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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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가운데 하나로 큰 돌을 이용하여 돌상자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그 위에 큰 돌을 덮어 놓은 형태를 말한다. 고인돌이란 명칭은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고임돌)에서 유래되었다. 고인돌을 가리키는 말은 각 나라별로 다양하다.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大石蓋墓)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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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신의실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충주 신청리 고인돌은 마을에서는 거북바위로 불린다. 마을에는 2기의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여성을 상징하는 거북바위는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의 제방 공사 때 파괴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남성을 상징하는 거북바위라고 한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은 신의실마을 입구 밭 가운데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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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탑평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의 하나로 구조는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의 3종류로 나뉜다. 탁자식은 북방식이라고도 하며, 무덤방이 지상에 있는 구조로 비교적 한반도의 북쪽 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바둑판식은 남방식 고인돌의 일종으로 무덤방이 반지하식이며, 남쪽 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구덩식은 뚜껑식이라고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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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어귀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충주시 탄금대 입구 앞쪽에 MBC에서 운영하는 탄금스포츠센터가 있다. 이곳은 주로 골프 연습장으로 이용된다. 칠금동 고인돌은 탄금스포츠센터 바깥의 북쪽 밭 가운데에 2기가 위치한다. 고인돌의 뒤에는 송신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민가가 이곳 가까이까지 확장되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탄금대 앞쪽은 충주천...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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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무덤. 충주는 중원문화권의 중심지로 삼국시대에 백제·고구려·신라에 의해 차례로 영유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원경(中原京)이 설치되었다. 충주에 분포하는 고분은 고대 충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금릉동·용관동 백제 고분군과 대소원면 두정리의 고구려 석실분은 신라가 충주로 진출하기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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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내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고분군.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가 더욱 발전하여 왕과 귀족뿐만 아니라 하층의 민중에게도 전파됨에 따라 전통적인 고분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미 중국의 당(唐)나라에 내려진 박장령(薄葬令)의 영향으로 무덤의 부장품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었으며, 불교식 장례법인 화장이 유행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화장이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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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대 고분. 수안보면 미륵리는 해발 380m 내외의 고지대이다. 미륵리 고분은 지방도 597호선에 인접해 있으며, 맞은편에는 폐교된 수안보초등학교 석문분교가 있다. 미륵리 고분은 말무덤으로 불리는 고분으로 오랫동안 온달장군의 말무덤이라고 구전되어 왔으나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현재 고분은 밑지름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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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소태면 복탄리는 북류하는 남한강의 동안에 있다. 복탄리 고분은 복탄리에서 덕은리로 가는 길가에 인접한 민가 앞에 위치한다. 복탄리 고분은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아 고분의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고, 유물 또한 수습되지 않았다. 현재 고분은 정상부 남쪽 부분이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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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 원신중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충주는 고대에 삼국이 모두 지배한 고장이다. 백제는 충주를 처음으로 지배했으며,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때 최대 판도를 이루었다. 고구려는 이미 400년 광개토왕이 신라 내물왕을 원조할 때 충주에 들어와 실제로 군대를 주둔시켜 지배했다는 설과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따라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할 때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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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원터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신효리 원터마을 주변에서 고분이 확인되어 조사된 곳은 중부내륙고속국도 북충주IC에 한국도로공사 충주지사 건설부지 내에서 확인된 수룡리 유적이 있다. 이 수룡리 유적에서는 삼국시대 돌방무덤 4기를 비롯하여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2기, 고려시대 이후의 움무덤 40기, 회곽묘 6기 등 다수의 유구가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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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 말무덤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영평리 고분은 요도천과 지류인 화곡천이 합류되는 지점의 북안으로 해발 161m의 개바위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끝자락의 독립 구릉에 위치한다. 말무덤마을 서쪽에 해당한다. 영평리 고분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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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충주는 일찍이 백제의 영역에 속하였다. 그후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짧게는 장수왕 대[475] 이후부터 진흥왕이 북진할 때[550]까지 60~70여 년, 길게는 광개토왕이 신라를 원조할 때(400) 부터 150년간 고구려의 영향 하에 있었다. 6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신라의 영향 하에 놓였다. 충주시에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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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 아파트 신축부지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고묘 유적. 충주 용산동 유적은 용산동 남동쪽의 금봉산(남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125~150m 내외의 완만한 구릉과 작은 골짜기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발달해 있는 곳이다. 주변에 충주산성(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 직동, 요갓골, 호암동, 단월동 고분군 등 크고 작은 고분군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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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생활·분묘 유적.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갈동마을 끝부분인 소죽골의 뒤쪽 구릉 정상부에 있는 이윤성 묘에서 서남쪽으로 50m 지점 동남쪽으로 돌출된 능선에 위치한다.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지표 조사 때 확인된 유적(갈동 고분군)이다. 돌덧널무덤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할석들과 뚜껑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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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소원면에서 중앙탑면 방면 599번 지방도를 따라 법현마을을 지나면 음달말에 이른다. 이 마을의 북서쪽 해발 116.5m 지점의 남서쪽 사면에 해당한다.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예정 구간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지표 조사 당시에는 둘레 약 6m 정도의 봉분을 가진 돌덧널무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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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두정리 두담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충주에서 달천을 경유하여 수주팔봉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면 용추골에서 두담(파소)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1.5㎞ 정도 들어가면 보호수가 나타난다. 두정리 고분군은 보호수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다. 고구려계 돌방무덤이 발견된 B지구는 두담마을 북쪽의 산자락이 끝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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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장천리 고분군은 남한강에 의해 형성된 장자늪 서쪽, 장미산성 북동쪽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장미산성 북동 산록으로부터 옛 가금중학교 자리까지 이어져 있다. 장천리 고분군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을 뿐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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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고분군.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소일부락 서쪽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충주시의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약 5㎞ 떨어져 있으며, 탄금대를 지나 한강 서쪽 강변으로 이어지는 구릉지대가 해발 100m~130m의 봉우리를 이루고 작은 능선들이 있는 곳이 전체 범위가 된다. 이 구릉지대는 북쪽으로 능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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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탑평리 고분군은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중앙탑초등학교와 탑평리7층석탑 사이에 있는 탑평들에 위치한다. 충적대지의 끝에 강을 면하여 3기의 봉분이 2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남한강 서안의 낮은 평야지대로 해발 높이는 70m 내외이다. 탑평리 고분군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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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황새머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탑평리 황새머리 고분군은 남한강과 그 지류인 하구암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낮은 독립 구릉인 해발 92m의 황새머리에 위치한다. 주변에 탑평리 고분군이 있으며, 하구암천 건너편에는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충주에서 앙성으로 가는 지방도 520호선을 확장하는 공사 중에 발견되었으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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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중앙탑면 소재지에서 충주 고구려비를 지나면 하구암리로 들어서면 좌우의 산자락과 능선에 하구암리 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하구암리 고분군은 일찍부터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근까지도 도굴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1992년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 대한 지표 조사에서 하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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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함암리에 있던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무덤 유적. 함암리 유적은 충주시 동량면 함암리에 있었으나, 현재는 충주댐의 담수로 인해 수몰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할 당시에는 제원군 한수면에 해당되었으나, 1987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충주시 동량면으로 편입되었다. 동량면 하천리에서 지동리를 지나 충주호 강변길을 따라가면 함암리가 나온다....
선돌
선돌
선돌
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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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매리에 있던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立石, Menhir]은 고인돌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에 발달한 거석(巨石) 문화의 상징물이다. 고인돌과 짝을 이루어 무덤의 표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 마을 어귀나 중심부에 세워져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거나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것 등 그 역할이 다양하며 숭배의 대상이 된다. 선돌은 보통 남녀 쌍을 이루어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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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 관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立石, Menhir]은 고인돌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에 발달한 거석(巨石) 문화의 상징물이다. 고인돌과 짝을 이루어 무덤의 표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 마을 어귀나 중심부에 세워져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거나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것 등 그 역할이 다양하며 숭배의 대상이 된다. 선돌은 보통 남녀 쌍을 이루어 조성...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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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유구의 존재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유물이 흩어져 발견된 지역. 유물산포지는 지표 조사를 통해 유구의 성격을 명확히 확신할 수 있는 가마터·고분·야철지와 같이 비교적 분명한 유적은 제외하고, 어떤 유구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나 유물이 나오는 곳을 말한다. 즉, 토기·석기·자기 등의 인공 유물과 자연 유물을 포함한 유물이 정형성 없이 흩어져 발견되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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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가주동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유적지. 충주 가주동 유적은 국도 3호선의 풍동~용두 간 대체 우회도로 개설을 위한 토취장 공사부지에서 통일신라시대 석실분이 노출되고, 주변에 지석묘가 노출된 상태로 확인되어 2002년 12월 27일 중앙문화재연구원에 발굴을 의뢰하여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은 뒤 2003년 3월 17일부터 4월 25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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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가흥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으로 나뉜다. 모두 가흥창이 있는 가흥삼거리에서 앙성을 지나 장호원쪽으로 가는 구국도 38호선의 오른쪽인 남한강과 연한 지역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가흥창지가 있다. 유물산포지①은 가흥리 570-2번지로 가흥리 신양식품과 한성수석 사이의 밭 일대이며,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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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와 주덕읍 창전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견학리 유물산포지는 충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국도 3호선을 따라 주덕읍에서 신니면 면소재지쪽으로 약 2㎞ 가면 왼쪽으로 견학리 토성 못미처 북향한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섭산 동사면에 해당된다. 유물산포지는 낮은 구릉지로 견학리성 밑 마을에서 창전리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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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과 구덩 유구. 금릉동 유적은 충주역에서 목행동 방면으로 가다가 나오는 청주세무서 자리에 위치한다. 해발 100m 정도의 구릉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의 북쪽 부분에 분포한다. 낮은 구릉 서쪽으로 칠금동 앞뜰이 넓게 펼쳐져 있다.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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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 금제지구에 있던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유적이 확인된 금제지구은 현재 충주시청이 자리한 금릉동 일대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이 분포하던 곳은 시청 앞쪽으로 형성된 시가지 일대이다. 유적은 전반적으로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었다. 1992년 1월 3일 충서원학회 김기철 간사에 의해 충주시 금릉동 금제 택지 개발지구에서 수습된 사냥돌·찌르개·격지 등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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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에 있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논강리 유물산포지는 엄정면 논강리 동촌마을 앞 동촌들 밭 경작지에 위치한다. 좌우로는 법고개 등의 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충주시의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행하기 위해 충주관내 전 지역을 지표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유물은 경질토기류 17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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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누암리 유물산포지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한강 상류 쪽으로 700~800m 가량 떨어져 있는 강에 면한 지점에 위치한다. 충주에서 중앙탑면 쪽으로 들어오다가 삼거리 못미처 오른쪽 남한강변에 위치한다. 대부분 논으로 경작되던 지역으로 남한강이 범람할 때만 물에 잠기는 충적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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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충주시 앙성면은 남한강을 경계로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경기도 여주군과 3도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그 중심에 단암리가 있다. 특히, 단암리는 남한강과 인접하여 충적대지가 발달한 지역이기 때문에 선사인의 살림터로서 충분한 조건이 갖춰진 곳이다. 단암리에는 유물산포지만 6곳이 보고되어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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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구석기시대의 유물은 홍적세 토양이 있는 곳에서 출토된다. 신석기시대부터는 문화가 충적세 토양을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유물과 유적도 이 토양에서 만들어진다. 단월동 유적은 단월동 상단마을의 뒤쪽 양지 바른 구릉과 계곡 일대에 위치한다. 달천강에서 북쪽으로 400m 떨어져 있다. 현재 과수원과 농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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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소태면 덕은리는 충주시와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이루기도 한다. 귀래 쪽에서 남한강으로 흐르는 귀산천(貴山川)이 도계를 형성한다. 강물이 합류되는 지점은 범람이 적고 주변 땅이 기름져서 선사인이 살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에 선사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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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명돌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 유적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된 명서리 일대에서는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었으나 이와 관련된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 지역은 명서리 유적,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조사된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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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명오리 큰길가에 있던 구석기시대 한데 유적. 명오리 유적은 충주시 동량면 명오리 큰길가에 있었으나, 현재는 충주댐의 담수로 인해 수몰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할 당시에는 제천시 한수면에 해당되었으나, 1987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충주시 동량면으로 편입되었다. 유적은 남한강 강변의 충적대지에 위치해 있었다. 1979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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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금가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금생면과 가차면이 합쳐져 생긴 행정구역이다. 문산리 유물산포지는 과거의 금생면에 해당한다. 금생면 지역에는 김생(金生)이 만년을 보냈다는 김생사지가 있으며, 현재의 목행대교가 생기기 전 나룻배로 남한강을 도강할 때 형성된 반송나루와 북창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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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숭선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자기와 토기산포지. 숭선사는 고려시대에 왕명에 의해 세워진 사찰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다. 주변에는 교통도 발달되어 있었으며, 이와 관련된 여러 시설도 마련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숭리 자기산포지도 숭선사와 관련된 시설이나 유구가 있었던 지역으로 생각된다. 숭선마을은 당간지주가 있는 잔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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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 복탄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남한강은 내륙 수로의 중심지로 이곳에는 많은 나루가 발달하였다. 소태면 복탄리에도 복탄나루가 발달하였다. 남한강을 건너면 앙성면 조천리 조터골이다. 이곳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면 영죽이며, 조대고개를 넘어가면 앙성면 능암마을이다. 충주 사람들은 가흥과 앙성을 지나 복탄나루를 건너면 쉽게 여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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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 창내에 있던 구석기시대 한데 유적. 사기리 창내 유적은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 창내에 있었으나, 현재는 충주댐의 담수로 인해 수몰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할 당시에는 제원군 한수면 사기리에 해당되었으나, 1987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충주시 동량면으로 편입되었다. 수몰되기 전 사기리 창내 유적은 남한강과 제천천이 만나 합류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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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의 복합 유적. 충주나라C.C사업부지 유적은 충주시에서 노은면 수룡리 일대에 조성 중인 충주 나라C.C 조성 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사업 예정지에 매장문화재가 있음이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이 유적이 위치한 곳은 노은면 수룡리 일대에서 중앙탑면 하구암리로 이어지는 최단거리 교통로 지역인데, 바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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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깊은들에 있는 고려시대 토기산포지. 노은면 신효리에서 충주시 중앙탑면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노은 수룡초등학교가 있던 곳이 나타난다. 이 학교부지 뒤쪽으로 구릉을 하나 넘으면 진골저수지가 있다. 