다. 한때 전매청에 취직하여 함경도에서 생활하면서 「북관시정」을 남겼다.

1934년 조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낙향하여 영농 및 면회계원으로 생활하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61년 민선 중원교육구 교육감에 당선되었고 이후 교장을 역임하였다. 남한강문학회를 결성하였고 초대 충주문인협회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1968년 제10회 충청북도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1년 5월 14일 작고하였다. 대표 시집으로 『궤짝속의 왕자』·『메마른 언어』·『전사통신』·『인생의 곁을 지나면서』·『흰수염 갈대풀』·『천상에 서서』·『雪嶺 높은 마루』등이 있다. 충주체육관 광장에 남한강 시비가, 고향인 가흥리에 강촌 시비가 건립되었다.

7. 김기태(金夔泰)

제천군에서 출생하였으나 충주에서 거주하며 남한강 문학 동인인 신경림·양채영·이명동·강우진 등과 활동하였다. 『하늘과 땅의 교환』을 출간하였다. 1977년 삼원초등학교 인근에서 객사한 불운의 시인이다.

8. 이상화(李相和)

음성군 금왕읍 출신이지만 충주로 이사 와서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경희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자아고발」·「석인상」으로 박두진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제1시집 『늪의 우화』, 제2시집『여름 산』, 제3시집『석인상』을 펴냈다. 1983년 작고하였고 선산인 주덕면 삼청리 능말에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9. 지봉문(池奉文)

지봉문의 생애와 작품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1933년 이무영이 발행한 『조선문단』의 3대 발행인으로 1939년까지 일했다. 소설로 『난론』·『북극의 여인』·『목숨』·『한탁』등이 있다.

1O. 현재 활동 중인 충주 관련 문인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생한 시인 신경림은 『농무』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이 있고 만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평론가 유종호, 추리 소설가 정건섭, 소설가 이만교 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단양에서 태어났으나 평생 충주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강준희, 시조 시인 이계상, 시인 안병찬, 시인 양채영, 역사학자 김현길, 동화 작가 박상규와 이영두, 수필가 김애자 등 충주에서 활동하는 문인은 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문학단체]

현재 충주의 문학을 이끌고 있는 단체는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이다. 1971년 9월 8일 인가받아 출발한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는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외 충주에서 활동하는 문학단체로는 중원문학·문향회·사람과 시·충주작가·심향회·탄금문학·건국문우회·남한강문학회 등이 있다. 최근에 충주시립도서관 내에 충주문학관이 개관하여 충주 문학의 변천사와 활동 사항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충주 일원에는 충주에서 활동하다 작고한 문인 및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의 시비와 노래비가 다수 건립되어 그들의 문학 세계와 업적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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