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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고창 무장 봉기 당시 전봉준 등의 지도부가 만천하에 봉기할 것을 포고한 글. 「무장포고문」은 고부 농민 봉기 이후 전봉준(全琫準), 김개남(金開男), 손화중(孫華仲)을 중심으로 한 농민 지도부가 무장에서 재봉기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글이다. 글은 유학적 소양이 있었던 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나 문장이 탁월하고 전봉준과 친분이 있었던 옹택규(邕宅圭), 또는 전봉준의 비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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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전국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전라북도 고창군의 읍지. 읍지는 지리지와 함께 지방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물로서, 편찬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군사 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바탕으로 편찬된 인문지리서로 각 고을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창군읍지(高敞郡邑誌)』는 정조 대 펴낸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를 수정 보완하여 편찬한 것으로,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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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6월 고창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를 진압한 후 그 처리 과정을 기록하여 놓은 책. 당시의 농민 봉기는 단순한 민란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자는 구국 운동의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봉건 정부는 백성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규정했고, 이에 고창군에서는 정부에 보고하기 위해 난의 주동자와 참여자를 일일이 색출하여 성명과 주거지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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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정조 연간 고창현[현 전라북도 고창읍·고수면·아산면 일대]에서 편찬된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를 필사한 읍지. 읍지는 조선 전기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전국적인 관찬 지지(地志)의 편찬을 위한 1차 자료로서 작성되었으나, 조선 후기 들어 지방 각 읍의 현황 파악 및 각종 행정 자료 수집을 위하여 편찬되었다. 『고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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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황재중(黃載重)의 문집. 황재중[1664~1718]의 자는 원숙(元淑), 호는 구암(龜巖),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전라도 흥덕현 구수동(龜壽洞)[조동(槽洞), 현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취은(醉隱) 황세기(黃世基)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의 송암(松巖) 기정익(奇挺翼)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했고, 뒤에는 농암(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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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박동수 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집. 『동헌비고(東獻備考)』는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뜻에서 이병두(李秉斗)가 편집한 책으로서, 송선재의 서문과 박희영의 발문을 붙여 1937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동헌비고』는 내용상 상편과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은 단군으로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역대 제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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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강응환(姜膺煥)의 시문집. 강응환[1735~1795]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에서 세종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1770년(정조 2) 통예원인의(通禮院引儀)와 사헌부감찰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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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무장향교의 김근용(金近容)이 중심이 되어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지역의 성씨·충의·효자 등을 기록한 책. 『송사강헌록(松沙綱獻錄)』은 무장향교의 김근용이 중심이 되어 무장 관내의 성씨·충의·효자·열녀·효부·총묘(塚墓)·묘사(廟祠)·정려·묘사(墓舍)·누정 등 총 9개 항목에 따라 소개한 기록이다. 옛적에 발간된 향읍지에 기록된 것과 빠진 것을 새롭게 추가하였으므로 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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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전개됐던 갑오농민운동군을 진압한 관군 장위영(壯衛營)에서 남긴 군영 일지. 1894년 9월 동학 농민군이 삼남 지방은 물론이며 경기도 안성(安城)과 죽산(竹山)에서까지 기포하자 조선 정부는 9월 10일 1882년 임오군란 후 무과에 급제한 이두황(李斗璜)[1858~1916]을 죽산부사 겸 장위영 영관으로 임명해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게 하였다. 이에 이두황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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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954년 이루어진 고창 지역의 간척지 사업. 줄포만[곰소만] 일대의 간척지는 1990년대 들어 인근 전라남도 영광군에 영광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후 원전 배출 온수로 고기들이 살 수 없게 되어 어민들이 이에 대한 배상을 받은 후 양식장을 잇달아 폐쇄함에 따라 간척지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제방이 허물어지는 등 사실상 방치된 상태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고창군은 심원면 만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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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무장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로 생년월일은 알 수 없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손화중포의 접주로서 보은집회와 3월 봉기 및 9월 봉기에 참여하였다. 우금치 전투 때 전사하였다. 강경중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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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훈이다. 강대선은 1919년 5월 고창군의 신창학교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 단원 김영식(金永植)에게 군자금을 수합해야 하는 취지를 듣고, 동향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자금 수합 활동을 펴는 한편, 같은 해 8월에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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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창 출신의 관리, 교육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87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강대식은 1903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으며, 1905년에는 6품 승훈랑(承訓郞), 정3품 비서감(秘書監)으로 승차하였다. 한일합방 후 지금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로 물러난 뒤 재산을 일구어 소작인을 1,057명이나 거느릴 정도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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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강대영은 1875년 5월 13일 전라북도 흥덕 부안 검곡[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2월 15일 김영백(金永伯) 의병장으로부터 130여 명의 의병과 총기 70여 정 및 도검 5자루를 인계받아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의병장으로서 고창의 반등산, 흥덕의 수강산 등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킨 후 진군하던 중 체포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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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이온재(而溫齋)이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경상좌수사를 역임한 물기재(勿欺齋) 강응환(姜膺煥)의 6세손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태어났다. 강대직은 1914년 독립의군부 종사관의 칙지(勅旨)를 받고, 이때부터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로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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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강대홍은 1926년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양사리[현 성송면 하고리]에서 태어났다. 강대길, 강대북, 강대성과 형제인데, 강대홍을 포함한 이들 4형제가 어떤 사람이 와도 당해 내지 못할 만큼 고깔소고춤을 잘 추었다고 한다. 1990년에 정리한 고창농악단 명단에 수소구 유만종, 부소구 이승규에 이어 삼소구 강대홍의 이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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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353번지[갑평1길 75]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항천(姜恒泉)이고 호는 늘샘이다. 강수원은 1939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1941년 12월에 전수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1940년 11월에 동경 유학생인 임병학(林炳學)·강영석(姜永錫) 등과 함께 조선대학동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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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1년 2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281번지[왕림1길 64]에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익문(姜益文)이다. 강영문은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한 임병찬(林秉瓚)·이인순(李寅淳) 등이 서울에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전국 각 도·군에 산하 조직을 설치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자 참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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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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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민(仲民), 호는 거산(巨山)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춘파(春坡) 강인회(姜寅會)이다. 1832년 강인회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장성으로 이거하였다. 강천수(姜天秀)는 할아버지 강인회의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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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정여(貞汝), 호는 수남(秀南)이다. 1856년 1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고석진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거를 일으킬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鶴齡)·이용길(李容吉) 등과 함께 각 지방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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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고창 지역의 고수면 야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고창군 고수면 수양회(修養會)에서는 야학 회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보통 야학당이라고도 불렀는데, 주로 학생은 정규 공립보통학교나 사립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나이가 찬 청소년이나 학비를 대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야학 교사들은 민족 의식이 강하고 애국심이 강한 열혈 청년들로 구성되어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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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의경(義卿), 호는 만취(晩翠)이다. 1863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송암리 379번지[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 379번지[송암1길 9-6]]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청(高時淸)이다. 고순진은 일찍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외부주사(外部主事)가 되었다.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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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이름은 창주(昶柱)이다. 순택(舜澤)은 자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제량(高濟良)이다. 고순택은 일찍이 고창의 대표적인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이며 접주였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 고창 일대에서 송문수(宋文洙)·최경칠(崔敬七)·문덕중(文德仲)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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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본명은 제중(濟中)이다. 영숙(永叔)은 자이다. 186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영숙이 동학에 언제 입교(入敎)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92년 8월에 일어난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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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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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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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복경(復京), 호는 인산(仁山)이다. 1887년 3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서 태어났다. 고제남은 족숙(族叔)인 고석진(高石鎭)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남달리 지용(智勇)이 뛰어났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7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김영백(金永伯) 부대의 좌익장(左翼將)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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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희제(希齊), 이명(異名)은 자성(子聖)이다. 1875년 12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554번지[가평1길 51-3]에서 태어났다. 고제천은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숙부인 고석진(高石鎭)을 쫓아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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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1930년 고창 지역의 고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고창고등보통학교 항일 운동에는 독서회 사건과 사회주의 유형의 S당 사건, 일본인 교원 배척 사건, 6·10만세운동 사건 등이 있다. 일본인 교원 배척 사건은 일본인 교사의 조선인에 대한 민족 차별 및 교수의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 독서회 사건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의 반발에서 비롯되었는데, 결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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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고창 지역의 고창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일제 강점기 일본의 침탈을 받은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민족 사상을 고취하던 열혈 애국 학생들이 적극 저항하게 되었다. 고창공립보통학교 학부형들은 1924년 2월 11일 오후 9시에 청년 회관에 모여서 학부형 임시 총회를 열었다. 주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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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교리 새마을공원에 세워진 기념비. 파리 장서 사건 혹은 유림 독립 선언이라 불리는 제1차 유림단 사건은 1919년 김창숙을 중심으로 한 유림의 인사들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 탄원서[‘이하 파리 장서’]를 보내려고 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3·1운동 유림의 인사들은 유림이 독립 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이를 대신하여 장문의 한국 독립 청원서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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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진짜 이야기 들여다 보기. 고창군 무장 지역에서의 농민 봉기는 고을 단위의 농민 봉기였던 고부 봉기가 국지성을 벗어나 전국적인 농민 봉기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 따라서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은 현재 고창군에 속하는 무장현에서의 농민 봉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창 지역은 전봉준 생가, 무장기포지, 손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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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었던 수리 조합. 