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평리는 고려 때 갑향(甲鄕)이 있어 갑향이라 하다가 ‘가평(加平)’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가평리(加平里)·백계동(白溪洞)·갈촌(葛村)·노동(蘆洞)과 이남면(二南面)...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갈마리는 풍수지리상 마을의 지형이 갈마음수(渴馬飮水)[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이라 하여 ‘갈마(渴馬)’라고 하였다 한다. 1470년경 신천강씨(信川康氏) 강윤석(康允碩)이 터를 잡고, 임진왜란 이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희량(吳希亮)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남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남기·감낭기·감냉기 또는 시목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강남(江南)이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강남·장두(獐頭)·낙양(洛陽)·덕산(德山) 등을 병합하여 강남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건동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4년 ‘건동(建洞)’과 ‘송산(松山)’을 병합하여 그 중심 마을의 이름을 붙여 건동이라고 했다. 1700년대 중엽 무송유씨(茂松庾氏) 유제한(庾濟漢)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
-
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에 있었던 해상 포구. 검당포(黔堂浦)는 조선 시대에 농도가 진한 소금물[염탕수]을 큰 솥에 넣고 불을 지펴 다려 만드는 화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검당포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선운사를 창건한 검당선사 또는 화염을 굽는 벌막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검당]와 관련된다는 설이 있다. 전언에 의하면 1400여 년 전 검당선사가 선...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검산리는 검곡(檢谷, 劍谷)의 ‘검’자와 중산(中山)의 ‘산’자를 따서 검산(劍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팽정(彭丁)·창내(倉內)·중산·장등(長嶝)·검곡·부귀(富貴), 이서면 신안(新安) 등을 병합하여 검산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중매[일명 중산]...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검산리는 마을 뒤에 장군봉이 있는데, 마을 형국이 장군이 쓰는 ‘칼[長劍]’ 모양이라 ‘검산(劍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1584년 청도김씨(淸道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상리면(上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 상라리(上羅里)·상수리(上水里)와...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당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의 지형이 용이 잠긴 형국이라 ‘용계(龍溪)’로 불렸다. 진주정씨(晉州鄭氏) 정회찬(鄭悔燦)이 이주한 뒤 호를 따 ‘계당(溪堂)’이라고 불렀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말 신천강씨(信川康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선 중기 진주정씨 정회찬이 괴치마을에서 옮겨...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 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 일원에는 모두 4개소의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다. A군 고인돌 2기, B군 고인돌 1기, C군 고인돌 4기, D군 고인돌 7기로 모두 14기이다. 대부분 기반식 고인돌이며 덮개돌이 비교적 판석형에 가까운 평평한 돌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B군 고인돌과 D군 1기의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계산(鷄山)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광산김씨가 피난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지산(芝山)·부정(釜鼎)·비석·사신·병암·내독 일부를 병합하여 계산리라 하고...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라리는 무장읍내 고을이라 해서 골아래로 불리다가 고내리(古乃里)를 거쳐서 고라리로 칭하였다. 고라실 또는 고라라고 불린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정(安亭)·백양·온금·하거 각 일부, 일동면 원촌 일부, 와공면 송암(松岩)을 병합하여 고라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관련 포구. 조선 시대 고리포는 봉화를 올렸던 고리포 봉수대가 있었던 포구로 유명하며 봉군들이 머물렀던 마을로 추정된다. 봉수대는 포구 북동쪽 600여m 지점의 안산[120m]의 정상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리포의 봉수가 무장현의 서쪽 20리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구시포의 남서쪽 약 1.8...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성 터. 백제 시대에 고창 지역의 인구가 다른 지역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고창군 관내에 백제 시대의 성(城)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고적조사자료(朝鮮古蹟調査資料)』에 의하면 흥덕면 흥덕리, 아산면 상갑리, 오산면[고수면: 오산면은 뒤에 고창읍과 고수면에 나뉘어 편입되었다] 예지리,...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성리는 좋은 물과 바위·소나무·대나무 등이 잘 구비되어 ‘사미동(四美洞)’이라 부르렀다. ‘사미(士美)’로 개칭된 뒤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의 이름을 따 ‘고성(古星)’이 되었다. 1600여년경 임진왜란이 평정될 무렵 피난 온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헌(金憲)의 후손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청해면...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고사면(古沙面)과 수곡면(水谷面)에서 ‘고(古)’자와 ‘수(水)’자를 따 고수면(高水面)이 되었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고사면 와촌리(瓦村里)·황산리(黃山里)·상평리(上平里)·두평리(斗坪里)·은사리(隱士里)와 수곡면의 부곡리(芙谷里)·장두리(長斗里)·초내리(...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전리는 마을보다 주변에 있는 밭이 지대가 높아 고전(高田)이라 하였다. 고전포, 고전호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 목경파(牧卿波) 김영하(金永夏)의 6세손 김관승(金寬承)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 만돌(萬突), 고전,...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고제택(高濟澤)의 정려. 장흥고씨(長興高氏)는 고창군의 명문가이다. 고려가 망하자 고직(高直)은 조선 태종이 벼슬을 주면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영광을 거쳐 흥덕현[현 흥덕면]의 고려곡에 은거하면서 살았다. 장흥고씨는 흥덕면과 신림면, 성내면 옥제리, 고창읍 죽림리, 동산리에 퍼져 큰 성씨를 이루고 있다. 고제택(高濟澤)은 천성이...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오산리 부안초등학교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석탑. 고창 부안초등학교 내 석탑은 원래 상등리에 있었으나 6·25전쟁 직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부안초등학교 정문 옆 개교60주년기념비 왼쪽에 세워져 있다. 조각 양식이 통일 신라의 석탑과 비교하여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에 사찰에서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흥덕터미널에서 남서쪽...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 요지. 고창 분청사기요지에는 구릉 위의 작은 저수지 왼쪽 경사진 언덕에 가마벽편과 요도구, 분청 사기편 등이 산재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고부군에 자기소 2개소가 있었는데, 모두 군 서쪽 부안군에 있다고 되어 있다. 즉 부안면 수동리는 당시 고부군에 소속되었고, 이곳 해안가에 2개소의 자기소(磁器...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에 있는 고려 시대 청자 요지.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는 1983년 아산댐 수몰 지구 조사 과정에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다. 40×80m에 걸쳐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네 개의 거대한 퇴적 구릉과 주변의 작업장, 건물 터로 이루어진 청자요지이다. 아산면에 위치한 또 다른 청자요지로는 반암리 요지가 있으며,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와...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읍. 고창이라는 명칭은 높고 넓은 들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고창면이라 하였고, 1955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고창면이 고창읍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삼한 시대에는 마한 땅의 모로비리국의 모이부곡(牟伊部曲)에 속하였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모량부리현에 딸렸으며,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 고창...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척화비. 고창읍성 내 척화비는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에 의해 척화비를 세우라는 명령이 내려지자, 고창 지역에서는 이듬해인 1872년(고종 9) 고창현감 이동석(李東奭)의 주도 하에 모양성 내 공북루 오른편에 세워졌다. 이후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어 갔을 때 일본공사의 요구에 의하여 척화비...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비석군. 고창읍성 비석군은 현재 모양성 앞 주차장에 2열로 모두 18기의 비석이 배치되어 있다. 고창읍성 비석군은 원래 고창현[현 고창읍] 내에 산재하던 것들인데, 보존을 위해서 근래에 고창읍성으로 옮겨놓았다. 명문의 내용으로 볼 때 현감, 관찰사에 대한 영세불망비 4기, 현감과 관찰사에 대한 선정비 12기, 유애비 2기가 있으며,...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와공면(瓦孔面)과 동음치면(冬音峙面)에서 ‘공(孔)’자와 ‘음(音)’자를 따 공음면(孔音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興德郡)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와공면과 동음치면의 병합으로 공음면이 되어 12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법정리로는 건동...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대리는 넓은 터에 마을을 이루어서 ‘광대(廣垈)’라고 하였다는 설과 광대리 지형이 풍수지리상 삼결지각(三結之角) 거문고·피리·젓대 등 풍악으로 둘러싼 가운데 광대(廣大)들이 노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광대(光大)’로 고쳐 쓰고 있다. 조선 명종 초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광산김씨 가문의 정려. 광산김씨 한 집안에서 4세에 걸쳐 다섯 사람이 효행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뒤따랐던 열행으로 나라에서 각각 정려를 내렸다. 이는 조선 시대에도 보기 드문 집안이다. 증자헌대부 예조판서(贈資憲大夫禮曹判書) 김순(金純)은 부모상에 여묘하여 새와 백호가 감응하는 효행으로...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승리는 빛이 있는 별이 무더기로 떨어졌다고 해서 ‘광승(光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510년대 청도김씨(淸道金氏) 김성호가 광승마을에, 비슷한 무렵에 연안차씨(延安車氏)가 외경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괴치리는 괴목숲이 우거진 산으로 회화나무[槐]와 재[고개, 峙]가 많은 것을 본 따 ‘괴치(槐峙)’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괴칫재 밑이라 ‘괴치’라고도 했다고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피해 진주정씨(晉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흥덕읍성 밖에 조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성밖으로 불렀다. 1621년 흥덕향교가 설립되자 마을 이름을 향교마을로 불렀다. 향교에 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고 해서 교운(校雲)마을로 개칭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조선 말기 흥덕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서문(西門)·교촌(郊村)·오태(五台)...