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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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민정 업무를 담당하였던 미군정 부대. 8·15 해방 직후 38선 이남 지역을 점령한 미 전술군 주력 부대는 제24군단 휘하의 제6보병사단, 제7보병사단, 제40보병사단과 군수 지원 부대인 ASCOM 24(Army Service Command 24)였다. 그중 충청북도 지역을 관할한 전술군은 제7보병사단 제17보병연대로, 1945년 10월 5일 제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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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충주와 개신교와의 만남은 서울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길목과 무관하지가 않다. 길은 곧 사람과 문물, 그 모든 것의 흐름이자 통로이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기 전 충청도는 남도와 경상도 그리고 서울을 잇는 길목으로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과천~시흥~수원~성환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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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건축 문화는 시대 조건의 반영으로 그 시대에 지역적 특성을 지닌 건축적 총체를 의미한다. 충주의 건축 문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의 중원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지닌 건축적인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충주 지역이 중원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중원 지역은 제천·단양·청주·보은·진천·원주·영월·여주·안성·영주에 이르는 넓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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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부 관련 부처와의 협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설립된 단체. 경제 단체란 일반적으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관련 기업들 간의 협력 및 정부 부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대체로 기업 활동에 필요한 법률 제정과 규제에 대하여 경영인들의 목소리를 응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각 단체의 중앙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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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한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변성을 받거나 마그마의 관입으로 더욱 단단한 지각으로 구성된 안정 지괴에 속한다. 게다가 남동에서 북서로 미는 태평양판을 비롯하여 남쪽에서 밀려오는 필리핀판, 동쪽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동해 지각의 확장 등 다양한 방향의 횡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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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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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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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만든 사람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고 관련 인물에 대한 이야기조차 전하지 않는다. 충주에서 단양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충주호를 끼고 달리다 보면 월악산 못 미처에서 공이대교를 지나게 된다. 공이대교에서 우측으로 약 3㎞ 들어가면 공이리 산신각이 나타난다. 이 앞 물가에 암소바위가 있고 근방에 암각 바둑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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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초대 관찰사 박규희의 집정 모습을 극화한 연극. 충청북도가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설치되고 충주가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가 된 정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충주시의 도움을 받아 충청북도 초대 관찰사 박규희의 집정 모습을 극화하여 공연하였다. 1996년 8월 1일 초저녁 충주시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장, 한국연극협회 충주지부장, 충주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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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2007년 5월 31일 현재 충주시의 교량은 총 321개소이고, 교량의 총연장은 28,676.5m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상의 교량은 총 60개소이고, 교량의 총연장은 12,451m로 충주시 전체 교량의 43.4%에 해당한다. 국도상의 교량은 국도 3호선에 55개소 연장 5,036.3m, 국도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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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통합 충주시에는 고속국도 2개 노선, 일반국도 4개 노선, 국가지원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9개 노선, 군도 27개 노선 등이 있다. 또한 관내에는 충북선의 주덕역, 달천역, 동량역, 삼탄역, 충주역, 목행역 등의 6개 역이 있다. 1. 광역 도로 교통망 경기도 여주-경상북도 구미 간의 중부내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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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에서 살미면 신당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6호선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경상북도 울진까지 연결되는 국도로 충주시 남부를 동서로 지나간다. 일명 36번 국도, 보령~울진길이라고도 한다. 충주시 구간의 시점은 주덕읍 대곡리이며, 종점은 살미면 신당리이다. 충주에서 서쪽으로는 음성을 거쳐 청주까지, 동쪽으로는 청풍과 단양까지 연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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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치된 행정구역. 6세기 중엽 신라의 진흥왕은 활발하게 영역을 확장하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그 결과 동북쪽으로는 함경도의 마운령과 황초령, 서북쪽으로는 한강 하류지역까지 차지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고구려가 장악했던 국원, 즉 충주 지역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이듬해 귀족 자제와 왕경(王京) 6부(部)의 부유한 백성을 국원소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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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에 조성된 사업가 김금산의 묘.