신효리 깊은들 토기산포지는 진골저수지의 서쪽으로 5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신효리 깊은들 토기산포지는 충주박물관에 의해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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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원터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신효리 원터마을은 중앙탑면 소재지에서 노은고개를 넘어 음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옛날에 길손이 머물며 쉬어가던 원(院)이 있었던 곳으로 전한다. 유적지는 신효2리 3반에 해당하는 곳이며, 3반은 금부리와 원터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2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으며, 고추·가지·콩 등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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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재앙골에 있는 고려시대 토기와 자기 산포지. 충주시 노은면과 주덕읍을 연결하는 지방도 599호선은 신효리 신대마을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주덕의 덕련리·장록리·제내리를 거쳐 주덕읍 소재지인 신양리까지 연결된다. 신대마을에서 한포천을 건너는 신효교를 지나면 바로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난다. 그 아래로 통과해야 주덕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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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진골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노은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확인된다. 몽고가 고려를 침입할 때 천룡산성에서 몽고병과 싸우다가 힘이 부족하여 항복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노은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보련사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6년(1424) 4월 5일의 기록에, 불교를 교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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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선창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중앙탑면 가흥삼거리에서 엄정면 목계 방면으로 목계교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양촌리로 들어간다. 오른쪽에는 선창마을이 있으며, 맞은 편에는 소태면의 남단에 해당하는 남한강변 충적대지가 있다. 양촌리 유물산포지는 이 충적대지상에 위치한다. 양촌리 유물산포지는 소태면 양촌리 선창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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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뒷골마을과 강촌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남한강은 한강의 2대 지류의 하나로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를 거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전체 길이 375㎞로 우리나라의 중심을 관통하는 강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용되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남한강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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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은 철광산이 발달되어 있어 일찍부터 다인철소지에 철제련술이 발달해 있었다. 대소원면 소재지를 지나 첨단과학단지쪽으로 가는 첫 번째 다리인 대소교를 건너면 본리와 영평으로 가는 길로 나뉜다. 왼쪽의 영평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영평리 두산(말무덤)마을을 지나게 된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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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모산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금가면 오석리 모산마을 앞은 오평들이라 하여 남한강의 범람으로 인해 너른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일찍이 농지 정리 작업을 통해 바둑판처럼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 충주에서 목행대교를 건너 금가면쪽으로 접어들면서 남한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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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오미기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충주에서 목행대교를 건너 금가면쪽으로 접어들면서 남한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김생사지가 있는 유송리를 지나 오석리가 나온다. 남한강쪽으로 첫 번째에 있던 마을이 오미기마을이다. 오석리 토기산포지는 오미기마을에서 하류쪽 아랫말 지역까지 걸쳐 있다. 오석리 토기산포지는 충주댐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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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용교리 용대마을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산포지. 동량면 용교리는 남한강유역의 마을로 충주대교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용교리 용대마을에는 취수장이 위치하며, 그 주변 남한강 하안단구에서는 구석기 유물이 수습되기도 했다. 인근에는 충주 조동리 유적이 발굴 조사되어 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용교리 토기산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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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용교리 운교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동량면 용교리 남한강변에서는 유물산포지 2곳이 조사되었다.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용교리1, 용교리2로 구분되어 있으며, 『충주댐지표조사보고서』에는 용교리A, 용교리B로 구분되어 있다. 용교리1과 용교리A가 같고, 용교리2와 용교리B가 같은 것으로 판단되어 앞의 것을 용교리 용대 토기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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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탄동에 있던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충주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적은 사기리 창내 유적, 명오리 큰길가 유적, 금제지구 유적, 용탄동 유적 등이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이 수습된 곳은 금릉동·호암동·단월동·동량운교·주덕신중리 일대 등이다. 사기리 창내 유적과 명오리 큰길가 유적은 충주댐 수몰 지역에 대한 조사로 발굴되었으나, 나머지는 모두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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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하일마을에 있는 고대 유물산포지. 원곡리는 원당마을·월곡마을·옥성마을이 병합되어 이루어진 행정구역으로 원당과 월곡에서 이름을 땄다. 원곡리의 행정리로는 옥성과 하일이 있다. 옥성은 돌탑으로 유명하며, 하일은 한반도를 닮은 마을자랑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하일마을은 괴동 행정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다가 탑평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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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 월상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충주댐은 본댐과 보조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콘크리트 중력식 다목적댐이며, 제1발전소를 운영하여 많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보조댐은 중앙탑면 장천리와 금가면 월상리를 연결하는 문비언제식(門扉堰堤式)으로 제2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본댐으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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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금가면 일대는 완만한 구릉지대가 많고, 남한강을 바라보는 남사면에 해당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잠병리는 금가면의 북쪽 지역으로 엄정면과 접하고 있는 마을로 장호원·앙성면·산척면·백운면을 잇는 국도 19호선이 지나간다.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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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물류창고 부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일대는 말 그대로 긴 토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지역이고, 인근에 야철 흔적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되었던 지역이다. 이곳은 중부내륙고속국도 충주나들목 부근이라 아성기업에서 물류창고를 만들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2005년에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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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중앙탑면 장천리는 남한강을 경계로 엄정면 목계리와 마주하고 있다. 남한강변에 발달한 늪지와 충적대지를 이용하여 대규모 무 단지를 이루어 단무지용 무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미산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가흥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장천리 형천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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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조터골마을과 비내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남한강에 의해 형성된 늪지와 섬 등은 매우 중요한 환경 자원이다. 특히, 앙성면 조천리에 있는 조대늪이나 비내섬 등은 중앙탑면 장천리의 장자늪이나 뒷섬 등과 더불어 남한강을 유지하는 충주의 귀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곳은 환경적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비옥한 땅을 제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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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에 있던 신석기시대 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동량면 지동리는 제천과 접한 지역으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정토사지는 고려 초에 이미 대가람을 이루어 법경대사나 홍법국사가 주석했으며, 고려 말에는 고려의 외사고가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지동리는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으나, 닥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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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가금면[현 중앙탑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가흥면과 금천면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가흥면의 소재지는 가흥초등학교가 있는 가흥리 일대이며, 금천면의 소재지는 창동리 일대이다. 창동리에는 내륙 수운의 중심인 경원창·덕흥창·금천창이 있었으며, 사액서원인 누암서원이 있었다. 충주에서 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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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건물지와 야철지 유적지. 충주 창동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5년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충주 용두~금가 간 우회도로 건설공사로 인하여 실시되었다. 이곳은 본선이 통과하는 구간이 아닌 본선과 칠금~중앙탑 간 지방도를 연결하는 나들목을 만들며 확인된 유적이다. 충주 창동리 유적은 달천강과 남한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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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대규모 마을 유적. 충주 조동리 유적은 북쪽의 용천산[293.7m] 줄기와 남한강이 연결된 곳에 비교적 넓게 발달한 충적대지상에 위치한다. 이 충적대지는 지세의 흐름이 완만하고, 홍수로 인한 퇴적으로 토양이 비옥하여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지등산[535m], 두갈봉[420m] 등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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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토성 주변과 금대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민무늬 토기산포지. 민무늬 토기가 산포되어 있는 지역은 청동기시대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민무늬 토기는 대개 연질로 석립이 많이 함유된 바탕흙이며, 두께는 1㎝ 내외로 빗살무늬 토기에 비해 두터운 편이다. 탄금대토성은 칠금동 산1번지에 위치하며, 열두대가 위치한 주변으로 토성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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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강으로 인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이 갖춰진 곳으로 짐작된다.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확인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중원 문화권을 대표할 만한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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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분과 요지 유적.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소재한 주식회사 애강에서 충주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사업 시행에 앞서 2006년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16기의 고분이 발견됨에 따라 다른 문화재 잔존 가능성을 고려하여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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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하담리 하시마을에 있는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뗀석기산포지. 지질학적으로 사람이 지구상에 등장한 신생대는 제3기와 제4기로 나뉜다. 인류는 신생대 제3기 말에 등장하여 제4기와 현생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통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제4기인 프라이스토세(홍적세)를 기반으로 생활했으며, 구석기시대 이후의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1만2천년 전인 충적세 토양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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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던 초기 철기시대에서 삼한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 하천리 유적은 동량면 하천리의 창내(제천천) 옆 밭에 위치해 있었으나, 현재는 충주댐의 담수로 인해 수몰되었다. 창내가 S자형으로 감아 돌면서 흘러 하천리·지동리·서운리를 지나 남한강 본류에 합해지는 지점이다. 1983년과 1984년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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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터. 일반적으로 토기나 자기,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고 철을 녹이던 시설을 통칭하여 가마[窯址]라고 한다. 도요지는 그 가운데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에 한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연질 토기는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노천요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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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구룡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소태면 구룡리에서는 백자가마터가 2기 조사되었다. 이 가마터는 1호와 2호가 1㎞ 이상 떨어져 있어 동일한 유구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1호 가마터와 2호 가마터를 구분하여 서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여겨져 여기에서는 1호 가마터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충주에서 원주 방면으로 가다 보면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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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앙성면 모점리 일대는 백자를 굽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져 있다. 백자를 빚는 데 필요한 태토와 함께 풍부한 물과 연료의 공급이 가능한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은 경기도, 강원도와 접경하고 있어 도자기를 빚어 매매할 수 있는 판로가 형성되어 있다. 목계에서 장호원 방면의 국도를 가다 보면 앙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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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능안고개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신니면 문숭리에는 고려시대 광종이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후를 기리기 위해 954년 창건한 숭선사의 터가 남아 있다. 충주 숭선사지는 최근에 발굴 조사되어 국가 사적 제44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니면 신덕리에 위치한 신덕저수지(일명 용원저수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충주 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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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터. 점말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은 수공업을 주로 하던 곳으로 무쇠점·옹기점·가마점 등이 있었던 곳으로 주목된다. 미륵리 점말은 미륵대원이라는 관방과 사찰이 어우러진 지역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농업과 임산가공업, 그릇 제작 판매 등이 주민 살림의 근본을 이루었다. 점말에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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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에 있는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자기산포지. 대소원면 본리 앞에는 요도천이 흐른다. 요도천은 신덕저수지로부터 주덕읍과 대소원면을 지나 탄금대 밑의 합수머리 바로 위쪽에서 달천강과 합쳐진다. 요도천은 일찍부터 충주에서 제일 넓은 들을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농사와 밀접히 관련되었다. 1872년 제작된 충주목지도에는 팔십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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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고려시대의 가마는 자기를 굽는다는 점에서 토기가마와는 격을 달리하며, 구조적인 면에서 훨씬 진보하였다. 이때의 가마는 중국의 자기가마인 용요 계통과 흡사한 세장방형의 대형 가마로 발전하였다. 통일신라시대까지도 토기가마는 길이가 불과 10m 미만이었으나,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소위 해물리굽 청자가마의 경우,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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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사미리 사리골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지방에서 만들어 운영되던 가마터는 대부분 그 기록을 찾기 어렵다. 충주의 경우에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하품(下品)의 자기와 도기가 생산되는 곳으로 기록된 보련동과 월호현을 제외하고는 아직 찾을 수 없다. 보련동은 현재의 지명에는 없으나 노은면의 보련산과 관련지을 수 있어 보련산 일대를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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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가마골에 있는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터 유적.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충주에 자기소가 보련동에 1곳 있고, 도기소가 월호현에 1곳 있는데 모두 하품(下品)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련동은 현재의 지명에는 없으나 노은면의 보련산과 관련지을 수 있다. 노은에서 앙성으로 가는 지방도 599호선을 따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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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윗양촌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앙성면은 충주시에서 가장 북쪽 끝에 위치한 면이며, 이곳에서도 영죽리는 산을 하나 넘어가야 도달하는 오지이다. 영죽리는 남한강변에 접해 있으나 북사면에 위치하여 크게 활용되지 못한 마을로 정국이 어지러울 때 선비들이 은둔을 위해 낙향하여 지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인근에 한학하는 사람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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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대리 하남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생산 유적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던 곳이다. 그릇을 굽던 곳은 토기를 굽던 도기소와 사기를 굽던 자기소로 나뉜다. 철을 제련하던 곳은 철소, 종이를 만들던 곳은 지소, 은을 다루던 곳은 은소, 화폐를 다루던 곳은 주전소 등으로 구분된다. 백자요지는 대표적인 생산 유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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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 사기장골에 있는 조선시대 철화백자가마터. 철화백자는 산화철 안료로 문양을 그린 백자로 철회백자(鐵繪白磁)라고도 한다. 백토로 그릇을 만들어 초벌구이를 한 후 그릇 표면에 산화철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백자 유약을 입혀 번조(燔造)한 것으로 문양의 색조는 다갈색이나 흑갈색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철회·철화·철사(鐵砂)라는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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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마을 이름은 그 마을이 형성된 유래나 형상, 살림살이 등을 잘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원이나 진이 있던 교통로 상의 마을은 광해원·장호원·노량진, 온천이 나던 마을은 온수골, 온정, 서원과 서당이 있던 곳은 서원말, 서당골, 큰 무덤이 있던 곳은 능골, 능말 등의 이름이 붙는다. 조천리 사기점 백자요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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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주치리 은대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소태면 주치리는 은대마을·하남마을·야촌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접도를 이루고 있다. 주치리 은대마을에는 백자가마터가 3기 있다. 1호는 묵봉산에서 은대마을로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있는 사기장골에 위치한다. 3호는 하남초등학교 자리에서 하남천 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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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기와가마터. 살미에서 괴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문강리 문산마을 앞에서 팔봉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면 팔봉마을에 이른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팔봉마을 입구 오른쪽 달천강변 강안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밭을 갈다가 사람이 빠지면서 확인되었다. 1985년 충주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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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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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 벌말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앙성면은 충주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경기도 이천 장호원, 강원도 원주 부론면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충주의 중심지보다도 사회적 정보나 흐름을 빠르게 접했으며, 경제적인 행위도 비교적 능동적이다. 앙성면 일대에는 용포리·지당리·조천리·모점리·사미리·마련리·영죽리·용대리 등 전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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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에 있는 삼국시대 요지 유적. 신효리 뒷골 유적은 노은면 구 수룡초등학교 뒤편 진골저수지에서 무쇠점마을로 넘어가는 첫 번째 고개의 동쪽 사면으로 남쪽의 평풍산[395.6m]에서 뻗어내린 능선상에 위치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구간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충주박물관에 의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경질 토기 조각...