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흥덕향교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편에 총 25기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비석의 내용으로 분류하면, 흥학비 2기, 선정비 12기, 불망비 8기, 기타 3기 등이다. 교운리 비석군은 대부분 공적비로서 흥덕현[현 흥덕면] 일대에 산재해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놓았다. 흥덕농협에서 흥성동헌을 거쳐 가는 방법이 있고 흥덕터미널에서 큰길 맞...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1600년대 초 고창향교(高敞鄕校)가 이 지역으로 옮겨 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창기에는 교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라 하여 ‘생교(生校)라고 불렀다. 그 외에는 ‘상교’·‘생교(生校)’ 로 불리다가, 조선 후기에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교촌(校村)’이라 하였다. 고창향교가 월곡리 학당동에서 1589년(선조 22)에 교촌리로 옮겨 온 이...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교흥리는 교촌(郊村)의 ‘교’자와 덕흥(德興)의 ‘흥’자를 따서 교흥(校興)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일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교촌·궁동(弓洞)·덕흥·월구(月句)·내동(內洞) 등을 병합하여 교흥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생교[일명 교촌(校村), 생기, 향교] 뒤에 당산(堂山)이...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리는 마을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암(龜岩)’이라 하였다. 1600년대에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말을 타고 지나다, 주점에서 하룻 밤을 묵는데 꿈에 선몽을 받고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덕음리(德...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리는 원래 사기점이라 불리었으나 약 80년 전 사기점 흔적이 없어지자 명칭을 구암으로 바꾸었다. 구암리에 안장바위, 선바위, 형제바위, 별바위, 탕건바위, 병바위, 소반바위, 사자바위, 병풍바위의 아홉 개 바위가 있으므로 구암(九岩)이라 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박씨 집안이 자리를 잡아 사방 30리 땅을 지배하...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군유리는 군사가 주둔해서 ‘군유(軍留)’ 또는 ‘군율’이라 하였다 한다. 속설에는 유림(儒林)과 선비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군유(群儒)라고 한다고 한다. 풍수상 학(鶴) 형국이라 군학(群鶴)을 비유하여 ‘군유(群濡)’로 부른다는 유래도 있다. 1400년대 초 달성배씨(達城裵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궁산리가 할뫼[275.5m]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활뫼 또는 궁산(弓山)이라 불렀다. 옛날에 채씨가 마을을 지나다가 산세와 지형이 좋아 정착한 후, 영성정씨(靈城丁氏), 금성나씨(錦城羅氏), 전주이씨(全州李氏), 여흥민씨(驪興閔氏), 평산신씨(平山申氏) 등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평리는 금평마을의 뒷산 형상이 풍수지리의 ‘북’과 같다고 하여 ‘명고(鳴鼓)’라고 불렸다. 1936년에 삼양사의 간척 공사로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으로 변했다고 ‘금평(金平)’이라 하였다. 1546년대 한양조씨(漢陽趙氏)가 금평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나성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나산(羅山)과 성산(星山)에서 ‘나(羅)’자와 ‘성(星)’자를 따 ‘나성(羅星)’이 되었다. 조선 명종 초에 경주이씨(慶州李氏) 이번(李璠)과 자손들이 자리한 매남마을과 월봉마을이 있고, 1700년대에 청주한씨(淸州韓氏)가 자리한 나산마을 등이 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행정명칭은 ‘낙양(洛陽)’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마을 형국이 ‘소라[螺]’ 모양과 같다하여 ‘나형기(螺形基)’라 불렀는데, 변음되어 ‘냉기’라고 불렸다 한다. 설립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 무송유씨(茂松庾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남양리(南陽里)와 당산리(堂山里)에서 ‘남(南)’자와 ‘산(山)’자를 따 ‘남산(南山)’이 되었다. 고려 말에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서면(五西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잠곡리(蠶谷里)·송계리(松...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는 남산 밑이라서 남산리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 서당골에 당씨, 변적골에 해주오씨, 지사골에 경주이씨가 살았고, 그 뒤 광주이씨를 비롯하여 진주정씨·상산김씨·창녕조씨 등 여러 성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남산·용장(龍庄)·흥룡(興龍...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는 본래 ‘내고(內古)’라 불렸지만, 1950년대 후반 행정구역 조정 때 ‘내동(內洞)’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이후 1620년경 김홍우(金弘宇)의 셋째아들 김여진(金汝辰)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남면(川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내동(內洞)·구...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노동리에 갈대를 물고 나는 기러기[飛雁含蘆] 형상의 명당이 있어 노동(蘆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1497년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이종(朴李宗)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남면(川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노동·등선리(登仙里)·성동리(城東里)·대양리(大暘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동리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대야(大也)의 ‘대’자와 동촌(東村)의 ‘동’자를 따서 대동(大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창군 대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회진(會津)·쌍천(雙川)·추동(秋洞)·선동(仙洞)·동촌·사동(寺洞)·양정(良丁)·대야 일부, 산내면의 신성(新城)을 병합하여 대동리라...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대제면(大堤面)과 장자산면(壯子山面)에서 ‘대(大)’자와 ‘산(山)’자를 따 대산면(大山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興德郡)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대사면·대제면·장자산면의 대부분과 원송면(元松面)의 일부, 전라남도 영광군 일부 지역의...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장리는 풍수지리상 마을터가 장군(將軍) 형국이라하여 ‘대장’이라고 불렀다 한다. 1592년경 경주이씨(慶州李氏) 이원호(李元豪)가 임진왜란을 피해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삼서면(森西面)에서 이거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대흥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대곡리(大谷里)와 신흥리(新興里)에서 ‘대(大)’자와 ‘흥(興)’자를 따 ‘대흥(大興)’이 되었다. 1590년대에 함평노씨(咸平魯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월리(...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림리는 마을 뒤에 있는 계림산(鷄林山)[닭메]에서 유래되었다. 처음에는 닭숲으로 부르다가 덕림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덕림(德林)·정동(貞洞)·방축(方築) 등을 병합하여 덕림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리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선비 엄사안(嚴思安)이 유교의 가르침 중 사덕[四德: 言德功容]을 상징하는 ‘덕(德)’자를 따 ‘덕뫼’라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또 마을 뒷산 서남쪽 언덕 너머에 불무혈이 있다고 해서 ‘불무골’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곳의 불기운처럼 마을에 덕이 넘쳐나기를 소망해서 지었다고도 한다. 고려 말기에 마을이 이루어졌다고는...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리는 행정 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도덕리(道德里)와 산양리(山陽里)에서 ‘덕(德)’자와 ‘산(山)’자를 따 ‘덕산(德山)’이 되었다. 조선 후기 수원백씨(水原白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생근리(生芹里)·관정...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암리는 대리미산 밑이라 ‘대리미’ 또는 ‘덕암(德岩)’이라 하였다고 한다. 1700년대 초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평촌리(平村里)·복흥리(福興里)·창평리(昌平里)·지음리(知音里)·응암리(...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정리에 큰 우물이 있어 ‘덕우물’ 또는 ‘덕정(德井)’이라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이 마을에 우물이 세군데 있었는데, 이 우물의 물을 마시면 덕인(德人)이 난다고 하여 ‘덕우물’이라 부른다. 1530년대에 여양진씨(驪陽陳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천리에 관한 뚜렷한 명칭유래는 확인되지 않으나, 옛날 조수(潮水)가 드나들던 마을 앞 내를 ‘비천(飛川)’이라고 하여 마을의 이름으로 불렸다. 또, ‘비내’·‘비린내’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덕천(德川)’으로 개칭되었다. 1578년(선조 11)에 상주주씨(尙州周氏) 주대검(周大儉)이 승문원(承文院) 교리(...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덕화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덕곡리(德谷里)와 화동(化洞)에서 ‘덕(德)’자와 ‘화(化)’자를 따 ‘덕화(德化)’가 되었다. 1600년경 임진왜란 시 피난온 진주강씨(晋州姜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곡리는 도산(道山)의 ‘도’자와 양곡(良谷)의 ‘곡’자를 따서 도곡(道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일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도산·양곡·덕흥(德興)·월구(月句) 등을 병합하여 도곡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구덕골 위에 큰 감나무가 있었던 감나뭇골, 양곡 동쪽에 다카실 등의 골...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림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도산리(道山里)와 왕림리(旺林里)에서 ‘도(道)’자와 ‘임(林)’자를 따 ‘도림(道林)’이 되었다. 1302년(충렬왕 28) 성적골에 마을이 들어섰다가, 1500년경에 현재의 위치에 여러 성씨가 모여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보도산(普道山) 아래 마을이 있어서, 그 산의 이름을 따서 ‘도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1554년대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이후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폐촌되었다가 1730년 경 예조참판 정택신(鄭宅臣)이 정착하면서 새롭게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동면(五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천리는 전설에 의하면 ‘도천’은 마을 앞까지 바다물이 들어와 선창(船艙)이 만들어져 배형국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거룻배 도(舠)와 통할 천(穿)을 붙여 도천(舠穿)이라 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해리 무장으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도천(道川)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조선 말기 무장군 심원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부(東部)의 ‘동’자와 녹사(綠砂)의 ‘사’자를 따서 동사(東沙)라 하였다. 조선 말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한림(翰林)·녹사·동문(東門)·동부·복룡(伏龍) 일부를 병합하여 동사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한림 뒤에 예전 빙고(氷庫)가 있었다는 핑갯등[일명 핑굿등, 빙곳등]이라는...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동산리는 흥덕현의 동쪽이고, 마을 뒤의 산이 동쪽으로 우뚝 솟았다하여 ‘동산(東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 명종 때 의성김씨(義城金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구평리(九平里)·내동산(內東山)·외동산...