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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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한편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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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신흥동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광맥이 발달하여 양질의 철광이 많은 곳이다. 일찍부터 제철과 관련된 유적과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충주 탄금대에서는 백제시대의 제련로가 확인되었으며, 백제 때 축성된 탄금대 토성에서도 철 교역의 자료인 철정 40매가 출토되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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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가흥리 원동 사지에서 확인되는 기와 등 유물로 보아 사찰은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그 외 연혁이나 폐사 시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충주 시내 중심지에서 충주 탄금대 방면으로 나아가 국도 38호선을 타고 중앙탑면, 앙성 방면으로 가다 보면 가흥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는데, 가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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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에 있는 자연휴양림. 충주시는 주변에 수안보온천, 월악산, 단양팔경, 충주호를 연결하는 관광벨트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 휴양과 연계할 목적으로 1997년 7월 1일 충주호변에 위치한 계명산 내에 계명산자연휴양림을 개장하였다. 계명산자연휴양림의 구역 면적은 363㏊, 1일 최대 수용 인원은 500명, 최적 인원은 200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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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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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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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 지도.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지도, 천하지도, 전국지도, 지방지도, 군현지도, 관방지도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전국지도는 한 장의 종이에 넓은 지역이 취급되어 있기 때문에 군현지도에 비해서 생활 공간의 내용이 적게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다른 전국지도에 비해서 『청구도(靑邱圖)』·『동여도(東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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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전국 5대 관광권의 하나인 충청관광권역에 속하는 충주호권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의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등에 해당되는 지역인데 해안을 끼지 않는 내륙 지역으로서 산악, 수변, 온천 등의 자연 자원과 역사·문화 자원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충주호 관광권의 월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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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통합 충주시에는 고속국도 2개 노선, 일반국도 4개 노선, 국가지원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9개 노선, 군도 27개 노선 등이 있다. 또한 관내에는 충북선의 주덕역, 달천역, 동량역, 삼탄역, 충주역, 목행역 등의 6개 역이 있다. 1. 광역 도로 교통망 경기도 여주-경상북도 구미 간의 중부내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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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 권태응은 어려서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문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며 음악과 운동도 좋아했다. 성격은 다정다감하였으며, 정의감이 강했다. 1932년에 충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에 서울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학과에 진학하였으나 평소 일인들의 부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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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작가회의 충주지부에서 항일 시인 권태응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문학제. 탄금대의 일원에서 진행되는 권태응 문학잔치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충주지부에서 1996년 제1회 권태응 선생의 문학제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고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고, 동심의 맑은 정서를 함양하기 위해 개최하였는데, 최근에 권태응 문학잔치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권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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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태숙(泰叔), 호는 사천(沙川)·운촌(雲村). 아버지는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인백(金仁伯)이다. 박지계(朴知誡)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30년(인조 8) 식년시 생원과에 급제하였다. 스승 박지계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상소하여 구명했고, 1635년(인조 13) 박지계가 별세하자 1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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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활약하다 순절한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 또는 외암(畏菴).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훈(金壎)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이다. 김여물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구속받지 않는 성품으로,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했으며 장수의 재략도 있어 문무를 겸비했다. 1567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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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 김용한은 1922년 경릉참봉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풍천임씨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높은 문벌을 가진 세력 있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엄격한 가훈에 의하여 전통 한학을 익히다 당시 일제하의 현실 속에서 좀 더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학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청주중학교 및 경성법학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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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 겸 충주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수(士秀), 호는 삼수당(三秀堂).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김이유(金履裕)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이다. 영조 대부터 순조 대까지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충주목사 겸 충주병마절도사를 지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정상에 있다. 아들 김조근(金祖根)[1793~1844]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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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본류로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충주시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강. 본래 명칭은 한강이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므로 편의상 남한강이라고 부른다.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大德山)[1,307m]에서 발원하여 골지천, 동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흐른 뒤 영월읍에서 평창강(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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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요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의해 불렸고 전승되어 온 구전문학이자 음악이다. 이들 농요는 내용적으로 농사의 어려움, 삶의 애환, 역사적인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일의 동작을 맞추고 노동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농요는 입으로 불려 전해지므로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수리 농요는 남한강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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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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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 누정(樓亭)이란 누와 정의 합성어로서 『설문』에 의하면 누는 중첩시켜 올린 집이라고 하여 형상에 따라 정의하고 있고, 『석명』에 의하면 정(亭)은 정(停)으로 표기하여 잠시 놀다가는 곳으로 풀이하여 기능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누정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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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습지. 