수리조합은 1906년 대한제국 탁지부가 제정한 수리조합조례와 1908년에 공포된 수리조합설치요강 및 모범규약에 따라 설치되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 농민 수탈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농민을 위한 조합으로의 성장과 동시에 다수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자주적인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1960년대 초의 토지개량조합으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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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1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 1950년 12월 22일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6중대는 공비 토벌 작전인 ‘견벽청야(堅壁淸野)’에 따라 해리면 동호리 선창가 주변과 심원면 고전리·만돌리 해안가 등지에서 인근 지역에서 몰려온 피난민 200~330여 명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사살하였다. 이 밖에 1951년 1월 5일 ‘토끼몰이식’으로 붙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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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 인민군이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 지역을 점령한 1950년 10월께 마을의 주도권을 장악한 천씨 일가와 좌익 사상을 가진 이들이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중대장 김용식의 일가 5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공비 토벌 중이던 중대장 김용식은 이 소식을 듣고 가족 살해 가담자와 부역 행위자로 지목된 월림 지역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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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에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애국 계몽 및 항일 운동 단체. 고창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의 제1차 봉기 지역이자 그 지도자인 전봉준의 태생지이다. 당시 고창의 많은 청년들이 동학 농민 혁명에 가담했으며 희생자는 1만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여기에 그 연장선이었던 1906~1909년의 의병 항쟁 기간에도 많은 청년들이 희생되어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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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치범(致範), 호는 죽계(竹溪), 이명(異名)은 고제만(高濟萬)이다. 1860년 8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165번지에서 태어났다. 고치범은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1906년 4월 16일 최익현(崔益鉉) 의진(義陣)에 합류, 태인 의거 때 최제학(崔濟學), 최학령(崔學領)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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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태국이 정확하게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과 흥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태국은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무장, 흥덕 지역의 부농들로부터 전곡을 다수 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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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국훈엽은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에서 태어났다. 1952년 5월 10일 실시된 제1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차점으로 낙선하였다. 이후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된 제2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고창군 제2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2대 도의원의 임기는 1956년 9월 5일부터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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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판소리 명창. 192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명창 김소희(金素姬)의 동생이다. 김경희는 언니 김소희와 김여란(金如蘭)·정권진(鄭權鎭) 등에게 판소리를 배운 뒤 동생 김정희와 함께 주로 창극·국극 활동을 많이 하였다. 1960년대 신세기레코드·시대레코드·힛트레코드 등 여러 음반 회사에서 언니 김소희, 여동생 김정희와 함께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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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김공삼은 186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8월 말[음력] 의병장 기삼연(奇參衍)의 휘하에서 활동하며 고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다. 1908년 1월[음력] 기삼연이 체포된 후 의병장이 되어 무기를 인수받고 부하 200명을 지휘하였다. 이후 전라도의 장성·영광·무장·고창·부안 등지에서 접전을 벌여 일본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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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자범(子範), 별호(別號)는 병운(丙雲)이다. 1843년 무장현 하이면 고산[현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장산리 장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이진(金以珍)이다. 김규일은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뒤 손화중(孫華仲) 포에 소속되어 동생 김천일(金千一)과 함께 활동하였다. 1894년 3월 20일 무장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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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일명 김명수(金明洙)이고 자는 광언(光彦)이며 호는 경암(敬菴)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이고 김전중(金田中)의 아들이다. 1878년(고종 15)에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筆巖里)에서 출생하여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고수면 황산리 평촌(平村)마을로 들어왔다. 45세 때 고수면 예지리(禮智里)로 이거하고, 74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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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김대옥은 187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읍내면 율계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율계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12월에서 1908년 3월까지 박도경(朴道京)이 이끄는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여 전라남도 장성군과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박도경 의진은 30명이 총 15정을 휴대하고 의병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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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명인. 김덕봉은 190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서 태어났다. 세습무계(巫系) 출신으로, 김득봉이라고도 불렸다. 김만식(金萬植)·김상구(金相九) 등과 함께 걸궁패 활동을 했는데, 고수면 일대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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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장구 명인. 191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소고 명인으로 알려진 김양술(金良述)이다. 김만식은 당골[무당]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소고를 배웠다.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 사는 김학준으로부터 장구를 배웠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평판이 자자할 정도로 장구를 잘 쳤다. 김만식패를 꾸려 활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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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시조 시인. 자는 자순(字舜), 호는 경재(敬齋)이다. 1878년 9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서 태어났다. 김명철(金明喆)은 성품이 온화하고 부모 형제에게 자상하였다. 「한거즉사(閒居卽事)」1, 「경(鏡)」2, 「설의(雪意)」, 「우제(偶題)」 등 빼어난 시들을 많이 남겼다. 이 중 「한거즉사」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김명철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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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916년 6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349번지에서 김영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방수는 고창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 잠시 연극을 했다가, 1942년 6월부터 다음 해 8월경까지 연극배우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민족극(民族劇)을 준비하였으며, 전라도의 고창과 장성 일대에서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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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봉문(鳳文) 호는 담재(澹齋)이다. 본래 이름은 진명(振明)인데 자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06년 아산면 성산리 성기(性基)마을에서 출생하였고, 1978년에 죽었다. 중종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으로 봉해진 지산공(支山公) 김경의(金敬義)의 14대손이고 무장으로 입향한 참의공 김전(金詮)의 11대손이다. 수산(壽山) 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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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풍물굿 상쇠 명인. 김상구는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무장면의 당골[무당]로 활동하던 신현덕에게 피리 시나위와 굿거리를 배우고, 20세 때 박성근(朴成根)에게서 쇠를 배웠다. 26세 때 농구[상쇠의 제자]로 있었고, 끝쇠를 보다가 30여 세에 종쇠, 40세쯤에 상쇠를 했다. 당대의 상쇠들 중에서 박성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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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묵은 188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12월부터 이대국(李大局)이 이끄는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였다. 같은 해 12월 10일경 50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전라북도 무장군 장자산면 해룡리에 이르러 이장 강춘일(姜春鎰)을 다른 민가에 불러내어 총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의병인 바 군수금을 내라.”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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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김상오(金相五)는 1885년(고종 22) 무장군 군내면 성내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서 태어났다. 25세 되던 1909년 이대국(李大局)의 휘하에서 선봉장 서응오(徐應五) 등 동지 25명과 함께 각기 총을 휴대하고 무장군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의병 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그 해 음력 정월 9일 밤 무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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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1919년 10월 2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상흠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같은 학교 학생인 서영원(徐泳源)·김재황(金在璜)·김영하(金永河)·이동원(李東元)·민영로(閔泳魯) 등과 함께 서울 사직동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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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김성대는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에서 태어났는데, 집이 두암마을 샘 위에 있었다. 아들은 김만엽으로, 충청도로 이주하였다. 김성대는 당골[무당]이자 두암마을 상쇠 명인으로 유명했다. 어려서 같이 활동했던 이중섭의 구술에 의하면 꽹과리 가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성근(朴成根)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굿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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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교육가·언론인·정치가·기업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호는 인촌(仁村)이다. 1891년 10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호남의 거부였던 김경중(金暻中)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3세에 큰아버지인 김기중(金祺中)의 양자가 되었으며, 13세에 고광석(高光錫)과 혼인하였다. 김성수는 1906년 전라남도 창평에서 송진우(宋鎭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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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김성수(金性洙)[1929~1993]의 본명은 김이수(金二洙)이며, 아버지 김용달과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출신지는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신장리 356번지이다. 영광군에서 곧 가족이 이사하여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자라났다. 김성수의 집안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할아버지 김기운은 대금의 명인이었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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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호는 만정(晩汀)이며, 본명은 순옥(順玉)이다. 191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5번지[김소희길 33]에서 태어났다. 김소희는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후, 광주로 시집간 언니 집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이때 광주에 내려온 이화중선(李花仲仙) 일행의 공연을 보게 된 뒤 소리에 이끌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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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운재(雲齋), 본명은 용수(容秀)이다. 수병(琇炳)은 자로, 또 다른 자는 수복(秀福)이다. 김해김씨 삼현파의 2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봉환(金鳳煥)이다. 186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태어났다. 김수병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며 의지가 굳어 주변 젊은이들의 우두머리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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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김수학은 1896년 5월 2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은행 목포지부장, 상공부 차관, 대한무진금융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고창군 갑구[고창면, 고수면, 무장면, 공음면, 상하면, 성송면, 대산면]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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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하석(霞石)이다. 184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청도김씨 고창 입향조 김여의(金麗義)의 14세손이다. 김수형(金秀馨)은 1877년(고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을 거쳐 헌납 직에 오르고, 사헌부장령과 지평을 지내던 중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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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일우(一愚)이다. 188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김준희(金俊禧)이다. 김승옥은 18세 되던 1907년에 고창 지역에 있는 한문 사숙(私塾)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고창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 고종 황제의 국상을 맞아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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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사익(士益)이다. 184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창강(金昌强)이다. 김양두는 1886년 무과에 입격하여 선전관을 지내는 등, 학식과 용모가 출중했다고 전한다. 과거에 합격한 양반 출신이지만 봉건 정부에 대한 저항 의식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동학 농민 혁명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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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소고 명인.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장구 명인으로 알려진 김만식(金萬植)의 동생으로, 무계(巫系) 출신이다. 김양술은 박성근(朴成根), 신두옥, 신영찬, 김학준, 김성락, 김만식(金萬植), 김상구(金相九) 등과 함께 전라도 일대에서 소고를 쳤다. 