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 88-1번지 금산농원의 능선에 위치한 묘로, 금산건설과 현대주택의 회장을 역임한 김금산의 묘이다. 김금산은 김해김씨 후인으로 1919년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사업에 매진하여 큰 기업을 일구어낸 인물이다. 1985년 가락종친회 경인지구 종친회장(駕洛宗親會京仁地區宗親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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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본류로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충주시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강. 본래 명칭은 한강이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므로 편의상 남한강이라고 부른다.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大德山)[1,307m]에서 발원하여 골지천, 동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흐른 뒤 영월읍에서 평창강(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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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팔당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올라오던 황포돛대를 세운 상선들과 영월, 단양 등지에서 서울로 향하던 뗏목들이 목계나루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목계의 상경기는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목계나루에는 남한강을 건너 서울로 가는 손님들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와 찻배가 있어서 목계의 중요한 수입원 구실을 하였다. 이러한 목계마을이 회복 불능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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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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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서울특별시 등에서 1987년부터 매년 10~11월에 개최되는 미술 작품 전시회. 남한강전은 충청북도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한강 유역의 제천, 단양, 음성, 괴산, 장호원 등에서 활동하는 미술 작가들의 그룹 전시회로, 충주와 제천·서울 등지에서 매년 순회 전시회를 열고 있다. 1986년 가을 조한상, 이인봉, 이성주, 신범승 등 충주 지역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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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1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동막골과 보사골에서 따로 제사를 지내다가 충주댐 건설에 따른 충주·단양 간 도로 개설로 동막골 산신당이 철거되면서 보사골에서만 지낸다. 보사골 큰골에 2001년 컨테이너 박스로 지은 산신당이 있다.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신체는 모셔져 있지 않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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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서식, 분포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국제자연보호연맹에서는 ‘보호대상 생물 자료집 범주(red data book category)’로서 (1) 절멸종(Ex)은 야생적으로 이미 사라진 종, (2) 절멸 위기종(E)은 절멸의 위험에 빠져 있고 그 근원적인 요인이 계속 작용할 경우 생존이 어려운 종, (3) 위협받는 종(T)은 근원적인 원인이 계속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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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4월 초부터 약 6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의 동학 접주(接主)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의 신원과 외세를 물리칠 목적으로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충청북도 지역은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충청북도는 18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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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대소리에 있는 산. 마산은 봉화불을 올리던 산으로서 일명 봉화산 또는 봉화뚝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마산의 산정에는 약 100㎡ 정도의 면적에 돌로 쌓은 축대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봉수대터라고 한다. 1898년에 편찬된 『충주군읍지』에서도 “마산 봉수는 충주에서 서쪽으로 25리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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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과 목벌동·종민동을 연결하는 고개. 마즈막재는 신라시대에 나무벌[木伐]과 같은 뜻인 깊은나무고개[心木峙]였다. 계명산 옛 이름인 심항산에서 따와 심항현이라 하였고, 심항현의 한자 뜻을 풀어 마수막재라고도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즈막재로 발음이 바뀌었다. 한편,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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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의 옛 이름. 목계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형성된 촌락이 아니고, 목계가 가지는 자연 지리적 이점에 의하여 조선 후기인 1750년 이전에 이미 내륙의 상항(商港)으로 강을 내려오는 어염선이 정박하며 세를 내는 곳이 되었다. 한강의 가항구간 중 중간에 위치하여 육지와 바다의 물산이 집산될 수 있는 지점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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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옛날 뱃길이 무사하고 내륙의 장사가 잘 되기를 비는 민속 의례. 목계 지역은 충북선 철도가 가설된 1930년대 이전까지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목계 지역이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성황을 누릴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가흥창(嘉興倉)의 설치와 존속에 있다. 가흥창은 1465년(세조 11)에 설치되어 개항 전까지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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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 철도와 도로망이 개설된 후 수운을 기반으로 성장해 가던 남한강 주변의 많은 포구들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만, 목계는 나름대로 새로운 변신을 하며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 6·25전쟁 이후까지도 수운의 기능을 유지하였다. 1960년대 초 팔당댐 공사로 수로가 막히기 전까지는 돛단배가 오르내렸고 강원도 정선 등에서 생산된 목재를 서울로 운반하는 뗏목은 수시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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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와 중앙탑면 장천리를 연결하는 남한강 위에 있는 다리. 