습지가 금릉동 능암에 걸쳐 있다고 하여 금릉동 능암습지로 부르고 있다. 금릉동 능암습지는 충주시내에 가까우면서도 남한강 변을 따라 남아 있는 주요 습지이다. 길이 약 800m, 폭 50m 정도의 규모로서 남북으로 긴 장방형이다. 남한강 제방 안쪽에 평행하게 달리는 배후 습지로서 대부분 소택지나 늪(swamp)으로 존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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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유주막마을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역터. 원래 고려시대 단월부곡(丹月部曲)이 있던 곳으로 노(奴) 110명, 비(婢) 89명, 대마 2필, 기마 7필, 복마 5필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1546~1592] 장군이 이끄는 8,000명의 군사가 충주 탄금대에서 일전을 치르기 전 이곳에 진을 치기도 하였다. 단월역 남쪽에 정지상(鄭知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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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가주동과 이류면 문주리를 연결하는 고개. 달은티는 월은치(月隱峙), 월은고개, 큰고개로도 불린다. 이곳에 있는 청풍김씨의 묘소가 달이 구름 속에 숨은 형상이라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해발 약 300m 정도로 그리 높지 않지만 달천과 달천평야(일명 충주평야), 탄금대 구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고개는 충주시 남쪽 경계를 따라 동서로 뻗은 산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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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을 거쳐 충주시로 흘러드는 하천. 달래강, 감천(甘川)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수달이 많이 살아서 달강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 때문인지 인근에 수달피고개가 있으며, 달천리 서쪽 물가를 물개달래로 부른다. 한편, 달천은 물맛이 좋아 단냇물이라 하였던 것이 달냇물로, 다시 달천으로 변했다는 지명 유래도 전한다. 달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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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달천동·봉방동·칠금동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평야. 남한강의 제1지류인 달천의 측방 침식에 의해 형성된 범람원이라 하여 달천평야로 불린다. 달천평야에는 충주의 중심부가 함께 입지하고 있어 충주평야로도 일컫는다. 남북 길이 약 5㎞, 동서 폭 약 3㎞ 정도로서 청주의 미호평야와 함께 충청북도의 2대 곡창 지대를 이루고 있다. 남쪽 단월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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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산. 천지개벽할 때에 달천강의 상류인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작은 산덩어리가 떠내려 오는데, 그 위에 개가 타고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개가 충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서 견문산(犬門山)이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렇듯 견문산이라고 하던 것이 어느새 점 하나가 빠져 대문산(大門山)이라고 쓰여 왔는데, 견문산으로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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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서 대문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대문산은 칠금동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인데, 보통 탄금대로 불리고 있다. 「대문산의 유래」는 김생의 신통력으로 물길을 돌려 ‘독산’이 되었다고 하는데 대문산에 대한 명칭은 없고, 홍수전설과 관련하여 ‘견문산’이라는 명칭에서 ‘대문산’이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81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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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에 있는 골프장. 주식회사 대영베이스에서 친목 도모와 함께 대중 골프장을 통한 골프인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08년 6월 건립하였다. 코스 설계 및 감리는 (주)더림골프 디엔씨에서, 시공사는 (주)삼대양개발에서 맡았다. 대영베이스컨트리클럽의 부지 면적은 999,268㎡이며, 골프 코스 면적은 273,801㎡로 동쪽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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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대중과 소통하며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1971년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가 문학·음악·미술 3개 지부로 승인을 받아 출발한 이래 1987년 7월 한국연예협회 충주지부가 설립되어 충주 시민에게 대중문화의 큰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정 계층이 아닌 일반 시민이 쉽게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는 방송 매체와 연예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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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대흥사는 1956년 3월에 승려 오법우에 의해 창건되었다. 충주 탄금대(彈琴臺) 북쪽 계곡의 끝 부분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각이 옆에 있다. 대흥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족의 침략을 당하여 사찰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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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큰 길. 통합 충주시의 고속국도, 국도, 지방도 등은 동서·남북의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군도는 국도와 지방도 등과 연결되어 있다. 통합 충주시의 도로의 노선은 2006년 12월 31일 현재 고속국도 1개 노선, 건설 중인 고속국도 1개 노선, 일반국도 4개 노선, 국가지원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9개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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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면 하담리와 경계를 이루는 강변에 두무소가 있다. 탄금대 열두대 앞에서 푸른 물결을 헤치며 배를 타고 창동 마애불, 중앙탑, 충주 고구려비를 지나 내려오면 충주 조정지댐이 가로막는다. 지금은 댐으로 가로 막혀있지만, 옛날에도 여울이어서 큰 배가 다니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여울을 지나 모현정을 바라다보고 내려오면 물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강 한가운데에 홀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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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술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리쿼리움(Liquorium)은 술을 뜻하는 ‘리쿼(liquor)’와 전시장을 의미하는 접미사 ‘-rium’이 어우러진 단어로 술박물관을 뜻한다. 세계 각국의 술과 술의 역사, 술의 원료 및 제조 방법, 도구, 음주 문화 등 술과 관련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술 관련 세계 각지의 문화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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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던 제분노동요. 「방아 타령」은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민요이다.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는 절구통·디딜방아·연자방아 등에다 곡식을 갈거나 찧으면서 진방아·중거리방아 및 자진방아 등을 부르고 있다.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청북도를 대표하여 「탄금대 방아 타령」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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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말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안보면 미륵리의 수안보초등학교 미륵분교 앞에 큰 무덤이 있는데, 이를 흔히 ‘말무덤’이라고 한다. 고구려 온달(溫達)[?~590] 장군이 이곳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창에 맞아 죽자 이곳에 묻어 주었으며, 말의 무덤이라는 뜻에서 ‘말무더미’로 불렀다고 한다.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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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시인 정호승의 창작 시집. 『모밀꽃』은 정호승의 유일한 간행 시집으로, 조선문학사에서 간행되었다 총 34편의 시가 실려 있으며, 본문 113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춘」, 「찔레꽃」, 「우울」, 「나는 탕아」, 「다시 한 번」, 「잡스러운 이 몸」, 「불안이 풀리든 날」, 「노래를 잊은 이 몸」, 「그 어떤 풍경」, 「뻐-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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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교(牧溪橋)를 건너 목계마을로 접어들면, 왼쪽 산 바위 밑에 목계가 어떤 마을인지를 금방 알 수 있게 하는 비석군(碑石群)이 있다. 샛강에 다리를 놓아 제하공덕(濟河功德)을 칭송한 ‘밀양박공해성송덕비(密陽朴公海成頌德碑)’, 개인 재산을 털어 목계국민학교를 설립한 공을 기려 마을 사람들이 세운 ‘파평윤공해영송덕비(坡平尹公海英頌德碑)’를 비롯하여 목계마을의 유래와 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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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경영이 충주호와 탄금대를 배경으로 제작한 영화. 