야철지
야철지
야철지
야철지
야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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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신흥동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광맥이 발달하여 양질의 철광이 많은 곳이다. 일찍부터 제철과 관련된 유적과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충주 탄금대에서는 백제시대의 제련로가 확인되었으며, 백제 때 축성된 탄금대 토성에서도 철 교역의 자료인 철정 40매가 출토되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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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랫쇠실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다. 특히, 대소원면은 지금까지 모두 43곳의 야철지가 확인된 곳이며, 고려시대의 다인철소가 위치했던 곳이다. 금곡리는 대소원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쇠와 관련된 지명이나 마을명에서 그 비중이 확인된다. 금곡리에서 야철지는 아랫쇠실과 조랫말 두 곳에서 확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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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대덕1리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쇠부리업이 행해진 증거를 확인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철광석, 철광석을 녹여 생긴 찌꺼기인 쇠똥, 노벽편 등이다. 많은 쇠똥이 흩어져 있는 주변에서 철광석과 노벽편을 확인한다면 쇠부리업이 행해진 명확한 증거가 된다. 여기에 송풍관 조각이나 토기 조각과 자기 조각 등이 확인되면 시대까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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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두정리 파소골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야철지 유적. 이류면[현 대소원면]은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이안면과 유등면이 합쳐지면서 두 면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된 곳이다. 이안면은 이류면의 북쪽이며 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으로 원래 이름은 다인철소(多仁鐵所)였으나, 몽고와의 항쟁에서 승리한 덕에 익안현(翼安縣)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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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 술음재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야철지 유적. 이류면 지역은 고려시대 다인철소가 있던 곳으로 과거에 대규모의 쇠부리업이 행해진 곳이다. 현재까지 조사된 대소원면 지역의 야철지는 43곳에 달한다. 이는 충주에서 확인된 77곳 야철 유적의 55%에 이르는 수치이다. 매현리 술음재 야철지는 대소원면 문주리에서 매현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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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탑말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은 고려시대에 다인철소가 있던 지역으로 40여 곳이 넘는 많은 야철지가 남아 있다. 철 제련은 철광석이 주변에서 생산되어야 하고, 철을 녹일 수 있는 땔감을 쉽게 얻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 여기에 용광로와 강제 송풍을 위한 기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야철지에는 철광석과 백탄 등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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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은 다인철소(多仁鐵所)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구릉성 저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달천강과 요도천을 끼고 있다. 야철지는 주로 평야지대와 중산간 지형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문주리 팔봉 야철지는 산간 지역에 속한다. 충주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3번 도로를 이용하다가 살미면 세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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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쇠부리 만수골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미륵리 만수계곡은 월악산의 서쪽 사면에 형성된 곳으로 송계계곡과 합류한다. 이곳은 충주 미륵대원지에서 충주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어 있는 지점이라 중요하다. 현재 월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만수계곡 일대에 살아 숨쉬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도록 자연탐방로를 조성하였다. 만수계곡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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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수안보면은 주민들의 뜻에 따라 상모면을 개정하여 이루어진 명칭이다. 수안보면에서 가장 유적이 많은 곳은 미륵리이다. 미륵리에는 충주 미륵대원지를 비롯하여 충주 미륵리 요지, 하늘재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미륵리의 점말은 지릅재를 넘어 미륵리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점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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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 서덕천에 있는 조선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지질구조상 옥천 지향사에 해당된다. 이 옥천계의 변성퇴적암은 충주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옥천을 지나 익산 북쪽 약 15㎞까지 띠 모양으로 길게 분포한다. 조선계층은 고생대층으로 수안보 부근을 기점으로 제천, 단양을 지나 강원도의 영월, 산척 등에 분포하며, 회백색 규암·석영편암·석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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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 노계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 본리 노계마을은 대소원면사무소가 있는 소재지에서 대소교를 통해 요도천을 건너 바로 오른쪽으로 난 농로를 똑바로 따라가면 있다. 본리 다인철소지는 노계마을 중심부에 있는 노계마을자랑비 부근에 위치한다. 현재 아무런 야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마을 뒤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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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 장고개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에는 많은 야철지가 확인된다. 충주박물관이 조사한 대소원면의 야철지는 모두 43곳이 보고되어 있다. 이는 대소원면이 고려시대의 다인철소였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해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한 곳의 야철지에서 10명의 장인이 쇠부리업에 종사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대소원면에는 43곳의 야철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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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야철지 유적.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마을은 수안보에서 월악산의 충주 미륵대원지로 들어가는 길의 중간 부분에 해당한다. 대안보마을에서 월악산 충주 미륵대원지로 가려면 최근 마을 숲에 아담하게 지은 미륵사를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대사리를 지나 다시 사문리 석문마을을 지나고 지릅재를 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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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사미리 풀무골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풀무는 용광로나 대장간 등에서 철광석을 녹이거나 연장을 벼리기 위해 온도를 높여 가열할 때 공기를 불어 넣는 중요한 기구이다. 손이나 발로 수직이나 수평 운동을 통해 밀고 당기며 바람을 불어 넣는 장치로 밀 때도 바람이 나가고 당길 때도 바람이 일정하게 송풍되어 지속적으로 가열시키는 도구이다. 우리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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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 원모롱이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일찍부터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였다. 비록 현재는 모든 철광이 폐광되어 운영되고 있지 않으나,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철광산이 대소원면 만정리의 충주 철산, 괴산 불정면 관전리의 어래 철산, 중앙탑면 창동리의 창동 철산, 충주시 연수동의 연수동 철산, 대소원면 금곡리의 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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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겨자실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신효리는 본래 충주군 노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리·외대방동·내대방동·효죽리·원대리와 매탄리의 일부가 병합되어 생긴 마을이다. 신효리란 명칭은 신대리와 효죽리의 첫 글자를 따서 명명되었다. 신효2리는 신효1리와 수룡1리 사이에 있는 지방도 520호선 양옆의 한포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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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43곳의 야철지가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발굴 조사된 곳은 완오리·새터골·새터골못 야철지 등 몇 곳이 있다. 이 유적들은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야철 작업이 이루어졌다. 유적들에 분포되어 있는 쇠똥들은 화학 분석과 미세 조직 등의 성분 분석 결과 고대의 철 제련과 밀접히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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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야철지 유적. 완오리 야철지는 옛 이안면의 소재지에 해당되는 곳에 위치한다. 구 이안초등학교(현 합동공업사) 자리에서 왼쪽으로 100m 가면 오른쪽으로 다시 농로가 나타난다. 완오리 야철지는 이 농로를 따라 200m 올라가면 있는 인삼밭 일대에 위치한다. 해발 100m 미만의 야트막한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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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먼학이골에 있는 고려시대 추정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 장성리에는 먼학이골을 비롯하여 성안들 야철지, 갈거리고개 야철지, 갈가실 야철지, 능골1 야철지, 능골2 야철지, 양장고개 야철지 등 쇠똥이 발견되는 야철 유적 추정지가 많다. 충주에서 주덕 방면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가 효신산업을 지나면 왼쪽으로 성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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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철광산지. 충주는 철광맥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으로 한국지질도 충주도폭에 의하면 옥천계층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시대 미상의 변성 퇴적층 가운데 계명산층에 철광상이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계명산층은 음성·이류·달천·중앙탑·연수쪽으로 이어지는 중심맥과 앙성, 노은쪽과 수안보, 한수쪽도 가지맥에 철광맥이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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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야철지.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는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창동리 일원을 큰 범위로 표시하여 설정하면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는 처음 조사한 야철지의 흔적에 제한하고, 나머지 건물지 등은 충주 창동리 유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충주에서 탄금대교를 건너 중앙탑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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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제철 유적지. 칠금동 제철유적은 개인주택 신축사업에 앞서 대상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가 의뢰되었고, 2006년 5월 29일 시굴조사를 하였다. 이어 2006년 8월 2일부터 9월 2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로(爐) 1기와 구덩이 유구 1기, 구(溝) 1기, 원형수혈 4기, 기둥구멍 2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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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퉁점마을에 있는 시대 미상의 야철지. 중앙탑면 하구암리 퉁점마을은 동쇠를 녹이던 곳 또는 대규모의 부대가 주둔하던 곳으로 전한다. 주둔하던 병력은 충주 고구려비와 연관지어 고구려군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구암리 퉁점마을에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뒷산 일대에 이르기까지 100여 기가 넘는 대규모의 고분이 분포한다. 하구암리 중구와...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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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城郭)은 성과 곽의 합성어다. 성은 본래 주민들의 생업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 흙으로 쌓은 방어 시설을 말하며, 곽은 도시의 발전과 확대 과정에서 생겨난 성(내성)을 둘러싸는 외성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성곽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조선전」과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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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충주 대림산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대림산[487.5m]의 정상부를 포함하는 능선과 계곡부를 가로지르며 축조된 둘레 4,906m의 토석혼축 포곡식 산성으로, 고려 1253년(고종 40) 몽고의 침략에서 최대의 승전을 거둔 충주 남산성 전투의 현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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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성동마을에 있는 고대 산성. 문주리 산성의 건립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경위를 알 수 있는 문헌자료는 없으나, 산성 남쪽에 동류하는 달천과 일대를 감제하기에 매우 양호한 지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전략적 요충을 고려하여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주리 산성은 행정구역상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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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보련산성은 충주시 노은면과 앙성면의 경계인 해발 764m의 보련산 정상부와 남쪽의 해발 664m 봉우리 남쪽을 에워싸는 석축산성으로 험준한 동향의 협곡을 포함하는 전형적인 입보농성용 산성이다. 고려시대 몽고침입기의 천룡산성(天龍山城)에 해당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봉황성(鳳凰城)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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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 상용관마을에 있는 고대 산성. 용관동 산성은 충주 방어를 위한 외곽 방어선 중 하나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이 위치한 용관동 상용관마을은 충주시내에서 서쪽으로 달천 건너편에 위치한다. 이곳은 주덕읍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국도 3호선과 인접하고 있으며, 산은 높지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산성에서는 달천 동안의 넓은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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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에 있는 삼국시대 판축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은 낮은 구릉지역의 끝자락에 축초된 토축성으로 규모가 작은 판축 공법이 적용되었다. 1991년과 2000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되었으며, 이를 통해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특징적인 양상이 확인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문화층과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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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미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삼국시대 산성. 장미산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가흥리·하구암리 일대에 솟아 있는 해발 337.5m의 장미산(薔薇山·長尾山) 정상부와 계곡을 포함하여 축조된 둘레 2,940m의 삼국시대의 대규모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이다. 충주산성은 삼국시대 석성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아직까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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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안림동의 경계인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 산성. 충주 남산성은 해발 636m의 남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계곡 상단을 에워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축 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동악성(桐岳城)’으로 추정된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은 동악성(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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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과 종민동의 경계에 돌로 막아 쌓은 조선시대 영액(嶺阨). 충주영액은 충주로 넘어오는 교통로인 심항현(心項峴)[일명 마즈막재]를 차단하기 위해 석축으로 쌓은 영액이다. 충주영액의 건립과 관련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아직까지 체계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충주 동쪽 방면의 주요 교통로를 막아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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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일대에 있던 조선시대 읍성. 충주읍성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를 치른 뒤 전국의 성첩과 군기를 보수하고 대오와 군저를 확장하고 포수를 배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명을 받고, 1869년(고종 6) 2월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읍성을 개축하여 10개월 만인 11월에 완성하였다. 이때 개축된 성의 둘레가 3950척, 두께 25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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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대문산에 있는 고대 토성. 탄금대 토성은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낮은 구릉에 위치한 고대 토성이다. 탄금대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륵(于勒)이 신라로 망명한 후 이곳 국원(國原)에 안치되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맞서 싸운 전적지이다. 탄금대 토성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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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 축조된 고대 산성. 산성의 축성과 관련한 문헌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 북진 거점과 전초기지로서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훤령 산성이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충주시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관음리의 경계로, 소백산맥의 포암산[961m]과 부봉[925m] 사이의 안부(鞍部)에 형성된 교통로인 하늘재[530m]에...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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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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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대림산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에 걸쳐 있는 봉화뚝 정상부에 남아 있는 봉수대이다. 조선시대 제2거 노선에 소속된 간봉으로 계립령을 넘어와 연풍현의 마골재 봉수 거쳐 온 봉화를 충주 주정산 봉수로부터 받아 마산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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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마골재 봉수는 본래 연풍현 소속으로 남쪽으로는 문경의 탄항 봉수, 북쪽으로는 충주의 충주 주정산 봉수와 응하는데, 봉수대에는 별장 1명과 감관 5명, 봉군 25명, 보 75명이 소속되었다. 마골재 봉수는 계립령을 넘어 충주 연풍의 주정산을 연결하는 조선시대 제2거의 간봉이다. 직접적인 건립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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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마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원리의 봉화산 정상부에 남아 있는 봉수대이다. 조선시대 제2거 노선에 소속된 봉수로, 각각 죽령과 계립령을 넘은 2개의 봉수로가 최초로 합쳐지는 곳이었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봉군보 75명 등 126명의 인원이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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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심항산 봉수는 충주호변에 위치한 심항산 정상부에 축조된 봉수로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동쪽으로 청풍의 오현(吾峴)과 응하고 서쪽으로 마산과 통하였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100명 등 마산봉수와 같은 규모의 봉군이 속해 있었다. 심항산 봉수가 있는 심항산은 오성산, 계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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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충주 주정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의 관광지인 수안보에 인접하고 있는 주정산의 4개 봉우리 중에서 하주정산 정상에 쌓은 봉수이다. 조선시대 전국적인 봉수망에서 제2거(炬)에 소속된 간봉(間烽)으로 마골재 봉수와 대림산 봉수를 연결하였다. 충주 주정산 봉수의 직접적인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주...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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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불상. 영덕리 마애불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당한 동네 청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영덕리 사람들이 조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영덕리 마애불은 중앙에서 수직으로 갈라진 높이 2.5m의 석벽 우측에 양각되어 있다. 두정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관을 쓰고 있으며, 두 눈은 툭 불거져 나왔으며, 입은 작은 데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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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관암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마애불상. 관암(冠岩)마을은 우리말로는 ‘갓바우’라고 부르는데 바위의 모양새가 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자연석 암반 위에 20톤이 넘는 무게의 큰 돌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 모자처럼 두께 1m 정도의 납작한 돌이 올려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위치한 면사무소에서 장선리 쪽으로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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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삼국시대 마애불상군. 중앙탑면 봉황리 안골[內洞]을 흐르는 봉황천이 남한강에 합류되기 전 구부러진 곳에 해발 80여 m의 햇골산이 있다. 햇골산은 해가 뜨는 곳 또는 햇살이 제일 먼저 비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햇골산 중턱에 마애여래좌상 1구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동쪽으로 50m 떨어진 지점의 가파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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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상.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얕은 부조로 조각된 마애불로 동남향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4m이다.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 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왜군과 격전하다 분패·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탑·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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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예배의 주요 대상이 되는 불교 조형물. 탑은 탑파(塔婆)·불탑(佛塔)·부도(浮圖)·솔도파(窣堵婆)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탑은 재료와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재료에 따라서는 목탑·전탑·석탑·모전석탑·청석탑·금동탑·동탑·유리탑·철탑 등 다양하다. 성격에 따라서는 불사리탑(佛舍利塔)·표식탑(標式塔)·비보탑(裨補塔)·묘탑[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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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문주리 사지에 있던 고려 전기 석탑. 