엄정면 목계리 마을의 이름을 따서 목계대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1,302.1m, 폭은 19.4m, 유효 폭은 18.5m, 높이는 13m이다. 경간 수는 26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남한강 위를 횡단하는 지점에서 50.1m이다. 교량의 상부구조 형식은 STB형이고, 하부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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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이루어지는 무용인들의 창작 활동. 충주의 무용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의 무용협회로 등록된 단체가 선도하고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의 산하 단체인 한국무용협회 충주지부는 지역 우수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청소년들의 진로 지도 및 소질 계발, 예술인과 지도자 육성 등을 통해 지역 문화 예술 진흥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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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문학인과 문학단체. 충주 문학의 역사는 길다. 신라의 외교 문서를 명문으로 썼다는 문장가 강수(强首)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충주에서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들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여기서는 1910년 이후 충주 출신 또는 충주 인근의 출생으로 활동한 문인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1. 유재형(柳在衡) 호는 유촌(柳村)이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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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봉방동에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북지부 산하 단체. 충청북도 충주시와 음성군 지역 노동자들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권익 확보와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해 설립되었다. 1996년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학생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주지회, 충주농민회, 배이산업노동조합, 한국통신노동조합 대표자가 모여 지역 협의체를 구성한데 이어 1998년 전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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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 재오개리 발티마을 뒤에 있는 고개로서,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가 이곳이었다고 한다. 충주의 진산인 남산과 대림산 사이에 위치하며, 남·북 산줄기가 동·서로 자르는 구조선을 따라 풍화, 침식되면서 낮아진 능선부가 고개로 활용된 것이다. 주변 산지와 함께 흑운모석영편마암(계명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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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와 주덕읍 신양리에서 초벌 논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풍년이 들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부르는 「방아 소리」는 여러 잡가에 삽입된 벼농사 노래 중의 논매기 소리이다. 「방아호」또는 「방개가 논다」라고도 한다. ‘방아호(放我乎)’는 ‘마음을 놓았다’라는 뜻으로, 농부들이 논매기까지 하였으니 마음을 놓고 풍년을 기대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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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水原). 호는 운암(雲庵). 증조할아버지는 백후진(白厚鎭)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백명수(白命洙)이다. 아버지 백낙성(白樂成), 어머니 여양진씨(驪陽陳氏) 진성임(陳聖任)이다. 백남규는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진위대 부위(副尉)로 근무했다. 1907년 여름의 군대해산 이후에 동지를 규합하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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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 서덕천에 있는 조선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지질구조상 옥천 지향사에 해당된다. 이 옥천계의 변성퇴적암은 충주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옥천을 지나 익산 북쪽 약 15㎞까지 띠 모양으로 길게 분포한다. 조선계층은 고생대층으로 수안보 부근을 기점으로 제천, 단양을 지나 강원도의 영월, 산척 등에 분포하며, 회백색 규암·석영편암·석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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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복지 시설. 6·25전쟁으로 인해 약 4만여 명에 이르는 보훈 대상자의 미망인들이 생겨났으나 이들을 돕기 위한 복지 시설이나 휴양 시설은 전무하였다. 이에 국가보훈처와 한국보훈의료공단 및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가 주축이 되어 미망인들을 위한 휴양 시설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국비로 보훈 기금 약 70억 원을 조성하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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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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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되어 있는 주변에 비해 높이 솟은 봉우리.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북서부 차령산지, 남동부 소백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의 형상을 띤 지역으로 산지의 비중이 높다. 그에 따라 산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솟아 있는 다양한 고도의 산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대체로 300~1,000m에 이르는 중·저산성 산지들이며, 충주시 경계부로 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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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김왕기가 편찬한 문화 유적 답사기. 『산수화에 다소곳 숨어 있는 중원문화 이야기』1은 2004년 김왕기가 미덕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충주 등 중원문화권의 이야기를 담아서 편찬한 역사책이다. 그 후 2005년과 2006년에 김왕기는 충주·제천·단양·괴산·음성 등으로 현지조사를 한 결과를 계속해서 2, 3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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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살미면(乷味面)의 옛 이름은 사을미면(沙乙未面)이다. 사을미란 모래가 많은 물가라는 뜻으로, 마을이 남한강변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가 많이 쌓이게 되어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한편 바뀐 명칭인 살미의 ‘살(乷)’은 물결이 빠르다는 뜻으로, 살미면 지역이 계곡이 좁고 물살이 빨라 붙여진 이름이다. 