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호리는 이전에는 ‘수월정’ 또는 ‘동백정(冬柏亭)’으로도 불렸다. 마을에 동백나무가 무성하고, 대섬[竹島]과 변산반도 방향의 바다가 호수처럼 보인다하여 ‘겨울의 호수’라는 이름을 따 ‘동호(冬湖)’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달하면서 마을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암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모습이 곡물을 측정하는 ‘말[斗]’과 같다하여 ‘두암(斗岩)’이라 부른다고 한다. 1600년대 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송운리(松雲里)·신흥리(新興里)가 병합...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어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형국이 누에머리와 같다고 해서 잠두(蠶頭)라고 불렀다. 한편, 마을 앞 바다 속에 검은 가마귀 바위가 발견되었는데, 누에는 가마귀에게 먹힌다는 설이 있어서 지명을 두리(斗里)라고 바꿨다. 마을 뒤 고개가 풍수지리상 머리 형상이리서 두리(斗里)라 한 것이다. 물고기라 많이 잡힌다하여 두어(斗漁)라고도 하였는데 어감이...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평리는 마을에 긴 들이 있어 ‘두평(斗坪)’이라 하였으며, 1730년대는 ‘말치[斗崎]’라고 불렸다고 한다. 1635년 경주최씨(慶州崔氏) 최문회(崔文會)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古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동(新洞)·양생리(養生里)·구암리(...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돌리는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장차 굴뚝이 만 개가 솟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서, 만돌(萬突)이라 하였다고 한다. 광산김씨(光山金氏) 양간공파(良簡公派) 김진(金璡)의 손(孫)이 만돌과 두어 사이에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점차 형성되었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난호(蘭湖)[일명 난물]...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화리의 지명 유래에 관해서는 전해지는 내용이 없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만화(萬化)·매산(梅山)·사미(士美)·연방(蓮坊)·복흥(福興)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만화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만화리에는 내동천이 흐르고 매산제가 있다. 만화리는 무장면의 서부에 있다....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산리는 본래 묵도리라 하였다가 지형이 ‘매화낙지(梅花落地)’형국이라 ‘매산(梅山)’으로 고쳐불렀다고 한다. 1400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 매은(梅隱) 김오행(金五行)이 처음 들어와 묵도리라 했고, 1600년경 화순오씨(和順吳氏) 오언음(吳彦音)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대사면(大寺面)의 지...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목동리는 옛날에 마을에 참나무 정자가 있어서, 진목정(眞木亭)·목정·목동이라 하였다. 원래 우농와라 하다가 마을 지형이 움푹한 삼태기 같다고 하여 와농(窩籠)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1900년대 초에는 와룡(臥龍)으로 불리었다. 조선 말기 고창군 대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하당(下堂)·와룡·...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목우리는 이 곳에 머위가 많이 나서 머위말[머우촌]이라 부른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목우리의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형태여서 목우(牧牛)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백석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목우(牧牛)·월평(月坪)·송정(松亭) 일부, 탁곡면 강정 일부를 병합하여 목우리라 하고...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림리는 행정구역 개편 시 중심 마을인 임리(林里)의 이름에서 ‘숲말’이라고 하여 무림리(茂林里)가 되었다. 1700년대 초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치중(尹致中) 등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임리·만화리(萬化里)·야...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송리는 옛 무송현(茂松縣)의 터라서 ‘무송(茂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광산김씨(光山金氏), 진주강씨(晋州姜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두리(龍頭里)·금사리(金沙里...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장리는 무장현의 소재지였으므로 무장(茂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중거(中巨)·정거(井巨)·하거(下巨)·사죽(射竹)·덕림·고라·이동·상성 각 일부를 병합하여 무장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무장리는 무장면의 중심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1417년 무송현과 장사현을 합병할 때 두개의 현의 중간 지점에 해당된 곳에 무장현이 자리를 잡으면서 생긴 지명이다. 백제 시대에 송미지현과 상노현에 속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송미지현을 무송현으로, 상노현을 장사현으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1417년(태종 17) 무송현과 장사현을 무장현으로 통합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군 이동면(二東面)...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비석군. 무장읍성은 1417년(태종 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1991년 2월 21일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가 옛 정취를 자아내고, 성내에는 객사, 동헌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 가문의 효열각. 학생(學生) 박기순(朴基純)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 널리 알려졌다. 조정은 박기순에게 효자 정려를 하사하였다. 또한 박기순의 손자 박동석의 처 수원백씨는 시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수원백씨는 남편이 병에 걸려 앓아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남편...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룡리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상반룡[上龍溪]과 하반룡[下龍田]에서 이름을 따 반룡리(盤龍里)라고 하였다. 또, 옛 마을 뒷산인 방장산에서 용(龍)이 승천하다 떨어졌다는 유래가 있어 용바위로 부르다가 ‘반룡(盤龍)’이라고 불렸다 한다. 1700년대 초계변씨(草溪卞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암리는 마을에 소반바위가 있으므로 소반바우 또는 반암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에 결혼식이 있던 날 신선이 말을 타고 선인봉(仙人峰)에 내려왔다. 신선은 옥녀의 거문고 소리와 술맛에 취하여 등잔을 밝히면서까지 술을 마시다가 결국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쓰러지면서 술상을 발로 차 버렸다. 그 자리가 바로 선인취와혈(仙人酔臥穴)이라고 한...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방축리 입구에 큰 연못이 있어 ‘방죽안’이라 불렸다. 이후 가옥이 늘어 마을의 형태가 축대를 쌓은 형상이 되어 ‘방축(方築)’으로 개칭되었다. 1592년경 임진왜란이 일어나 청도김씨(淸道金氏)가 피난하여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양리는 자연 마을인 백양의 지명을 취한 것이다. 백양마을은 마을 형체가 원님을 향해 절하는 형국이라 배임동이라고 불려오다가 고을 원이 먹을 양을 기르는 곳이라고 해서 백양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백양(白羊)·덕림(德林)·사죽(射竹)·고라(古羅)...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지리는 원래 ‘법줄(法茁)’이라고 불렸으나, 무성한 숲으로 호랑이 피해가 심해 마을을 떠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법(法) 자(字)는 불가(佛家)에서 호랑이를 뜻하고, 줄(茁) 자(字)는 숲이 무성하다는 뜻으로, 줄자를 지(止) 자(字)로 고치면 피해를 면할 수 있다고 하여, 법지(法止)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법동’...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영조 때 와송(窩松) 전덕수(全德秀)가 마을 뒷산에 시묘를 살 때, 송충이가 심해 묘 근처 소나무들이 죽어가자 애통하여 울었더니 까치와 까마귀 떼들이 갑자기 날아와 벌레를 잡아 먹었다고 한다. 다른 곳의 소나무는 죽고 벽송리의 소나무는 푸른 소나무로 남아 있자, 이곳을 지나던 전라남도 영광(靈光) 원(院) 안겸(安鎌)이 ‘벽송(碧松)’...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덕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주산인 태봉산 북쪽에 있는 봉암이라는 바위 이름을 따서 봉암으로 불렀다. 후에 만동으로 개명하였다가 1940년경 봉덕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조선 말기 고창군 대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성동(星洞)·봉덕(鳳德)·종교(宗喬)·동림(東林)·우모(牛毛)·중복(中卜)·오향...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산리는 벌처럼 생긴 산[벌매]이 있어 ‘버르매’ 또는 ‘봉산(蜂山)’이라 하였다 한다. 마을 형성 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본래 고창군 오동면(五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동암리(東岩里)·취성리(取星里)·사천리(沙川里) 일부가 병합되어 봉산리가 되었고, 오산면(五山面)에 편입되었다. 1935년...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암리의 지명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봉오(鳳梧)·인촌(仁村)·대고(大姑) 각 일부, 이서면 죽도(竹島)를 병합하여 봉암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봉오[일명 봉오리] 동쪽에 할미당이 있던 고당산(故堂山)[일명 할미당]이 솟아 있고, 봉오...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곡리는 지형이 가마처럼 생겨 ‘가마골’ 또는 ‘부곡(芙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400년대 연안이씨(延安李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수곡면(水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장암리(場岩里)·연동(連洞)·신평리(新平里)·증산리(甑山里)와 고사면(古沙面)...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덕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부동리(富洞里)와 덕성리(德星里)에서 ‘부(富)’자와 ‘덕(德)’자를 따 ‘부덕(富德)’이 되었다. 1600년대 초에 수원백씨(水原白氏)가 부덕마을에, 조선 중기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장담마을에 각각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의 지역으로, 191...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부송리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부송(扶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1800년경 청주한씨(淸州韓氏) 한수창(韓秀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서면(一西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풍암치(風岩峙)·부흥동(富興洞)·작산리(鵲山里) 덕림촌(德林村)·용...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부안면은 간척지 논이 많아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부안(富安)이라 하였다. 고려 전기에 자억현, 고려 후기에 흥성현, 조선 중기 이후 흥덕현이었다. 1906년(고종 43) 흥덕군 부안면으로 개편하여 중보(中洑)·덕흥(德興)·계곡(鷄谷)·서당촌(書堂村)·상오산(上鰲山)·하오산(下鰲山)·우수점(雨水店)·구정(九井)·수남(水南)·선량...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내리는 새가 숲으로 날아드는 형국이라 하여 ‘새나리’·‘조비리’·‘새내’·‘초내’·‘사내(沙乃)’라고 하였다 한다. 설립 시기가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에 여러 성씨들이 모여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포동리...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반리는 지형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사반(巳盤)’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 청주한씨(淸州韓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미동리(米洞里)·사반리·어룡리(魚龍里)·광승리(光升里)의 일부가 편입되어 사반리가...