문주리 사지는 고려시대 건립된 석탑과 석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법은사(法恩寺)라는 작은 절이 세워져 있다. 석탑과 석불 주변에서 다량의 기와편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창건시 전각(殿閣)이 건립되어 사찰로서 신앙과 예불 등 종교 활동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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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은둔하기 위하여 가던 도중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 앞으로 나 있는 고대 교통로는 소백산맥을 넘는 하늘재로 통하는 길목에 해당된다. 따라서 충주 미륵대원지는 오래전에 사찰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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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재. 봉황리 사지에서 수습된 석탑재로 중앙탑면사무소에 있다가, 최근 충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야외 전시하고 있다. 현재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2개씩 남아 있는데, 몸돌 2기의 각면은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었고 그 사이에 불상을 부조하였다. 석탑의 1층 몸돌에 지붕돌[옥개석] 하나가 올려져 있고, 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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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둔대마을에 있는 고사(告祀) 탑. 산척면 영덕리 둔대마을 입구에는 고장소 터라고 부르는 웅덩이 자리가 있는데 옛날에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풀려 들어갈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옆에는 개울을 가운데 두고 원추형의 돌탑 2기가 있는데 일명 곳집가리탑이라고 한다. 둔대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던 일종의 고사 탑으로 일제강점기에도 매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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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탑. 온천리 석탑은 일제 강점기 때 탑동마을에 있었던 소위 대사리사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하고 있다. 원위치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때인 1943년경 일본인 주재소장이 현위치로 옮겨 매립한 후 밀반출을 하려다가 1945년 광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1953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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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탑동 봉불사 앞쪽 개울가에 세워진 고려 후기 석탑. 온천리 탑동 삼층석탑은 탑동 개울가에 있는 넓은 암반을 기초로 하여 하부에 시멘트를 마련하여 세워놓았다. 석탑이 원위치인지 불분명하고 심하게 훼손된 것을 후대에 크게 보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지붕돌[옥개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후대에 새롭게 보강된 부재들로 보인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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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용관동 삼층석탑은 현재는 충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야외에 세워져 있지만, 원래는 충주시 용관동에 있었다. 용관동에서 민가를 신축할 때 출토된 석탑재를 옮겨왔다고 한다. 석탑이 심하게 훼손되어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 부재만 남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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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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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은 충청도에서 경상도 지역으로 넘어가는 하늘재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바로 옆에는 충주 미륵대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주변 지형으로 보아 사찰 경내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하여 석탑만 독립적으로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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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원래 100m 정도 북쪽으로 떨어진 민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1977년경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석탑이 있었던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석탑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보아 원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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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변에 인접하여 세워졌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높은 토단을 조성한 다음, 그 위에 대형의 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건립할 때 상당한 관심과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칠층석탑 일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표와 발굴 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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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석종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시에 있는 남산의 산록에 일명 죽정사지(竹精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찰은 조선시대인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사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사지 일대에 다량의 기와편을 비롯하여 밭 가운데 파손된 석탑재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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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전기 보각국사 석재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에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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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사지 한가운데 있는 고려 전기 석탑. 현재 원평리 사지에는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석탑 등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선덕왕 때 창건되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적·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또한 이 일대에는 법흥왕 때 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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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은 사찰 가람의 필수적인 조형물이었다. 고려시대 들어와 불교가 국교로 신앙되면서 전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이 창건되고 이와 함께 석탑이 건립되었다. 추평리 사지에서 가까운 지점에는 백운사·억정사지 등이 위치하고 있어 이들 사찰들과 함께 고려시대 불교 신앙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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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단호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단호사는 충주시에서 상당히 고찰(古刹)에 속하는 사찰이다. 현재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철불과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건시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호사는 사찰에 남아 있는 현판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숙종 연간[1675~172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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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에 있는 조선 전기 방형의 기단에 판석을 쌓아 만든 전탑 모양의 적석유구.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 내의 산신당 옆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불탑이 금당 앞 중앙에 위치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벽돌 크기보다 작은 장방형의 작은 돌을 이용하여 높이 약 8m, 둘레 약 13m로 쌓았다. 밑에서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드는 형상이며,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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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석탑. 창룡사는 충주시 직동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시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고려 말 선각왕사 혜근이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 서산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범우고(梵宇攷)』를 비롯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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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석탑. 원래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묘곡의 새마을창고 옆 장병만 가택 후원에 세워져 있던 것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운 석탑이다. 많은 부재들이 결실되어 원래의 모습을 추정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치석 수법도 조잡한 편이다. 다만 전체적인 외관과 부재들이 석탑 양식을 취하고 있다. 하구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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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입적 승려를 추모하는 묘탑 형태의 조형물. 부도는 고승이 입적한 후 유체를 풍장(風葬)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기념적인 조형물이다. 부도는 목재·석재·벽돌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석재로만 건립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석조 부도라고 한다. 석조 부도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고승의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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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부도. 문화리 석조부도가 원래 있었던 곳은 문화리 사지로,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화리에 위치한다. 문화리 사지는 문화리 뒷산 계곡에 위치하며, 사지에는 2단의 석축과 기와편들이 널려 있다. 석축의 규모가 작고 기와편들이 좁은 범위에 걸쳐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은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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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원구형 부도의 원형 탑신석. 성내동 부도재는 조선시대 성행한 원구형 부도 양식의 상대석과 옥개석 사이에 결구되었던 평면 원형의 부재이다. 원래는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충주문화회관 앞뜰에 있던 것을 현재는 충주박물관 야외로 옮겨 세웠다. 이 부도가 서있던 사지나 사명(寺名)은 알 수 없다. 다만 충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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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부도. 억정사지(億政寺址)는 신만리 작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 규모가 컸던 사찰로 전하고 있다. 또한 우왕, 공양왕 등 여러 국왕들로부터 존경받은 대지국사(大智國師) 찬영(粲英)[1328~1390]이 하산한 사찰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건국 직전 입적한 대지국사 찬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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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양식의 석조 부도.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이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관련 사료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인 17~18세기까지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석종형 부도는 조선 후기 건립된 것으로, 청룡사가 적어도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유...
석등·당간지주
석등·당간지주
석등·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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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각석등. 충주 미륵대원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사세(寺勢)가 크게 확장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려시대 번성한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사지에서는 대원사(大院寺)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기도 하여 절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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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등.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이 세워져 있는 사찰에는 석불입상, 오층석탑, 당간지주, 귀부 등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조성된 많은 유적·유물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있어 충주 미륵대원지로 불리고 있는데, 창건 시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이나 유적·유물이 전하지 않아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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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에 있는 사자를 대석으로 삼은 조선 전기 사각석등.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일대에 있는 사지로, 조선 초기 건립된 주목할 만한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여러 관련 기록에 의하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지에서는 여러 동의 건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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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 입구에 있는 고려 전기 당간지주.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멸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당시 누이인 덕주공주(德周公主)는 월악산에 덕주사(德周寺)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으며, 태자는 석굴을 창건하여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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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숭선마을에 있는 고려 전기 석재 당간지주.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숭선마을 충주 숭선사지 입구에 남아 있는 유적이다. 숭선마을 뒤쪽으로 형성된 골짜기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기와편과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의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81년경 사지에서 명문 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숭선사(崇善寺)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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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후기 석재 귀부. 충주 미륵대원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번창한 사찰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많은 고려시대 석조 유물들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사찰의 창건 시기와 관련하여 현재 통일신라시대 수법을 보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초석들이 남아 있어 창건...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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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사찰의 유지(遺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주 지역에 있던 사찰은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 그 사찰 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절터가 있으며 그곳에서 나오는 명문의 와편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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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가섭산 동편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가섭산은 음성읍의 동쪽에 있어 음성의 진산으로 일컬어지는 산이다. 이곳은 예부터 관방 유적이 발달한 곳으로. 정상에 가섭산 봉수대가 있어 충주의 마산봉수에서 연락받은 사항을 삼성의 마니산 봉수로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가섭산에는 동쪽과 서쪽에 절이 있어 동가섭사, 서가섭사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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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 계명산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터. 계명산 사지는 계명산 등산로 중턱에 위치하며, 오층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충주 지역 불교 문화를 살피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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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용장골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공이리는 살미면의 가장 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가 좁고 길어 호로병 같은 형국이라 피난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햇볕이 잘 들고 따스하여 충주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감이 재배되던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정상부에 파괴된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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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국망산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명문과 주변에 산재한 자기, 토기편 등으로 보아 1653년 창건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충주시 북동쪽의 노은면소재지를 지나서 지방도 49호선을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명성황후 피난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신흥동을 거쳐 국망산에 이르게 된다. 광제암 사지는 국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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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대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의 한자는 ‘사문리(寺門里)’이기 때문에 사찰의 초입에 해당하는 곳으로 여겨지며, 충주 미륵대원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문리는 대사와 석문으로 구분되는데, 모두 사찰과 관련 있는 지명이라 주목된다. 대사리에 있던 절터는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 마을 한가운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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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에 있는 용두사지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절터.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는 관동대학에서 보고한 용두사지에 대해 소개하면서 내용이 불확실하다고 하였다. 용두사지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용두사는 말흘산(末訖山) 밑에 있다. 삼국시대 때에 북쪽 오랑캐가 자주 침노하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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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조동 덕련산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현재로서는 창건 시기나 폐사 시기 등 변천 사항을 알 수 없다. 주덕읍 소재지인 신양리에서 북쪽의 신중리 요도천을 건너 제내리 성동 앞을 지나 노은면 솔고개로 향하여 약 8㎞ 떨어진 곳에 창동이 있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면 덕련리 끝마을인 공말과 조동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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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 태고산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도촌리 사지에 거주하는 촌로들의 말로는 원래 이곳에 있던 절집이 폐사가 된 후 뜯어서 민가 5채를 지었다고 하며, 도촌리 석불입상이 현존하고 있는데, 1967년 경지 정리 때 불상의 머리가 없어졌으나, 1974년 주민 김영환이 찾아서 얹어놓았다고 한다. 충주시청 소재지에서 원주, 제천의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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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탑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대소원면 문주리 148번지[대소원면 팔봉로 359] 일대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있었다. 이 가운데 오층석탑은 멀리서 보기에도 뚜렷하여 동네 이름도 탑동이라 하였다. 이 탑 옆에는 석불좌상이 있었고, 주변에 민가가 있었는데, 민가 한 채를 사들여 법은사(法恩寺)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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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화리 충주호변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시 살미면 문화리 일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선 아래에 위치하는 바람에 물속에 잠긴 곳이 많다. 문화리 사지의 경우 충주호의 수몰 만수 위 바로 바깥쪽이기 때문에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다만 문화리 사지에 있던 석종형 부도만 도난의 우려가 있어 1994년 충주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 관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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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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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보련산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보련사지의 연원은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보련사의 창건과 연혁에 대한 문헌의 기록은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보련동(寶蓮洞)’이란 지명과 함께 보련사에 급전(給田) 150결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보련사가 천룡산(天龍山)에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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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봉황리 내동사지 인근의 보물 제1401호인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과 절터에서 확인된 석탑 부재, 기와편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사찰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 시기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충주 시내에서 충주 탄금대를 지나 중앙탑면의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거쳐 가흥초등학교에서 앙성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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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봉황리 사지는 봉황리 햇골산 중턱에 있는 보물 제1401호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으로 오르기 전 최근 조성된 주차장 주변 경작지 일대의 절터로, 미륵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없다. 1990년 출토된 옥개석과 탑신석 각 2매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때의 사찰로 보이지만 언제까지 경영되고 폐사되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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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 속실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시 동량면 지역은 충주댐으로 인해 수몰 지역이 생겼으며, 옛 길과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제천에 소속되었던 한수면 사기리, 명오리, 함암리 등의 지역이 동량면에 포함되면서 면적이 크게 늘어났다. 이곳에는 법경대사와 홍법국사가 주석하던 정토사가 있어 주목되며, 고려시대 외사고가 위치하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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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억정사지에는 현재 보물 제16호로 지정된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가 남아 있어 고려시대 번성하였던 사찰 터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경작지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전에는 석탑의 부재 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현재 사찰 터에 전하는 유일한 유물인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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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영곡사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14 충주목 불우조에 남아 있다. 