또 ‘미(味)’는 이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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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원성은 고구려가 평양 천도 후 남진을 계속하여 5세기 전반 충주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수도 다음 가는 부도(副都)였다. 고구려의 남방 경영 책원지이자 신라 공격의 전초기지였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고구려 남진 정책의 성공을 기념하는 비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한 것은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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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城郭)은 성과 곽의 합성어다. 성은 본래 주민들의 생업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 흙으로 쌓은 방어 시설을 말하며, 곽은 도시의 발전과 확대 과정에서 생겨난 성(내성)을 둘러싸는 외성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성곽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조선전」과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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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약한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성두환(成斗煥)[1845~1895]의 출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충청도 청풍 송계리에서 농사를 짓던 평민이었다는 설과, 조상 대대로 한의원을 하던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그를 토대로 많은 사람들을 동학으로 끌어들였다는 설이다. 성두환이 동학에 입도한 시기는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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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성마루에 있는 충주 지역 최초의 사립 미술관. 조태남 관장이 어릴 적부터 자라온 고향 터에 예술인의 안목을 충족시키면서 대중성을 함께 갖춘 문화예술 공간을 설립하기 위하여 자비를 들여 2006년 건물을 신축한 뒤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7년 12월 1일 성마루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조태남 관장은 성마루미술관의 시공부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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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세성리의 옛 이름은 새술막이었다. 이곳에 새로 주막이 만들어지면서 그런 이름이 처음 만들어졌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세성리가 되었다. 신주막(新酒幕)이라는 말은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부터 발견된다. 1907년에 발표된 『한국 호구표』에 세성리가 이미 등장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영역의 세성리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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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는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산계동(山溪洞) 또는 목계리로 불렀다. 산계동의 산(山)은 ‘뫼’ 혹은 ‘모이’로 불리다가 ‘목’으로 변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 뒷산인 갈산이 ‘갈매기’로 부르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와 같은 목계리의 지역 구성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목계를 구성하던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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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 있는 조선 말기 동학농민군의 활동 근거지. 1894년 7월 충주와 제천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 성두환(成斗煥)이 신당리에서 농민군 수백 명을 모아 봉기하자 인근에서 농민군이 몰려들어 그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후 성두환은 신당리를 중심으로 충주와 제천은 물론 청풍과 단양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충주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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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매리에 있던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立石, Menhir]은 고인돌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에 발달한 거석(巨石) 문화의 상징물이다. 고인돌과 짝을 이루어 무덤의 표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 마을 어귀나 중심부에 세워져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거나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것 등 그 역할이 다양하며 숭배의 대상이 된다. 선돌은 보통 남녀 쌍을 이루어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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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심항산 봉수는 충주호변에 위치한 심항산 정상부에 축조된 봉수로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동쪽으로 청풍의 오현(吾峴)과 응하고 서쪽으로 마산과 통하였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100명 등 마산봉수와 같은 규모의 봉군이 속해 있었다. 심항산 봉수가 있는 심항산은 오성산, 계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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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서 쌍효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살미면 소재지에서 단양 방향으로 약 12㎞ 지점에 있는 문화리 신당장에서 우측으로 대미산 지맥을 따라 들어가는 곳에 신당리가 있다. 이 마을에 곱게 단청된 정문이 있는데, 흔히 ‘쌍효각’이라고 한다. 「쌍효각 전설」은 이와 관련한 효행전설이다. 형이 이시희(李時熙), 동생이 이시걸(李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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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과 출판 활동의 총칭. 언론은 충주 지역의 정치·사회·문화·교육·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말이나 글로써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정보 전달, 문제 제기, 여론을 형성을 하는 활동을 통틀어 말하고, 출판은 책·잡지·소책자를 인쇄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하거나 배포하는 일련의 행위나 사업을 통틀어 말한다. 1.