「몽중인」은 배우로 더 잘 알려진 이경영 감독의 「구천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충주호와 탄금대를 배경으로 하였다. 충주에서 3월 22일, 성균관대학교 새천년 홀에서 3월 29일 각각 시사회를 시작으로 4월 5일 개봉된 영화이다. 「몽중인」은 가야금의 고장, 택견의 고장, 사과의 고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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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 충주 지역의 무속 신앙은 무속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임경업 장군 및 최영 장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엄정면 목계리의 목계 별신굿은 충주를 대표하는 무속 신앙의 하나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양반 고을 충주답게 앉은굿이 성행하고 있다. 현재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에 배향되고 있는 임경업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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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문학인과 문학단체. 충주 문학의 역사는 길다. 신라의 외교 문서를 명문으로 썼다는 문장가 강수(强首)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충주에서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들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여기서는 1910년 이후 충주 출신 또는 충주 인근의 출생으로 활동한 문인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1. 유재형(柳在衡) 호는 유촌(柳村)이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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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충주역이 있어 역전동이라 불렀으나 충주역이 봉방동으로 이전하여 동 이름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음으로 ‘선진 문화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뜻에서 문화동(文化洞)으로 개칭하였다. 문화동은 원래 충주성(忠州城) 서문 밖 충주천 건너에 있던 작은 마을로 서북쪽으로 충주 탄금대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 서울과 청주로 가는 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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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충주시장을 역임한 행정가. 박승두는 1901년에 태어나 1917년 충청북도 중원군 엄정면 용산리 공립보통학교를 1회로 졸업하였다. 충주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초대 동량면 용교 수리조합장, 8대 동량면장, 3대 충주엽연초 생산조합장을 거쳐 충주읍장으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는 현재 충주교육청 자리에 있었던 천운정이 충주시 사직산에 옮겨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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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와 주덕읍 신양리에서 초벌 논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풍년이 들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부르는 「방아 소리」는 여러 잡가에 삽입된 벼농사 노래 중의 논매기 소리이다. 「방아호」또는 「방개가 논다」라고도 한다. ‘방아호(放我乎)’는 ‘마음을 놓았다’라는 뜻으로, 농부들이 논매기까지 하였으니 마음을 놓고 풍년을 기대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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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복지 시설. 6·25전쟁으로 인해 약 4만여 명에 이르는 보훈 대상자의 미망인들이 생겨났으나 이들을 돕기 위한 복지 시설이나 휴양 시설은 전무하였다. 이에 국가보훈처와 한국보훈의료공단 및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가 주축이 되어 미망인들을 위한 휴양 시설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국비로 보훈 기금 약 70억 원을 조성하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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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에 있는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자기산포지. 대소원면 본리 앞에는 요도천이 흐른다. 요도천은 신덕저수지로부터 주덕읍과 대소원면을 지나 탄금대 밑의 합수머리 바로 위쪽에서 달천강과 합쳐진다. 요도천은 일찍부터 충주에서 제일 넓은 들을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농사와 밀접히 관련되었다. 1872년 제작된 충주목지도에는 팔십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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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방과 하방의 ‘방’자와 봉계동의 ‘봉’자를 합쳐 봉방동(鳳方洞)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으로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북변면 7개 리 중에 방정동리(方井洞里)가 현재의 봉방동 지역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마을 이름은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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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사찰. 충주 장미산성의 동쪽 입구에 위치한 절로, 원래 봉루암(鳳樓菴)이라 부르다 현재는 봉학사라 불리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장미산(薔薇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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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봉황리 내동사지 인근의 보물 제1401호인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과 절터에서 확인된 석탑 부재, 기와편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사찰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 시기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충주 시내에서 충주 탄금대를 지나 중앙탑면의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거쳐 가흥초등학교에서 앙성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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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자연 휴양림. 산림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파괴시키지 않으면서 국민 정서 순화 및 보건 휴양에 기여하기 위하여 충주시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중앙탑면 봉황리 을궁산(乙宮山)[398m] 아래에 봉황자연휴양림을 조성하여 1996년 6월 15일 개장하였다. 구역 면적은 1.74㎢, 1일 최대 수용 인원은 700명, 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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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 논매기 노래(아시매기 노래) 긴 방아소리 에헤이 어라 방아호에헤이 어라 방아호 선천수 후천수는 에헤이 어라 방아호 억만 세계두 무궁한데에헤이 어라 방아호 천황씨가 탄생 후에 에헤이 어라 방아호 지황씨도 탄생을 하고에헤이 어라 방아호 인왕씨가 탄생을 하고에헤이 어라 방아호 복희신농씨 탄생을 하야에헤이 어라 방아호 억조창생을 구제할 제에헤이 어라 방아호 농사짓기도 마련이 되야에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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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산지나 구릉으로 둘러싸여 오목한 형태의 저지대를 이루는 지형. 분지는 평지 또는 평야가 산지로 둘러싸인 지형으로 성인적(成因的)으로 분류하면, 단층(斷層)이나 요곡운동(撓曲運動) 등으로 형성된 구조성 분지와 침식으로 이루어진 침식 분지로 나뉘어진다. 장기간에 걸쳐 침식을 받아온 우리나라는 침식 분지의 발달이 우세하다. 충주 지역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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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되어 있는 주변에 비해 높이 솟은 봉우리.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북서부 차령산지, 남동부 소백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의 형상을 띤 지역으로 산지의 비중이 높다. 그에 따라 산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솟아 있는 다양한 고도의 산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대체로 300~1,000m에 이르는 중·저산성 산지들이며, 충주시 경계부로 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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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만정리에서 상사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대소원면 만정리 황대마을 위쪽에 상사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신립을 사모하던 처녀가 신립 장군이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바위에 올라 투신자살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81년 중원군에서 간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에 「신립장군과 상사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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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조선시대 서원의 효시는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조세붕이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경상도 순흥에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서원이 관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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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성마루에 있는 충주 지역 최초의 사립 미술관. 