고창 지역에서는 이모질 다음으로 이름난 소고잽이로 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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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본명은 분칠(粉七), 호는 향곡(香谷)이다. 1907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다. 김여란은 어려서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서 살다가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으로 이사했으며, 그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가 인의동과 봉천동에서 살았다. 1917년부터 1921년까지 김비취에게 시조·가곡·가야금·법무 등을 사사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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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기업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아명은 판흥(判興), 호는 수당(秀堂)이다. 1896년 10월 1일 전라북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경중(金暻中)이며 어머니는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김성수(金性洙)가 형인데, 큰아버지 김기중(金祺中)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연수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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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영심(永心)이다. 영달(永達)은 초명으로 호적에 오른 이름이다. 족보에는 달병(達炳)으로 되어 있다. 185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전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 2등으로 녹훈된 김지남(金志南)의 10세손이다. 김영달은 어린 시절 원촌 사는 김흥섭(金興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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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영대는 판소리 명창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였으나 소리는 옳게 하였다고 전한다. 제자로 신영희(申永喜), 김녹주(金綠珠), 윤초 등이 있다. 신영희가 부르는 「심청가」에는 심봉사가 무릉 태수에게 옷을 얻어 입는 대목이 일반적으로 불리는 ‘아니리’가 아니라 ‘중몰이’로 계속되는 점으로 보아, 김영대제 「심청가」 바디가 다른 바디와는 약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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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광산(光山), 190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김영동은 1921년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북간도, 연길, 용정,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후 출옥하였다. 만주 봉천에서 제철제강업과 자동차연료제작소 사업을 하였으며, 그 운영 이익금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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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수는 1914년 5월 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927번지[중산길 22-3]에서 태어났다. 1940년 12월 17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비밀 결사 단체인 구국결사단(救國決死團)을 조직한 뒤 4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전라북도 김제군[현 전라북도 김제시]의 일본 헌병대와 경찰서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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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96년 7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219번지에서 김양현(金亮鉉)의 2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완은 1919년 고종의 국장일을 앞두고 인산(因山)에 참여하고자 서울에 올라갔다가 3·1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하였다. 이후 뜻을 같이한 이용욱(李用郁), 김용표(金容杓), 김상수(金相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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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순명(舜命), 호는 후석(後石)이다. 1882년 5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김기락(金箕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재관은 지은(智隱) 최전구(崔銓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동문인 정휴직(鄭休直)·정건도(鄭建燾)·정휴익(鄭休益)·이병중(李秉重) 등과 함께 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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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김재명(金在明)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형량은 밝혀져 있지 않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농민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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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8년 8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지석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김재덕(金在德)이다. 김재영은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창묵(鄭昌默)·정휴규(鄭休圭)·정공일(鄭公一)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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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김재화는 1878년 8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서 태어났다. 1908년 2월 고창 지역에서 해산 군인과 포군 등을 중심으로 의병을 규합하였고, 이어 4월에 김봉서(金鳳瑞)를 중군장, 이경엽(李景曄)을 호군장, 박내홍(朴乃弘)을 전부장(前部將) 등으로 선임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이후 전라도 고창·흥덕·정읍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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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의병장 김재화가 이끌었던 의병 전투. 김재화 참봉 의병전투를 아끈 김재화(金在華)[1878~1908]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비봉정에서 태어났다. 김재화 참봉 의병 부대는 1908년(순종 2) 2월부터 같은 해 9월 26일까지 고창군과 부안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재화 참봉 의병 부대에는 150명~200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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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이자 서화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립(中立), 호는 보정(普亭)이다.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610-2번지에서 태어났다.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회천(晦泉) 김재종(金在鍾)이다. 김정회(金正會)는 어려서부터 종조할아버지 항재(恒齋) 김순묵(金純黙)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약관에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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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종흡은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후 전주 신흥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교무주임을 맡았다. 그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 명작을 읽어 주기도 했는데,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아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1934년 9월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재직하였고,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부총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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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김준옥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고 전한다.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동학 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영학당(英學黨)이었다. 이들은 결사 조직으로 탐학한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것이 바로 1899년 4월에 일어난 정읍 농민 봉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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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김종구는 정대홍(鄭大洪)이 이끄는 의진(義陣)에 들어간 뒤 1909년 3월에 총 30정, 칼 1자루를 휴대하고 전라북도 무장군 탁곡면 흥룡리[현 아산면]에 사는 성명 미상(未詳)의 양반 집에 들어가서, “우리는 의병인 바 군용금을 차출하라.”고 협박하여 엽전 250냥을 탈취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고창군 산내면 운곡리[현 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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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찬업(金贊業)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서 태어났으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아버지 역시 명창으로 이름난 김수영(金壽永)이다. 오끗준의 생질(甥姪)이다. 동편제 소리의 거장으로 다섯 마당 판소리에 모두 능하였다. 김찬업은 박만순(朴万順)과 김세종(金世宗)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김세종의 영향으로 이론에 밝았고, 정창업(丁昌業) 등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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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규는 189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고창면 읍내리[현 고창읍 읍내리]에서 김승옥(金升玉)·오동균(吳東均) 등이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3월 19일 장날을 기해 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자 이에 찬동하고, 「독립선언문」·「국민휘보(國民彙報)」·「조선독립가(朝鮮獨立歌)」 등을 교부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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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토산(金土山)은 1871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 뒷개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한테서 7세 때부터 판소리 다섯 바탕을 사사받았는데, 할아버지는 서편제의 대가 이날치(李捺致)로부터 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작고 퉁퉁한 몸매에 목소리가 무척 커서, 큰 소리로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김토산은 주로 고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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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농악 쇠잡이 명인. 김홍술은 일반적으로 1903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읍의 민속예능』에 의하면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신면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판소리 대가 누나는 전도성(全道成)의 친척인 줄광대[아니리 광대, 걸립광대] 전학술에게 시집갔다. 그리고 동생은 ‘장구 귀신’으로 알려진 김홍집이다.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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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영암(榮庵), 본명은 흥관(興寬)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칠(金聲七)이다. 김흥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성칠과 함께 동학에 입교(入敎)해 활동하였다. 김성칠은 1893년 12월,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仲)·정백현(鄭白賢) 등과 함께 송문수(宋文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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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원,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명중(明仲), 호는 호정(壺亭)이다. 1850년(철종 1) 9월 2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노병희(魯炳熹)는 1888년(고종 25)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였다. 1903년(고종 40) 전의(典醫)가 되었다. 1905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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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경희(景羲), 호는 성재(誠齋)이다. 1894년 11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노진룡은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를 조직하여 총지휘 감독이 되었다. 당시 감독부에는 부감독 오의균(吳毅均), 재무 황종관(黃鍾寬)·이휴열(李休烈), 고문 강대직(姜大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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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거나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고창 지역 출신으로 국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일제의 무단 통치기에 활동한 독립운동의 성격은 주로 무장 성격을 띤 적극적인 항일운동 세력과 3·1운동을 기점으로 만세 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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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봉기. 손화중포(孫化中包)를 중심으로 한 고창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과 수탈에 맞서 일어난 각 지역 민란이 전국적인 항쟁으로 옮아 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하였지만 동학농민혁명군이 제시한 폐정 개혁안은 갑오개혁에 일부분 반영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군들 중 일부는 국권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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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당. 두암초당(斗巖草堂)은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1530~1614]과 인천(仁川) 변성진(卞成振)[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두암초당상량문」은 “용공부자 2486년 을해 3월 24일 임자 임신 진시 상량 자좌 구(龍孔夫子 2486년 乙亥 3月 24日 壬子 壬申 辰時 上樑 子坐 龜)”이다. 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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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종교가이자 교육자. 마스도미 야스자에몬[枡富安左衛門]은 마스도미 야스자이몽, 또는 승부 장로(枡富長老)라 불리기도 한다. 188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간장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두 형과 동생을 잃은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장을 경영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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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추산봉에 있는 각석. 망오대는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전구(崔銓九)가 1918년 ‘지은최공전구망오대(智隱崔公銓九望梧臺)’라는 글자를 새기고 매년 지역의 선비들과 모여 추모 의식을 거행하였던 암벽이다. 최전구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생이었다. 1906년 최익현이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적극 참여하여 스승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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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3월 고창 지역의 무장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1894년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군수 조병갑을 축출하고 백산 등지에서 머물렀으나 후임 군수 박원명의 설득으로 3월 초에 해산하였다. 그러나 안핵사 이용태가 도착하여 고부봉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해지자, 무장으로 피신하였던 전봉준 등의 농민군 지도부는 3월 16일경부터 무기를 제작하고 군사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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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났다. 문덕중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무장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송문수(宋文洙), 고순택(高舜澤)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여 1894년 3월 20일 무장 기포와 백산 봉기에 관여하였다. 9월의 2차 동학 농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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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농악 쇠 명인. 박귀바위는 고창 출신의 쇠 명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1890년대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 굿패를 꾸려서 걸립(乞粒)을 다녔다고 한다. 호남우도농악의 대표 격인 고창농악은 1890년대 박귀바위를 중심으로 영광·무장[고창 ]·장성이 중심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뿌리가 이어져 온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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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화옥(化玉), 호는 경화(京和), 이명(異名)은 경래(慶來)이다. 