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창리는 마을에 환곡을 넣어 두던 곳집이 있어서 사창(社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사창·신점(新店), 일서면 진목정(眞木亭) 일부를 병합하여 사창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사창리는...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죽송(竹松)·덕평(德坪)·내사(內沙)·외사(外沙)·제내(堤內)·용정(龍井), 일서면의 통야·영구 일부를 병합하여 사천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내사 어귀에 지형이 두루마리...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갯가에 모래가 많으므로 사진포 또는 사포(沙浦)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주항(酒缸)·회목(檜木)·사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포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회목 동북쪽에 남생이 형국의 남생잇등, 술항골[일명 주항] 뒤쪽에 조선 영조 때 통헌대부 정시현(鄭始縣...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림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낙산리(洛山里)와 죽림리(竹林里)에서 ‘산(山)’자와 ‘임(林)’자를 따 ‘산림(山林)’이 되었다. 조선 중기 흥성장씨(興城張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세월리(細月里)·은동(...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수리는 산수가 좋으므로 ‘산수매’ 또는 ‘산수(山水)’라고 하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진주정씨(晉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외원리(外院里)·삼태리(三台里)·방...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산수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산수리 지석묘는 산수리 방축마을에 있어 방축 고인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인돌은 대개 군집을 이루며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산수리 지석묘와 같이 고갯마루에 단독으로 있는 경우의 고인돌도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대개 제단 고인돌, 혹은 기념물 등의 성격을 지닌다. 방축마을 도로 건너 대산면 상금리로 넘어가는 소로가...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정리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전주(李全胄)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양뜸 마을 터를 이루었는데, 양뜸 가운데 흐르는 시냇가에 정자나무가 있어 ‘산정(山亭)’으로 불렀다고 한다. 1650년경 순창설씨(淳昌薛氏) 설진공(薛鎭功)이 발산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산정마을은 1698년(숙종 24)에 성주이씨(星州李氏) 이...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577년(백제 위덕왕 24년)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때 모여든 사람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석상(石床)·중촌(中村)·삼인(三仁) 일부를 병합하여 삼인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삼인리 고인돌은 모두 세 개 지역에 나뉘어 군집하고 있다. A군 고인돌 3기, B군 고인돌 10기, C군 고인돌 8기로 모두 21기의 고인돌이 확인된다. 고인돌의 형식은 기반식이나 뚜껑식이지만 대부분 윗돌 아래가 묻혀 받침돌의 수나 형태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A군은 아산면 삼인리 중촌마을 서쪽 구릉에, B군...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갑리는 본래 고려 시대의 갑향(甲鄕)이었는데 발음이 잘못 전해져 갑평(甲坪)으로 불리었다. 1910년 갑평 윗쪽 마을이라 상갑리로 변경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계(淸溪) 강순(姜恂)이 동지와 집안 장정 100여 명을 모아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굴욕적인 화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당...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금리는 마을 앞에 있는 개천에 쇠가 많이 난다고 하여 쇠내[金川]라고 했고, 그 위에 상금리가 있어서 ‘상금(上金)’이라고 하였다 한다. 1600년경 경주김씨(慶州金氏) 김익수(金益壽)가 마을 터를 이루고 안터골[현, 남산]이라 하였고, 1610년경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방(趙鎭邦)은 쇠내 중간에 마을 터를 이루고 중금(中金)이라고 불렀...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등리는 산등성이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등(上嶝)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중등(中嶝)·상등·등성(登城) 일부를 병합하여 상등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구꾸게[일명 구현(仇峴)]에...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암리는 상포(象浦)의 ‘상’자와 석암(石岩)의 ‘암’자를 따서 상암(象岩)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석암·원당(元堂)·상포·반월(半月)·인촌(仁村) 일부를 병합하여 상암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황시암골 위에 서쪽 부안면 봉암리의 대섬과 마주 보는 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평리는 1600년대 지금의 신평마을 뒤에 있던 등선마을에서 강릉유씨(江陵劉氏)가 자리 잡았다고 해서 ‘신평(新平)’으로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상평(上坪)’이라 부르고 있다. 1600년대 말 강릉유씨(江陵劉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古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상하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상이면(上二面)과 하이면(下二面)에서 ‘상(上)’자와 ‘하(下)’자를 따 상하면(上下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興德郡)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상이면과 하이면 지역의 병합으로 상하면이 되어 9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법정리로...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교리에 돌로 된 다리가 있어 ‘독다리’ 또는 ‘석교(石橋)’라고 하였다 한다. 마을 형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임진왜란 전·후에 타지의 빈민들이 숨어 살던 곳이었으나, 차츰 조선 후기에 안정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교동(校洞)...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교리는 석교리 창촌마을에 작은 돌다리가 있어 ‘독다리’·‘석교(石橋)’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1400년대 초 창원황씨(昌原黃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동촌리(洞村里)·남동리(南洞里)·다옥리(多玉里)가...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돌다리가 있었으므로 돌다리 또는 석교(石橋)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오공(五公)·석교, 현내면 오태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교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석교리는 흥덕면의 남서부에...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역사상 금속기 제작 이전에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썼던 시대. 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눈다. 구석기 시대는 뗀석기를 주로 사용하였고 신석기 시대는 간석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한국의 신석기 시대는 간석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토기도 처음 만들어졌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탄생한 약 50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의 연대이며, 주...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남리는 마을 지형이 배의 닻줄과 같다하여 ‘선람(船纜)’이라 하다가, ‘성남(城南)’ 또는 ‘석남(石男)’으로 변했다고 한다. 1500년대에 오씨(吳氏)와 양씨(梁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하리면(下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갈오리(渴烏里)...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롱이[산모퉁이의 휘어 둘린 곳]에 돌이 있어 돌모루 또는 석우촌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석신(石新)·동림(東林)·석우(石隅)·동신(東新)·관동(冠洞)·회화(回化)·신흥(新興) 등을 병합하여 석우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석우촌 앞으로 철생이틀이라는 골...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정리는 조선 전기에 ‘승산(昇山)’으로 불렸다가, 입상석불(立像石佛)이 웅덩이 아래 ‘추하(湫下)’에 묻혀있다고 해서 ‘석정(石汀)’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산간 마을로서 돌과 물이 많다고 하여 ‘석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뚜렷한 시기가 확인되지 않으나, 조선 중기에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침(曺琛)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동리는 풍수지리상 마을의 형태가 부채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부채울’ 또는 ‘선동(扇洞)’이라 하였다. 1950년대는 마을 앞에 큰 샘이 있어 ‘대정(大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490년대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닦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선사 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의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된다. 이는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제안한 3시대 체계[Three age system]에 따라 인류가 생산한 유물을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의 3대 시기로 구분한 것에 기초한 것이다. 한편, 문자가 존재하...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운리는 마을 앞에 포구가 있어서 선운포(仙雲浦)라고 명명한 것에서 기원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과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부안면의 구룡리(九龍里)·신흥리(新興里) 일부, 이서면 선운리를 병합하여 선운리라 하고 고창군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구룡동 동쪽에 귀영다래, 독내들 밑에 남...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입구 근처 부도전 내에 세워져 있는 조선 후기 기념비. 선운사 백파율사비는 1858년(철종 9년)에 세운 것으로,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비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근세에 율사(律師)의 종파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白坡)만이 이에 해당할 만하며,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백파가 팔십 년 동안 착수하고 힘을 쏟은 분...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남리는 토성(土城)이 있었던 태봉산의 남쪽에 있어 ‘성남(城南)’이라고 하였다 한다. 1550년경 함양오씨(咸陽吳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대제면(大梯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성동리(城東里) 등이 병합되어 성남리가 되었고,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내리는 무장읍성 안에 있는 마을이므로 성내(城內)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성내·내동(內洞)·상성(上城)·이동(泥洞), 일동면 통정(桶井) 등을 병합하여 성내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성내리는 무장면의 중심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0.54...