조태남 관장이 어릴 적부터 자라온 고향 터에 예술인의 안목을 충족시키면서 대중성을 함께 갖춘 문화예술 공간을 설립하기 위하여 자비를 들여 2006년 건물을 신축한 뒤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7년 12월 1일 성마루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조태남 관장은 성마루미술관의 시공부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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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휴양 시설. 1989년 12월 (주)남주관광개발이 한국에서 유일한 온천 지역 스키장으로 수안보 오로라밸리 스키장 및 유스호스텔을 개장하였다. 1994년 (주)사조마을에서 수안보 오로라밸리 스키장 및 유스호스텔을 인수하여 이름을 사조리조트 수안보지점으로 변경하고 스키장 운영과 유스호스텔을 이용한 청소년 수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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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온천. 수안보온천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자연적으로 용출된 온천으로서 약 3만 년 전부터 솟아 오른 천연 온천수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청구도(靑邱圖)』 등 30여 종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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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무신. 본적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신말평(申末平)이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신상(申鏛)이다. 아버지 생원 신화국(申華國)과 어머니 파평윤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녀로는 영의정을 지낸 첫째 아들 신경진(申景禛), 훈련도정을 지낸 둘째 아들 신경유(申景裕), 지돈녕부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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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서 신립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왜군을 막기 위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를 한다. 「신립 장군과 원녀」는 신립이 어쩔 수 없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게 된 내력을 알려주고 있는 인물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신립과 원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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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충주는 가장 희생이 많았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은 탄금대 앞에서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8,000여 명의 조선군 중 두서너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희생이 큰 전투였다. 또한 충주읍성에 있던 많은 사람들, 즉 사민(士民)과 관속(官屬)들이 당대의 명장인 신립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믿고 피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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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있는 신립장군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신립[1546~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명장으로, 1567년(명종 22) 2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 도총관 등을 거쳐 온성부사, 함경도북병사, 평안도병마절도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 방어의 임무를 띠고 팔도도순변사로 임명되어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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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악성 우륵의 공적을 추모하는 비. 우륵(于勒)은 원래 가야국(伽倻國) 사람으로, 가실왕(嘉悉王)이 성열현(省熱縣)의 악사 우륵에게 가야금 곡조 12곡을 짓게 하였다. 후에 우륵이 신라로 귀화함에 진흥왕이 국원성에서 살게 하였다. 이후 진흥왕은 우륵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대나마(大奈麻) 계고(階古), 법지(法知), 대사(大舍)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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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충청북도 충주 탄금대가 있던 지역의 이름. 양진명소는 탄금대 북쪽 강가에 임한 금휴포구에 있었다. 한때는 신립 장군의 사당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려시대부터 봄·가을로 나라에서 향을 내리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의 제신(祭神)인 오룡(五龍)에게 제사하던 별신굿놀이로 ‘양진명소 오룡굿’이 전해지고 있다. 근년에 이 오룡굿을 문화제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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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충청북도 충주 탄금대가 있던 지역의 이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북쪽 강가에 임한 금휴포구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부터 봄·가을로 지방관에 명하여 제사를 지냈다. 양진명소(楊津溟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탄금대 금휴포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주목조에 “춘추로 소재관에 명하여 제사를 지냈다(楊津衍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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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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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북쪽 남한강 변의 절벽 위에 있는 바위. 신립 장군이 1592년 탄금대 전투 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에서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에 근거해서 후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과 열두대 사이의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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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김상현이 중원군의 역사 및 문화 등에 관하여 기록한 향토지.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고 명관이 지방을 다스리려면 지방의 편리함과 불편함, 생업과 지역의 역사와 풍속에 정통해야 했다. 그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지방지를 만들어서 성종 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인조 때『호서승람(湖西勝覽)』, 영조 때 『여지도서(輿地圖書)』, 정조 때 『충청도읍지(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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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를 포함한 중원 지방에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많은 산성이 분포하고 있다. 이처럼 중원 지방에 산성이 많이 축조된 것은 중원 지방이 한반도의 허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중요성에 기인한다. 고대의 고구려·백제·신라는 중원 지방을 장악하기 위해 쟁투를 벌였는데, 중원 지방의 장악은 한반도 지배권의 장악을 의미하고 있었다. 또한 중원 지방은 고대 국가의 가장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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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남쪽으로 넓게 트인 주덕평야가 펼쳐있어 넉넉함을 더해준다. 버드내들, 구레자리들이 자리 잡은 넓은 들판이 있기에 사람살기 넉넉한 터전이 되었다. 마을 앞 방죽뱀이를 시작으로 공신앞들, 사갑들, 진개들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 한줄기 젖줄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려 대지의 목마름을 풍족하게 적셔준다. 이름하여 요도천(堯渡川)이다. 요임금이 건넌 강이라서 이름 붙였으니,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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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을 흐르는 남한강과 달천의 합류점에 있는 하중도 습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류점은 유속이 감소되는 구간으로, 두 하천으로부터 공급되는 물질들이 퇴적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하류에 충주조정지댐을 건설함으로써 생겨난 탄금호 안에 있는 습지 성격을 띤 하중도가 되었다. 열두대에서 바라본 용섬은 장방형으로 길게 늘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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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음악가. 우륵은 가야의 가실왕(嘉實王) 시대 사람으로 현 경상북도 고령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성열현(省熱縣)에서 태어났다. 가실왕의 재위 기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륵이 귀화했을 당시 신라가 진흥왕[540~575]의 재위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아 우륵도 5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중반을 넘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금은 원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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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유동(遊洞)과 반송리(盤松里)에서 ‘유(遊)’자와 ‘송(松)’자를 따 ‘유송(遊松)’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생면(金生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동·반송리·화동(禾洞)·창리(倉里)가 통합되어 유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금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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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유영길 부부의 합장묘. 