절의 입지와 함께 주변 정황을 알 수 있는 정지상(鄭知常)과 김극기(金克己)의 시가 실려 있다. 영곡사는 대림산에 있으며,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푸른 시냇물을 굽어보며 공중에 걸쳐서 누각이 있어 밑에서 보면 달아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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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동막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 지역에는 명창 3년(1192)명 기와편이 출토되는 곳이 두 곳 있는데, 수안보면의 충주 미륵대원지와 앙성면의 오갑사지가 그곳이다. 충주 미륵대원지의 경우, 1977년 청주대학교박물관팀의 조사 때 출토된 평기와에 ‘명창삼년대원사주지승원명(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 ‘명창삼년금당개개□□□대원사주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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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탑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수안보면 온천리의 탑동 주변에는 불교 문화재가 다수 확인된다. 온천리 탑동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충주 봉불사 석조약사여래입상, 온천리 석불입상, 온천리 오층석탑 등인데, 모두 파손은 심하나 정성을 들여 만든 것들이다. 온천리 탑동 삼층석탑은 원래 위치에 있고, 충주 봉불사 석조약사여래입상은 195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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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시 용관동 달천강가에 위치한 절터이다. 현재 민가가 밀집되어 있고, 주변에서 많은 양의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다. 본래 이곳에 있던 용관동 삼층석탑은 현재 충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는데, 본래의 부재가 많이 없어져 기단석과 지붕돌[옥개석] 등 일부만이 남아 있다. 전시 중인 용관동 삼층석탑은 양식적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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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탄동 큰골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지표면에서 수습된 기와와 탑 부재 등이 고려시대의 양식이라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경영되었던 사찰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발간된 『충주읍지(忠州邑誌)』에도 이곳이 절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충주시 중심지에서 목행 방면으로 이동하여 동량면 조동리 방면으로 나아가 남한강변을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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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탄동 상은어린이집 인근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충주시청에서 북쪽 금제 방향으로 나아가다 목행 방면으로 가면 한국폴리텍Ⅳ대학 충주캠퍼스가 나오고, 이곳에서 새한전자 공장을 거치면 용탄 농공단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남쪽 방향으로 계명산을 향해 가면 용탄동 사지인 아랫절골마을에 이르고, 이곳에 상은어린이집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더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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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가흥리 원동 사지에서 확인되는 기와 등 유물로 보아 사찰은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그 외 연혁이나 폐사 시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충주 시내 중심지에서 충주 탄금대 방면으로 나아가 국도 38호선을 타고 중앙탑면, 앙성 방면으로 가다 보면 가흥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는데, 가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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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전하는 바에 의하면, 6세기 전반기인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선조사(宣朝寺)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원평리 사지 주변에서 수습되는 기와편과 자기편 등 많은 유물을 통하여 고려시대 번성했던 사찰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원평리 사지 내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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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의림사지는 충주시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마즈막재 아래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사찰 터로서, 그동안 지명에 따라 안림동 사지, 이궁지(離宮址), 대궐 터 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의림사지에 대한 문헌 기록과 자료가 전혀 없어 창건과 폐사 시기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찰의 이름이 확인된 것은 1989년 충주대원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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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장성리 부연마을에는 유학사(遊鶴寺)라 전하는 사찰의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삼층석탑, 석조여래불상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난이 염려되어 1994년 중원민속자료전시관(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야외 전시를 하고 있다. 유학사라는 이름은 절 터가 있는 산이 유학산 자락이었기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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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정토사지에는 보물 제17호인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가 위치하고 있었다. 정토사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어 사찰의 연혁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준다. 『신증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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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 계명산 중턱에 있는 절터. 종민동 하종마을에서 계명산 산길을 따라가다 해발 고도 약 300m 지점에 위치한 절터로, 오층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기본적인 변천 사항을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 옮겼다는 구전(口傳)이 전해지고 있다. 충주시 교현동에 소재한 대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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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蒼龍寺) 옆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죽정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아직 미상이며, 남아 있는 석탑과 주변의 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보이며, 1652년(효종 3) 개즙(改葺) 기록이 있는 명문기와로 보아 이때까지도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폐사 시기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충주목사였던 조병로(趙秉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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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 미륵대원지는 1963년에 고고미술사학회(현 한국미술사학회)에 의해 고려 석실[돌방] 사원지로 소개되었고, 1965년에는 경주 석굴암 복원을 위한 자료로 제시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5월 24일에 오층석탑과 석불입상이 각각 국보 제166호와 제167호로 지정되었고, 1963년 1월 21일에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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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창동 사지와 관련된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현 위치가 아니라 뒤편 담 쪽에 있던 것을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정식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창건 연대나 폐사 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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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청룡사의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관련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현 사지에는 국보 제197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과 보물 제658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그리고 보물 제656호인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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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엄정사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엄정면의 지명이 그동안 억정사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엄정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살펴보면 충주의 청룡, 김생, 용두, 엄정, 억정, 향림 등의 사전지를 빼앗는 사람을 추핵하지 않은 수령에게 벌을 주는 조처를 취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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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충인동 효성교회 근처에 있는 조선 후기 및 일제강점기 절터. 충인동 사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세운 절인 예성사(蘂城寺)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절터로, 인근의 교현천을 정비할 때 작은 석조불상이 나온 적이 있다. 충인동 사지에 있었던 조선시대 사찰의 창건 시기나 폐사 시기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1970년대에 정비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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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반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사찰의 창건 시기 및 창건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 때의 명필인 김생(金生)[711~791]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관련 기록으로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종휘(李種徽)[1731~1797]의 시문집인 『수산집(修山集)』에 「김생사중수기(金生寺重手記)」가 전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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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사당터.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안종(安宗) 왕욱전(王郁傳)에 성황사(城隍祠)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996년(성종 15) 이전에 이미 성황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황에서 ‘성(城)’은 성벽을, ‘황(隍)’은 성벽을 둘러싼 공호(空濠, 물이 없는 해자)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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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에 있는 고려시대 원당터. 충주 숭선사는 고려 광종(光宗)의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聖王太后) 유씨(劉氏)의 원당(願堂)으로, 본래 사지에는 당간지주만 남아 있고 주변은 경작지화 되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후 충주 숭선사지에서 많은 양의 기와가 출토되고, 그중 ‘숭선(崇善)’명의 기와가 출토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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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한국교원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였다. 그러나 가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많은 양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이 토기들은 생활용 토기로 절대 다수가 신라계 토기로 추정되었는데, 특히 짧은 굽대리 접시[단각고배(短脚高杯)]는 인근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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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정토사는 고려 전기에 번성하였던 사찰로, 충주 개천산 옥녀봉 아래에 있었다. 옥녀가 옥경대를 내려다보며 화장하는 형국인데 그 사이에 정토사가 있었다. 정토사는 법경대사와 홍법국사가 주석한 가람으로,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비가 있었다. 그러나 법경대사 자등탑은 소재 불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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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화암리 낭골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화암리에는 꽃바우가 있어 꽃바우, 또는 화암(花岩)이라고 하였는데,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탄(浦灘), 낭곡(浪谷), 마의실(痲衣室), 양목(陽木)을 병합하여 이루어졌다. 화암리에는 사우앙산[403m]이 자리 잡고 있다. 화암리 사지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탑신석 1매가 전해져 왔다...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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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덤. 충주는 신라시대 중원경(中原京)으로 운영된 이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도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많은 인물이 충주에 거주하고 묻혔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기록된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서(徐)·석(石)·최(崔)·유(劉)·강(康)·양(梁)·진(秦)·안(安)·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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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에 있는 고려장 터로 불리는 무덤 유적. 중앙탑면에서 노은면 방면의 신전마을을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신흥동에 이르는데, 가신리 고려장지는 이곳 북쪽 거먹골 서쪽 과수원 뒤쪽에 있다. 1998년 충주시의 지표 조사 당시 확인된 유적으로, 석재가 흩어져 있었다. 2000년 충주박물관의 노은면 일대 지표 조사에서 흩어진 석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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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에 있는 조선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소생으로, 이름은 이비(李示+非), 자는 정숙(正淑)이고,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학문에 밝아 양녕대군·효령대군·세종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조에 걸쳐 왕실과 국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충성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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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순공(文純公) 권상하의 묘. 조선 후기의 학자인 권상하(權尙夏)는 안동권씨 후예로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또는 한수재(寒水齋)라 하였고,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송시열의 제자로 ‘예송논쟁’에 휘말려 유배되었고, 숙종 때에는 우의정·좌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기호학파를 계승하였고 ‘기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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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권엽과 부인의 합장묘. 권엽은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1574년(선조 7) 정월 14일 출생하여 1650년(인조 18) 6월 20일에 졸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알성급제하여 등과한 이후 1624년(인조 2) 동지성절사(冬至聖節使)로 명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636년(인조 14) 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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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 검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권혁과 부인의 합장묘. 권혁은 안동권씨 제간공파로 양촌 권근의 후손이다. 음관(蔭官)으로 출세하여 정선군수, 익산군수, 신천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추증되었다. 대소원면 검단리 상검단마을 뒷산 권오석 송덕비가 있는 공터에서 왼쪽의 낮은 동산으로 약 20m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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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에 조성된 사업가 김금산의 묘.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 88-1번지 금산농원의 능선에 위치한 묘로, 금산건설과 현대주택의 회장을 역임한 김금산의 묘이다. 김금산은 김해김씨 후인으로 1919년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사업에 매진하여 큰 기업을 일구어낸 인물이다. 1985년 가락종친회 경인지구 종친회장(駕洛宗親會京仁地區宗親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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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거리실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청풍김씨 김세균의 묘. 절충장군 부산진수군첨절제사(折衷將軍釜山鎭水軍僉節制使) 김세균(金世勻)과 부인 숙부인(淑夫人) 교하노씨(交河盧氏)의 합장묘이다. 충주에서 주덕 방면으로 가다가 중부내륙고속국도 충주 인터체인지의 굴다리를 지나 바로 우회전하여 흑평마을 방향으로 들어가면 ‘이류맑은물센터’가 나온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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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가정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시번의 묘. 김시번(金始蕃)의 자는 중거(仲擧), 호는 면호(眠湖)이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신국(金藎國)의 아들이다. 1632년(인조 1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638년에 홍문록에 올랐으며, 이듬해에 지평(持平)에 임명된 뒤 부수찬, 수찬(修撰), 부교리,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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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산36번지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누암리 고려 고묘군은 신라시대 유적으로 지정된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는 모두 230여 기의 고분군이 있는데, 신라 말기에 조성된 신라 고분 외에 7기의 고려시대 돌덧널무덤과 토광묘가 발굴 조사되었다. 누암리 고려 고묘군이 있는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1983년 3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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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고분이란 고총고분의 준말로 ‘큰 봉분을 가진 오래된 무덤’이라는 뜻이다. 삼국시대 초기 왕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무덤을 대형으로 조성한 것을 일컬어 고분이라 했는데, 광의적으로 통일신라 이전의 무덤을 총칭한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무덤은 고고학적 개념에서 고분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워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은 고분과 구분 ‘고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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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 유적. 충주 대곡리 유적은 보성파워텍 제2공장 건설부지에서 중앙문화재연구원 팀에 의해 발굴 조사된 유적이다. 대곡리 유적이 위치한 곳은 충주시 신니면과 음성군 음성읍의 경계에 자리한 가섭산[709.9m]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하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주변에 충주 견학리 토성, 견학리 유물산포지, 신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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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대덕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고묘군. 노은면 면소재지에서 장호원 방면, 수상초등학교에서 대덕저수지 방향으로 들어서면 저수지를 지나 상원곡마을에 이른다. 대덕리 유적은 상원곡마을 동쪽 산자락과 능선, 뒤쪽의 밭에 위치한다. 소나무 군락지 뒤쪽 밭은 예로부터 고려 장터가 있었던 곳으로 전하며, 정남향으로 무덤의 입지로 좋은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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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 1998년 충주시의 문화유적분포 지표조사 과정에서 주민들이 이곳을 고려장 터로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소태면소재지에서 왼쪽으로 강변을 따라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원도 경계에 못미쳐 오른쪽으로 조기암마을이 보인다. 마을 서쪽의 조기암교회 뒤쪽 능선상의 과수원에 해당된다. 서향의 능선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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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두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충주에서 달천을 거쳐 수주, 팔봉으로 가는 길에서 용관동을 지나면 두정리 두담마을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마을이 보이고 마을 보호수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마을 끝부분에 위치한다.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문화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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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 대소원면 매현리 매현초등학교(현 달천초등학교 매현분교장)에서 충주 방면으로 가다가 장승백이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수현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500m 지점의 산자락에 위치한다.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문화유적 지표조사 당시 확인된 유적이다. 당시 노선에서 벗어나 정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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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곽묘로 추정되는 무덤 터. 충주 숭선사지가 있는 숭선마을을 지나면 나타나는 감나무골 뒤쪽 능선에 해당한다. 이곳은 전주이씨 종산이다.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분포 지표조사에서 고려시대 석곽묘로 확인된 유적이다. 주민들이 고려장 터라 지목했던 곳으로, 당시에는 “도굴이 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주변에 할석만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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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 대소원면 매현리 매현초등학교에서 수주 팔봉 방면 왼쪽의 월은마을에 들어서면 양지말에 이른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1997년 충주박물관이 실시한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구간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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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문주리 월은 고묘군은 매현리 매현초등학교(현 달천초등학교 매현분교장)를 지나 동쪽 문주리로 가다가 월은마을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면 있다.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월은마을에 이르면 왼쪽이 양지말, 오른쪽이 음지말이다. 유적은 양지말 서북쪽 500m 지점이다. 1997년 충주박물관에서 실시한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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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덤군. 조선 전기 이전에 만들어진 유력 인사의 무덤으로 보인다. 대소원면 문주리 월은마을 입구 남쪽 산자락에 해당한다.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 고속도로 밑을 지날 때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다. 1997년 충주박물관에서 실시한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당시 8매의 가공한 할석을 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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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조동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박팽년의 부인 천안전씨의 묘. 박팽년 부인 전씨 묘는 주덕읍 덕련리 조동마을 뒷산의 과수원 옆길로 도랑을 건너 10m 정도 가면 있다. 토광묘의 형태로, 묘의 상태로 미루어 근년에 장방형 화강암 둘레돌을 두른 것으로 추정된다. 장방형 봉토분의 형태로 근년에 두른 듯한 둘레돌은 177×246×42㎝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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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있는 고려장 터로 불리는 고려시대 고묘군. 중앙탑면에서 노은면 방면 지방도 599호선을 따라가다 효죽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거의 끝 쪽이 아랫동막마을이다. 이 마을 서북쪽 사면의 임야와 밭에 해당한다.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지표조사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조사 당시 마을 주민들이 고려장 터라 부르던 곳이다. 