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성내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칠성동(七星洞)과 내토리(內兎里)에서 ‘성(星)’자와 ‘내(內)’자를 따 성내면(星內面)이 되었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茂長郡)과 흥덕군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일동면·이동면 지역의 대부분과 이서면(二西面)의 일부, 고부군(古阜郡) 일부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성두리는 ‘성머리[城頭村]’로 불렸으나, 풍수 형국상 북두칠성의 중성공두(衆星拱斗) 형국이라 하여 ‘성두(星斗)’라고 이름을 바꿨다 한다. 지명을 개명하면서 웃뜸을 상성(上星), 중뜸을 중성(中星), 아랫뜸을 하성(下星)이라 하였다. 마을 형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 전기 고흥유씨(高興柳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리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월성(月星)의 ‘성’자와 죽산(竹山)의 ‘산’자를 따서 성산(星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계룡(溪龍)·성기(性基)·봉산(鳳山)·죽산·월성·궁월(弓月) 등을 병합하여 성산리라 하여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성송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성동면(星洞面)과 원송면(元松面)에서 ‘성(星)’자와 ‘송(松)’자를 따 성송면(星松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성동면이라 하여 관동리(冠洞里)·호동리(虎洞里)·낙양리(洛陽里) 등 2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원송면의 상고리(上古里)·하고리(下古...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세곡리는 좁은 골짜기라 ‘가느실’ 또는 ‘세곡(細谷)’이라고 하였다 한다. 1650년경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천두(文天斗)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서세리(西細里)·남세리(南細里)·관동리(冠洞里)·은정동...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계리는 송암(松岩)의 ‘송’자와 용계(龍溪)의 ‘계’자를 따서 송계(松溪)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송암리, 청해면 용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계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방현에서 상하면으로 넘어가는 방고개[일명 방현(方峴)]가 있고, 방고개 남쪽에 산신...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곡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송림리(松林里)와 월곡리(月谷里)에서 ‘송(松)’자와 ‘곡(谷)’자를 따 ‘송곡(松谷)’이 되었다. 1500여년경 청주김씨(淸州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상리면(上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장기리(壯基里)...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산리는 동학 농민 혁명 이전에는 ‘청산’으로 불렸다. 동학 혁명 중에 뒷산의 우거진 소나무 덕에 마을이 무사했다는 이유로 ‘송산(松山)’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1530년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청해면(靑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행...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종송(種松)의 ‘송’자와 용암(龍岩)의 ‘암’자를 따서 송암(松岩)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제내(堤內)·빈월(賓月)·칠현(七玄)·용암·종송·야동(冶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암리라 하고 고창군 신림면에 편입하였고, 1987년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용암 서쪽...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용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송촌(松村)과 용암리(龍岩里)에서 ‘송(松)’자와 ‘룡(龍)’자를 따 ‘송룡(松龍)’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의견은 농암리(籠岩里)의 ‘농(籠)’을 ‘용(龍)’으로 잘못 따 송용리가 되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현재 행정리로 농암(籠岩)마을이 있고, 마을 이름의 유래가 기록으로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후자가 더...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현리는 마을 뒤 고개에 소나무가 많아서 송현(松峴)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일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송현·신촌(新村)·궁동(弓洞) 등을 병합하여 송현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송현 서북쪽에 백여산(白餘山)이 솟아 있고, 송현에서 아산면 성산리 월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솔재[...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현리는 송암(松岩)의 ‘송’자와 안현(鞍峴)의 ‘현’자를 따서 송현(松峴)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소고(小古)·안현·대고(大古)·송암·신흥(新興) 일부를 병합하여 송현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산정물[일명 산정(山亭)] 앞에 물은골, 선암뜸 남쪽에...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남리는 수강산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수남(水南)이라 하였다. 다른 이름으로는 지로지(芝老池)가 있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남·선량(善良)·신기(新基)·검곡(檢谷) 일부를 병합하여 수남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수남리는 부안면의 동부에 있다. 2010년 3월...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동리는 수강산(水崗山)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수동(水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주촌(舟村)·회룡(回龍)·종산(鐘山)·용전(龍田)·상대동(上大洞)·하대동(下大洞)·갈마동(渴馬洞)·부귀(富貴) 일부를 병합하여 수동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터골[일명...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앙리는 수강산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수앙(水央)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현(龍峴)·반룡(盤龍)·신천(新川)을 병합하여 수앙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반룡과 용현 사이 큰길 옆에 고려장이 많이 행해졌던 고려장등이라는 산등성이가 있는데 새로 막은 둑...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대리는 새로 된 마을이라 ‘새터’·‘신대리(新垈里)’라 하였다고 한다. 1750년대에 천안전씨(天安全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새터·축동(丑洞)·구정리(九井里), 이동면(二東面)의 복흥리(福興里)가 병...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대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정리(新亭里)와 대천리(大川里)에서 ‘신(新)’자와 ‘대(大)’자를 따 ‘신대(新大)’가 되었다. 조선 중기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봉서리(鳳西里)·대천리...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서 덕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라 하여 신덕(新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연장동·용소동·목우촌·용두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덕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원덕(遠德) 서남쪽으로 삿갓 모양의 삿갓봉[일명 입봉(笠峯)]이 솟아 있고, 단진포[일명 전정...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신림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평리(新坪里)와 임리(林里)에서 ‘신(新)’자와 ‘임(林)’자를 따 신림면(新林面)이 되었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茂長郡)과 흥덕군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일남면·이남면의 대부분과 일서면(一西面)의 일부 지역이 합쳐 신림면이 되어 12개 법...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성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평리(新平里)와 칠성리(七星里)에서 ‘신(新)’자와 ‘성(星)’자를 따 ‘신성(新星)’이 되었다. 1633년 전주이씨(全州李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장교리(長橋里)·당사리...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산 남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신송(新松)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연지(蓮池)·신송·노동(蘆洞)·미동(米洞)·구송(舊松)·신흥(新興)·석우(石隅)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송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구송 북쪽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송산(松山)이...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월리는 마을 형국이 ‘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신월’이라 부르고 있다. 애초에 ‘경방(京坊)’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려 중기에 고창오씨(高敞吳氏)의 시조 오학린(吳學麟)이 말년에 내려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흥리(新興里)·...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촌리는 자연 마을인 신촌마을의 지명을 취한 것이다. 신촌마을은 마을 뒷산 봉우리가 왕봉과 같다고 해서 왕재산이라 칭하고, 산은 왕이고 마을은 신하라는 뜻으로 왕신동으로 불리다가 후에 난세를 겪으면서 다시 일어선 마을이라고 해서 신촌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입신리(笠新里)와 해평리(海坪里)에서 ‘신(新)’자와 ‘평(坪)’자를 따 ‘신평(新坪)’이 되었다. 1800년대 경주정씨(慶州鄭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청송리(靑松里)·해평...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 구역. 산의 지형이 ‘마음 심(心)’자, ‘으뜸 원(元)’자와 비슷하여 심원이라 하였다. ‘심’자의 첫 번째 점은 양산골에서 맥(脈)을 이루어 내려오다가 고인돌군이 형성된 비석바위등에 해당하고, 가운데 점은 여양진씨(驪陽陳氏) 선산인 큰똥뫼에 해당하며, 오른쪽 점은 밀양손씨(密陽孫氏) 효열각이 있는 작은똥뫼, 구부러진 획은 월산(月山) 뒷산에 해당한다....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아산면은 대아(大雅)의 ‘아’자와 산내(山內)의 ‘산’자를 따서 아산(雅山)이라 하였다. 마한 시대에 모이부곡현, 백제 시대에 모양부리현, 통일 신라 시대에 모양현·고창현, 조선 시대에 고창현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대아면 지역으로 회진(會津)·쌍천(雙川)·추동(秋洞)·선동(仙洞)·동촌(東村)·사동(寺洞)·양정(良丁)·대야(大也)·서당(書堂)...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산리는 풍수지리상 임해마을 뒷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산 능선이 기러기가 진을 치고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안진(雁陣)머리라 불렸다. 풍수지리에서 갈마음수(渴馬飮水) 형태의 터에 말 안장이 옆에 있다하여 ‘안산(鞍山)’으로 부른다. 안장이 떨어져 ‘혁(革)’자를 떼어낸 뒤 ‘안산(安山)’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1450년대 부산김씨(釜山金氏)...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암치리는 암치마을 뒷산 칠성산의 고개를 넘어면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고개에 바위가 많이 깔려 있어 ‘암치(岩峙)’라고 했다 한다. 입조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 청주한씨(淸州韓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계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석양리(石陽里)와 계동리(桂洞里)에서 ‘양(陽)’자와 ‘계(桂)’자를 따 ‘양계(陽桂)’가 되었다. 1630년경 전주이씨(全州李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내퇴리·운등리(雲嶝里...