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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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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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연원역에는 속역을 관할하던 찰방 1명과 역리 34명, 지인(知印) 17명, 사령(使令) 10명, 노(奴) 155명, 비(婢) 94명 등 모두 311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말은 대마 3필, 기마 4필, 복마 7필이 있었다. 연원역은 고려시대 평구도에 속한 참역의 하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충청도에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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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오미기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충주에서 목행대교를 건너 금가면쪽으로 접어들면서 남한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김생사지가 있는 유송리를 지나 오석리가 나온다. 남한강쪽으로 첫 번째에 있던 마을이 오미기마을이다. 오석리 토기산포지는 오미기마을에서 하류쪽 아랫말 지역까지 걸쳐 있다. 오석리 토기산포지는 충주댐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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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자장가삼아 듣던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 그 이야기의 한 축이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지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북주(北周)[삼국사기에는 後周라 하였다]의 무제가 침입 시에 선봉장으로 활약한 온달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여세를 몰아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남하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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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침입 사건. 왜구는 일본 남북조의 혼란기에 생겨난 집단으로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떼를 지어 수시로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 연안까지 침입하여 약탈과 살인 등 만행을 일삼았던 해적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왜구는 고려시대 충정왕(忠定王)[1349~1351] 때부터 우왕(禑王)[1375~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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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용당리(龍塘里)와 쌍천리(雙川里)를 합하여 용천리라 하였다.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80년의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용당(龍堂)이 나오는데 현재의 용천리를 말한다. 용당이라는 이름은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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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우팽(禹伻)이며, 할아버지는 밀직제학을 지낸 우복생(禹福生)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우희열(禹希烈)이며, 어머니는 삼사우사와 도원수를 지낸 금성군 최공철(崔公哲)의 딸이다. 처는 문하좌정승를 지낸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자 소헌왕후의 사촌 여동생이다. 우경지(禹敬之)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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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현길(見吉), 호는 구암(懼庵) 또는 동계(東溪). 증조부는 현령 우효친(禹孝親)이고, 조부는 증좌승지 우순좌(禹舜佐)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우숭선(禹崇善)이고, 어머니는 경주군수 이수지(李洙之)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며 당시 성균관 예식에 참석하는 당상관에게 유생들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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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언확(彦確). 증조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우경지(禹敬之)이며, 할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우효종(禹孝從)이다. 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낸 우인손(禹仁孫)이며, 어머니는 진사 송찬(宋瓚)의 딸 진천송씨이다. 1507년(중종 2) 충주에서 태어난 우상(禹鏛)은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급제하고, 1540년 식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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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字)는 애지(愛之). 증조부는 밀직부사를 지낸 우팽(禹伻)이며, 조부는 밀직사사를 지낸 우복생(禹福生)이다.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우효정(禹孝征)이고, 어머니는 안악양씨(安岳楊氏)로 만호(萬戶) 양춘백(楊春伯)의 딸이다. 1491년(성종 22)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498년(연산 4)에는 중시 병과 제10인자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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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할아버지는 지도평의사사(知都評議使司) 우경절(禹慶節)이며, 할아버지는 문하시중 우중대(禹仲大)이다. 아버지는 문하시중 우천석(禹天錫)이며, 부인은 군부인(郡夫人) 청풍김씨 감문위대호군 김현창(金鉉昌)의 딸이다. 장자는 우수생(禹壽生)이며, 둘째는 호군 우덕생(禹德生)이고, 셋째는 판밀직사사상호군 우복생(禹福生)이며, 넷째는 우소생(禹小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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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고문하시중(門下侍中) 우천석(禹天錫)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밀직부사(密直副使) 우팽(禹伻)이며, 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우복생(禹福生)이며, 어머니는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진주유씨(晋州柳氏)이다. 우희열은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가 1404년(태종 4) 호조전서(戶曹典書)가 되고 1408년(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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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여객(旅客)·교통제도. 원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여행자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위해 교통의 요지에 설치한 공공여관이다. 원이 설치되어 운영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에 지방통치체제를 정비하면서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1445년(세종 27)에 원의 시설을 완비한 후 인근의 주민 가운데 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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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 충주호에 있는 선착장. 