유영길(柳永吉)[1538~1601]은 1559년(명종 14) 별시문과에 장원 급제한 이후 부수찬, 정언, 병조좌랑, 전적, 헌납 등을 거쳐 1565년 평안도도사를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강원도관찰사, 승문원제조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내면서 조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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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문경(文卿). 아버지는 첨사 이한(李漢)이다. 이종장은 1569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1589년에 윤탁연(尹卓然)의 천거를 받았다. 1591년에는 신천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목사겸조방장(忠州牧使兼助防將)에 제수되어 도순변사 신립(申砬)을 따라 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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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효술(孝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좌랑을 지낸 이은(李誾)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희업(李熙業)이며, 아버지는 선무원종공신 2등에 오르고 형조참판에 추증된 이안국(李安國)이며, 어머니는 천안전씨이다. 아들 이호신(李好信)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했다. 1554년(명종 9) 충주에서 태어난 이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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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토지와 자원 등 자연을 이용하여 인간이 만들어내는 내적인 시스템과 외적인 구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인문지리에는 인간들이 자연을 인위적으로 나누어 만든 위치와 면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읍·면·동과 같은 행정구역과 역사 속에 나타나는 목·군·현 그리고 방리도 중요한 인문지리적 요소이다. 인구와 인구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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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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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1910년 8월 한국병합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조선 침략이 완성되었다.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더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1910년 10월부터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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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조선을 침입한 왜군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의 전쟁 1592년 4월 13일에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포에 이어 동래를 점령한 일본군은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상주 전투에서 이일(李鎰)을 격파하고 충주에서 신립(申砬)을 깨뜨린 뒤 이렇다 할 전투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가고, 조선은 7년 동안 일본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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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에 있는 골프장. 임페리얼레이크컨트리클럽은 충주권 지역 최초의 회원제 골프장으로 1990년 개장하였다. 임페리얼레이크컨트리클럽의 부지 면적은 830,332㎡이다. 코스 규모는 18홀 파72이며 총 연장 6,313m이다. 코스는 파인코스와 레이크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파인코스는 야산에 위치하여 코스가 편안하며 소나무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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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기상 현상과 자연 현상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 충주 지방은 자연재해 중 한해·냉해·설해 등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주로 여름철 집중 호우와 태풍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다. 충주는 풍수해가 많은 한강 유역 중부에 위치하여 대홍수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잦은 편이지만, 면밀히 기록된 것은 많지 않다. 현재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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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주는 우리나라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북동쪽으로는 제천시, 서로 음성군, 남으로 괴산군과 경상북도에 면하고, 북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면한다. 충청북도에서는 북동부에 치우쳐 위치해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소백산맥의 여맥인 계명산·남산·대림산·월악산, 서쪽으로 국망산, 북쪽으로 천등산 등 비교적 높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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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와 장천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장미와 보련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이때 남동생인 장미가 성을 쌓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긴 꼬리처럼 남한강 가를 감싸는 산이라 하여 장미산(長尾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산 북쪽 기슭에 장미산동이라는 마을도 있다. 300m 약간 넘는 낮은 산이라 산성을 쌓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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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서는 유현(儒賢)을 받드는 한편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였는데, 장암사당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본래 장암사당은 1695년(숙종 21)에 창건되어 1702년(숙종 28)에 사액받은 서원이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에 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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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호암예술관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전국 규모 가야금 경연대회.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는 악성 우륵의 얼이 살아 숨 쉬는 탄금대의 고장 충주시에서 전국 제일의 규모로 펼쳐지는 가야금 대회이다. 가야금 연주의 보급과 발전을 위하여 기획되었으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에서 개최하는 우륵문화제와 함께 열리는 충주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서 전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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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행정가. 정희택은 청주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관계에 발을 내딛었다. 옥천군수와 진천군수를 거쳐 1952년 충주군수로 부임하였다. 충주군수로 재임할 때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게 공무를 처리하였으며, 청빈한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문묘와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를 보수하고 탄금대 비를 세우는 등 숭조 사상과 문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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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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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동요. 「중원 마수리 농요」는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을 기원하며 불렀던 벼농사노래이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그 자체가 잊혀져가던 것을 지난 1970년대에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마제마을 사람들에 의해 재현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94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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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김현길이 충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해 쓴 향토지. 『중원의 역사와 문화유적』은 자라나는 향토의 젊은이들에게 향토의 역사를 올바로 일깨워 주고 향토에 대한 긍지를 심어 주고자 저자가 직접 답사한 내용과 경험을 정리하여 1984년 9월 청지사를 통하여 발간하였다. 1권 1책으로, 가로 12.5㎝, 세로 21㎝ 크기의 소책자 형태이며, 면수는 약 200면이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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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무용 단체. 충주는 진흥왕과 악성 우륵과의 인연으로 충주 탄금대에서 우륵이 세 제자에게 춤과 창과 가야금을 가르쳤다는 문헌상의 기록과 함께 지명도 가야금과 관계있는 가금, 금가, 청금, 탄금, 칠금 등 예향의 고장, 우륵의 고장, 가야금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중원춤학회는 우륵이 세 명의 제자 중 만덕에게는 춤을,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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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산간 분지이다. 