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동리는 마을에 연방죽[연화제(蓮花堤)]이 있어 ‘연동’·‘연화’·‘연화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1590년경 함양오씨(咸陽吳氏) 오구(吳球)가 장동마을에 터를 잡았고, 1640년대에는 능성구씨(綾城具氏) 구이생(具以生)이 연화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14...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화리는 연화봉(蓮花峯)[224m] 아래에 있는 마을이므로 연화라 하였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연화리·월산리(月山里)·화산리(花山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화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금산(琴山) 남쪽에 산세가 순하고 아름다워 각시와 같다는 각시매[일명 씨산(氏山)]가 솟아...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리에 관한 뚜렷한 명칭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예지’로 불렸다가 ‘예전(禮田)’으로 불렸다고 한다. 1300년대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묘리(侍墓里)·응암리(鷹岩里)가 병합되어...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지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예동(禮洞)과 지촌(智村)에서 ‘예(禮)’자와 ‘지(智)’자를 따 ‘예지(禮智)’가 되었다. 1700년대에 소씨(蘇氏)가 입향하여 마을을 일으켰다고 전래된다. 그러나 조선 영조 초에 경주이씨가 낙향하여 유교의 근본인 예와 효를 펴서 본격적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본래 고창군 오서면(五西面)의 지역으로,...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산리는 자라 모양 처럼 생긴 오미등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오산(鰲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오산(上鰲山)·하오산(下鰲山)·우수점(雨水店)·구정리(九井里), 이서면 동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산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하오산 앞들 가운데 둥그런 똥...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에 있던 지명 중 오태(五台)의 ‘오’자와 석호(石湖)의 ‘호’자를 따서 오호(五湖)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석호·신조(新造)·오태·교촌 각 일부, 북면의 회목 일부를 병합하여 오호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석호[일명 차독배기]와 신조[...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산리는 마을의 산세가 구슬처럼 생겼으므로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백석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가라(加羅)·대산(垈山)·죽림(竹林)·신월(新月)·송정·덕림 각 일부, 대제면 성동 일부를 병합하여 옥산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제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외옥리(外玉里)와 제내리(堤內里)에서 ‘옥(玉)’자와 ‘제(堤)’자를 따 ‘옥제(玉堤)’가 되었다. 조선 전기 장흥고씨(長興高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리(仁川里)·신동(...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남산리에서 전통적으로 생산하여 사용하는 그릇. 옹기는 먹거리를 위해 곡식, 장류, 김치, 젓갈류 등을 보관하던 대표적인 그릇으로 지방별로 그 형태가 다르다. 고창 지역에서는 500년 전통을 이어온 장암 옹기마을에서 생산한 옹기의 명성이 매우 높다. 고대부터 제작되어 온 토기를 비롯하여 10세기 초 고려청자와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백자에 이르기까지 고창군에서...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와촌리는 마을에 기와를 굽던 막이 있어 ‘와촌(瓦村)’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 따르면 옛날 김할머니가 산을 넘어가다 구해준 강아지를 키웠는데 훗날 이 강아지를 키워서 판 돈으로 돼지 새끼를 사다 키워서 다시 팔고 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와촌리의 전체적인 형국이 개구리 형국인데 개구리등에 해당하는 곳에 김할머니가 큰 기...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왕촌리가 길가에 위치해 ‘왕거리’, ‘왕촌(旺村)’이라 하였다 한다. 고려 말에 언양김씨(彦陽金氏)와 나주오씨(羅州吳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양곡리(良谷里)·신흥리(新興里)·지로리(芝老里)·왕촌리(旺村里)·대흥리(...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외화리는 화룡의 바깥쪽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00년경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연방(柳延芳)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외화리·내화리(內化里)·구암리(九岩里)·월화리(月化里)의 일부가 병합되어 외화리가 되...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계리는 용이 계곡에 살며 등천하였다 하여 용계(龍溪)라 하였다. 1600년대 진주강씨가 터를 잡고 살았고, 그 뒤 부평김씨와 연안이씨가 같은 시기에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仁川)·원평(院坪)·신촌(新村)·오암(五岩)·용수(龍水)·용평(龍坪)...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교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용전리(龍田里)와 옥교리(玉橋里)에서 ‘용(龍)’자와 ‘교(橋)’자를 따 ‘용교(龍橋)’가 되었다. 1600년대 장흥고씨(長興高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전리·우동(隅洞)·...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앞산의 생김이 용의 형국이어서 용기(龍基)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다동(水多洞)[일명 수대동]을 병합하여 용기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웃뜸 남쪽에 삼망산(三望山)[일명 삼보래기]이 솟아 있어 산 정상에 오르면 정읍군의 영주산(瀛州山...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대리는 마을 지형이 용이 등천하는 형국이라 하여 ‘용터’ 또는 ‘용대(龍岱)’라고 하였다 한다. 마을 형성에 대한 기록이 뚜렷하지 않으나, 1597년경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정유재란 때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하리면(下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용이 서려 있는 형국이므로 용반(龍盤)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내남당(內南塘)·대양(大陽)·제내(堤內)·용반·관동(冠洞)·동신기(東新基)·회화정(回化亭)·외남당(外南塘)·중남당(中南塘)·오정(五丁) 각 일부, 부안군 건선면의 신흥·신정 각 일부를...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주위 산세가 용의 형국이므로 용산(龍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산·신덕(新德)·반정(盤亭)을 병합하여 용산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용산 서남쪽에 산세가...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수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수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마을 전체 형상이 용(龍)의 꼬리 형국이라고 한다. 용은 물[水]이 있어야 잘 산다는 관념에 따라 청천마을 앞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 후부터 용수마을이 잘살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1650년대 말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잡고 살기...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정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용산리(龍山里)와 판정리(板井里)에서 ‘용(龍)’자와 ‘정(井)’자를 따 ‘용정(龍井)’이 되었다.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귀양살이 온 미상의 선비가 인조 재위시[1623~1649년]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상리면(上里面)의 지역으로, 191...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평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소의 형국이라고 해서 독실(犢實)[솟들]이라고 불렸다. 1933년 ‘우평(牛坪)’이 되었다. 1475년대 이천서씨(利川徐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서면(五西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독곡리(篤谷里)·죽천리(竹川里)·용지리(龍...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운곡리 명칭 유래와 관련해서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마을 주변이 기봉(旗峰)·용봉(龍峰)·필봉(筆峰) 등으로 둘러싸여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덮고 있다 하여 운곡(雲谷)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와 화시산[화시봉] 아래 골짜기이므로 운곡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1780년경 선산김씨(善山金氏)가 터를 잡아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양리는 백운(白雲)의 ‘운’자와 조양(朝陽)의 ‘양’자를 따서 운양(雲陽)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백운·삼태(三台)·중등(中嶝)·조양·궁현(弓峴)·진목정(眞木亭), 이서면 석산(石山) 일부를 병합하여 운양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촌리는 조선 시대에 동원(東院)이 있던 마을이므로 원촌(院村)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일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원촌·송산(松山)·금곡(金谷)·송현(松峴)·덕흥(德興)·통정(桶井)·궁동(弓洞) 각 일부, 이동면의 하거·온금(溫金) 각 일부, 탁곡면의 안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촌리라...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곡리는 방등산 서남향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 산에 둥근 달이 솟아오르듯 큰 인물이 나오라는 기대를 갖고 ‘달실[月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700년대에 고흥유씨(高興柳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월리(新月里...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림리는 월구(月句)의 ‘월’자와 죽림(竹林)의 ‘임’자를 따서 월림(月林)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일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죽림·정동(井洞)·양곡(良谷)·월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월림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다. 장재 뒤에 장재매[일명 장자산]가 솟아 있다. 산 밑에 장자가 살...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 하여, ‘월산’이라 부르고 있다. 뚜렷한 시기를 확인할 수 없지만, 조선 후기에 창녕조씨(昌寧曺氏)와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산정리(山亭里)·회...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는 편월(片月)의 ‘월’자와 입산(笠山)의 ‘산’자를 따서 월산(月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입산·죽림(竹林)·송림(松林)·편월·토등(兎嶝)·내안(內安)·한정(漢井)·안유(安由)를 병합하여 월산리라 하고 성내면에 편입하였다. 내안촌 뒤 죽림[일명 대...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이 마치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 ‘월산(月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1898년 밀양손씨(密陽孫氏)와 김녕김씨(金寧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월산리(月山里)·사등리(沙嶝里)·화산리(花山里)·도천...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성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항월리(恒月里)와 성내리(城內里)에서 ‘월(月)’자와 ‘성(城)’자를 따 ‘월성(月城)’이 되었다. 1623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점리(新店里)·신시...