도경(道京)은 아명이다. 1874년 3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준식(朴準植)이다. 박도경은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언변과 기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되자 고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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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183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수금리에서 태어난 뒤, 남원의 운봉과 경상도 안의(安義)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명창 최승학(崔昇鶴)과 동서간이다. 박만순(朴萬順)은 신재효(申在孝) 문하에서 동편제 판소리를 배웠다. 당시 8명창으로 꼽히던 주덕기(朱德基)에게 판소리를 잠깐 배우다가, 당대의 명창 가운데 제일의 가왕(歌王)으로 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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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석권은 1925년 1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327번지에서 태어났다. 중국의 한구(漢口)에서 중국군 공작원에 포섭되어 제9전구정진(第九戰九挺進) 제5선대(第五線隊)인 호북야성(湖北野城)에 편입되어 일본군을 상대로 공작 활동을 하였다. 이후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한국과 미국의 합동 기갑반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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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박성근은 190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태어났다. 쇠잽이 강성옥에게서 주로 쇠를 배웠고, 김성대에게 굿하는 법을 배웠다. 박성근은 특히 부포놀음에 매우 뛰어났고, 쇠가락뿐만 아니라 상쇠로서 굿판을 통솔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1900년대 이후 출생한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지역 예인들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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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박성렬은 191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면장 출신으로 1952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1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뒤, 1952년 5월 20일부터 1956년 8월 15일까지 도의원을 역임하였다.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된 제2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 현역 의원으로 고창군 제3선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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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관은 1899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1926년 음력 5월 28일 오석완(吳錫完)으로부터 권총 및 탄환을 전해 받았다. 1928년 음력 4월경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마련된 이리동척회사(裡里東拓會社) 습격 계획에 참가하였다. 이 계획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조인현(趙仁賢)[일명 오해룡(吳海龍)]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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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박용하는 1932년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석곡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농악판을 따라다니면서 굿을 배우다가 해방 후 마을로 이사 온 박성근(朴成根)패를 따라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고깔소고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 수법고였던 이근수와 마을에 굿을 가르치러 왔던 김양술(金良述)에게서도 고깔소고춤을 배웠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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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경화(敬化), 호는 송파(松坡)이다. 1844년(헌종 10)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참판 박숙선(朴叔善)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해헌(朴海憲)이다. 박학동(朴鶴東)은 어려서부터 마을 서당에서 공부하여 어린 나이에 학행(學行)이 드러났다. 30세 때인 1873년(고종 10) 장성에 가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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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배상기는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태어났다. 1952년 대한청년단[약칭 한청] 소속으로 제1대 도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1956년에 실시된 제2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고창군 제1선거구에서 도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6년 9월 5일에서 1960년 8월 13일까지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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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학로(學魯)이고 호는 입헌(立軒)이다. 청정공(淸靖公) 배을서(裵乙瑞)의 후손이며, 송파(松坡) 배종풍(裵鍾豊)의 아들이다. 1910년 공음면 용수리 청천(淸川)마을에서 출생하여 1996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20세 때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했는데 영광의 육봉(六峰) 이종택(李鍾澤)의 문하에서 독공을 하여 문장의 진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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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처인(處仁), 호는 야은(野隱)이다. 1867년(고종 4)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은암(隱巖) 배환영(裵煥榮)이다. 배인기(裵仁基)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890년(고종 27) 송세헌(宋世憲)의 추천으로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다가 1891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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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상삼(相三), 호는 남계(南溪)이다. 1864년 무장현 와공면 청천[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배후근(裵厚根)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배환정은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약을 무료로 주고 노부모를 모시는 환자에게는 약값을 반액만 받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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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호는 근촌(芹村)이다. 1889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백도진(白道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관수는 어려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한문을 익혔고,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도쿄[東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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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역사학자·경제학자·정치가.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동암(東巖)이다. 1894년 2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반암마을 601번지[반암안길 33-9]에서 백낙규(白樂奎)[1866~1935]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의 원시·고대·중세의 사회경제에 관한 경제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한국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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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하옥(夏玉), 호는 광산(匡山)이다. 1832년(순조 32)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부덕리에서 태어났다.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이다. 백민수(白旻洙)는 약관의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가 3년간 수학 후, 1858년(철종 9)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인 숙재(肅齋) 조병덕(趙秉德)의 문하에서 격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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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자는 사순(泗淳), 호는 갑운(甲雲)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백우진(白宇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수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1905년 10월 5일 을사조약을 결사반대하며 백성기(白性基)와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합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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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자는 회숙(晦叔), 호는 이산(尼山)이다. 1873년(고종 10)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월암(月巖) 변문화(卞文華)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를 지낸 변숙규이다. 변종혁(卞鍾爀)은 어려서는 할아버지 변문화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10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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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국내에서의 사회주의 움직임은 3·1운동 이후 항일 운동과 민족 재생의 방편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여, 전통적 민족주의 운동에서 벗어나 계급적 사회주의 운동으로 일제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유학생 중심의 사회주의 조직인 흑도회가 조직된 후 풍뢰회·흑우회·불령사·북성회·북풍회·일월회·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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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0일~28일 고창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 일본은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또한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도시의 노동자 또한 일본인 노동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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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189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은동에서 태어났다. 서상옥이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정확하게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 무리의 농민군을 이끌던 괴수로 평민을 침탈하고 재곡(財穀)을 빼앗기가 부지기수”였다는 관변 측 기록으로 미루어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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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시인. 서정주(徐廷柱)는 탁월한 언어 감각과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토속어로 일군 빼어난 시의 미학을 보여 준 언어의 연금술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문학을, 이승만과 전두환의 독재 시절에는 독재를 미화하는 글을 써 기회주의적 어용 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당의 아버지 서광한은 무장에서 향시를 보아 장원을 하였고, 1909년 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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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응호(應鎬), 본명은 채열(彩烈), 초명은 종채(鍾採), 별명은 응오(應五) 또는 종주(鍾珠)이다. 1881년 10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상필(徐相苾)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서종채는 어려서부터 의절(儀節)과 재덕(才德)을 겸비하였고, 특히 의술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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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이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비기(秘記)를 훔쳤다고 전해지는 사건. 조선 후기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해이해지면서 농업·산업·수공업·신분 제도 등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조선은 전국 각지에서 조선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는 오래전부터 떠도는 예언에 따른 것으로, 조선 왕조는 500년이라는 숙명을 넘기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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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보현(輔賢), 호는 만취(晩翠)이다. 1875년(고종 12) 5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미산(眉山) 성부(成溥)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서영일이다. 성경수(成卿修)는 어려서 가학(家學)을 계승하였다. 1890년(고종 27)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삼연(奇參衍)의 문하에 나아가 경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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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에 있었던 풍류인들의 모임. 성내 3·9회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에서 참봉 황목천(黄木川)이 막내아들 황오익(黄五翼)에게 풍류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10년대 후반 당시 유명한 거문고 명인 신쾌동(申快童)을 불러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여러 풍류객들을 모아 성내 3·9회를 조직하였다. 당시 회원은 황하영(黄河永)·황오익·황화익(況和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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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지역 풍류인들의 모임. 성내 6·2계는 성내 3·9회와 흥덕 아양율계가 해산되고 난 이후 1961년에 황하영, 황화익, 김환철 등이 구 3·9회를 중심으로 다시 만든 성내면의 풍류계이다. 성내 3·9회와 흥덕 아양율계가 해산되고 난 이후 고창의 풍류는 한동안 주춤하였다. 그러나 1961년 3월 15일 구 3·9회의 잔여 회원들을 중심으로 다시 육예(六藝)[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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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름은 성준(聖準), 호는 하은(河隱)이다. 186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삼산동에서 태어났다. 손화중(孫華仲)의 족질(族姪)이다. 손여옥은 손화중 포의 일원으로 주로 정읍과 고창에서 활동하였다. 1893년 11월 전봉준(全琫準)과 함께 사발통문(沙鉢通文)에 서명한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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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대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름은 정식(正植), 자는 화중(華仲)[또는 和中·化中), 호는 초산(楚山)이다. 1861년 정읍현 남일면 과교리[현 전라북도 정읍시 과교동]에서 아버지 손호열(孫浩烈)과 어머니 평강채씨(平康蔡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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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에 있는 동학 농민 혁명 유적 터. 정읍에서 태어난 손화중(孫和仲)[1861~1895]은 부안에서 포교를 시작하여 정읍을 거쳐 무장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은 본래 농민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최부잣집이 있었던 곳이다. 이때 동학 농민 혁명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곳이면서 많은 물자를 보급받을 수 있었던 괴치리로 도소를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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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송현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이 체포당한 장소. 손화중은 고창 지역을 근거로 활동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로 전봉준, 김개남과 함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손화중 피체지는 동학농민혁명이 지역 봉기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봉기로 확대된 무장 기포의 주역 손화중이 체포된 곳이다. 손화중 피체지는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로 322-65[송현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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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185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아버지 송의호(宋義浩)와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송경찬은 1893년 동학 교단에서 신원 운동의 하나로 전개한 보은 집회를 전개할 당시부터 무장 접주로 활약하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강경중(姜敬重)과 함께 1,300여 명의 동학 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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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동생 송경수(宋景洙)와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였다. 