이곳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침식 분지로서, 남한강이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상류 유역을 흐르다가 처음으로 하곡이 넓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지점이 바로 충주댐 부근이다. 달천 또한 속리산에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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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은 재위 12년째를 맞은 551년에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친다. 개국의 의지를 실천하여 신라의 중흥을 이룩한 진흥왕의 일대 사업은 국경 지대의 요충인 낭성(娘城) 순수에서 우륵의 신가(하림조)를 접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진흥왕과 우륵(于勒)의 만남에는 어떠한 수수께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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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부터 조창이 있어 창골 또는 창동이라 불렀다. 당시 조창의 이름은 경원창과 덕흥창이었다. 본래 충주군 금천면 지역으로 창동리는 조선 초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언급된다. 『세종실록지리지』충청도 충주목조에 보면 “경원창(慶原倉)은 주의 서쪽 10리 연천(淵遷)에 있는데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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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창동 사지와 관련된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원래 현 위치가 아니라 뒤편 담 쪽에 있던 것을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정식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창건 연대나 폐사 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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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철광산지. 충주는 철광맥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으로 한국지질도 충주도폭에 의하면 옥천계층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시대 미상의 변성 퇴적층 가운데 계명산층에 철광상이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계명산층은 음성·이류·달천·중앙탑·연수쪽으로 이어지는 중심맥과 앙성, 노은쪽과 수안보, 한수쪽도 가지맥에 철광맥이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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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유항이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청금정의 정경을 노래한 한시. 유항은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쉬어간 네 개의 정자 중 하나인 중앙탑면 누암리 청금정을 소재로 한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사휴정(四休亭)은 청금정 외에 금가면의 옥강정, 금가면 하담리 하소와 엄정면 목계리에 있던 정자를 함께 지칭하는 것이다. 대(臺)·고(古)·오(午)로 압운한 평기식 칠언절구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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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체육 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그 부대 시설. 충주시 체육 시설은 크게 공공 체육 시설·학교 체육 시설·사설 체육 시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공 체육 시설은 충주시 소재 공공 기관이 직접 관리하는 공공 체육 시설·체육 공원·동네 체육 시설·기타 생활 체육 시설로 구분할 수 있고, 학교 체육 시설은 실내 체육 시설과 실외 체육 시설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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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안림동의 경계인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 산성. 충주 남산성은 해발 636m의 남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계곡 상단을 에워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축 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동악성(桐岳城)’으로 추정된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은 동악성(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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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고분군.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소일부락 서쪽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충주시의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약 5㎞ 떨어져 있으며, 탄금대를 지나 한강 서쪽 강변으로 이어지는 구릉지대가 해발 100m~130m의 봉우리를 이루고 작은 능선들이 있는 곳이 전체 범위가 된다. 이 구릉지대는 북쪽으로 능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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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상.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얕은 부조로 조각된 마애불로 동남향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4m이다.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 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왜군과 격전하다 분패·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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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제철 유적지. 칠금동 제철유적은 개인주택 신축사업에 앞서 대상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가 의뢰되었고, 2006년 5월 29일 시굴조사를 하였다. 이어 2006년 8월 2일부터 9월 2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로(爐) 1기와 구덩이 유구 1기, 구(溝) 1기, 원형수혈 4기, 기둥구멍 2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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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문산의 산정. 충주시 칠금동에 소재한 구릉지인 대문산(大門山) 산정으로, 이곳에서 우륵(于勒)의 가야금(伽倻琴)에 대한 일화가 전해오고,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 장군의 격전지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 552년(진흥왕 13) 가야국에서 귀화한 악사(樂士) 우륵이 이곳에서 금(琴)을 탔다[彈]는 것에서 탄금대(彈琴臺)라는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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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김수항이 충주 지역을 유람하던 중 지은 한시.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서인으로서 두 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으며, 뒤에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자 노론의 영수가 되었다. 저서에 『문곡집(文谷集)』과 「송강행장(松江行狀)」 등이 있다. 시문에 뛰어났고, 변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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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천문 과학관. 충주시는 총 사업비 약 28억 9000만 원을 투입, 2005년 11월 착공하여 2008년 4월 18일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을 개관하였다.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인근에 충주 고구려비가 있으며,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자는 뜻에서 명칭을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이라 하였다.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의 부지 면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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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고대부터 철광산이 개발되어 철광석을 캐고, 쇠를 뽑고 녹이고 두드려 각종 무기나 농구 등의 연모를 만들던 쇠부리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고대 국가의 힘의 상징인 철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은 공히 충주 지역에 공을 들였으며 충주 지역을 확보한 국가가 항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자원의 보고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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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 사이의 협곡을 막아 세운 다목적 댐이다. 충주시 동북방 6㎞ 지점에 높이 97.5m, 길이 464m로 건설된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댐이다. 소양강댐에 이어 2번째로 많은 27억 5,000만t의 저수 능력을 갖추어 연간 33억 8,000만t의 각종 용수를 수도권 지역에 공급하고 홍수 조절 기능도 하고 있다. 충주댐으로 인하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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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박물관. 충주박물관은 중원 문화권의 학술 연구와 유물 및 유적 등을 보존하고 박물관 학교 와 각종 특별전 등의 행사를 통하여 시민과 함께 하는 박물관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6년 11월 25일 성내동에 유물전시관을 개관하였다. 