석재가 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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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 택지개발지구 내에 있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고묘군. 충주시 연수동 지역에 조합을 구성하여 택지개발 사업을 실시한 것은 1994년이다. 이때 연수 택지개발지구 전역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한 뒤, 그중 고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충주대학교박물관 팀이 1997년에 발굴, 조사하여 연수동 택지개발지구 내의 동수마루 근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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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되는 유적.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 마을 주민들이 고려장 터로 부르고 있었으며, 개간 과정에서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능선의 상단부에는 민묘가 조성되어 있는 넓은 공간이 있으며, 구릉 정상부에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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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충주첨단산업단지 진입도로에서 발굴 조사된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분과 요지 유적. 대소원면과 중앙탑면 일대에 조성 중인 충주첨단산업단지로 들어가기 위한 진입도로 개설사업 예정지에 매장문화재가 있음이 확인되어 발굴조사되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법고개 동쪽으로 바로 인접해 있는 능선 근처에서 법고개 고분군이 확인되었고,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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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 유적. 요갓골 고묘군은 금봉산[일명 남산, 636m]에 위치한 충주산성(일명 남산성, 할미성)의 동남쪽 일대로, 비교적 경사가 급하며 주변 지역이 과수원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주변에 활석 광산도 운영되고 있다. 충주시에서 충주댐 방향으로 마즈막재를 넘어 바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목벌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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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군. 용산리 고묘군은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분포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주변 봉분의 분포를 통해 조선시대 고묘로 추정된다. 엄정면소재지에서 엄정교회와 엄정초등학교 사이의 농로를 따라 오르다 오른쪽 논을 끼고 400m 정도 들어서면 과수원 뒤쪽의 경작지 사면에 위치한다. 경작지 주위로 일부 석재가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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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용전리 갈동 고려장지는 갈동마을 안쪽에서 서쪽으로 등재골을 따라 농로를 오르면 마을에서 700m 지점 왼쪽, 작은 길마재 농수로 위쪽 능선에 위치한다.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이후 노선에서 벗어난 관계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농수로 양쪽에서 다량의 토기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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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 있는 고려시대 인물인 우천석과 우팽의 묘소. 고려시대의 무신인 우천석은 1266년(원종 7)에 스승인 민지(閔漬) 등과 같이 명경과 을과 제2인으로 올라 1268년(원종 9) 도병마녹사로서 낭장 박신보와 함께 몽고의 사신 와국창 일행을 흑산도로 인도하여 뱃길을 살폈다. 1273년 서해도안찰사로서 제주 지역을 거점으로 저항하는 삼별초를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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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하동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 당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 돌덧널의 석렬이 일부 드러나기도 하였다. 주위에는 덮개돌을 포함하여 고묘들이 여러 기 분포한다. 남한강에서 200여m 떨어진 오석초등학교 서쪽에 남향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 주위에 고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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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유영길 부부의 합장묘. 유영길(柳永吉)[1538~1601]은 1559년(명종 14) 별시문과에 장원 급제한 이후 부수찬, 정언, 병조좌랑, 전적, 헌납 등을 거쳐 1565년 평안도도사를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강원도관찰사, 승문원제조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내면서 조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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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헌부감찰을 지낸 유용량과 부인 안동권씨 합장묘. 유용량은 문화유씨 하정공파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백곡(栢谷) 이다. 조부는 고양군수 증이조참판(高揚郡守贈吏曹參判) 유순행이며, 부친은 부제학 공조참판을 역임한 유희저(柳希渚), 모친은 정부인 죽산안씨이다. 유용량은 1495년(연산 1) 9월 23일에 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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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갈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이방과 부인 문경송씨 합장묘. 현재 묘소로 가는 길목에 법현녹돈(주)의 돈사가 가로막아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법현녹돈(주) 정문 옆의 중부내륙고속국도 옆으로 올라가서 작은 동산을 두 번 넘어 잡목을 뚫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봉토분의 형태이며, 봉분의 크기는 앞면 약 7m 정도이며,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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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월촌에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석보군 이복생의 묘. 제2대 왕인 정종의 아홉째 아들인 이복생(李福生)의 호는 검묵당(儉黙堂),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모친은 숙의(淑儀) 해평윤씨(海平尹氏)이며, 배위(配位)는 원주김씨로, 판중부사대경공(判中樞府事戴敬公) 김연지의 딸로 학성군(鶴城君)의 부인이다. 1399년(정종 1) 3월 4일 출생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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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문경공 이채 부부 합장묘. 이채(李采)[1745~1820]의 본관은 우봉(牛峰)으로,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휘령전(徽寧殿) 참봉, 사헌부, 호조, 형조의 관직을 거쳐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陰竹縣監) 재직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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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풍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임경업 장군 묘. 임경업(林慶業)[1594~1646]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의주부윤으로 적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명나라와 내통하여 청에 대항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청에 잡혀 있던 중, 심기원의 모반에 연루되었다 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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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풍동에 있는 조선시대 임황과 부인 파평윤씨 합장묘. 임황(林篁)의 자는 벌숙(筏叔), 호는 추운(秋雲)이며,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4남인 임경업(林慶業)의 공으로 특별히 증직되었다. 장남 임성업(林成業)은 정헌대부예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시감정공(正憲大夫禮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諡監正公)이며, 임승업(林承業)은 통정대부행맹산현감(通政大夫行孟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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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묘로 추정되는 유적.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 당시 확인된 민묘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이후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지 조사 결과 관리되지 않는 민묘가 능선을 따라 다수 분포하고 있다. 금가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새로 조성한 문화 마을이 나타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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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신대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빈의 묘. 조빈의 후손에 대하여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르고 있다. 다만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조빈으로 추정할 뿐이다. 조빈의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계언(季彦), 호는 은성(隱星)이다. 『광해군일기』 찬수에 참여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척화를 부르짖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인조실록(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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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에 있는 고려 전기 무덤군.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도굴되고 심하게 파괴된 것을 정리하기 위한 조사를 하였다. 할석으로 축조한 구덩식 돌덧널무덤이며, 내부에서 관정(棺釘)이 나오고 있어 돌덧널 안에 따로 목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산에서 서남으로 뻗어내린 짧은 두(A. B) 능선에 15기(A지구 9기, B지구 6기)의 고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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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군. 엄정면소재지에서 괴동리-추평리 방면으로 향하면 추평초등학교에 이른다. 초평초등학교와 삼성마을 뒤쪽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서 4기의 봉분을 확인하였다. 그중 제일 아래 것이 직경 5m의 크기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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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군 이수일 묘. 이수일(李守一)[1554~1632]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을 물리치고, 이어 경상수사로 옮겨 분전하였다. 후에 경상우병사에 이르러 1605년 선무공신의 호를 받고, 이괄의 난에 난군을 무찌르고 진무공신의 호를 받았다. 계림군, 부원군으로 가봉,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무(忠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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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상구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중앙탑면에서 노은 방면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건국대학교 농장이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서 고속도로가 지나는 산 능선 위쪽에 해당한다. 하구암리 능골 고묘군은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구간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 후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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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상구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유적.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구간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 숯가마, 돌방무덤, 돌덧널무덤, 야철유구, 움무덤,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구간 능골과 도장골 유적 사이에 있다. 중앙탑면에서 노은면 방면으로 520번 지방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건국대학교 농장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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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고묘군. 호암동 고묘군은 사직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였던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사이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호암동 고묘군1과 호암동 고묘군2로 구분할 수 있다. 호암동 고묘군1은 1994년과 1995년 충주박물관 팀이 조사한 우륵당, 택견전수관, 청소년수련원 등의 문화 체육 시설 부지에서 발굴된 고묘군을 지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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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덤 유적. 충주시 택견전수관, 청소년수련원 등 건립 부지에 대한 긴급 구제 발굴 조사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무덤 떼로 모두 172기가 조사되었다. 이중 고려시대 때의 것은 35기, 조선시대 때의 것은 47기, 시기 불명이 90기이다. 조선시대의 유적은 조선 중기 이후로 편년되는 회곽묘 9기를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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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고려시대 무덤 유적. 충주 MBC 뒤쪽에 있다.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 당시에 찾아진 유적이다. 과수원 경작으로 상당 부분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나, 주위에서 확인된 유물을 통해 돌덧널무덤이나 토광묘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충주 MBC 뒤쪽은 해발 120m 내외의 능선이 연이어 대림산 자락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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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유적.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 분포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독립 유공자 당초 손승억 선생의 묘소 동북쪽 과수원 일대와 북쪽 능선을 고분군으로 보았다. 마을 뒤쪽으로 동향하는 여러 갈래의 가지 능선들이 위치한다. 능선은 좁게 가파른 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곳곳에 돌덧널무덤의 할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다수...
사당·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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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집을 사당(祠堂)이라고 하는데, 사당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도 사용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새로 지으며 격을 높여보려 한 예도 있고,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우는 특별히 영당(影堂)이라고도 하였다. 민간의 사당을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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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에 있는 단군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 단군전은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 등을 모시고 봉향하는 사당을 말한다. 단군성전이라고도 한다. 단군왕검은 천제 환인의 외손이자 환웅의 아들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조선을 개국한 시조라 전한다. 단군에 대한 숭배와 봉향은 왕조 국가 및 민간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특히 민족의 정체성이 강조되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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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당. 사당은 선현과 조상의 업적과 넋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이 올려진다. 명덕사는 1395년(태조 4)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나 1458년(세조 4)에 죽은 경녕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전기에 건립되었다. 충주시에서 장호원 방면으로 국도 3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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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후기에는 선대 유현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사당을 많이 건립하였는데 이를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 무릉사 역시 이러한 향현사 중의 하나이다. 충주에서 국도 3호선을 타고 살미면을 지나 휴게소가 있는 용천삼거리에서 수안보·문경 방향으로 약 400m 정도 직진하면 좌측에 충주 최응성 고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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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에 있는 조선 전기 충신 박팽년의 사당. 사우(祠宇)는 선현(先賢)과 충신(忠臣), 조상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의 하나로, 대개 지방의 유림이나 지방관, 배향자의 후손 및 제자 등에 의해 세워졌으며, 사액을 청하는 소(疏)인 청액소(請額疏)를 올려 사액을 받기도 하였다. 충주 박팽년 사당은 사액되지는 않았다. 충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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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사당. 봉황사는 조선시대 지방 유림들이 선대 유현에 대해 향사하기 위해 향현사와 같은 성격의 사당이다.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보물 1401호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 가까이에 있다. 봉황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을 하고 있으며, 사당 앞면에 ‘영모문(永慕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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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평택임씨는 당나라 문종 때 신라로 건너온 팔급(八及)을 시조로 하나 이후 관련 문헌이 없어 그 가계의 전승은 알 수 없었는데, 평택임씨 전객령공계는 고려 말 임세춘을 1세조로 하여 평택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충주시에 있는 숭묘각에는 평택임씨의 1세조와 2세조, 3세조의 위패를 배향하여 평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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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가문의식의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양정공 사우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된다. 충주역에서 목행 방향 국도 19호선을 지나 칠금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금제교를 건넌 뒤 곧바로 우회전하여 1㎞ 정도 가면 능암마을이 나오는데, 양정공 사우는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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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당. 사우(祠宇)는 선현(先賢)과 충신(忠臣), 조상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의 하나로, 대개 지방의 유림이나 지방관, 배향자의 후손 및 제자 등에 의해 세워졌으며, 사액을 청하는 소(疏)인 청액소(請額疏)를 올려 사액을 받기도 하였다. 충주 영모사는 일제강점기 때 세워져 사액을 받지는 않았다. 충주최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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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오산부락에 있는 합천이씨 종중 사당. 합천이씨의 시조인 강양군(江陽君) 이개(李開)는 신라 6촌 중 하나인 알천양산촌 수장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이며, 그의 21세손 이흡(李洽)은 1601년(선조 34) 현 충주시 수안보면 오산부락에 정착하였다. 이후 오산부락은 합천이씨 오산리 집성촌이 되었다. 충주시에서 수안보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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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몽고군의 충주성 공격 때 충주 지역 사람들이 월악산의 산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 1256년(고종 43년) 4월 29일에 몽고군이 충주성을 공격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은 제대로 항거하지 못하고 월악신사로 올라갔다. 몽고군이 이들을 추격하는데, 때마침 구름과 안개가 끼고 비바람과 번개와 벼락이 함께 들이쳤다. 이에 몽고군은 신이 난민을 돕는 것이라 여기고 물러갔다고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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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벽진이씨 종중 재실. 재실은 사당이나 묘소 옆에 지어 재계 및 제사 준비 등을 하는 곳이었다. 이상급[1571~1637]은 1603년(선조 36)에 진사가 되었으며, 이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병자호란 강화 후 후금의 군사에게 살해되었다. 국도 3호선을 타고 충주에서 장호원 방향으로 가다가 주덕오거리에서 오른쪽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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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다. 인곡사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항복한 것을 비분강개하여 산중에 은거하였던 회헌 한여해(韓如海)를 추모하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청주한씨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충주시에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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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임경업 사우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충주시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가 괴산 방향 국도 19호선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 100m 직진하면 삼거리가 다시 나오는데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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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렬사는 조선 시대에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우거나 절의(節義)를 지켜 순절한 호국의 인물들을 기리고 그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국도 3호선을 타고 충주 방향으로 가다가 달천강 다리를 건너면 철도길을 피하기 위한 고가도가 나오며 여기에 사거리가 있다. 우회전하여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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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서는 유현(儒賢)을 받드는 한편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였는데, 장암사당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본래 장암사당은 1695년(숙종 21)에 창건되어 1702년(숙종 28)에 사액받은 서원이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에 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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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조선시대 문신인 삼탄 이승소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고 있는 사당으로, 1904년 건립되어 1934년 중건되었다. 이승소는 조선 성종 때의 명신(名臣)이며, 호는 삼탄, 시호는 문간(文簡)이고, 고려의 시중(侍中) 이춘부(李春富)의 현손으로 인품이 진중하였다고 한다. 1447년(세종 29)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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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주최씨 종중에서 세운 제단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최렴을 추모를 위하여 세운 제단이다. 제단을 세울 때 함께 비석을 세워 조상을 기리는 뜻을 새겼으로, 신도비도 세웠다. 충주시에서 제천 방향으로 국도 19호선을 타고 가다 금릉동을 지나 목행동으로 들어설 때 목행초등학교 쪽으로 들어서면 충주최씨 추원 기적비와 최렴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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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에 있는 조선 중기 사당. 조선 왕조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더욱이 가문 의식의 형성으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려는 노력도 늘어나 사당이 수없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충주에서 장호원 방향 520번 지방 도로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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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더욱이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많은 사당이 세워졌다. 1979년 충무공 이수일 장군을 제향하여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충주에서 제천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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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더욱이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많은 사당이 세워졌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 IC에서 빠져나와 국도 3호선 충주 방향으로 약 4㎞ 직진하다가 달천다리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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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기려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지방에서는 유림들이 뜻을 모아 지방을 빛낸 유현을 기리거나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많은 사당이 세워졌다. 