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암리는 달밤에 바위 모양을 이루었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이전에는 ‘정산(鼎山)’·‘검암(儉岩)’ 등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마을 터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조선 중기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여흠(曺汝欽)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율계리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과 밤나무가 많아 ‘밤계’·‘방계’ 또는 ‘율계(栗溪)’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 후기 동래정씨(東萊鄭氏)와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반리(新半里)·발막리(鉢幕里)·경...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율촌리는 마을 지형이 소쿠리 모양, 또는 밤송이가 벌어져 까지는[벌어지는] 형상이라고 하여 ‘밤까실’이라 불렸고, 밤나무가 있어 ‘율촌(栗村)’이라고 하였다 한다. 1560년경 영월신씨(寧越辛氏) 신몽량(辛夢良)이 전라남도 영광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대사면(大寺面)의 지역으로, 1914년...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사리는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숨어[隱]살기 위해 선비[士]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여 ‘은사(隱士)’라 하였다. 1592년대 죽산안씨(竹山安氏) 안복(安福)과 안지(安祉) 형제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古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림리(上林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읍내리는 고창의 읍내가 되므로 읍내리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의 형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백제 때에 모양성(牟陽城)이 축조된 이후 자연 발생적으로 여러 곳에서 이미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백제 때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양성의 형태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 고창읍성...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덕비. 이교인은 문과에 급제하고 1859년(철종 10)에 승지로 불려갔다. 이교인이 선정을 베풀고 다른 지역으로 부임할 때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공음면사무소에 칠암리를 거쳐 대산면 쪽으로 가다 보면 군유오거리에 군유주유소가 나오는데, 이곳에 있다. 비석 윗부분이 비신과 한 몸으로 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현감이후교인청덕...
-
개항기 고창 출신 열녀. 이근채 처 흥성장씨는 동학 농민 혁명에 남편이 연루되었다는 명목으로 시아버지가 경군(京軍)에 잡혀가 곤욕을 치르자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시아버지의 석방을 청탁하여 경군의 허락을 받아 냈다. 시아버지가 노환으로 쓰러지자 10여 년 간 간병하였고, 상을 당해서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1904년(광무 8)에 정려가 내려졌다. 흥성장씨 정려는 고창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인성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인동(仁洞)과 위성리(渭城里)에서 ‘인(仁)’자와 ‘성(城)’자를 따 ‘인성(仁城)’이 되었다. 1600년대에 조양임씨(兆陽林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서면(五西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동·위성리·학산리(鶴山里)...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뚜렷한 명칭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여포(自予浦)’라 부르다가 1592년 이후에 자룡으로 불렸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자룡리’이라 바꿔 불렀다고 한다. 한편, 산에 나무가 없고 헐벗은 붉은 산이라 ‘자룡(紫龍)’이라는 의견도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남양방씨(南陽房氏)가 터를 잡아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포리는 주변 지형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자포실’ 또는 ‘자포(子包)’라고 하였다. 1750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석암리(石岩里)·해암리(海岩里)·해월리(海月里)·...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곡리는 긴 골짜기 안에 마을이 있어 ‘장곡(長谷·壯谷)’이라고 했다고 한다. 1800년대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회룡리(回龍里)·내대리(內垈里)·양동리(良洞里)와 전라남도 영광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두리는 마을 뒷산이 노루의 형국이라 ‘장머리’ 또는 ‘장두(獐頭)’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장두(長斗)’로 개칭하여 불리게 되었다. 1600년대 초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서봉(朴瑞鳳)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수곡면(水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장암리(壯岩里)와 기산리(旗山里)에서 ‘장(壯)’자와 ‘산(山)’의 이름을 따 ‘장산(壯山)’이 되었다. 마을의 형성에 대한 기록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1749년경 창원황씨(昌原黃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상리면(上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호리는 마을 뒤편에 긴 벌[명사십리]이 있어 ‘장불’ 또는 마을 앞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마을에서 보면 호수처럼 보여 ‘장호(長湖)’라고 불렀다 한다. 약 30년 전 긴 개울이 있어 ‘장호’라 칭하였으나 지금은 간척으로 인해 개울의 흔적은 없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철원주씨(鐵原周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충효비. 의병장 일광(一狂) 정시해[1872~1906]는 면암 최익현의 휘하에서 활동하다 1906년(고종 10) 6월 총탄에 맞아 순국하여 1990년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정시해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부친은 정종택(鄭鍾澤)이며, 모친은 거창신씨(居昌愼氏)이다....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리제(古里堤) 아래에 있는 마을이므로 제하촌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제하(堤下)·내고(內古)·외고(外古)·성암(星巖)·종송 일부를 병합하여 제하리라 하고 고창군 신림면에 편입하였고,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따라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동리는 마을 앞산이 굽들이며 자귀바락[바가지]으로 소[牛]의 구시[구유의 사투리, 구유 조(槽)] 형국이라고 한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조동(槽洞)과 동촌(東村)에서 ‘조(槽)’자와 ‘동(東)’자를 따 ‘조동(槽東)’이 되었다. 고려 중기 흥덕장씨(興德張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주곡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거미 형국이라하여 ‘거미(무)실’ 또는 ‘거미[蛛]’를 써 ‘주곡(蛛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562년 고흥유씨(高興柳氏) 석탄(石灘) 유운(柳澐)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동면(五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평리(上坪里)·...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산리는 풍수지리상 소나무 숲으로 아담하게 둘러싸인 마을의 형국이 거미[蛛]와 같다 하여 ‘주산(蛛山)’으로 불렀다. 그러나 거미가 꺼림칙하다 하여 구슬 주(珠)로 바꿔 ‘주산(珠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550년대 밀성박씨(密城朴氏) 박상원(朴尙源)이 터를 잡아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의 지역으로, 1914...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진리는 고창 뱃나드리라고 해서 배날로 불리다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오정동과 대야 일부를 통합하여 중심 마을인 주진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1731년(영조 7) 하대문이 하씨 다섯 가족과 함께 들어와 부유하게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1801년경(순조 1) 하대문 집안이 파산하여 이거하고 그 후 각 성씨들이 들어와 정착하였다. 처음 옆 마...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죽림리는 ‘대’[나무]가 많이 있어 ‘대산’ 또는 ‘죽림(竹林)’이라고 하였다 한다. 옛날, 마을에 ‘대’와 ‘삼’이 유명하여 ‘대삼마을’이라고도 불렀다. 1450년 경에 광산김씨(光山金氏) 김남협(金南浹)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천리...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개항기 죽산안씨 가문의 효자 정려. 안건(安建)은 호조좌랑(戶曹佐郞)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은 부친이 위독하자 동생 안정(安廷), 안형(安逈), 안근(安近)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아버지를 살려내자 세상이 그들을 일문사효(一門四孝)라 했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다하고 삭망마다 성묘하자 전라감사 박기수(朴綺壽)가 쌀, 고기,...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산리는 뒷산에 매화나무가 있어 ‘풍매’라고 불렸다. 어느 날 고승(高僧)이 주위 산세를 둘러보고는 풍경이 산중의 산이란 뜻으로 ‘중산(中山)’이라고 하여, ‘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1570년경 영광김씨(靈光金氏) 김윤한(金潤漢)이 곡촌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580년대에는 광산김씨(光山金氏)...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월리는 중복(中福)의 ‘중’자와 월산(月山)의 ‘월’자를 따서 중월(中月)이라 하였다. 1800년경부터 밀양박씨가 터를 잡고 살았다. 조선 말기 고창군 대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우동(右洞)·월산·월명(月明)·신월(新月)·상복(上福)·중복·신사(新巳)·상당(上堂)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월...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흥리는 통폐합된 여러 마을 중 중보(中洑)의 ‘중’자와 덕흥(德興)의 ‘흥’자를 따서 중흥(中興)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복·덕흥·계곡(鷄谷)·서당촌(書堂村)을 병합하여 중흥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서당촌 뒤로 알미[일명 난산(卵山)]가 솟아 있다. 부안면 오산리의...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석리는 마을에 고인돌이 있어 ‘지암(支岩)’으로 부르다가, ‘지석(支石)’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1510년경 의령여씨(宜寧余氏) 여경연(余慶延)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지석마을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철제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한 시기. 우리나라에서 철기 시대는 B.C. 3~2세기부터 A.D. 300년까지의 시기이다. 고대왕국이 정립되기 이전의 성읍국가, 연맹왕국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청동기가 점차로 소멸되고, 중국으로부터 철기가 도입되어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이 시기에는 철제 무기류는 물론, 철제 농구와 더불어 우경이 시작되어 농업...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는 벼농사의 시작과 더불어 청동기가 유입되고 전쟁이 시작되는 3,000년 전부터 2,000년 전의 시기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청동의 주조술이 전래되어 무기나 장신구 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나무의 벌채로 인하여 대규모로 자연의 변화가 개변이 시작되었으며,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내리는 풍수지리상 말이 먹은 풀밭이라 하여 ‘초내’라 부르고 있다. 초내리 부근의 추산봉에 천마시풍이라는 ‘혈명’이 있는데, 이는 말과 관련된 지형이다. 한편, 초내마을이 백제 때 초아지, 초나지로 불린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설도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그 시기에 관한 뚜렷한 기록...