충주댐으로 조성된 인공 호수인 충주호는 남한강 상류 지역인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일대에 걸쳐 있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충주호는 충주 계명산 아래에 건설된 충주댐의 본 댐에서 멀리 단양 도담삼봉에까지 이르는 광활한 호수를 이루고 있으며, 선박을 통해 선상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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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영농조합 법인인 장안농장의 대표 유근모 사장은 시인이다. 열 명의 농부가 천만 명으로 늘어나기를 바라며 농사를 짓는 그는 아직도 문청(文靑)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장안농장 홈페이지인 http://www.ssamnhub.com에 나오는 그의 귀농일기를 보면 그는 아직도 시인이기를 지향한다. 농장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려는 의지는 유기농 채소에 대한 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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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토지와 자원 등 자연을 이용하여 인간이 만들어내는 내적인 시스템과 외적인 구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인문지리에는 인간들이 자연을 인위적으로 나누어 만든 위치와 면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읍·면·동과 같은 행정구역과 역사 속에 나타나는 목·군·현 그리고 방리도 중요한 인문지리적 요소이다. 인구와 인구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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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1910년 8월 한국병합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조선 침략이 완성되었다.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더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1910년 10월부터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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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기상 현상과 자연 현상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 충주 지방은 자연재해 중 한해·냉해·설해 등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주로 여름철 집중 호우와 태풍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다. 충주는 풍수해가 많은 한강 유역 중부에 위치하여 대홍수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잦은 편이지만, 면밀히 기록된 것은 많지 않다. 현재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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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주는 우리나라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북동쪽으로는 제천시, 서로 음성군, 남으로 괴산군과 경상북도에 면하고, 북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면한다. 충청북도에서는 북동부에 치우쳐 위치해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소백산맥의 여맥인 계명산·남산·대림산·월악산, 서쪽으로 국망산, 북쪽으로 천등산 등 비교적 높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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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사록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봉화호장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의 4세손으로 검교밀직제학을 지낸 아버지 정운경(鄭云敬)과 어머니 단양우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정도전(鄭道傳)은 1337년(충숙왕 복위6) 단양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남한강의 도담삼봉을 좋아해 정자를 짓고 즐겨 찾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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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형 씨는 마수리 농요보존회원 중 두 번째로 지남기 선생을 잘 아는 사람이다. 1943년에 중원군 살미면 문화리 2구에서 태어난 유진형 씨는 음악적인 재질이 있는지 어릴 때부터 농악대를 쫓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청년이 되어 꽹과리도 잘 두드리고 장구도 잘 치고 상모도 잘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농악놀이나 무당의 푸닥거리에는 빼놓지 않고 구경을 가거나 참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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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가장 빨리 변방의 소식을 중앙으로 전달하던 통신 수단이었다. 30여 리를 기준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쌓고 횃불과 연기를 올리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봉수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지만 고려시대에 와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조선 세종 때에 봉수대 시설과 봉군의 신분,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조선 봉수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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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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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의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과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충주 지역의 거시적인 지형 윤곽은 서부 차령산지, 중앙부 충주분지, 동부 태백산지와 남동부 소백산지로 3분화될 수 있다. 지질은 이러한 지형적 특색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 남동부 지역은 고생대 변성퇴적암류가 분포되어 있고, 중북부 지역은 중생대 화강암류가 분포되어 있고, 북동부와 서부 경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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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산간 분지이다. 이곳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침식 분지로서, 남한강이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상류 유역을 흐르다가 처음으로 하곡이 넓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지점이 바로 충주댐 부근이다. 달천 또한 속리산에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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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양(驪陽). 