송문수는 대표적인 무장 지역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군 지도자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최경칠(崔敬七) 등과 함께 무장에서 봉기했고, 이후 9월 봉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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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가. 송민수(宋敏洙)는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 하남리에서 살았으며, 북면 훈임(訓任)으로 신망을 받았다. 이화삼의 제의를 받고 1898년 12월 영학당 흥덕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2월 27일 밤 이화삼과 함께 당시 북면 중남당리·외남당리·하남당리, 동면 산양리·관정리·생근리 등 5~6개 마을 농민 300여 명을 거느리고 일어나 28일 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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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이다. 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齋翁)으로도 불렸다. 1872년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면 사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송태회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써서 6세 때 쓴 「녹괴서실(綠槐書室)」이란 글씨를 중국 원세개(袁世凱)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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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7년 8월 3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 67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송한근(宋漢根)이다. 송한룡은 1944년 5월 초 신림면 신평리에 있는 장일선(張日善)의 전답에서 작업 중 주민들에게 “2차 대전에서 일제는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여 마땅하다.”는 반일 시국담(時局談)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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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인.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본명은 송재갑(宋在甲)이다. 송혁(宋赫)은 필명이다. 1934년 9월 8일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평지리 558번지[수락길 22]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화헌(宋和憲), 어머니는 주순덕(朱順德)이다. 이강주(李康珠)와 결혼하여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다. 송혁은 1954년 3월 논산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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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신용남은 1917년경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한항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고창 지역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가 부정 시비에 휘말렸으나, 곧바로 치러진 재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 치러진 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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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신용수는 1888년 10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60번지[외사길 26]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아버지를 따라 의진(義陣)에 들어갔다. 1908년 2월 박도경(朴道京) 의병장이 남포(藍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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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비행사·기업가·정치가.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1901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내사마을에서 태어났다. 신용욱은 1922년 일본 오쿠리비행학교[小栗飛行學校]를 졸업하고 1등 조종사 면허를 받았다. 이후 토아항공전문학교를 거쳐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고 미국 헬리콥터 조종사 허가증을 받았다. 귀국 후 비행기학교를 창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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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2월 고창 지역의 신인동맹 회원이 일제에 검거된 사건. 신인동맹은 1938년 당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면에서 조직한 비밀 결사 조직이다. 군자금 모집과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조직원 대부분은 지금의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 그리고 정읍군 출신이었다.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이들은 일경에 발각되어 모두 체포·구금되어 복역하였다. 신인동맹은 보천교(普天敎) 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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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신정옥은 고창 접주로 칭해졌던 인물로, 일찍이 동학에 입교하여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행적에 대하여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다만 9월 재봉기 이후의 행적만 확인되고 있다. 장성 유생의 기록에 의하면 10월 중순 이후 장성으로 내려와 개천과 단망 등지에 진을 쳤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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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자는 덕현(德賢), 호는 봉암(鳳岩)이다. 1864년 11월 4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신종주는 1906년 12월 5일 최전구(崔銓九)와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을 찾아간 뒤,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킬 뜻이 있음을 알고 가산(家産)을 털어서 군자금 5백 원을 마련하여 최전구를 통해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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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877년(고종 14)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태어났다. 관수당(觀水堂) 신담(申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오정(梧汀) 신도균(申燾均)이다. 신현중(申鉉中)은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전과 사서(四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읽고 정주(程朱)의 성리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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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신화산은 반일 의병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고창군 무송(茂松)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에 훗날 200여 병사들을 이끌고 전해산(全海山) 의진(義陣)과 동맹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21일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거병하여 전라남도 나주와 영광 일대를 중심으로 1909년 3월까지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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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안기남(安基南)[1914~?]은 지금의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서 태어났다. 면장을 지냈으며, 1952년 5월 10일 치러진 제1대 도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고창 지역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고창마을금고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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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고창 지역의 암치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1923년 9월 암치보통학교 5~6학년 학생 80여 명은 5일부터 동맹 휴학을 결의하였다. 그 이유는 암치보통학교 일본인 교원 구와바라[桑原篤信]가 평소 음주를 과다하게 하였고, 술을 마신 상태로 수업을 하면서 주정을 부리는 등 태도가 좋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구와바라가 지나친 음주로 교육자로서의 품위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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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본명은 항영(恒永)인데, 공삼(公三)이라고도 불렸다. 186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엄흥삼은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동학 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영학당(英學黨)이었다. 이들은 결사 조직으로 탐학한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것이 바로 1899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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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 여성들의 권리와 지위 확립을 위해 벌인 사회운동.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두드러진 여성 운동은 없다. 다만 종교 단체, 특히 기독교 단체와 안식일교회 등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개설하여 여성 계몽에 앞장서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야학은 공립보통학교나 사립보통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이나 학비 마련이 어려운 처지의 빈한한 청소년들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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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신대리와 무장면 신촌리에 걸쳐 있는 개항기 동학 농민군의 숙영지. 1894년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3월 초에 해산하였으나, 고부 봉기의 조사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하여 전봉준(全琫準) 등은 3월 20일경 무장에서 전라도 일대의 농민들을 모아 「무장포고문」을 발표하고 재봉기하였다. 이때 고부·태인·부안 등지를 점령한 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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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1899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 지역과 정읍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 항쟁을 지도했던 농민 조직. 영학당은 1898년 12월 28일~30일까지 진행된 흥덕농민봉기, 1899년 3월에 일어난 전주농민봉기, 1899년 5월 전주·고부·흥덕·태인·정읍·무장 등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을 주도하였다. 갑오농민전쟁기의 집강소 조직과 을미의병의 실질적인 전투력이었던 포군 조직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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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9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377번지에서 오연문(吳然汶)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사촌형인 오의균(吳毅均)도 독립운동가이다. 오동균은 어려서 사촌형 오의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오동균은 김승옥(金升玉)과 함께 「독립선언문」과 「국민휘보(國民彙報)」, 「조선독립가(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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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극경(極卿), 호는 함양(咸陽)이다. 자는 수산(壽山).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의 후손이며, 오흥원(吳興源)의 아들이다. 1883년(고종 20년) 아산면 성산리 죽산(竹山)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염결(廉潔)하여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권세를 멀리했으며, 학문은 경학(經學)을 위주로 문장은 여기(餘技)[전문적으로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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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오시영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서 태어났다. 『동학사』를 쓴 오지영이 동생이다. 1893년 보은 집회 때 고창 접주로 활약하였다. 오시영은 어려서 고창읍 고촌으로 이주했는데,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전봉준(全琫準)과 손화중(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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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의균은 1883년 2월 1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11월 고창에서 노진룡(魯鎭龍) 등과 함께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 부감독에 임명되어, 감독인 노진룡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인원 파송 및 군자금 모금, 밀송 등의 상해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펴 나갔다. 1927년 1월에는 농촌 개발과 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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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경안(敬安), 호는 남사(南沙)이다. 1895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흥룡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병문(吳秉文)[1858~1915]으로 부호였다. 오자환(吳滋煥)은 다른 아이들이 한문 서당에 다니고 있을 때 신학문을 배웠다. 성장한 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시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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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응천(應天), 호는 강재(剛齋), 이명(異名)은 경환(京煥)·길환(吉煥)이다. 1863년 11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479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시만(吳時晩)이다. 오장환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이 자행되자 기삼연(奇參衍)·전해산(全海山) 등과 전라도 장성·고창·영광에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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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종현(宗賢), 호는 용암(龍巖)이다. 1884년(헌종 14)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의 후손이다. 오필환(吳弼煥)은 소두(小蠹) 정하원(鄭河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행은 물론 시문에도 능하였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부모를 섬길 때나 선조(先祖)의 덕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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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원용학은 1918년 8월 2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신송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東京]의 릿쿄대학[立敎大學] 예과(豫科)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1년 6월경 원용학은 주오대학[中央大学] 학생 배종윤(裴宗潤), 요코하마[横濱]전문학교(專門學校) 학생 강상호(姜相湖) 등과 자주 만나서 창씨제도와 조선어 폐지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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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원래 이름은 연도(然道), 이명(異名)은 용수(容洙)이다. 공선(公先)은 자로, 성오(星五)는 또 다른 자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면 금붕리에서 태어났다. 손화중(孫華仲)의 처남이다. 유공선은 손화중과 함께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갔다가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손화중과 함께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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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우보(禹甫), 호는 낙사(洛史)이다. 1852년(철종 3)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낙양리에서 태어났다. 직제학을 지낸 유순도(庾順道)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희초(庾喜初)이다. 유구현(庾九鉉)은 2세 때 아버지가 죽자 종조할아버지 유복렬(庾馥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장한 후에는 종숙인 유희정(庾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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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금동은 1909년 9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전해들은 유금동은, 고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20일 동급생 유일석(柳日錫)·윤정하(尹鼎夏) 등과 함께 동교생들의 동조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러고는 곧 무기 휴학을 단행하면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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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유만종은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서 태어났다. 