1991년 6월 29일 충주박물관 직제에 대하여 의회 승인을 받았다. 1992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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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충주성에서 제천 의병과 관군·일본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을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로 인식한 유생들은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고 반침략 운동과 반개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은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을 도발하면서 한층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국모 시해에 항거하여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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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세계무술축제추진위원회에서 해마다 열고 있는 세계 무술 축제.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인 택견을 중심으로 한 우리 고유의 무술을 한자리에 모아 시연 및 무술 홍보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호국 무예인 택견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하여 충주시가 택견의 본고장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1997년 10월 제1회 충주세계무술축제를 개최하였다. 공식 행사로는 무술연무 및 대회, 문화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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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 충주시는 중부 내륙 광역권의 거점 도시로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풍부한 용수로 기업하기 좋은 산업 기반이 구축된 도시이다.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전국 교통망의 중심이며,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의 중심 도시이자, 충주호와 월악산, 수안보온천·앙성온천·문강온천이 있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이다. 충주시를 상징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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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와 중앙탑면 장천리 사이에 있는 충주댐의 보조댐. 충주조정지댐은 본댐인 충주댐의 홍수 조절을 도와주고 충주댐 발전으로 일시에 흘러내린 물을 일단 비축하였다가 24시간 평균 107.2㎥/s로 고르게 하류로 용수 공급을 하면서 동시에 발전 시설을 가동하는 댐이다. 간접 효과로는 댐 하류부의 상시 유량을 증가시킴으로서 도시화와 공업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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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에 있는 남산 등에서 발원하여 시가지의 중심부를 지나 탄금대 서쪽에서 달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충주시가의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이어서 충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길이 10.50㎞이며, 교현천과 함께 충주시가지를 흐르는 중요한 하천이다. 충주분지를 남동~북서로 관통하며 흐르면서 구릉대와 달천평야 곳곳에 충적지를 만들고 있다. 상류는 남산과 대림산 일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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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조정 경기장. 1985년 충주댐이 준공됨에 따라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댐 하류에는 충주댐의 수량 조절을 목적으로 한 탄금호가 조성되었다. 탄금호 조성 초기에는 개인적으로 바지선을 가져다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정도였으나 이후 충주를 비롯한 전국 조정선수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면서 탄금호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4년 제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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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휴양 시설. 1990년 수상 레저 시설과 콘도 및 호텔 등 숙박 시설을 갖추고 한국코타레져타운으로 개장하였다가 충주호리조트로 명칭을 변경하여 청소년수련회, 기업체연수, 대학단체 행사, 사회단체 행사, 종교단체 행사 등을 개최하였다. 충주호리조트의 부지 규모는 1,486,247㎡로, 270개의 객실을 갖춘 콘도미니엄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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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한국전쟁 때 희생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탑. 1955년 11월에 대한민국 상이군경용사회 충청북도 충주분회와 대한민국 제대장병 보도분회(지금의 재향군인회)에서 해방 후 전몰한 충주 지역의 장병·경찰관·군속·군노무자 등의 2,838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탄금대에 충혼탑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기공 9개월 만인 1956년 9월 완공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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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금대리, 신촌리, 칠지리, 능암리, 봉계동의 일부를 병합하고 칠지리와 금대리의 이름을 따서 칠금리라 하였다. 칠지(漆枝)는 옻나무 가지라는 뜻인데, 옛날에 마을 근처에 옻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대(琴臺)는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는 뜻으로 충주 탄금대의 준말이다. 칠금동은 원래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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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어귀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충주시 탄금대 입구 앞쪽에 MBC에서 운영하는 탄금스포츠센터가 있다. 이곳은 주로 골프 연습장으로 이용된다. 칠금동 고인돌은 탄금스포츠센터 바깥의 북쪽 밭 가운데에 2기가 위치한다. 고인돌의 뒤에는 송신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민가가 이곳 가까이까지 확장되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탄금대 앞쪽은 충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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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남한강 가에 있던 나루. 한강의 수운은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의 용산이나 마포까지이며 그 중심에 충주가 있다. 충주에는 고려시대 때 덕흥창, 조선시대 때 가흥창이 있어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세금으로 받은 곡식 등의 물품을 수송하였고,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선(私船)에 의한 경강상인들이 한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였다. 이때 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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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에서 탄금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칠금동에 대문산이 있는데, 이곳에 탄금대가 위치하고 있다. 대문산이 강원도에서 떠내려 왔기 때문에 해마다 강원도에 세금을 내었는데, 고을 원의 아들 재치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민담형 이야기이다.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3-1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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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강으로 인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이 갖춰진 곳으로 짐작된다.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확인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중원 문화권을 대표할 만한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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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대문산에 있는 고대 토성. 탄금대 토성은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낮은 구릉에 위치한 고대 토성이다. 탄금대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륵(于勒)이 신라로 망명한 후 이곳 국원(國原)에 안치되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맞서 싸운 전적지이다. 탄금대 토성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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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권상하가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사망한 신립 장군을 회고하며 지은 한시. 운(雲)과 군(軍)으로 압운한 평기식 칠언절구이다. 황성고각가감문(荒城鼓角可堪聞) : 황폐한 성 북과 나팔 소리 즐겨 들을 만한데 고도공비일모운(古渡空飛日暮雲) : 옛 나루터 속절없이 저문 구름 날리네 인인강파유대원(咽咽江波猶帶怨) : 울어 예는 강여울 아직도 원기 띠었으니 부지하처조장군(不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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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설가인 김만중이 충주 탄금대에 올라 감회를 적은 한시. 황(荒)·량(凉)·장(場)·장(長)으로 압운한 측기식 오언율시이다. 1~4구는 우륵이 충주 탄금대에서 어스름 황혼에 홀로 선 심정을, 5구와 6구는 나그네가 임진왜란 때 전사한 8천 고혼을 조문하는 애국 충정을, 7구와 8구는 8천 고혼의 넋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하였다. 우륵탄금처(于勒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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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박상이 충주 탄금대에 올라 감회를 읊은 한시. 탐(探)·남(藍)·암(庵)·삼(三)·참(慚)으로 압운한 평기식 칠언율시이다. 