8세 때 아버지가 냇물을 건너다 물이 불어나서 떠내려가는데 이것을 본 진후는 대성통곡하며 자기도 아버지를 따라 죽겠다고 냇물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물결이 잔잔해져 아버지를 구하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탄했다. 또한 13세 때에는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으며 또한 약을 올리며 대변까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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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은 재위 12년째를 맞은 551년에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친다. 개국의 의지를 실천하여 신라의 중흥을 이룩한 진흥왕의 일대 사업은 국경 지대의 요충인 낭성(娘城) 순수에서 우륵의 신가(하림조)를 접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진흥왕과 우륵(于勒)의 만남에는 어떠한 수수께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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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호군(護軍) 최녹원(崔祿元)의 아들이다. 세종조에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정벌한 공으로 세조 묘정에 배향된 최윤덕(崔潤德)이 아들이며, 그 외에도 세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의 전공으로 공민왕 때 충용위산원(忠勇衛散員)에 기용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공총랑(典工摠郞)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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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김풍식·이재준이 충주 지역 기와 사진을 모아 놓은 도록. 1970년대 초반부터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예성동호회와 청주 지역의 서원학회가 주축이 되어 충청북도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녔다. 이들이 모은 자료를 예성동호회와 서원학회 소속의 김풍식·이재준 두 작가가 도록으로 만들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 목조 건축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와는 시대적·사상적 측면을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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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안림동의 경계인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 산성. 충주 남산성은 해발 636m의 남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계곡 상단을 에워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축 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동악성(桐岳城)’으로 추정된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은 동악성(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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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생인 함월 최응성이 거처하던 전통가옥. 충주시에서 남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 단월을 거쳐 가면 살미면에 이르며, 중앙경찰학교 가기 전 단양과 수안보 방면의 3거리를 지나면 바로 왼쪽 편에 위치해 있음 원래는 충청북도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선 안쪽에 있어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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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에 있는 산촌 생태 마을. 충주 하니 마을은 재오개 하니 마을 영농 조합 법인이 설립한 산촌 생태 마을이다. 수안보 온천과 월악산을 이웃하고 앞에는 충주호와 월악산 비로봉이 어우러져 있다. 충주의 동남방 살미면의 북쪽 지역에 있는 재오개리는 다섯 개의 고개 밑에 있다 하여 ‘재오개’라 하였다고 한다. 과거 제천시 한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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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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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고대부터 철광산이 개발되어 철광석을 캐고, 쇠를 뽑고 녹이고 두드려 각종 무기나 농구 등의 연모를 만들던 쇠부리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고대 국가의 힘의 상징인 철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은 공히 충주 지역에 공을 들였으며 충주 지역을 확보한 국가가 항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자원의 보고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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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 사이의 협곡을 막아 세운 다목적 댐이다. 충주시 동북방 6㎞ 지점에 높이 97.5m, 길이 464m로 건설된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댐이다. 소양강댐에 이어 2번째로 많은 27억 5,000만t의 저수 능력을 갖추어 연간 33억 8,000만t의 각종 용수를 수도권 지역에 공급하고 홍수 조절 기능도 하고 있다. 충주댐으로 인하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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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화암리에 있는 선착장. 충주댐으로 조성된 인공 호수인 충주호는 남한강 상류 지역인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일대에 걸쳐 있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충주호는 충주 계명산 아래에 건설된 충주댐의 본 댐에서 멀리 단양 도담삼봉에까지 이르는 광활한 호수를 이루고 있으며, 선박을 통해 선상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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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 충주시는 중부 내륙 광역권의 거점 도시로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풍부한 용수로 기업하기 좋은 산업 기반이 구축된 도시이다.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전국 교통망의 중심이며,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의 중심 도시이자, 충주호와 월악산, 수안보온천·앙성온천·문강온천이 있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이다. 충주시를 상징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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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시행된 지방 군제. 조선 전기의 지방군은 육수군(陸守軍)과 기선군(騎船軍)으로 대별되고, 육수군 안에는 일반 농민들이 군역으로 번상숙위(番上宿衛)하는 시위패(侍衛牌)와 영진군(營鎭軍), 수성군(守城軍) 등이 있었다. 영진군은 마병으로, 수성군은 주로 보병으로 편제되어 있었으며, 그 대우도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능이나 특수 지역을 방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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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헌병 경찰 기관. 