성송면 암치리로 이사한 후 당시 고깔소고춤의 명인 이모질의 고깔 소고춤을 보고 독학으로 익혔다. 그의 고깔 소고춤의 특기는 한 장단에 두 바퀴를 도는 연풍대이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황규언(黃圭彦)·강대홍(姜大洪)·김영태·이종환과 함께 1985년에 고창농악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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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젓대·양금(洋琴) 연주자. 유봉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서 태어났다. 맹인으로 젓대와 양금의 명인이었다. 그의 제자로 역시 맹인 연주자로 유명한 편재준(片在俊)이 있다. 고창 지역에서는 유봉을 포함하여 은성익(殷成益), 마금선(馬金宣), 김남수(金南洙), 진수정(陳洙頂), 김홍진(金洪鎭) 등이 풍류[정악(正樂) 가운데 악기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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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백명(伯明), 호는 경당(敬堂)이다. 아버지는 계은(溪隱) 유낙연(柳樂淵)이다. 185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유진룡(柳鎭龍)이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서 살다가 봉산리로 이거했다고 전한다. 유상준(柳相浚)은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여섯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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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이다. 189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석탄(石灘) 유운(柳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수당(睡堂) 유지성(柳志聖)이다.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큰아들은 유호석이고, 작은아들은 유태석이다.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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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1918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상성마을 93번지[상성길 33-18]에서 유제필(柳濟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유우상(柳祐相)으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월곡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유용상은 명륜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던 중 비밀 독서회인 대동사(大同社)를 결성하였다. 1943년에는 동양문화연구소의 연구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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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유장렬은 1878년 1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이석용(李錫庸) 휘하의 부장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2년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가입,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 및 일본군 철병 요구서를 제출하였다. 1914년 한훈(韓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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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 자는 호일(浩一), 호는 성곡(星谷)이다. 1880년(고종 17) 3월 1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상성마을에서 유명석(柳明錫)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유제필(柳濟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1922년 고창향교에 친일 교육 도장이 들어서자 앞장서서 반대하였다. 또한 일제가 서울 성균관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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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선명(善明), 호는 금서(錦西)이다. 1857년(철종 8)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석탄(石灘) 유운(柳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리(東里) 유지기(柳志冀)이다. 유준철(柳浚喆)은 1869년(고종 6)인 13세 때 감시(監試)에 응시하여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그 뒤 연상(蓮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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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유진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고창고등보통학교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학부에서 공부를 했다. 동방평론사 편집부장·조선독립협찬회 부위원장·정읍농림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미소공동위원회 1급 통역관, 서울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고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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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판술은 1905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흥덕보통학교 재학 중인 1920년 3월 10일 밤, 유판술은 3·1운동 1주년을 맞아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 등과 함께 이종주(李鍾株)의 집에 모여 태극기 12매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만들고, 깃발 뒷면에는 “이를 파기하는 자는 참살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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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이명(異名)은 유복일(柳福日)이다. 1893년 10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유희영은 1919년 8월 강대선(姜大宣)의 권유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여 외교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조직으로,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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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된 한국과 북한의 전쟁. 6·25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Korean War, 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이라고도 함]이라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어 휴전선에 의해 남북 분단 상태로 남아 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일어나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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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관리·궁사·풍류 명인. 은성익은 1892년에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지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관선·민선으로 고창읍장을 지낸 명사로 문예에도 출중하였고, 명궁사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가야금과 양금(洋琴)·장구·피리에 능한 풍류[정악(正樂) 가운데 악기의 합주를 일컬음] 명인이었다고 한다.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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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09년 사이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던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병. 청일전쟁 이후 중앙 정국의 동요 속에 국가 전체가 불안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유생들이 중심이 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민중 봉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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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고깔 소고춤 명인.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본명은 이모조이다. 1900년 초반 세습 무계(巫系) 집안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을 강모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모질이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지역에서 가장 이름 난 고깔 소고잽이로 고창농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질은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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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대성(大成)이다. 1858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영당리 소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윤록이다. 이문교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무장현 청해면 안산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로 이사했다가 다시 왕거마을로 옮겨 살았다. 이후 이문교는 외가 사람들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入敎)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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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가. 이병옥은 1927년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와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으나, 5·16군사쿠데타 후 치러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안군 지역의 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이후 7대·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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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봉춘(逢春), 휘는 병서(秉緖), 호는 송암(松巖)이다. 1905년 1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 634번지[나성로 550-11]에서 이유석(李儒碩)의 6녀 1남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봉춘은 1945년 광복을 맞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건국촉진대 고창지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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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석렬은 1884년 1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272번지[신성칠성길 53-23]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창 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같은 해 11월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 전라북도 감독부 고문으로 임명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 뒤 상해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활동하였다. 한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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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10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용욱(李庸郁)이다. 이용욱은 1919년 3월, 광무황제(光武皇帝)[고종]의 국장 참관 차 상경하여 서울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귀향한 김영완(金永玩)을 만나 서울의 정황을 듣고, 김용표(金容杓)·김상수(金相洙)·이준구(李準求)·김진호(金辰鎬)·박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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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의신은 1922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 346번지에서 태어났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인 숙부 이동녕(李東寧)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간 뒤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3월 15일 중경(重慶)에 있는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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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13년 1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칠성동 29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애국지사 이휴열(李休烈)이다. 이재남은 고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 10일 독립 만세 운동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고창고등보통학교 결사 조직인 독서회에 가입하여 학생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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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이명(異名)은 이종규(李鍾奎)이다. 1901년 3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351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종주는 1920년 3월 10일 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유판술(劉判述) 등과 함께 성내면사무소에 숨어 들어가 등사기를 훔쳐 「독립선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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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1896년 2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 363번지[내토1길 56-1]에서 출생하였다. 이종택은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면사무소의 등사기를 탈취하여 「독립선언문」과 취지서 등을 복사하여 살포하였다. 같은 해 11월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에 따라 조직된 전라북도 감독부 고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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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이명(異名)은 이철형(李喆衡)이다. 1873년 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서 태어났다. 이철형은 1907년 8월 전라남도 장성에서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할 때 참여하여 중군장에 선임되어 국민들의 항일 분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격고문을 각지에 발송하였다. 한편, 전라남도 영광에서 일본군 10여 명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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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시인.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33년 5월 23일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서 태어났다. 이추림(李秋林)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단신으로 서울에 올라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55년 『자유문학』에 장시 「태양을 화장(火葬)하고」가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1968년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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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판오(李判五)이다. 이화백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근로보국대’라 하여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자, 고향에서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등 일제에 반대하는 시국담을 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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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흥덕 농민 봉기 지도자. 이화삼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살면서,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농민 계몽 등을 위해 만들어진 계모임과 같은 상호 부조적인 농민 조직 영학당을 이끌고 있었다. 1898년 이화삼은 이웃 마을 송관오의 장례식에 갔다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흥덕군수의 탐학에 군민의 원성이 높은 것을 알고, 이웃 외남당리 송민수(宋敏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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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이화서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서 태어났다. 1898년 12월 이화삼(李化三)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던 흥덕 농민 봉기가 실패한 후, 이듬해 1899년 4월 최익서(崔益瑞)가 중심이 되어 정읍에서 재차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것을 영학당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정읍의 입암면 왕심리에서 ‘벌외벌양(伐外伐洋)’을 표방하고 고부관아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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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녹현(祿賢), 호는 근우(槿愚)이다. 1889년 8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병종(李秉鐘)이다. 이휴열은 1914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백낙윤(白樂允)·이순열(李舜烈)·이석렬(李錫烈)·황상익(黄尙翼)·백관수(白寬洙)·이갑수(李甲洙)·황서구(黄瑞九)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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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역사. 