허한 사우는 조선 후기 충주시 소태면 일대에 거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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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지방에서는 유림들이 뜻을 모아 지방을 빛낸 유현을 기리거나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많은 사당이 세워졌다. 충주 제1로터리에서 직진하여 충주시문화회관 앞 교동...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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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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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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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학보 처 문화유씨 열녀 정려문. 충강공 이상급의 5대 손부인 문화유씨는 부군인 이학보가 병으로 누워 일어나지 못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넣는 등 정성을 다했지만 결국 타계하자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이 끝난 후 문화유씨는 소복으로 갈아입고 26살의 나이로 따라 죽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듣고 영조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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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박팽년의 2남 박순과 아들 박일산의 충신 정려. 박팽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충신으로 단종 복위를 꾀하다 희생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단종 복위를 모의한 것이 김질의 고변으로 탄로가 나 박팽년은 고문으로 옥사하였고 부친 박중림(朴仲林)은 능지처참당했다. 또한 동생 박대년(朴大年)과 아들 박헌(朴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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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문. 1716년(숙종 42)에 명정(命旌)된 문화인 유충건(柳忠健)과 아들 유시량(柳時亮), 손자 유송제(柳松齊)의 3대에 걸친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문이다. 유충건은 유몽정(柳夢鼎)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광해군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36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죽을 먹으며 시묘(侍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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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문산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양여공의 정려문. 양여공 효자각은 조선 세종 때 병조좌랑을 지낸 양여공[1378~1433]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양여공은 1396년(태조 5)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올랐으나 병사(兵事)를 상왕(上王)에게 보고하지 않은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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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시희·이시걸 형제 효자문. 이시희, 이시걸 형제는 연안이씨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으로 부친과 모친의 상(喪)을 당하여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722년(경종 2)에 정려(旌閭)가 내려져 효자문이 건립되었다. 그 후 1756년(영조 32) 이시희, 이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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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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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임경업(林慶業) 장군 별묘 옆에 세워진 건물로, 충민공 임경업과 부인 전주이씨의 충렬 정려각(旌閭閣)이다. 국도 3호선을 따라 수안보 방향으로 가다가 구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예비군 훈련장 표식이 있는 곳이 있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200여m 가면 세성초등학교가 나온다. 그 정문을 지나쳐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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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초계정씨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 명정(命旌)되어 건립한 건물이다. 전주이씨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의심하여 시아버지를 집 뒤 서당에 은거케 하였는데, 시아버지에게 병이 발병하자 새벽 일찍 약을 달여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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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임천조씨 형제 비각. 조재의(趙在義), 조재미(趙在美)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에 정려를 명하여 건립된 비각으로, 이들은 효성이 지극하여 온 정성으로 부친을 봉양하였으며, 상을 당하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를 하였다. 이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정려가 세워졌으며,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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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각. 이시진(李時振)[1578~1633]은 조선 후기 효자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극진하여 임진왜란을 만나서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또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살려 내었다고 전한다. 어머니가 죽자 3년간 시묘를 하여 몸이 야위어 거의 죽을 뻔하였다는데, 이런 소식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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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국곡마을에 있는 정려문. 전주이씨 이유양의 처 효녀 숙인 풍산홍씨는 전적(典籍) 홍봉상(洪鳳詳)의 딸로, 시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함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넣어 즉시 완쾌시켜 명정되었다. 효자 통덕랑 이적은 이유양의 장남으로, 효가 극진하여 증집의(贈執義)하고 명정되었다. 효자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 이서는 이적의 아우로 역시 부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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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선정을 베푼 지방 수령이나 관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본래의 의미는 지방의 수령이나 관리가 백성을 아끼고 지역 발전에 공이 지대하였을 때 이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공적과 인품을 새겨 기린 비석을 선정비(善政碑)라 한다. 선정은 정치를 잘했다는 것으로 불망비(不忘碑), 애민비(愛民碑), 청덕비(淸德碑), 청백비(淸白碑), 송덕비(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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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무위원이던 강재룡의 공덕을 기리는 비. 강재룡의 자선불망비로, 옛 비석 앞에 새롭게 비를 건립하여 같은 내용의 비석 두 개가 함께 있다. 구비에는 건립자의 명단이 없으나, 신비에는 설립자 우광정(禹光政)·김원식(金元植)의 이름이 음기되어 있다. 국도 3호선 옆 대소원초등학교 입구에서 오른쪽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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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향장 강재정의 불망비. 강재정은 1901년(고종 38)에 연풍군 임시 우체주사에 임명되었다. 또한 1905년(고종 42) 경리원 문서에 의하면 “충북 연풍군거 강재정의 안보·신풍 양역 사음의 의례 수행 청원에 대해 잉구거행(仍舊擧行)하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미루어 장토(庄土) 관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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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문성1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관리 김석배의 공덕을 기리는 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이 이루어졌을 때 김석배의 노력으로 마을 주민들이 토지를 지킬 수 있게 되자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노은면에서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감곡 방향으로 가다 보면 문성리 문성교 부근 앞산 밑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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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시희의 선정비. 자세한 건립경위는 알 수 없지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에서 ‘인천부사 김시희’의 선치(善治)에 대한 내용과 영천군수 재직 때의 선치로 당상관이 되어 마땅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충원현감 때의 선치로 인해 선정비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동량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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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의 면장 김희현의 청백비. 대한제국 시기에 면장을 역임한 김희현은 본관이 광산이며, 지방의 중소 지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성면장직을 맡은 김희현은 청렴하게 면장직을 수행함은 물론 곤경에 처한 면민이 있으면 자선을 베풀어 말년에는 재산을 거의 탕진하였다고 전한다. 때문에 김희현의 자손은 나무 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해야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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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상가흥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박회원의 영세불망비. 학생 박회원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해응[1760~1839]의 저서인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박회원을 금일 만났다(今見朴會源)”라고 언급한 구절이 있어 19세기 초의 실학에 관심을 가진 은사가 아닐까 추정된다. 기록상으로 알려진 바는 없으나 비문의 음기로 미루어 동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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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풍현감 서유돈의 선정불망비. 서유돈이 1798년 사망한 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돈 선정비가 위치한 수회리는 1476년(성종 7) 이후 연풍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충주목과의 현계(縣界)에 해당되는 곳이다. 다만 서유돈 선정비를 현청(縣廳)이 있던 연풍향교 앞에 건립하지 않고 현계에 해당되는 곳에 건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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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석기의 영세불망비. 신석기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정조 연간에 잠깐 보이고 있어 정조 때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건립 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다년간 수리(首吏)로 민정을 자상하게 시찰하였다는 데서 공덕을 짐작할 수 있다.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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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유장혁의 영세불망비. 원래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정문 옆의 야산 자락에 위치하였으나, 2008년 단월동 488-1번지[충원대로 242]에 충주 엽연초생산조합 건물이 신축되면서 현 위치로 옮겨놓았다. 비좌원수의 형태로 비신은 53×16×122㎝ 크기의 대리석 비이다. 받침돌은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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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신니면장 윤우영의 공덕을 기리는 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불망비의 음기를 통하여 면에 부임하면서부터 주민이 원하는 바를 수행하고, 공정한 업무와 함께 적은 봉급에도 주민들의 구휼에 힘을 기울이고, 어른들에게 예를 갖추어 봉양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도 3호선 구 도로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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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신니면장 이돈화의 공덕을 기리는 비.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신니면장을 역임한 이돈화(李敦和)의 청렴결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도 3호선 구 도로를 이용하여 신니면사무소를 지나 용원저수지 입구에서 우회전하면 매점이 나오는데, 매점 뒤 배수구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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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연풍군수 이민제를 기리는 비. 이민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내장원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에 의하면 우변포도대장종사관, 훈련원첨정, 경상우후, 연풍군수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내장원에서 도조세를 독촉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미루어 그동안 연풍군수로서 안부역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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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유등면장 이순교의 송덕을 기리는 비. 1914년 충주군의 유등면과 이안면이 통합되어 이류면[현 대소원면]이 되기 직전인 1913년 유등면장을 역임하면서 면민을 편안케 하고 구휼한 이순교(李淳敎)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장승백이 삼거리에 건립하였다가 1992년 7월에 매산경로당이 건립되면서 송덕비를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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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달천동 달천대교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이채를 기리는 영세불망비. 충주목사 이채(李采)는 우봉이씨로 자는 계량(季良)이고, 호는 화천(華泉)이다. 1774년(영조 5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75년 휘령전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 호조, 형조의 관직을 거쳐 돈령부주부를 역임하였다. 음죽현감 때 무고로 관직을 떠나 귀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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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 신덕로에 있는 일제강점기 덕면의 면장을 역임한 이희명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이희명(李羲命)은 주덕읍이 통합되기 전 덕면의 면장을 1908~1910년, 1911~1914년 두 차례에 걸쳐 역임하였는데, 이 때의 선정을 기려 덕면 사람들이 세운 불망비이다. 본래는 1914년 4월 주덕읍 제내리 성동마을 입구 지방도 599호선 변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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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남변면장 임직현의 청덕비. 임직현(林稷鉉)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1914년에 충주군 남변면과 북변면이 통합되어 충주군 읍내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임직현 청덕비가 1908년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1896~1908년 사이에 면장을 역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호흥학회보』 제7호의 회중 기사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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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장계원의 영세불망비. 장계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시종원 시종, 충청남도 사검위원(忠淸南道査檢委員)을 역임하였고, 1901년 11월 23일 충청북도 봉세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계원은 1901년 흉년으로 인하여 농민들이 파종할 씨앗마저 없게 되자 관찰부를 통해 역둔토의 세조(稅租)를 균등히 나누어주어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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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면장 정하현의 불망비. 정하현의 출생 및 성장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대한제국 시대의 단편적인 기록을 보면, 1902년(고종 39) ‘정하현임내부주사서판임관육등임충청북도관찰부주사서판임관육등(鄭夏鉉任內部主事敍判任官六等任忠淸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이라는 기록이 『의정부총무국관보』 제2299호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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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주 홍기원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 가뭄이 심하게 들자 도촌리 지주인 홍기원이 소작인들의 소작료 일체를 탕감해 주자, 이를 고맙게 여긴 소작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기리고자 비를 건립하였다. 본래 금가면 태광수지 앞에 있었다. 금가면사무소를 새롭게 이전, 건립하게 되면서 홍기원 영세불망비도 주민들의 동의 하에 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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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봉세관 홍재익의 송덕비. 홍재익의 관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 등의 기록을 통하여 추정해 보면, 1899년(고종 36) 12월 23일 내장원소관충청북도각양둔토사검위원겸독쇄관(內藏院所管忠淸北道各糧屯土査檢委員兼督刷官)으로 임명된 이후 충주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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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인물의 무덤 남동쪽 큰길가에 세운 석비. 신도비(神道碑)는 왕 또는 고관의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신도(神道)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을 의미한다. 신도비는 중국 한대(漢代)부터 종2품(從二品) 이상의 관직에 있었던 이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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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래쇠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후추공(後瘳公) 김신국의 신도비. 조선 선조대와 인조대에 활동한 영중추부사 김신국의 신도비이다. 이 비는 1994년 11월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음기되어 있다. 김신국의 유언에 의해 신도비를 세우지 못하다가 1994년 방손 김상수(金象壽)가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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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극형의 신도비. 김극형은 생전에는 창릉참봉(昌陵參奉), 동몽교관(童蒙敎官), 익위사부솔(翊衛司副率), 위솔(衛率), 공조정랑(工曹正郞), 화순현감(和順縣監) 등을 역임하였고, 학식이 높아 송시열과 성선체용설(性善體用說)을 변론하기 위해 편지로 의견을 수없이 교환하였다. 만년에 자기 주장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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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민함의 신도비. 민함(閔涵)은 여흥민씨 판서공파 파조(派祖)이다. 아들은 민응건이다. 민함은 무관으로서 1679년(숙종 5)의 내승(內乘) 민함이 정주목사가 되었고, 1700년(숙종 26) 통제사로 역임 중에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행실이 좋지 않다고 탄핵을 당했으나, 다행히 숙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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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송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민응건의 신도비. 민응건[1608~1671]의 본관은 여흥으로, 1632년(인조 10)에 호방(虎榜) 3등으로 급제하여 선전겸비랑내자(宣傳兼備郞內子)를 제수받았고, 백령첨사, 조방장, 청북방어사, 전라우수사, 경상좌병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다. 충주에서 원주 방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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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풍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인 임성업의 신도비. 임성업(林成業)은 무과에 등과하여 이괄의 난에 출전하였는데, 아우인 임승업(林承業),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 임준업(林俊業)과 함께 참여하여 안현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병자호란 때에도 종횡으로 분치(奔馳)하여 전력을 다하였으나 권간(權奸)들의 방자한 횡포에 뜻을 이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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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문신 최렴의 신도비. 최렴(崔濂)은 본관이 충주이며 시호는 양정(良貞)이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1389년(공양왕 1) 판밀직부사 재직 중에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곧 방환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창하자 검교 의정부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곧 안변에 적거하다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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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급의 신도비. 이상급(李尙伋)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당부(戇夫)이며,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조 때 안찰사가 부임하자 풍기군수였던 이상급은 속관(屬官)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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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의 신도비. 충무공(忠武公) 이수일은 조선 중기 북벌론의 대표격인 이완 대장의 아버지이다. 충주 서촌의 시곡(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서 태어나 30세에 무과에 합격한 후 선전관, 현감을 거치다가 임진왜란을 맞이하였다. 이때 이수일은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무찔렀으며, 40세에 밀양부사가 되었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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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 종중에서 세운 유허비. 조선 전기의 문신 광산김씨 김성원(金性源)의 여덟 아들이 모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그중 네 명은 대과에 합격하여 청관현직(淸官顯職)으로 출세한 것을 ‘팔문(八文)’이라 하고 이를 기려 세운 비석이다. 충주시 엄정면 율종리는 ‘팔문(八文)’이 태어난 곳이다. 광산김씨 문경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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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임호현의 처 광주안씨 효행을 기리는 비. 단월동 상단마을 입구의 임형업 정려각 옆에 자리 잡은 효행비로, 감정공(監正公) 임성업(林成業)의 8대손 임호현의 처 광주안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국도 3호선을 따라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를 지나 수안보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단월동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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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궁가, 문묘 등의 앞에 세워놓은 표석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충주 지역에는 충주향교 앞의 하마비와 충주 경종 태실 앞의 하마비가 있다. 충주 경종 태실 앞에 1689년(숙종 15)에 세운 원자아기씨 태실비와 1726년(영조 2)에 세운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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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 문곡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자선사업가 김광배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광배는 김해김씨로, 조부가 참봉으로 낙향하여 인근 토지를 거의 장악한 대지주로 성장하자 부친 김현명, 사촌동생 김규배와 나란히 빈민 구제에 힘썼다. 이에 동민들이 특히 인근의 어려운 동민들을 구휼하는 데 앞장선 김광배의 자선비를 세우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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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자선사업가 김현명의 공덕을 기리는 비. 참봉 김현명(金顯明)은 동량면 탄동에서 용산골로 이주한 이후 인근 동민들이 극빈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고 남모르게 이들을 도와주어 동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동민들이 빈한한 까닭에 이를 기릴 만한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안 김해김씨 문중에서 필요한 자금을 대고 동민들이 노력 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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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있는 신립장군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신립[1546~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명장으로, 1567년(명종 22) 2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 도총관 등을 거쳐 온성부사, 함경도북병사, 평안도병마절도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 방어의 임무를 띠고 팔도도순변사로 임명되어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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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을 기리는 비. 