충주 지역에서 식민화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말기 일제의 감독 기관이었던 통감부는 충주 지역에 경비 기관으로 경찰서를 배치하는 것 이외에, 충청북도 천안헌병분대의 일 구역으로 충주헌병분견소를 설치하고 헌병과 보조원을 배치하여 경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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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살미면·종민동·목벌동에 걸쳐 있는 인공 호수. 충주호는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서 만든 충주댐으로 인해 조성된 인공 호수이다. 육지 속의 바다로 불릴 만큼 소양호(29억t) 다음으로 담수량이 큰 호수이다. 충주댐은 남한강 수계에 확보되어 있는 수자원을 다목적으로 개발하여 발전, 홍수 조절 및 각종 용수 공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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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육지 표면에서 일정한 유로를 가지는 유수의 계통. 충주 지역에는 태백에서 발원하여 정선·영월·단양·제천을 지나 충주·여주로 흘러나가는 남한강이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다. 남한강은 북한강과 함께 한강의 2대 지류로서, 태백에서 양수리까지 약 400㎞를 흘러가는 큰 하천이다. 또한 탄금대 부근에서는 남한강의 제1지류인 달천이 합류하면서 넓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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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별신제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지역에서 행해졌던 굿놀이를 말한다. 1940년대 중반까지 연행되다가 현재는 전승이 중단된 상태로 그 이름을 빌어 일부 재연 행사를 하고 있다. 본래 무당이 주재했기 때문에 목계별신굿이라는 명칭이 적합하겠지만, 현재는 별신제로 많이 칭하고 있어 목계별신제로 불러도 무방하다. 목계별신제는 목계 지역에서 행해진 목계 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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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에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산하 충주·제천·단양 지역 지사. 농촌 정비 사업, 농업 기반 시설의 종합 관리, 환경 친화적 농업 생산 기반 구축, 농업인의 영농 규모 적정화 촉진 등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높여 농업인의 소득을 향상시킴으로써 농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99년 2월 5일 제정된 「농업기반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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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봉방동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산하 충주 지점. 고품질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1961년 7월 조선전업·경성전기·남선전기가 통합되어 설립된 한국전력주식회사의 충주영업소로 개소해 충주·제천·단양을 통합 관리하였다. 한국전력주식회사가 한국전력공사로 전환되면서 1982년 한국전력공사 충주지점으로 개칭되었다. 1997년 9월 현재의 위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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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육지에서 주변에 비해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인 공간. 한반도에서 비단 충주 지역만 내륙에 호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주요 대하천을 끼고 있는 지역, 그 중에서도 산간 계곡을 굽이굽이 흘러오다가 급격히 하곡이 넓어지기 시작하는 변환점에서는 대부분 대형 다목적 댐과 넓은 인공 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북한강 유역의 춘천(소양강댐·춘천댐), 낙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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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이름은 꽃바우가 있어 꽃바우 또는 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충주군 동량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탄리(浦灘里)·낭곡리(浪谷里)·마의실(麻衣室)·양목리(陽木里)가 통합되어 화암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85년에 충주댐이 완공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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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기 선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박기서[1932~ ] 씨이다. 1953년부터 지남기 선생과 친교를 맺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지남기 선생과 함께 마수리 농요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72년에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지남기 선생의 메김 소리를 받기도 하고 후렴구를 부르기도 하면서 마수리 농요를 전국적인 무형문화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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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에 있던 종합유선방송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지북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코스닥에 상장된 법인의 계열사 성격의 회사이다. 방송의 공익성 구현이라는 대전제 아래 풍요로운 지역사회 건설을 위하여, 지방화 시대를 선도하고 케이블을 이용한 정보통신의 융합과 프로그램의 다양성, 채널의 전문화,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문화 창달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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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에 있는 한국방송공사의 지역 방송국. 충청북도 북부 지역의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언론 문화 창달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2년 청주방송국 충주중계소를 설립하였다. 1971년 중앙방송국 충주출장소로 개소되었다가 다시 한국방송공사 청주방송국 충주중계소로 개칭되었다. 1975년 중계소 청사가 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 787-3번지로 이전되면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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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전기통신 사업을 담당하는 KT의 충주 지사. KT(한국통신)는 전기통신 사업의 효율적 경영을 위해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신 부문을 분리하는 공사화 전환 계획에 따라 1981년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도 통신을 관장하는 KT 지역본부가 설립되었다. 그 가운데 충주를 중심으로 충청북도 지역 북부권을 담당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