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춘산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춘산리(春山里) 명칭과 함께 마을 뒷산에 서 있는 바위를 상징하여 ‘입암(笠岩)’이라 하였고, 현재는 ‘입암(立岩)’으로 고쳐 쓰고 있다고 한다. 1550년경 신천강씨(信川康氏)가 입암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비석군. 춘산리 비석군은 진주정계묵공덕비(晉州鄭桂默功德碑)를 비롯하여 비석 10기가 있다. 즉, 공덕비 2기, 불망비 3기, 선정비 1기, 추모비 2기, 기념비 1기 등으로 참봉, 현감, 독립 의사 등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대산면 지역에 있는 공적비를 수집하여 춘산리에 모았다. 영광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에서 지석리로 갈라지...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치리(峙里)의 ‘치’자와 복룡(伏龍)의 ‘용’자를 따서 치룡(峙龍)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치리·구동(九洞)·동문(東門)·복룡·신흥(新興) 각 일부, 북면의 석우촌 일부를 병합하여 치룡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복룡 뒤쪽으로 배풍산 동쪽 줄기에 해당하...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칠암리는 마을 뒷산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칠암’이라 한다고 한다. 본래는 망모기 밑이라 ‘망목촌’이라 불렸다고 한다. 망모기는 원칠암에서 무장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1300년대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갑촌리(甲村里)·용산리(...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마비. 칠암리 하마비는 갑촌마을 도암서원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데, 이곳은 김질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효자각도 있는 곳으로서,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한 징표이다. 공음에서 영광으로 가는 국도 22호선 도로변, 즉 도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삼거리에 있다. 비석의 크기는 120×58×35㎝이고, 일반적인 월석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판정리는 ‘통시암’·‘통샘’·‘판정(板井)’이라 불렸다. 널빤지로 통을 짠 샘이 있었다는 의견과 마을이 우물에 띄어놓은 널빤지와 같은 지형이라 ‘판정’이라는 설도 있다. 형성 시기가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안방죽골에 터를 잡았으나, 200년 후 역수(逆水)와 화재 등을 피해 현재의 축동마을 자리에 새터를 잡아 살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지리에 관한 지명 유래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예동(禮洞)’에서 1914년 ‘평지(平支)’로 개칭했다고 한다. 경주이씨(慶州李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그 시기를 포함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본래 고창군 수곡면(水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옥...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지리는 지형이 평평한 땅이라 ‘평지’라고 하였다 한다. 1643년대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청해면(靑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락리(水洛里)·평지리(平地里)·신흥리(新興里)·칠성리(七星里)·하련리(下蓮里) 등이 병합되어 평지...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풍수 사상·풍수지리·풍수설·풍수 도참설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풍수 사상은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는 태도이고, 풍수지리는 산의 배치와 물의 흐름, 지형과 방위, 하늘과 땅의 기운 등을 고려하여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갑리는 본래 고려 시대의 갑향(甲鄕)이었는데 발음이 잘못 전해져 갑평(甲坪)으로 불리었다. 1910년 갑평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갑평·하갑평·하갑이라 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계공(淸溪公) 강순(姜恂)이 동지와 집안 장정 100여 명을 모아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굴욕적인 화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창으로 내...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고리는 고현(古縣) 아래쪽이라 ‘하고(下古)’라고 하였다고 한다. 형성 시기와 성씨가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고리(上古里)·양사리(良士里)·삼태리(三台里)의 일부와 성...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당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아랫남당·하남당(下南塘)·하남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하남당·신흥(新興)·회화정(回化亭)·외남당(外南塘)·중남당(中南塘) 각 일부, 일동면의 산양·관동 각 일부, 부안군 건선면의 신흥리 일부, 고부군 서부면의 중리 일부를 병합하...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련리는 연꽃이 만발한 연못의 아래쪽 마을이라 하여 ‘하련(下蓮)’이라고 하였다 한다. 1790년대 안진머리장터가 이곳으로 옮겨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청해면(靑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평장리(平章里)·하련리 등이 병합되어 하련리가 되었고, 해리면에 편...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장리는 장사현(長沙縣)의 아래쪽에 있어 ‘하장(下長)’ 또는 ‘하장사(下長沙)’라고 하였다 한다. 고려가 망하자 1414년경 천안전씨(天安全氏) 전덕린(全德隣)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하리면(下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정리(平亭里)·원두리(元斗里)·오룡리(五...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전리는 살마기[일명 전막(箭幕)]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하전(下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 무장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살마기·상전리·동전리·서전리·월산리·용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하전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살마기 남쪽에 예전 당산제를 지냈던 당산(堂山)[13m]이 솟...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전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이 학형국인데 그 학이 밭에 내려와 앉은 모양이라 학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1826년(순조 26) 청도김씨가 터를 잡고 살았고, 160여 년 전 옥천조씨 5형제가 뿌리를 내렸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면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매사(梅査)·두월(斗月)·장화·제내...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천리는 마을 지형이 학이 하늘로 나는 모양의 비학상천(飛鶴上天) 형국이라 ‘학천(鶴天)’이라고 불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조동리(釣洞...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룡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1510년경 신천강씨(信川康氏) 강윤석(康允碩)의 아들이 반월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월리(半月里)의 일부가 병합되어 해룡리가 되었고,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해리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청해면(靑海面)과 오리동면(五里洞面)에서 ‘해(海)’자와 ‘이(里)’자를 따 해리면(海里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興德郡)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청해면과 오리동면의 병합으로 해리면이 되어 12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법정리...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향산리는 마을 뒷산이 구릉으로 넓게 보여 ‘박산(博山)’으로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지형이 ‘난(蘭)’자 형국이라 난의 향기(香氣), 박산의 산(山)자를 따 ‘향산(香山)’이라고 개칭했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창녕장씨(昌寧張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동사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의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채홍국(蔡弘國), 고덕붕(高德鵬), 김영년(金永年), 한계상(韓繼常) 등 92명의 의사(義士)가 흥덕면 남당마을에서 혈맹창의(血盟倡義)하여 왜적과 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도 많은 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순절하자 그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창의비이다. 1593년(선조 26) 6월 29일 왜적에 의해 진주성...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산리 앞에 꽃봉재가 있다. 꽃봉재 ‘화’자를 따서 ‘화산’이라 불렀는데, 처음에는 ‘화(花)’로 부르다가 ‘화(化)’가 좋다고 하여 ‘화산(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전에는 ‘놋점[놋새·鍮店]’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전에 놋점[놋새]으로 유명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촌된 이후 밀양박씨(密陽朴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산리는 마을에 누렁산이 있어 ‘누렁산’ 또는 ‘황산(黃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1470년 경에 남평문씨(南平文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古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지리(禮支里), 수곡면(水谷面)의 평지리(平支里) 일부가 병합되어 황산리가...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회룡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1600년경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여원(成汝源)이 곡다우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구동리(九洞里) 일부와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도내면(道內面) 용계리(龍溪...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개가 있으므로 뒷개 또는 후포(後浦)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대촌(大村)·후포·용두(龍頭)·사포(沙浦)·석우(石隅)·신송(新松) 각 일부를 병합하여 후포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고말 북쪽에 비봉귀소혈(飛鳳歸巢穴)이 있다는 대성봉재[일명 죽봉정...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 갈공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당간 지주. 흥덕당간지주는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민에 의하여 일곱 조각으로 절단되었던 것을 1983년 12월경에 수습, 복원하여 다시 세워놓았다고 한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흥덕당간지주의 위치와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향교와 함께 교운마을 일대에 사찰이 있었던 것...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흥덕 읍내가 되므로 흥덕읍내 또는 흥덕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서부리·동부리·신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흥덕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흥덕 북쪽에 배풍산(培豊山)[109.2m]이 솟아 있고, 솔아물[일명 효동(孝洞)] 앞에 솔아물방죽[일명 주교제(舟橋...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백제 시대에 흥성현, 고려 시대에 장덕현·흥성현, 조선 태조 때 흥덕현이었다. 조선 말기 현내면(縣內面)이 되어 한림(翰林)·녹사(綠砂)·동문(東門)·동부(東部)·서문(西門)·서부(西部)·복룡(伏龍)·신조(新造)·교촌(郊村)·오태(五台)·석호(石湖)·치리(峙里)·구동(九洞)의 1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