임경업[1594~1646]은 조선 인조 때의 명장이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며 본관은 평택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1633년(인조 11)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총병의 관직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백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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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려 승려의 탑비. 억정사(億政寺)에 전해오는 비(碑)로, 대지국사가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1390년(공양왕 2)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지의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서서 괴동리 앞들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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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의 처 완산이씨의 정렬을 기린 비. 20세에 임경업의 처가 된 진안대군 7세손인 완산이씨는 시부모에 효를 다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보였다. 1637년(인조 15)에 임경업은 의주부윤에서 평안도의 병권을 장악하자 대의를 떨쳐 명나라와 소통을 하였고, 이를 알게 된 청나라에서는 임경업을 잡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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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구장 이교성의 위령비. 미륵리 병자(丙子) 수해 당시 미륵리 구장이었던 이교성(李敎性)이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자 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미륵리 주민들이 세웠다고 전한다. 다만 병자년(丙子年)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여 1876년(고종 13) 설과 1936년 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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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사미리 사미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구장을 역임한 이철훈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 때 사미리의 구장을 역임한 이철훈(李喆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사미리 주민들이 1942년 8월에 건립하였다. 영덕삼거리에서 장호원으로 가는 국도 38호선을 이용하여 앙성면 용포리 방향으로 진입하여 주유소를 지나 우회전하면 사미리로 들어간다. 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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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구장을 역임한 정인덕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 1937년 신니면 용원2구 주민들이 20여 년간 구장직을 역임하며 마을 일을 열심히 수행한 정인덕(鄭寅德)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세웠다. 구 국도 3호선 변에 위치한 용원저수지 배수구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비좌규수의 형태이며, 상단이 하단에 비하여 약간 넓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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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 전기 고승 법경대사의 부도탑비. 법경대사는 879년(헌강왕 5)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웠고,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는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다 924년(태조 7)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이 국사로 대우하며 정토사 주지로 임명하였다. 941년(태조 24) 63세로 입적하자 태조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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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고려 전기 홍법국사 탑비.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선덕왕대에 태어나 12세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당나라를 다녀온 뒤 선(禪)을 크게 일으켜 국사 칭호를 받았다.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하였다. 정토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 목종이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내려주러 탑비를 건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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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밝힌 비. 중앙탑면은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많은 문화 유적이 있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던 지역이다. 특히 고대의 왕실이나 최고 지배층을 연상할 수 있는 지명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어 주목되는데, 용전리, 봉황리(鳳凰里), 천룡산(天龍山), 을궁산(乙宮山), 태자뜰[太子坪] 등을 예로 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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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려시대 승려 보각국사의 탑비.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392년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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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청풍김씨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비. 1936년 병자 수해 때, 효성이 지극한 청풍김씨가 급류에 휘말려 사망함에 따라 원혼을 풀어주기 위하여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충주 미륵대원지 주차장 안쪽 자연 암석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미륵세계사 입구에 있다가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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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축성에 대한 사적비.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를 겪은 뒤 전국의 성첩과 군기를 보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조칙이 내려오자 1869년 2월부터 읍성을 개축하기 시작하여 10개월 만인 11월에 준공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화강암 충주 축성사적비를 세웠으며, 앞면에는 축성 연대와 성의 크기, 문루의 크기를 상세히 기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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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계산 중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비. 1692년(숙종 18)에 청룡사 중창 및 경영 등에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는 데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석이다.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과 품목 및 수량을 적고 있어 당시 사찰의 경영 상태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며, 비문에는 2-3차례 추가로 기록한 부분도 있다. 충주 청룡사 위전비는 1...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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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 누정(樓亭)이란 누와 정의 합성어로서 『설문』에 의하면 누는 중첩시켜 올린 집이라고 하여 형상에 따라 정의하고 있고, 『석명』에 의하면 정(亭)은 정(停)으로 표기하여 잠시 놀다가는 곳으로 풀이하여 기능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누정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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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중앙공원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 1442년(세종 24) 경주에 있던 「태조 영정」이 충주의 동루에 잠시 봉안되었는데, 누각이 좁고 기울어져 충주목사 김중성(金仲誠)이 “오늘날 어용(御容)이 잠깐 멈추신 것은 참으로 이 고을이 만나기 어려운 영광이니 신자(臣子)로서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받들어야 할 것이다”라며 경영루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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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단애. 도로변에 쌓은 석축을 1초, 절벽 중간에 쌓은 석축을 2초, 상단의 산신각 밑 부분의 석축을 3초라 하여 삼초대(三超臺)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선봉을 다툰 곳이기도 하며, 친명배금의 성리학적 명분에 충실한 충신 임경업 장군이 유년기에 100여 척이 되는 절벽을 오르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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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에 있는 누정. 1981년 12월 충주시 지현동에 사는 농부 이명수(李明洙)가 부모님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양친 산소가 있는 곳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충주에서 살미면 방면으로 국도 3호선을 지나 살미면 세성리 못 미쳐 자연가든 앞에서 우회전하여 고개를 넘으면 문강사거리가 나온다. 다시 우회전하여 약 3㎞ 정도가면 우측으로 조그만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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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하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충주시 탄금호 조정지댐을 건너 원주 방향으로 하소마을 앞에서 왼쪽 길을 따라 600여m 들어가면 남한강변의 하담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1817년(순조 17)에 홍이상의 후손인 홍승하(洪承夏), 홍관식(洪寬植) 등의 제족들과 선비들이 선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이후 청하공(淸河公) 옥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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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 삼연정의 유래를 살펴보면, 삼(三)은 향리에 덕련산(德蓮山)이 있고 향리 역시 덕련리(德蓮里)이며 이교면의 호가 연은(蓮隱)인지라 호를 차용하여 삼연정(三蓮亭)이 된 것이다. 주덕읍 덕련리 조동마을 안쪽 약 100여 평의 터에 동문수학한 이교면의 문하생들이 동문계를 조직하여 서당 터에 세운 팔각정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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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오산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국도 3호선을 따라 수안보 방면으로 가다가 지방도 597호선을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오산마을이 나온다. 오산마을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면 마을회관 앞에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 동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얕은 동산인 일색봉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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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호암지 동산에 있는 조선 말기 정자. 1903년(고종 40)에 충청북도관찰사 김석규(金錫圭)가 현재 충주시교육청 위치에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라는 의미로 ‘천운정’이라 이름 붙인 4칸 반의 육각 정자이다. 1906년에 공립보통학교 건물을 건립하기 위하여 연못을 메울 때 현판은 일본 사람이 절취하여 가져가고 ‘천운정’은 사직산으로 이건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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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문산의 산정. 충주시 칠금동에 소재한 구릉지인 대문산(大門山) 산정으로, 이곳에서 우륵(于勒)의 가야금(伽倻琴)에 대한 일화가 전해오고,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 장군의 격전지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 552년(진흥왕 13) 가야국에서 귀화한 악사(樂士) 우륵이 이곳에서 금(琴)을 탔다[彈]는 것에서 탄금대(彈琴臺)라는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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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정자. 충주시내에서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중앙탑 방면으로 나아가다 보면 잔디구장이 나타나고 잔디구장 옆으로 아담하게 숲으로 둘러싸인 동산인 충주 탄금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충주문화원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언덕길을 올라간 후 충혼탑 방향의 산책길을 따라가면 감자꽃노래비를 지난 다음 언덕 위에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충주 탄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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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충주에서 수안보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 국도 36호선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400여 m를 가면 왼쪽 장목등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시 살미면 무릉리에 최응성이 거처하던 가옥 앞에 1720년경에 지었다고 한다. 또한 1874년(고종 11)에는 권상하와 최응성을 향사하고 있는 무릉사를 지었...
관아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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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 관가의 건물 현황. 충주는 1395년(태조 4) 충청감영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감영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할 때 충주부가 되었으며, 1896년(고종 33) 13도제를 실시할 때 충청북도의 관찰사부(도청)가 되었다. 1908년(융희 2) 충청북도 관찰도(도청)가 청주로 옮겨갈 때까지 충청북도의 중심 도시였다. 따라서 많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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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 안에 있는 조선 후기 수직청 건물. 산고수청각은 관아공원 내 제금당 뒤편에 있으며, 관아공원의 북쪽에는 충청북도 충주교육청이 있고 서쪽에는 문화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관아공원 내 충주 청령헌, 충주 제금당 등과 함께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70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앞면 4칸,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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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터. 충주 청령헌(淸寧軒)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83년 보수할 때 옥개 부분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1870년(고종 7) 8월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같은 해 10월에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의 지시로 창룡사를 옮겨 중건한 건물임이 밝혀졌다. 그 동안 내부를 개조하여 중원군 청사로 사용하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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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가 집정하던 동헌.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277년(충렬왕 3) 충주성이 개축(改築)되었고 1870년(고종 7) 병인양요 후 조칙에 의해 충주성이 개축되었다고 한다. 충주 청령헌은 1870년 8월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하여 세웠다. 그 후 1895년(고종 32)에 전국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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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건물. 동헌이 아닌 별관으로 사용된 관아 건물로,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 행차하였을 때 머무르던 곳으로 뒤쪽의 산고수청각은 이의 부속 건물이었다. 1870년(고종 7) 충주 청령헌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하여 아사(衙舍)로 사용하였고, 해방 후에는 지방관인 중원군수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가 1983년 중...
역원지
역원지
역원지
역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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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역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연원역에 소속되어 노(奴) 61명, 비(婢) 41명, 기마(騎馬) 2필과 복마(卜馬) 5필이 있었던 것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충주 지역에서 운용되던 연원역, 단월역(丹月驛), 용안역(龍安驛), 안부역(安富驛) 등 다른 역에 소속된 노비의 수가 대체로 200여 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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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유주막마을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역터. 원래 고려시대 단월부곡(丹月部曲)이 있던 곳으로 노(奴) 110명, 비(婢) 89명, 대마 2필, 기마 7필, 복마 5필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1546~1592] 장군이 이끄는 8,000명의 군사가 충주 탄금대에서 일전을 치르기 전 이곳에 진을 치기도 하였다. 단월역 남쪽에 정지상(鄭知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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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원터. 역(驛)과 함께 원(院)은 공무 수행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국가가 설치한 공공 시설물이다. 원에서는 숙식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어 운영하였는데 신니면 모남리에는 모도원의 지명과 함께 그 터가 전한다. 원은 삼국시대부터 모습이 보이는 역과 함께 공공 시설물로 운영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사찰과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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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음지말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안부역(安富驛)은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조에 처음 기록이 나오며, 조선시대에는 연원도(連原道)에 속한 14개 역 중 하나였다. 안부역에는 대마 3필, 기마 6필, 복마 6필, 노(奴) 106명, 비(婢) 28명, 역리(驛吏) 25명이 속해 있었다. 안부역은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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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연원역에는 속역을 관할하던 찰방 1명과 역리 34명, 지인(知印) 17명, 사령(使令) 10명, 노(奴) 155명, 비(婢) 94명 등 모두 311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말은 대마 3필, 기마 4필, 복마 7필이 있었다. 연원역은 고려시대 평구도에 속한 참역의 하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충청도에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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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용안역에는 별장 1명,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 2필, 기마 7필, 복마 7필이 있었다. 용안역은 원래 고려시대 광주도(廣州道)에 속한 역으로 요안역(遙安驛)으로 불렸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원도 소속이 되었다. 주의 서쪽 15리에 있었으며, 원래 음성에 속해 있었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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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3리에 있는 조선 말기 명성황후 피난지. 1882년(고종 19) 6월 9일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명성황후는 서울을 탈출하여 고향인 여주의 민위영 집에 숨었다가,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의 향제를 거쳐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을 찾아가던 중 자취를 감추기 위해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국망산 밑 신흥동 이시영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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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 있는 조선 말기 동학농민군의 활동 근거지. 1894년 7월 충주와 제천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 성두환(成斗煥)이 신당리에서 농민군 수백 명을 모아 봉기하자 인근에서 농민군이 몰려들어 그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후 성두환은 신당리를 중심으로 충주와 제천은 물론 청풍과 단양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충주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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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외룡마을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원 터. 용원리 외룡마을이 원터로서, 용안(用安)역, 용안(龍安)역, 용원역 등으로도 불렸다. 고려시대 이후 충주에서 서울로 갈 때는 이 역을 통과해야만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忠原縣) 역원의 기록에 의하면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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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서원터. 충주 팔봉서원은 이자(李耔), 이연경(李延慶), 김세필(金世弼), 노수신(盧守愼) 네 명을 봉사하는 서원이다. 이자(李耔)[1480~1533]는 본관이 한산(韓山)으로 이색의 후손이다. 대사헌, 한성판윤,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후 1529년(중종 24) 현재의 살미면...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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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태실비. 가춘리 주동 태실비는 1983년 4월에 발견되었는데, 비문과 『태봉등록(胎封謄錄)』, 『선원계보(璿源系譜)』를 통해 비의 주인공이 인조의 후궁인 조귀인(趙貴人) 소생의 1남 숭선군(崇善君) 이징(李澂)과 2남 낙선군(樂善君) 이숙(李潚)임이 밝혀졌다. 1643년 숭선군을 장태(藏胎)하고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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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종의 태실. 경종대왕 태실비에 의하면 경종이 1688년(숙종 18) 10월에 태어나자 이듬해 2월에 태장하였으며, 1762년(영조 2) 9월 가봉(加封)하였다. 영조는 선왕 경종의 태실을 꾸미고, 순호군(巡護軍) 16명을 두어 3년마다 위안제(慰安祭)를 지냈다. 태장(胎藏) 시 태실비에 ‘강희이십칠년십월이십팔일...
성혈
성혈
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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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문성리 문암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구멍. 바위구멍은 인위적으로 바위에 구멍을 쪼거나 갈아서 만든 것이다. 바위구멍은 상당한 작업 시간이 요구되며, 작업자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목된다. 선사시대의 바위구멍은 고인돌의 덮개돌 표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죽은 이의 안녕을 비는 행위로 보거나 가족 관계, 별자리 등으로 보는 등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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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 구멍. 바위에 구멍을 파놓은 예는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탑의 기단갑석·제단·별자리도 등에서 관찰된다. 바위에 구멍을 쪼거나 갈아서 파는 행위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주로 성스러운 의식에 행해지는 것으로 보았다. 바위구멍은 성혈(聖穴) 또는 굼, 컵 마크(cup-mark) 등으로 불린다. 바위구멍은 충주에서 여러 예...
석각
석각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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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만든 사람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고 관련 인물에 대한 이야기조차 전하지 않는다. 충주에서 단양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충주호를 끼고 달리다 보면 월악산 못 미처에서 공이대교를 지나게 된다. 공이대교에서 우측으로 약 3㎞ 들어가면 공이리 산신각이 나타난다. 이 앞 물가에 암소바위가 있고 근방에 암각 바둑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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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에 있는 마애비.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비의 윤곽을 만들고 글자를 새긴 마애비이다. 마애비는 일반적으로 경승지에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논강리 강월동천은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 어귀에 위치하여 마을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태면에서 엄정면소재지로 통하는 중간 강현리 어귀에 강현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