1구와 2구는 충주 탄금대에서 있었던 지난 일을 회고하고, 3구와 4구는 문장가 강수와 서예가 김생의 흔적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4구와 5구는 무심한 자연의 운행을, 7구와 8구는 작자의 부끄러운 마음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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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이소한이 충주 탄금대에 올라 감회를 읊은 한시. 대(臺)·회(回)·애(哀)로 압운한 평기식 칠언절구이다. 기구(起句)는 비오는 충주 탄금대 정경을, 승구(承句)는 술잔을 올려 호국 충혼을 조문하는 모습을, 전구(轉句)는 당시의 감회를 묻는 것으로, 결구(結句)는 물소리에 가슴을 에는 듯한 절절함을 노래하였다. 편운비우과금대(片雲飛雨過琴臺) : 조각구름 날리는 빗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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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근린공원. 551년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해서 탄금대란 명칭이 붙었다. 탄금대는 임진왜란 당시 명장 신립 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전적지이기도하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7월 9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42호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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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과 중앙탑면 창동리 갈마 입구를 연결하는 다리. 충주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충주 탄금대 주변에 있어 그 이름을 따서 탄금대교라 하였다. 탄금대교는 왕복 2차로로 길이 343m, 폭 8.5m, 유효 폭 7m, 높이 9m이다. 경간 수는 16개로 탄금대 방향을 1경간으로 할 때 경간장의 경우 1~6경간은 18m, 7~13경간은 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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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생활체육공원. 충주 지역 주민의 건강과 건전한 여가 생활을 위해 국비와 시비를 투입하여 탄금대 주변에 체력 단련 위주의 운동기구와 놀이기구, 편의시설 등을 갖추었다. 이후 1993년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설치되고 1995년 궁도장을 설치해 전국 규모의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궁사들의 연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2005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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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축구장. 탄금잔디구장에서는 주로 축구 경기가 진행되며 충주시 칠금동에 위치하여 칠금잔디구장으로도 불린다. 충주시는 충주 지역 주민들의 축구 경기 및 생활 체육 공간으로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1984년 12월 15일부터 충주시 칠금동 509-95번지[남한강로 8] 일대의 늪지대인 폐천을 매립하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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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정자. 충주시내에서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중앙탑 방면으로 나아가다 보면 잔디구장이 나타나고 잔디구장 옆으로 아담하게 숲으로 둘러싸인 동산인 충주 탄금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충주문화원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언덕길을 올라간 후 충혼탑 방향의 산책길을 따라가면 감자꽃노래비를 지난 다음 언덕 위에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충주 탄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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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사람의 근본인 예절을 지키는 어린이, 기초 학력을 익혀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기초 과학을 익혀 탐구하는 어린이, 근검절약의 가치를 실천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6년 5월 21일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97년 3월 1일에 초대 안상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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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금가면에 있는 충주댐과 충주조정지댐 사이에 형성된 인공 호수. 원래는 조정지호로 불렀으나, 현재는 부근에 위치한 탄금대의 이름을 따서 탄금호라 부르고 있다. 길이 약 15㎞, 폭 250~600m, 면적 6.2㎢ 규모의 인공 호수로서 충주댐 건설 후 좀 더 하류 쪽 남한강 본류 변에 충주조정지댐을 만들면서 생긴 호수이다. 충주호가 충주시 동부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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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마을 주민들이 지내는 위령제. 2003년 충주 탄금대에 1592년 임진왜란 때 장렬히 전사한 신립·김여물 장군과 8천 고혼의 넋을 달래는 위령탑을 건립하고 매년 음력 4월 28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충주문화원 앞 광장을 우회전하여 위령탑을 지나면 팔천고혼위령탑(八千孤魂慰靈塔)이 나온다. 팔천고혼위령탑은 1592년 음력 4월 28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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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산. 산 모양이 팽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팽고리산이라 한다. 팽이를 치다 보면 아주 잘 칠 때 팽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이 순간처럼 산이 생겼다고 여긴 것이다. 한자로는 광명산(光明山)으로 표기한다. 충주의 주산인 계명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 끝 부분에 자리 잡은 구릉성 산이다.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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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고도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대가 펼쳐진 땅. 평야는 평지(平地)·평원(平原)이라고도 한다. 평야는 그 성인에 따라 퇴적평야와 구조평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천의 퇴적 작용만으로 형성된 평야를 퇴적평야 또는 충적평야라고 하는데, 선상지·삼각주·해안평야나 이미 형성된 골짜기에 퇴적한 곡저평야 등이 이에 속한다. 홍수 때에는 하천의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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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육지 표면에서 일정한 유로를 가지는 유수의 계통. 충주 지역에는 태백에서 발원하여 정선·영월·단양·제천을 지나 충주·여주로 흘러나가는 남한강이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다. 남한강은 북한강과 함께 한강의 2대 지류로서, 태백에서 양수리까지 약 400㎞를 흘러가는 큰 하천이다. 또한 탄금대 부근에서는 남한강의 제1지류인 달천이 합류하면서 넓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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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별신제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지역에서 행해졌던 굿놀이를 말한다. 1940년대 중반까지 연행되다가 현재는 전승이 중단된 상태로 그 이름을 빌어 일부 재연 행사를 하고 있다. 본래 무당이 주재했기 때문에 목계별신굿이라는 명칭이 적합하겠지만, 현재는 별신제로 많이 칭하고 있어 목계별신제로 불러도 무방하다. 목계별신제는 목계 지역에서 행해진 목계 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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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음악협회. 음악예술문화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옹호하며, 향토예술문화의 발전 및 창달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1년 한국음악협회 충주지부로 결성되었다. 그 후 충주 탄금대에 현대적 야외음악당이 건립되어 충주 지역의 음악활동은 전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음악협회 충주지부는 초대 지부장 김승호, 부지부장 정관수, 사무국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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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에 있는 문학 단체. 1987년 9월 17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확대·개편되면서 참다운 민족문학과 사회 민주화, 문학인의 권익 보호, 국제 교류, 남북통일 등에 기여하기 위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창립되었다. 현재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산하 여러 위원회와 장르별 분과를 두고 있다. 1996년부터 전국적으로 지회 조직을 결성하였다. 근년 들어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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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1945년 8·15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환희와 함께 혼란과 고통도 가져다주었다. 충주도 해방 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노정되면서 많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결과,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500만 동족을 사상하였다. 충주는 우리나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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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육지에서 주변에 비해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인 공간. 한반도에서 비단 충주 지역만 내륙에 호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주요 대하천을 끼고 있는 지역, 그 중에서도 산간 계곡을 굽이굽이 흘러오다가 급격히 하곡이 넓어지기 시작하는 변환점에서는 대부분 대형 다목적 댐과 넓은 인공 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북한강 유역의 춘천(소양강댐·춘천댐), 낙동강의...