한일합병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竝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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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관오(冠五), 호는 흥남(興南)이다. 1854년(철종 5)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 백양마을에 있었다. 송호(松湖) 임박(林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경제(林敬齊)이다. 임노태(林魯泰)는 어린 시절 종형인 노하당(蘆下堂) 임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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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명인. 임대은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풍어제·민요 편에서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농악의 두 갈래의 전승 계보 중 성기만의 뒤를 이어 신영찬, 신두옥, 김상구(金相九)로 이어지는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로 조사되어 있다. 고창문화원장 이기화에 의하면, 임대은은 주로 고창군 흥덕면 일대에서 활동한 농악 명인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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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호는 난계(蘭溪)이다. 1921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송호(松湖) 임박(林樸)의 후손이다. 임종수(林鍾秀)는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했다. 19세 때인 1939년부터 유영선(柳永善)의 문하에서 20여 년간 수학했으며, 문제중·성기운·권순명·조덕승(曺悳承)·유호석 등과 교유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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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초명은 문수(文洙), 본명은 종문(鍾文)이다. 천서(天瑞)는 자이다. 186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 석우촌에서 아버지 임석황(林錫璜)과 어머니 울산김씨(蔚山金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천서는 동학 농민 운동의 준비 단계부터 전봉준(全琫準)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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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다. 생몰 연도와 정확한 탄생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같이 활동한 임천서(林天瑞)의 행적으로 미루어 1895년 동학 농민 혁명이 마무리되는 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형로는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농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고창 접주로 활동했고, 무장에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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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우도농악 상쇠 명인. 전경환은 1921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 장성에 사는 상쇠 명인 최화집(崔化集)에게 쇠치는 법을 익히고, 20세 때는 고창군 성송면 남창리[현 성송면 하고리]에 사는 강성옥(姜聲玉)에게 배웠다. 또한 23세에 고창군 아산면 목동리 남촌에 사는 박성근(朴成根)에게 배우고, 33세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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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전막동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사점(沙店)에서 태어났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는데, 이는 아마도 후손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신분이 낮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899년에 일어난 정읍 농민 봉기에 참가하여 4월 23일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의 알뫼 장터 싸움에서 체포된 뒤, 같은 날 27일 고창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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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자는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여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는데, 이 때문에 뒷날 녹두장군(綠豆將軍)이란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85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봉준은 어려서 전주 구미리[현 전라북도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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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공일은 1890년 10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창묵(鄭昌默)·정휴규(鄭休圭)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인동맹은 보천교도(普天敎徒)들이 독립운동을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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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광(靈光)이며, 자는 사중(士中), 호는 양천(陽泉)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에서 태어났다. 감찰을 지낸 정극명(丁克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영희(丁永喜)이다. 정대수(丁大秀)는 25세 때인 1906년(고종 43) 경의책(經義策)으로 박사 초시에 합격했으나, 동생이 죽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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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휘는 근영(根永), 호는 진암(眞庵)이다. 백현(伯賢)은 자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태어났다. 정백현은 농민 봉기 와중에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지도자급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백현은 1894년 3월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 때, 전봉준(全琫準)의 처 칠촌으로 뒷날 전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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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정세환은 1915년 12월 1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연동리 160번지[장동길 33-11]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정치과를 졸업하고, 고창중학교 재단 이사장과 대산금융조합장·중산수리조합장·재단법인 정치학원 이사·국민회 전북도지부장을 지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고창 갑구에서 당선되었으며, 4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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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1872년 3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53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시해는 기우만(奇宇萬)과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양친 상을 당하여 6년 동안 계속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에 분개하여 영남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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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충효비. 의병장 일광(一狂) 정시해[1872~1906]는 면암 최익현의 휘하에서 활동하다 1906년(고종 10) 6월 총탄에 맞아 순국하여 1990년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정시해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부친은 정종택(鄭鍾澤)이며, 모친은 거창신씨(居昌愼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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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대서(大敍), 호는 태호(颱湖)이다. 1853년(철종 4)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충장공 정황(鄭璜)의 후손이다. 정영원(鄭榮源)은 일찍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과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경전에 해박하였다. 바른 학행을 몸소 실천하여 주변에 명성이 높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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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이고, 자는 사겸(士謙), 호는 덕헌(德軒)이다. 충장공(忠莊公) 정황(鄭璜)의 후손으로 극재(克齋) 정방규(鄭枋珪)의 아들이다. 1920년 무장면 덕림리(德林里)에서 출생하여 2000년에 죽었다. 선비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에 전심했고 명륜학원[성균관대학 전신]을 졸업하여 일찍 시문(時文)으로 알려졌으며 서화에도 조예가 깊어 조선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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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창묵은 1884년 5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광대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공일(鄭公一)·정휴규(鄭休圭)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했던 정창묵은 신인동맹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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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상쇠 명인. 정호풍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서 태어났으나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풍어제·민요 편에서 영광·무장·장성농악[호남우도농악]의 두 갈래의 전승 계보 중 박귀바위·최화집·강성옥·정호풍·박성근(朴成根)·나덕복·전경환(全敬煥)으로 이어지는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로 조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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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용부(容夫), 호는 일재(逸齋)이다. 1901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하곡(霞谷) 정운룡(鄭雲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난파(蘭坡) 정요현(鄭堯鉉)이고, 아버지는 노수(蘆叟) 정순영(鄭淳榮)이다. 정홍채(鄭弘采)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외가가 있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로 이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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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휴규는 1904년 4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 602번지[입암길 33-19]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공일(鄭公一)·정창묵(鄭昌默)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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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백거(伯據), 호는 흠재(欽齋)이다. 1873년(고종 10)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고산서원(高山書院)에 배향된 동오(東塢) 조의곤(曺毅坤)이고 아버지는 무우당(無憂堂) 조석휴이고 어머니는 탐진안씨 안기순의 딸이다. 아들은 조병후(曺秉厚)이다. 조덕승(曺悳承)은 4세 때부터 18세까지 할아버지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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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1943년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을 투옥한 사건. 일본은 1939년 4월부터 학교의 국어 과목을 폐지하고 신문과 잡지를 점차 폐간하였다. 이에 조선의 한글학자 등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일제의 탄압 정책을 직감하면서 사전 편찬을 서둘러 1942년 4월 원고 일부를 대동출판사에 넘겨 인쇄를 시작하였다. 함흥영생고등여학교(咸興永生高等女學校) 학생 박영옥(朴英玉)이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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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본관은 직산(稷山)이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수월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재용은 월암리에 사는 임벽하(林碧河)의 천거로 정읍에 사는 접주 최익서(崔益瑞)를 통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1899년 4월 정읍 농민 봉기에 가담했다가 고창 수성군에 체포된 뒤 5월 2일 고창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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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조판용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정리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찍이 1899년 정읍 농민 봉기[일명 영학당 사건]를 주도한 최익서(崔益瑞)에게 천거되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동학 접주로서 동학 농민 혁명이 좌절되자 동학의 재건을 추진하던 중 1899년 4월에 일어난 정읍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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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여양(驪陽)이며, 호는 백민(白民)이다. 1921년 12월 13일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진의종은 경기고등학교를 수료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43년 7월 고등문관 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고, 1945년에 일본 북해도청 농무과장을 지냈다. 1971년 고창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와 제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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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본관은 여양(驪陽)이다. 184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진채선은 신재효(申在孝)의 문하에서 음률과 가무, 판소리를 배웠다. 풍류·가곡(歌曲)과 무용에 탁월하고, 여성임에도 웅장한 성음(聲音)을 자랑하였으며, 기량도 풍부하였다. 20대에 경복궁 낙성연에서 판소리를 불러 좌중을 감탄하게 했는데, 이때 신재효가 지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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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서양화가. 본관은 여양(驪陽)이고, 본명은 진기용(陳錤用)이다.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진우곤(陳宇坤)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진환(陳瓛)은 무장공립보통학교와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한 뒤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미술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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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보천교 교주. 본관은 연안(延安). 본명은 차윤홍(車輪洪), 자는 경석(京石), 호는 차월곡(車月谷)·차천자(車天子). 아버지는 동학 접주 차치구(車致九)[1851~1894]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4남 1녀 중 큰아들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구례 화엄사와 고창 선운사 등을 지킨 차일혁 경무관이 차경석(車京石)[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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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민족 운동. 1920년대 전반 고창 지역에는 고창청년회를 비롯한 성송청년회, 무장청년회, 성내청년회, 고수청년수양회 등 모두 7개의 청년 단체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청년 단체는 고창청년회였으며, 핵심 인물인 홍종철(洪鍾轍), 김승옥(金升玉), 신기초(申基礎), 은규선(殷圭宣), 이휴열(李休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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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월포(月浦), 본명은 귀환(貴煥)이다. 경칠(敬七)은 자이다. 1861년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최경칠은 9척 장신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하는데,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머슴의 등에 업혀서 서당에 다닐 정도로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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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이명(異名)은 추현(楸賢)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최경현은 36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서, 1909년 무렵 약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고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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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최서중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이는 아마도 그의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아서일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지 역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에서 활동하였다는 사실에서 고창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서중은 손화중 포의 기포장(起包將)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농민군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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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백효(伯效), 호는 후운(後雲)이다. 188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서 태어났다. 최순모는 일찍이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또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에게 서화를 배워 글씨가 정묘하고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다. 산수화와 화훼(花卉)를 잘하고, 특히 일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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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법조인. 최용관은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에서 태어나,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부터 법관으로 활동하며 광주지방법원과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68년부터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71년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지구 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최용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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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정읍 농민 봉기 지도자.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이름은 석일(錫一)·운일(雲一)·일서(一西), 자는 익서(益瑞)이다. 1858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임암면 만화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영두(崔永斗)[1829~1899]도 동학 농민 혁명에 앞장섰다. 최익서는 고부 마항리(馬項里)[현 정읍시 이평면]에서 예수교를 빙자하여 영학당을 조직한 뒤 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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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우서(禹敍), 호는 지은(智隱)이다. 1850년 6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169번지에서 태어났다. 최전구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이에 분격하여 이듬해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 지역]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였다. 이후 최익현 의병대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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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최치홍(崔致洪)은 지금의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고종 36)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 농민 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18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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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행한 사업.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 조선에서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의 조사 사업이다. 근대적 토지 소유권의 확립을 목표로 일본은 이미 1905년 통감부 정치의 출현과 더불어 그 기초 사업을 착수하는 한편,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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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국악인. 편재준(片在俊)의 본관은 만경(萬頃), 본명은 편옥석(片玉石)이다. 아버지는 편도일(片道一)이고 어머니는 문남산(文南山)이다. 4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편재준은 맹인이었으나 퉁소의 대가였다. 편재준은 조선 시대 대동미를 운송하던 큰 포구인 사진포[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7번지]에서 1913년 태어났다. 사진포는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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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1940년 6월 10일 전라북도 옥구군 옥구면 상평리 458번지에서 한영순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한상신은 1958년 3월 20일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5월 20일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의 상하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했다. 1964년 9월 1일 고창군 성내면에 있는 용교초등학교로 전근하여 근무했다. 그 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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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항일 운동. 학생 운동은 전국적으로 볼 때 일관된 조직을 가지고 전개된 운동은 아니었다. 즉, 노동·농민·여성 형평 운동과 같이 전국 단위의 조직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1920년대 초 학생운동은 주로 ‘동맹 휴학’의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이때의 주요 쟁점은 ‘학내 문제 해결’과 ‘일본인 교원 배척’ 등이었다. 그러나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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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판소리에 관한 한 지금까지도 권위 있는 연구서이자 명창 열전으로 알려져 있는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박황의 『판소리 이백년사』 등에 허금파(許錦波)[1866~1949]는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고창이 배출한 명창에 반열에 오른 여류 명창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에서 허금파가 신재효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창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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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 역사.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1910년에 강탈당한 국가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진입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완전한 주권 회복은 힘들게 되었다. 이후 1948년 8월과 9월 남북에서 별도의 정치 세력들이 각각의 단독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결국 한민족은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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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백정들의 신분차별 철폐 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가 조직되어 1935년 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12년간 전개된 백정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이다. 형평사는 1923년 4월 25일 강상호(姜相鎬)의 제안으로 이학찬(李學贊)과 장지필(張志弼)이 주동이 되어 결성한 사회운동 단체였다. 형평사 문건에서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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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제가 고창 지역을 비롯한 호남 지역 의병을 토벌한 사건. 1909년 일본군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지화에 반대하는 항일 의병 투쟁을 철저하게 진압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작전명 ‘남한폭도 대토벌 작전[호남 의병 대학살 사건]’ 이름으로 전라도와 그 외곽 지대에서 항일 의병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당시 순사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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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천민 부대를 이끈 홍낙관(洪樂寬)의 동생이다. 홍계관은 1894년 3월 봉기 때 형 홍낙관과 함께 행동하였다. 당시 손화중(孫化仲) 포의 일원으로 고창에서 농민 혁명에 가담해 대성(大成) 수접주(首接主)로서 무장·백산·황룡촌·전주성 등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1896년 8월에는 최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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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홍낙관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1850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제외하고 출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평소 호탕한 성격에 귀티가 흐르는 미남형이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고창읍 화산리에 사는 남양홍씨 집성촌을 찾아가 홍종운(洪鍾雲)[1844~1925]을 만나 후 동학 접주 유동근(劉東根)·유치호(劉致鎬) 등의 천거로 동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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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913년 8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8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종철(洪鍾轍)이다. 홍순희는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고창산업조합 상무이사·고창면협의회 의원·고창군학교평의회·고창동중학교 이사·고창산업조합장·전북인사처장서리·민주당 중앙위원 등을 지냈다. 1958년 5월 2일 실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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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기업가, 사회 활동가.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893년 4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재삼(洪在森)이고, 어머니는 진대기(陳大基)이다. 홍종철은 일제 강점기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1937년 당시 370여 정보의 땅을 소유한 고창의 거부였다. 정읍국자(井邑麯子) 이사·고창요업주식회사 대표·고창흥산 이사·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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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상쇠 명인. 황규언은 1920년 1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양사동으로 이사한 뒤 15세 때부터 동네 어른들을 따라 다니며 매굿·풍장굿·당산굿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25세 때 고창의 유명한 굿패였던 박성근(朴成根)과 김만식(金萬植)패에 합류한 뒤 김만식에게는 장구 가락을 배우고,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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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영구는 1918년 9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355번지[조동길 35]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인 1933년경에 비밀 결사 조직이자 사상연구단체인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35년 2월 동맹 휴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두 학생의 복교를 요구하면서 교실에서 농성을 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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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서예가.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호는 석전(石田)·남고산인(南固山人)·칠봉거사(七峰居士)·백련산인(白蓮山人) 등이다. 189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태어났다.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黄胤錫)의 7세손으로, 덕헌(德軒) 황효익(黄孝翼)의 5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황욱은 6세에 서학에 입문하여 1916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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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소고 명인. 황재기는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에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풍물판을 따라다니면서 이모질에게서 엇박배기 동작을 배우는 등 이모질·김양술(金良述)·김오채 등과 소고를 쳤다. 이후 박성근(朴成根)·신영찬·신두억·김만식(金萬植)·김성락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24세 때인 1947년 정읍농악단 소속의 수벅고로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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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황종관은 1868년 8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대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이 일본의 준식민지로 전락하자, 1906년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이 고예진(高禮鎭) 등 30여 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상대로 투쟁할 것을 맹약하고 전라남도 태인의 종석산(鍾石山)에서 거의(擧義) 절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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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초명은 학모(學模), 호는 죽곡(竹谷)이다. 185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에서 태어났다. 황채오는 1893년 11월 전봉준(全琫準)과 농민 봉기를 계획하고, 송두호(宋斗浩)의 집에서 동지 20명과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발기하고 서명하였다. 사발통문의 내용은 첫째,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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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징수 명인. 황태봉은 189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신림면 반룡리로 이사를 했으며, 포목 장수로 생계를 이으며 고창과 영광, 정읍 등지에서 징수[징 치는 사람]로 활약하였다. 무장에서부터 박성근(朴成根)패와 인연이 있어서 징수로 활동했는데, 풍채가 좋아 씨름판을 휩쓸고 다녀서 황장군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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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혁명군.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에서 태어났다. 황화성의 선대는 주변 10리 안팎의 땅을 소유한 지주였다고 한다. 황화성은 어려서부터 골격이 크고 장대했다고 전한다. 일찍이 집안 형님뻘 되는 황희성(黃熹性)과 같이 공음면 구내 출신 송문수(宋文洙) 휘하의 동학 농민군으로 들어갔다. 1894년 3월 20일 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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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었던 풍류인들의 모임. 풍류는 고창이나 무장보다 흥덕이 더 활발하였다. 성내 3·9회, 성내 6·2계 등의 율계(律契)가 이를 말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모임은 정읍 초산율계(楚山律契)와 부안율계(扶安律契) 등과 함께 지방의 풍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흥덕 아양율계는 풍류계에 소속된 이들을 중심으로 사랑채나 명승지에 모여 풍류를 즐기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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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고창 지역의 흥덕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흥덕공립보통학교 5~6학년 학생 150여 명은 고종의 승하를 애도하는 자리를 학교에서 마련해 주지 않자 2월 4일부터 애도를 표하고 근신하기 위해 5일간 휴학하기로 결의하고 등교하지 않았다. 1920년 3월에는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이종주(李鍾柱)·유판술(劉判述) 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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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2월 고창 지역에서 흥덕군수의 탐학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운동. 동학 농민 혁명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898년(고종 35) 지방 수령의 수탈 행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안으로는 봉건 정부의 수탈과 밖으로는 외세 침략에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영학당을 조직하였다. 영학당은 동학 남접 세력으로 동학 농민 혁명의 상처가 남기고 간 잔여 세력이자 국가의 운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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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 호남 지역 본부. 흥동은 성내면의 다른 이름으로, 흥덕현[현 흥덕면] 차동 지역에 있으며, ‘동국을 흥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흥동장학당은 흥동장학회 조직에서 비롯되었다.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육영 장학 사업을 목적으로, 1914년 봄 부안군 내소사에서 백낙윤(白樂允), 이순렬(李舜烈), 이석렬(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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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독립 자금을 마련하고자 백관수·백낙윤 등이 조직한 장학회. 흥동장학회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육영 장학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흥동장학회는 1914년 봄 부안군 내소사에서 백낙윤(白樂允)·이순열(李舜烈)·이석열(李錫烈)·황상익(黃尙翼)·백관수(白寬洙)·이휴열(李休烈)·이갑수(李甲洙)·황서구(黃瑞九) 등이 발기하고, 성내면 중심의 지역 유지 98명의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